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된 사건(죽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쓴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적고 있다.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너희에게 전한 것은 …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으며 성경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 나셨으니…
"(고전 15:3-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묻히심 그리고 부활에 바울은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 사건을 살펴 볼 수 있다.
예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지어 입히신 가죽 옷, 아벨의 희생 양,
레위기의 제사와 제물 그리고 속죄의 날과 유월절.
예언: 이 사건은 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의 중심 주제이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 18절에서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것을 미리 알게 하셨고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라고 우리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눅 24:26-26) 주님께서는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 해 주셨다. 시편 22편은 이 고난에
대해 얼마나 상세한 기술을 하고 있는가! -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내뱉는 조롱, 손발의 창 자국, 극심한 갈증으로 그의 혀는 잇틀에
붙었고 그 전 재산, 단 한벌 뿐인 솔기없는 겉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우리는 신약에서도 이 사건을 찾아 볼 수
있다.
성취: 요한 복음 6장 51절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산 떡이요…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노라." 그리고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사건이 설교의 주제임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 중에서(행전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또한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 10절에서
미문의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낫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가사의 광야로 내려가는 길에 빌립은 "저가 사지(死地)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었던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그가 바로 다름아닌 예수이심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였다(행전 8:35). 바울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자기 피를 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라고 상기시켜 주었다(행전 20:28).
그 사건(죽음)의 내용: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1) 자원하여: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0:17). 또한 그는 자신을 잡아가기 위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오는 사람들을 대항하려는 베드로에게 "너는 내가 내
아버지에게 구하여 지금 열 두 영(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흠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물로 바쳐 드렸다 (히 9:14)
2) 대리(vicarious)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즉 죄인들을 위하여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들을 위함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롬
3:32).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갈 2:20).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역주: 원어상 '우리를 위하여
또는 대리하여'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 그리스도의 대신의 죽음과 대리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혜택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두 가지
다른 의미를 부여 해 준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죄 용서의 은혜를 말한다면 후자는 거룩한 삶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얼핏
듣기에는 대리나 대신이 비슷한 말 같아 보이지만 매우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주의해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딛 2:14).
3) 대신하여(substitutionary):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인자가 온 것은…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역주: 이 절을 원어를 따라
다시 생각해보면 '인자의 온 것은…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대속물로 자기의 생명을 주려 함이라.' 따라서 그리스도의 대리의 죽음이 아니고 대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마20:28).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딤전 2:6). 여기 "위하여"(for)라는 단어는
"위하여(on behalf of)"나 "대신에(instead)"라는 뜻과 함께 "때문에(on account of)"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다음의 형벌의 측면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4) 형벌의 측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역주: 문자적 해석은 '범죄함 때문에')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롬 4:25). 이 말은 주
예수께서 우리들의 죄와 필요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 자신 때문이 아니고 죄인들을 위하여 죄의 형벌 즉 죽음을 당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다는 말이다(고후 5:21, 갈 3;13).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사 53:5,8).
5) 화목의
측면(propitiatory):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역주: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그 자체임을 유의 할 것. 원어에는 제물이 없음)로 삼으셨으니…"(롬 3:25). 율법의 의로운 심판이 행해졌다는 증표로 속죄일에 속죄소에
속죄의 피가 뿌려졌다(레 16:14). 그 결과 심판의 자리는 속죄의 자리, 즉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가 되었다(출 25:21,22). 그러나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화목에는 앙심을 품고 있는 하나님을 달래서 회유하게 하는 그러한 측면은 전혀 게재되어 있지 않다. 화목은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충족시킴으로 그 결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행위이다.
6) 구속의 측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역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앞에 '왜냐하면' 이란 단어가 있다. 따라서 19절의 '너희 것이 아닌'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따라서 죄의 종이었던 자들은 죄의 권세와 죄의 정죄로부터 구속되고 해방될 수 있다.
7) 화해의 측면(reconciling): 인간은 죄와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종이며 따라서 해방되어야할 필요가 있는
존재 일 뿐 아니라 본래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화해가 필요한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라는 말씀을 볼 수 있다(역주: 여기의 화목이라는 말은 화해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원어의 의미는 화목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 개선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서 자녀와 백성의 관계가 된 것을
말함). 뿐만 아니라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역주: 화해)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8) 계시의 측면: 이 사건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움직일 수 없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됨을 밝히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9)
효험과 승리의 측면: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떠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시면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말씀하셨다(요 12:32-33).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에게 안겨 주는 놀라운 축복과 혜택은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초월한다. "그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롬 5:9), "저(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고"(고후 5:21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고"(엡 2:13하),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계 1:5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그 놀라운 축복과 은혜 -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상).
기대되는 것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라는 것들.
1) 세상의
원리와 가치관을 버림: 사도 바울이 가장 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겼던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그러기에 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갈라지게 하는 갈림길이다.
2) 그리스도와 동행함: 세례는 우리가 주님과 한 몸이 된 것을 인정하고 이를
선포하는 예식이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믿는 이가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하고, 물속에 잠기는 것은 자신이 죽어
장사되고, 죄에 대하여, 죄의 종으로 살아왔던 삶에 대하여, 세상과 그 가치관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는 것을 상징한다(골 2:20). 그리고
물속에서 나오는 것은 현재 이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상징한다(골 2:12,13). 그 결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로서(골 3:1) 위엣 것을 열망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3) 주님의 죽음을 선포함: 매 주
첫날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모여 주님을 기억하고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기쁨인지 말로 다 형용 할
수 없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십자가라는 말이 당신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인가? 천로역정을
저술한 죤 번연 - 그의 외침을 들어보자. 이것이 당신의 외침인가?
영광된 십자가여! 영광의 무덤이여!
나를 대신해 죽으신
그분, 그분만을 찬양하라!
출처 : http://www.christi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