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장의 놀라운 약속
그렇다면 기도의 도덕적 조건들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우리는 성경만을 위대하고 유일한 판정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을 열어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 말씀의 참된 능력은 "너희 중에 두 사람이...합심하여" 즉, 한 목소리를 낸다는데 있습니다. 거기에는 거슬리는 말투도, 부조화의 요소도 결코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장에서 초기 사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불행히도 우리 가운데는 이러한 "마음을 같이하고", "한 곳에서"라는 원리가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 있고 암흑한 무리 가운데 속해 있다면 그곳에는 압도적인 형식주의가 구석구석까지 짓누르는 것처럼 보이고, 능력없는 고백, 죽은 듯 판에 박힌 말, 지각없는 기계적인 종교생활 등이 분명할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우리를 덮고 있는 마비시키는 힘에 굴복해야 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의 상황을 진실되게 느끼는 단 두사람이라도 함께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께 그 마음을 쏟아 놓읍시다. 주님께서 풍성한 은혜의 비를 내리실 때까지 하나가 되어 견고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립시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이시며 그분은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부흥을 일으킬 수 없다. 그저 단순한 흥분은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확히 운명론이라 불리우는 단편신학의 치명적 분파에 굴복하지 맙시다.
마태복음 18장 19절 말씀의 힘을 약하게 하거나 그 진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앞에 모든 충만한 복과 자유와 고귀함으로 서 있습니다. 그 용어들은 분명하며 틀림없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것이 우리가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기도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근거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냉랭함, 무관심 그리고 메마름에 비탄해 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할 때 전반적으로 실제적인 결과가 없으며, 전도의 능력이 부족하여 복음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낙심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친목이 단조롭고, 힘겨우며, 건조하고, 저조한 분위기라는 것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낙심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냉랭한 무관심으로 팔장을 끼고 있어야 합니까? 절망하며 포기해야 합니까? 불평하고, 중얼거리고, 초조해 하고, 화를 내야 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같이 하여 한 곳에" 함께 모여 우리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한 사람의 마음이 되어 마태복음 18장 19절을 내세워 그 마음을 쏟아 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권자"라는 것의 완벽한 실재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기도 가운데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것의 완벽한 실재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는 부흥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의 완벽한 실재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기도 가운데 부흥을 내려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이 우리의 눈앞에 비취는 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한, 그 은혜는 확실히 주어집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서 효과적인 기도에 대한 또 다른 필수 조건을 보게 됩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믿음으로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한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단순히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을 것이라고 보증해 주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지혜를 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비슷한 보증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러나 그에 대한 도덕적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일치와 확신이라는 두가지 기도의 조건들을 얼마나 진실히 깨달았는지 우리 자신으로 시험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두 사람이 믿음으로 합심하여 구한다면 그들이 구한 것은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다는 그것이 사실이라면-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분명한 사실이지만- 왜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응답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잘못은 우리에게 있으며, 우리의 일치와 확신에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www.christi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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