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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스펄전

32. 스펄전 - 거룩한 대회가 더렵혀질 때-쫓겨난 자를 모으며 (습3:18-20)

by 복음과삶 2009. 11. 23.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열왕기상 22:48]

거룩한 대회가 더럽혀질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병든 시기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로 인한 치욕은 진정한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들은 근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렇게 무거운 짐이 마음에 지워졌을 때 그들이 근심 속에 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그들을 비탄에 빠지게 하는 악한 영의 영향력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저는 자를 구원하며." 선지자들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시온을 향한 순례자들은 내내 다리를 절어야 했습니다.

순수한 복음이 선포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여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힘을 빼앗기게 됩니다. 여러분이 빵을 빼앗으면 아이들은 주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양떼에게 독초를 먹이거나 사막처럼 황무한 들로 인도해 간다면 그들은 곧 파리해지고 목자를 따라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다리를 절게 됩니다.

교리는 곧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이 그저 쉬는 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잠을 잡니다. 진리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도,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끼치지도 못하는 것들을 신물나게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곳에서 양떼들이 먹을 양식을 기대하며 고개를 들지만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아! 많은 이들이 19절에 있는
"쫓겨난 자를 모으며"에 나타난 자처럼 쫓겨나 있습니다. 거짓 교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삶의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본성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죄로부터 회개시키는 진리는 더 이상 선포되지 않습니다. 구하는 자들을 평안으로 인도하는 진리는 구름으로 가리워지고 영혼들은 불필요한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능력을 느낄 수 있도록 은혜와 영광스런 대속의 교리가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모든 악한 것들이 그 뒤를 따라오게 됩니다.

이 끔찍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교회에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머뭇거림은 멸망으로 치닫게 되고 약한 자들은 동요되며 강한 자들조차도 당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가능하다면 택한 자들을 속이려 합니다. 이런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마음은 근심에 빠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동안 내내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방황하는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본문에 동일한 의미가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습3:19).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3:20).

대적들은 영원한 증거를 침묵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나무에 매달고 그의 몸을 내려다가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고는 그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분명히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목적과 뜻이 있었습니다. 자랑하지 말지어다. 너희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아! 돌로 막고 지키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가! 정한 때가 왔을 때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세마포가 구속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의 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요!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4)

사랑하는 여러분, 치욕은 아직 거룩한 대회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나팔 소리 같은 하나님의 진리가 다시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고 추수할 볏단처럼 많은 회심자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때 짐 지고 근심하는 자들은 기쁨과 아름다음의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의 속죄는 찬양과 영원한 기쁨이 되어 그들 머리 위에 되돌아올 것입니다. 의심의 갈등이 사라진 전쟁의 끝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외치는 그 소리를 듣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19:6).

교회가 가장 낮은 곳에 처할 때도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교리에 의해서 세워지고, 온전하시고 충만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지옥의 문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인해 기뻐합시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했기 때문에 무한히 부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수 만명의 페르시안인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알렉산더의 용기는 더욱더 빛났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한 명의 푸줏간 주인이 무수한 양떼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소?" 다른 사람이, "아, 그 많은 페르시아인들이 활시위를 당기면 태양이라도 어둡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영웅은 "어둠 속에서 싸운다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소리 높이 외쳤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다나시우스는 말했습니다. "나 아다나시우스는 세상과 대적할 것입니다." 이 말은 유명한 격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전쟁에서 홀로 싸우는 것은 영광스런 일입니다. 우리에게 여섯 명의 아군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힘을 더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돌봐야 할 연약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홀로 싸워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쳐 아무도 주위에 남아 있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그 모든 빈자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사12:6)......

배를 조종하고 있는 주 예수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 오,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십시오. 그리고 인내하며 그를 기다리십시오.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사35:4).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mid=Puritan05&category=94&document_srl=32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