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년 영국 켈베돈 마을에서 탄생하여 1892년 58세의 나이로 남프랑스 멘톤마을에서 설교하다가 주님 품에 안긴 스펄젼은 “설교의 황태자”라는 칭호에 부족함이 없는 위대한 설교 3,544편을 설교전문 그대로 후대에 남겼다.
한 시대 구술로 전달되고 사라진 메시지가 아니라 주님의 재림까지 수많은 설교자들에게 설교의 영감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보석보다 귀한 영적인 유산이다.
창조성과 영감 넘치는 설교들이 이적
그의 생애는 그 자체가 기사이며 창조성과 영감 넘치는 설교들이 이적이라 할 수 있다. 청교도 신학을 가지고 회중교회를 목회하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성경과 기독교 문헌을 탐독하던 스펄젼은 16세 되던 1850년 1월에 회심하여 그 해 5월에 침례를 받고 침례교인이 되었다.
스펄젼의 어머니는 회중교회를 떠나 침례교인이 된 것에 대하여 “내가 너를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하기는 했으나 침례교도가 되도록 기도하지는 않았다”고 하여 악간의 서운함을 표현했다.
스펄젼은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구하시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응답해 주셨습니다.”라고 답변하며 자신의 신앙적 확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어머니를 안심시키고자 하였다.
1851년 17세 나이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1850년 10월부터 “성앤드류가 침례교회”의 교인이자 평신도 설교협회 회원이 되어 설교자 없는 시골교회에서 자신의 설교은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1851년 10월에 17세의 나이로 워터비치마을의 담임목사로 초빙되었다.
오락이나 운동, 이성교제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말씀, 기도, 전도, 설교에만 전념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영위함으로 첫 설교 출석 12명의 교회를 불과 몇 달 사이에 400명으로 부흥시켰다.
스펄젼의 아우인 제임스 스펄젼은 자기 형에 대하여 일순간에 도약하여 충분한 자격을 갖춘 설교자가 된 놀라운 본보기입니다.”라고 평하였다
그의 은사가 알려지자 침례교회 가운데 가장 유서 깊은 New Park Street Chapel에서 그를 담임으로 청빙하였다.
19세의 나이인 1853년 12월에 설교를 시작할 때는 1,200석 교회에 120명의 교인들이 듬성듬성 앉아있을 뿐이었으나, 불과 석달만에 예배당을 꽉 채우고 밀려드는 회중을 감당 할 수 없어 예배당 증축을 거듭하다가 1856년에는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4년 반의 노력 끝에 1861년 3월에 Metropolitan Tabernacle이 완성되어 5,600석을 갖춘 대 예배당을 헌당하게 되었다.
스펄젼의 설교는 매주 속기로 기록되어 1페니에 구입할 수 있는 “페니 풀핏”으로 인쇄되어 시중에 유통되었고, 수많은 성도들에게 애독되었다.
아프리카 선교 개척자인 리빙스톤의 배낭에는 어김없이 스펄젼의 “페니 풀핏”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성공회를 국교회로 하여 다른 교파의 종교적인 자유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하고 있던 영국의 상황에서 침례교를 표방하던 스펄젼이 이런 부흥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그 자 체가 기적이다.
강력한 칼빈주의의 신학설교자
스펄젼은 침례교인이면서 강력한 칼빈주의 신학을 설교했고, 국가 교회제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했던 자유교회제도의 신봉자였다. 그는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의 목적에 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스펄젼은 19세기 초반에 에드워드 얼빙(Edward Irving, 1792-1834)을 중심으로 하여 방언, 예언의 기적은사들을 강조했던 운동의 열매가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이러한 기적은사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신학을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1871년 3월에 “그리스도의 승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내용 가운데 사도나 선지자의 은사들은 일시적인 것이었으며 그와 함께 기적을 행하는 능력도 철회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복음전도자나 목사와 교사의 은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역사 한다고 하였다. 스펄젼은 방언과 같은 성령의 기적은사를 통한 능력보다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는 구령의 역사를 더 큰 성령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특별히 1869년 10월 31일의 설교는 누가복음 11장29절 가운데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를 본문으로 하여 “표적과 기사를 앙망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구약시대에 모세나 기드온에게는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로 말씀하셨지만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에 기사와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태양 앞에 촛불을 켜는 일이요, 태양에 물을 붓는 일”이라고 하였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경우와, 바로왕이 열 가지 재앙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경우를 들어 믿음과 기적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기적을 보거나 체험해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겠다고 말하는 것은 심기도 전에 먼저 거두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스펄젼의 사역은 외형적이 표적과 기사보다는 내면적인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으며, 주관적인 체험보다는 객관적으로 완성된 기록계시에 대한 믿음을 더욱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스펄젼 생애에 드러난 성령의 기적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펄젼의 생애가운데는 성령의 기적은사에 대한 몇 가지 드러난 경험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예언의 은사에 대한 체험이 있다. 1844년 스펄젼이 열살 되던 해 할아버지가 목회 하시던 스탬본에 런던선교협회 소속의 Richard Knill이라는 선교사가 스펄젼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 머물고 있었다.
3일 동안 선교체험을 어린 스펄젼에게 이야기 해주던 닐 선교사는 마지막날 할아버지 James Spurgeon목사와 온 가족 앞에서 스펄젼을 무릎에 앉히고 예언을 하였다. “이 아이는 앞으로 복음 설교자가 될 것이며 수많은 사람 앞에서 설교할 것이다.
내가 확신컨대 그는 Rowland Hill의 교회에서 설교할 것이다.” Rowland Hill목사는 스펄젼이 탄생하기 10년전에 죽었으나, 유명한 George Whitefield목사의 후계자라고 거론되던 부흥사였다.
닐 선교사의 예언은 문자그대로 실현되었으며, 스펄젼은 Rowland Hill목사가 설교하던 Surrey Chapel에서 수많은 회중앞에 설교한 경험을 갖게 되었다. 스펄젼은 이 예언을 전설로 돌리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닐의 예언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음을 확증하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체험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체험도 있다. 스펄젼은 대학졸업장이 없는 사람이며 명예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펄젼에게도 워터비치교회의 “소년 설교자”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 대학진학의 기회가 있었다.
오늘날 Regent Park College의 전신인 당시의 Stepney 대학에 입학하려고 학장인 앵거스 박사와 면담을 약속하였으나, 약속장소인 인쇄업자 맥밀란씨의 집에서 그의 하녀가 실수함으로 인해서 두시간 동안 다른 방에서 각각 기다리다가 면담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스펄젼은 면담을 이루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하였다(1권 207-208).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큰 일들을 구하느냐? 그것들을 구하지 말라.”
이 음성을 들은 스펄젼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목회에 전념하여 워터비치 마을을 크게 부흥시켰다.
꿈에서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지혜를 체험
세 번째로, 꿈에서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지혜를 체험한 적도 있다. 스펄젼은 그 많은 설교를 하면서도 매 설교마다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다. 한번은 이사야서 60장 3절을 본문으로 하여 토요일 저녁에 묵상하는데 도무지 마음에 드는 설교 구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이를 보다 못한 아내 수잔나는 오늘밤은 주무시고 내일 새벽에 설교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 날 밤 스펄젼은 그 본문을 중심으로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고, 아내는 잠꼬대를 받아 적어 주일 아침 푹 잠을 자고 일어난 스펄젼에게 그 내용을 주었다.
설교준비가 안 된 스펄젼은 허둥대었으나 아내가 받아 적은 내용이 바로 자기가 설교하고 싶은 내용임을 확인하고 좋은 설교를 했다는 일화가 자서전에 기록되어있다(2권419-420).
하나님의 임재 체험
스펄젼은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며 강단기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하였다.
스펄젼의 설교중에는 신유의 능력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그의 사역기간 동안에 그의 기도로 신유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런던의 의사들이 치유한 것보다 스펄젼이 기도로 치유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과장된 표현도 찾아볼수 있다.
(피영민 교수)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Puritan08/11641/pag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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