이제 이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여섯 번째 용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6) 조건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은 조건적이었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다는 사실만으로 뱀에 물린 모든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의 보증이 되지 못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예비하심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충분했지만, 오직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들에게만 효력이 있었으며, 그것은 곧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놋뱀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아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조건에 순종하고,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역사를 이루신 사실, 그 자체만으로 모든 죄인들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조건적입니다. 이 조건은 구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인 것입니다(요 3:16).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그로 하여금 자기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죄를 지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 복된 소식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의한 뚜렷한 결단을 통해,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믿고 신뢰하며, 이제 자기 삶의 주님으로 그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부여하신 이 조건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 우선 첫 번째, 이것은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로 구하지도 않았고, 이를 위해 돈을 지불하지도 않았으며, 선한 행위를 하지도 않았고, 또한 뱀이 높이 들린 장소로 순례의 길에 오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의 작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뱀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할 바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적인 제약과 한계 가운데 있었고, 따라서 그들은 지적인 기도를 한다든지, 자신의 사지를 잘라낸다든지, 혹은 값을 치른다든지, 놋뱀을 주조하는 일에 한몫 거든다든지 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무슨 일을 하도록 요청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단지 쳐다보는 일이었으며, 쳐다본즉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자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쳐다보는 일은 무척 쉬운 일입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뱀에 물린 모든 사람들, 곧 아주 어린아이로부터 나이 많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기꺼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내에서 구원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즉 그들은 다 쳐다볼 수는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예로 든 이처럼 놀라운 예화를 통해서 우리가 확실히 배우는 것은 거듭나는데 필요한 조건은 모든 죄인들이 능히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여기서 '앙망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단순한 믿음, 확신, 그리고 신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부모를 바라보며, 그 필요를 공급해줄 것을 당연히 신뢰하며 의지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도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지셨고, 자신이 받아야 할 심판의 자리를 대신하셔서, 죽으셨으며, 또한 그 구원을 확증하기 위해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또한 죄인은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이것을 모든 독자께서는 각자 개인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을 따라서 해보십시오. "주 예수님, 제가 잃어버린 바 된 자이며, 범죄한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당신의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모든 죄를 지셨으며, 나를 대신하여 모든 심판을 받아주시며, 나로 구원받게 하시려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저는 주 예수님을 나 개인의 구주로 믿고 신뢰하며, 이후로부터 제 삶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당신도 이처럼 바라보시겠습니까?
(b)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로부터 눈길을 돌리는 일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뱀이 물어 생긴 상처를 바라보도록 요청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에 주의하도록 요구받지도 않았으며, 더더군다나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위해 애쓰도록 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뱀에 물린 상처에서 독을 제거하기 위해 집에서 만든 치료제를 사용하고자 했을 거라고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그들의 능력 밖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방법은 바로 태양 빛 가운데 빛나는 놋뱀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쳐다보는 일이었으며, 바로 그 쳐다보는 순간, 하나님은 새로운 생명을 그들의 소유로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새로운 출생, 곧 거듭남도 이와 마찬가지로 죄인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도, 또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믿음만으로도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혹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개선시킨 후에, 또는 자신의 기도나, 결심, 혹은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헛된 노력과 열심을 그치시기 바랍니다. 뱀에 물려 절망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교훈을 받으시고, 눈길을 자신에게서 돌이켜 그리스도에게 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이루신 십자가 사역을 통해 구원의 확신과 안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옛날 찬송가 가사 가운데는 이 부분에 대해 도움이 되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주님이 왜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나?
혹 내 죄악을 담당하신 것은 아닐까?
주님의 옆구리에서 어찌하여 죄를 정결케 하는 피가 흘러나왔나?
혹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죄 값을 다 갚으시기 위한 것이 아닐까?
당신은 이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나의 자리를 대신하시며, 나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그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이미 이루어 주셨다.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멈추고, 바로 지금,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으며, 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노라."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정하신 조건에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c)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실이었다는 점입니다.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별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적으로 장대 위에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곧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영원히 보장이 되고, 또한 거듭나는 일이 가능하게 된 일에 관하여 말씀하신 바를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으며, 그 기록된 말씀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9-12).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다본 그 순간, 그들의 책임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그 간단한 조건에 맞게 행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경험하도록 이루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죄인이 감당해야 할 유일한 책임은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제 영적인 혹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권세로서, 이를 통해 죄인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믿는 신자에게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거듭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민수기에 기록된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7) 결과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 일을 통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세운 조건을 죄인이 충족시켰을 때, 하나님의 약속은 지체 없이 그 죄인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쳐다보는 일만이 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구원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이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이 정한 조건에 응했을 때, 곧 범죄한 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자기 구주로 신뢰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는 능력과 권능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심으로써, 그 사람은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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