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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설교/존 파이퍼(John Piper)

John Piper - God is the Gospel(하나님이 복음이다)

by 복음과삶 2009. 9. 23.

                            
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user/DGJohnPiper
By John Piper. © Desiring God. Website: desiringGod.org

자막 By http://godspassion.org/

 

출처 : http://godspassion.org/bbs/blog/45

 

 

제가 정하고 읽은 책은 존 파이퍼 목사님의 ‘하나님이 복음이다’입니다.

저는 이 책 제목을 보면서 뭔가 심상치가 않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이라니? 예수님이 복음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하나님이 복음이라니 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 책 괜히 특이한 제목으로 뭔가 호기심만 자아내는 그런 책 아니야?’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 책을 쓰신 목사님이 상당히 훌륭하신 복음주의 목회자임을 듣고, 오히려 이 분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신 것이 궁금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복음이다’ 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은 이런 내용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마다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영생을 얻는다”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이 틀린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한 가지가 없다면, 이것 자체가 기쁜 소식(복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왜 우리가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중요한가? 왜 영생을 얻는 것이 기쁜 소식인가? 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가? 그 이유는, 이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해 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칭의도, 영생도, 천국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것들이 하나님께 이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필요한 것도, 우리가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것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사 죽으셔야 했던 것도 다 이 하나님께 이르도록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칭의, 영생, 용서 등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이며, 이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해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즐거워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얻게 해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다면, 이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가장 큰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은 수단이 아니요 바로 목적이고, 우리의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을 통해서 무언가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 하나님께 우리가 이를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바로 그 분이 복음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만약 천국에 들어갔는데,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 당신이 그렇게 보고 싶던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당신이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하던 즐거움 들이 거기에 있었다.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광경들이 여러분 눈앞에 계속 해서 펼쳐진다. 거기에서는 더 이상 병으로 고통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과 갈등할 필요도 없고, 돈 때문에 고생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슬픔도 없고 아픔도 없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다면...., 그 하나님이, 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아도, 그래도 그 천국을 사모하겠는가? 그 천국이 사모되는가?” (책의 내용과 동일하진 않고 제 나름대로 풀었습니다)

저는 비슷한 맥락에서 이렇게 생각을 진전시켜 봤습니다.

“하나님과 그 동안 별로 안 친해왔고, 그에 주신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혹은 아예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 막상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이 바로 곁에 계실 때 어떠한 반응이 나올까? 하나님을 만나도 별로 반갑지 않고, 할 말도 별로 없고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괜히 피하고 싶고, 어색하고, 이야기를 해도 단답형으로 다 끝내버리고, 별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도 없고, 같이 있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가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과 같이 있고 싶고 그것을 찾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곳이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하나님이 가장 큰 복음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보통 구하고 찾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교라는 말 자체가 합당하지 않는 최고의 선, 최고의 가치, 최고의 목적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고 하고 계시고,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나요?’ 물어보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복 받기 위해서, 천국가려고, 아니면 지옥 가지 않으려고, 성공하려고, 착하게 살려고, 아니면 뭔가 얻을 것이 있어서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한 것 때문에 나올 수 있지만, 계속해서 변함없이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큰 문제 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 신앙의 모든 관심이 ‘나’를 향해 있습니다. 이를 인간중심의 복음, 인본주의적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자체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나’를 축복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나’를 영광되게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 강조점은 ‘나’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는가?’ 에 더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우리에게 외면당한 ‘하나님’을 불쌍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불쌍한 사람임에도 말입니다. 목적이셔야 하는 하나님을 우리의 도구로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러한 영향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가 누리는 혜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증을 들을 때도 그러합니다. 성공주의 간증들이 우리로 시험을 들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성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것으로, 마치 그리스도인은 다 성공해야 하고 자식도 잘되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벌고 해야 하는 것으로 비치게 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하면, 기가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뭔가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알게 모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공을 통해서도, 또는 실패를 통해서도, 축복을 통해서도, 고통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실패 앞에서 절망하고, 고통 가운데 슬퍼하며, 고난 가운데 힘들어 주님 앞에 나와 그의 얼굴을 구할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쁨의 찬양과 동시에 회개의 눈물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세상의 가치관과 달리 하나님의 가치관과 일치되어 있을 때에 우리는 세상의 상황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주로 인해서 즐거워하고 그 영광을 바라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복음은 우리의 승리나 간증이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길은 주의 영광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렇게 집중하여 봄으로 우리 또한 그의 형상을 따라 변화된다고 말합니다. 죄의 문제도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 극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의 영광을 봄으로, 주의 아름다움을 봄으로, 우리 속에 죄가 더러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으로 바뀌게 되는, 마음으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복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의 정결함을 맛보게 될 때, 죄는 역겨운 것이며 구원은 멋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회개의 슬픔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소중한 보화로 여기게 될 때, 그렇지 못한 나의 삶에 대해서 회개하게 되고 애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고 하나님을 소중하게 여기지 아니할 때,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계속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책을 보며 느끼고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그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의 말하는 바는 너무나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고 다른 것을 더 얻고자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했습니다. 마치 아이에게 ‘아빠가 좋아 군것질 할 수 있는 천원짜리가 더 좋아?’ 라고 물을 때, 천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그 아이의 모든 삶을 책임지고 보호하고 먹이고 함께하는 아빠보다 ‘천원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구하기 보다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것들만 구하고 있는 것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에만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정 구하고 찾아야 할 것은 안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맛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며,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치 현재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전에 경험했으면 됐다’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현재 살아가는 여러 가지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역시나 저 또한 다른 사람과 별 다를 바 없이, 제게 있는 문제들만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찾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고 하게 될 ‘나’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잊었거나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더 깊은 세계로 나가지 못하고 얕은 세계에서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바로 서지 않았었음, 흐려졌음을 발견합니다. 제가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기를 기도하고 사모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만족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는 고백이 제 입을 통해서 다시금 고백되기를 기도합니다. 다윗과 모세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시27:4)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출33:18)을 보기를 원하고 소망했던 것 같이, 저 또한 그러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예비순장훈련을 통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번에는 깊이 있게 읽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천천히 곱씹으면서 다시 읽어보고자 합니다. 책에는 제가 언급한 내용보다 훨씬 자세하고 깊이 생각해볼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다른 형제 자매들도 속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출처 : http://www.emmanuelya.org/xe/ministryboard/88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