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제자들 중 많은 자들이 물러가고 더 이상 주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열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니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서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또 확신하나이다."라고 하니라." (요 6:66-69)
우리는 여기서 이 말씀이 주는 세 가지 교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I. 지금도 제자들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 물러가고 더 이상 주와 함께 다니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진리인데 아마도 이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적용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물러갔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났다면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하겠습니까?
1.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랐지만, 정작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머뭇거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열두 제자 이외에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들을 보았고, 그분을 선지자로 불렀으며, 그분이 왕이 되심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바다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자신이 하늘의 빵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즉 예수께서 무리에게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자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고 하며 수군거린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로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돌아서 더 이상 주와 함께 다니지 아니한 것입니다.
(2)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혼에 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설교말씀을 들은 후에는 더 큰 열정으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하늘의 빵이며 그분께 개인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씀을 들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다 그분의 살과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을 들은 후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이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후 실족하고 말아, 마침내는 불신으로 인하여 주님께로 물러나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중에 이들과 같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주님께로부터 돌아서기 전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에게 결코 그분의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달고 쉬운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랐지만, 정작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물러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무리들이 그분께서 행하신 많은 것들로 기뻐했습니다. 예수께서 보리 빵 다섯 덩어리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를 먹이신 것을 보고 {주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너무도 좋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세상에 오셔야 할 그 선지자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뒤이어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빵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오, 주여 그 빵을 우리에게 항상 주소서.}라며 진심으로 구했지만, 예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실족하여 {이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후 불신으로 가득 차, 그분께로부터 물러나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2) 이것은 니고데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인 그는 그리스도가 기적을 행하시는 분임을 알고 그분께로 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을 아나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은 성령으로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한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라고 다시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
(3)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혼에 대한 관심이 있으며, 또한 어렴풋이나마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세주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보면서 이렇게 까지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나의 노래와도 같고 악기의 연주와도 같아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거듭나야 한다.} {나를 먹고 나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들은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첫째, 이들은 성령을 알지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며 의아해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서 다시는 주님과 함께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발걸음을 옯기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십시오. {오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왜 당신은 {나를 먹는 자는 나와 더불어 살겠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머뭇거리는 것입니까? 당신은 성령님을 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거짓말하실지 모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바람은 본적이 없지만, 여전히 배가 밀려가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분을 본적이 없지만 성령님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들은 '그것이 사실일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각자의 마음속의 기쁨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동요되어 더 이상 기쁨의 참맛을 알 수 없게 되어, 그 결과 주님께로부터 돌아서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사탄이 당신의 명철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당신이 기쁨의 참맛을 잃어버린다면 그 다음에는 더 깊고 단 맛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당신은 더 나쁜 술을 위해 더 좋은 술을 거절한 것임을 후회와 함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기쁨은 죄의 즐거움보다 훨씬 더 달기 때문입니다.
3.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열심을 내고 있지만 정작 그리스도께 더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그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곧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수고스럽고 힘겹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따라 바다를 건넜고 수많은 날 무리와 함께 그분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행한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들이 당한 고통으로 자신을 구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세상사람들은 형편없는 죄인들이며 여전히 아버지의 선하신 뜻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어야 할 존재라고 하시며 그 구원은 오직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즉시 실족하여 주님께로부터 되돌아 더 이상 주님과 함께 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2)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종교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회심될 자신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각기 다른 고통을 견디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과거의 죄를 "사람"에게 고백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인해 고뇌에도 차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인내로 기다리며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 자신들이 그 일들을 시작했을 당시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께로 나아와 전적으로 은혜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지 않고 그들은 결과적으로 지옥만을 구한 꼴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실족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설교말씀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서 주님께로부터 되돌아 더 이상 주님과 함께 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혹시 이중에 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자신만만한 죄인들이여, 하나님께 등을 돌리기 전 잠깐 멈춰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할 죄인들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에 두 가지 하나님의 경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동행한 사람은 많이 있지만 끝까지 가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쁨과 열정으로 듣기는 하지만, 곧 그 말씀으로 실족하고 맙니다. 이것은 진지한 경고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앉아서 듣고 있다고 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린다고 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르심을 받은 이는 많지만 선택받은 자는 적은 것입니다. 많은 무리는 물러가고, 열 두 제자들만 남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먹고 그분과 함께 사는 자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로 물러선 자들은 대부분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께 영원한 작별을 고하려고 한 것은 아닐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퇴직을 하면 돌아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노라고 말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좋은 시절이 와서 여유로워지면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혼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경고를 받아들이십시오. 쉽게 실족치 말고, 당신의 잃어버린 상태를 잊지 마십시오. 성경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죄인들의 무리로 절대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의 증거들입니다. 그분께서 귀를 기울여 당신의 울부짖음을 들으실 때까지 인내로 기다리십시오.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계속 성령님의 가르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누구라도 뒤로 물러나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b),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아니하노라."}(눅 9:62)
II.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떠날까봐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열 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니}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매우 슬프셨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길 잃은 양이 멸망으로 가는 것을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아픔만큼으로 생각합니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분은 미래의 인간의 역사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 가운데 완악하여져 눈밭에 구르는 공처럼 분노를 쌓아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우시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어도 이 너의 날에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졌느니라.}(눅 19:42) 그분은 {나를 떠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떠난 자들로 인해 슬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며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1. 이 말씀에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져 있는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큰 무리들이 그분을 떠났을 때는 슬프셨음에도 불구하고 울지도 않으셨고 단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제자들이 떠나려고 하자 그분께서는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선택하셨고, 발을 씻기셨으며, 성별 하셔서 영광스럽게 하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행위를 아노라." 그리고 그분은 첫사랑의 떠나는 길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질문을 하심으로써 그들이 뒷걸음치려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아마도 열 두 제자들 중 몇몇은 많은 무리들과 함께 물러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이 질문을 하기 전에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들로 속임을 당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질문으로 우리를 정신차리게 하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당신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 판에 새기십시오. {너희도 가려느냐?} 당신의 마음에 이 말씀이 존재하는 한, 당신이 그리스도로부터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III. 참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곳은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성경과 많은 증인들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예수님을 떠난다고 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따르렵니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뒤걸음치려고 하는 마음에는 주님의 부드러운 말씀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되는지 두 가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구원받지 못한 자연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운 말일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성별 시키는 이 말씀이야말로 그분의 제자들을 그분께로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살을 먹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실족했지만, 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로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사람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떠났지만, 그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로 좀더 가까이 다가서며 "주님, 항상 내 안에 거하십시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되는 것이라고 들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와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자신에게 솔직히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에게 어려운 말씀입니까, 아니면 영생의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입니다.
2.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또 확신하나이다.} 이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께로 못 박는 정확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구세주이심을 확신하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담보가 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분이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느 한사람을 위해 고난받으실 순 있지만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난받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나 저는 그분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저 대신에 담보가 되셨음을 믿고 확신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으며 영원히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성령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은 빨리 이 진리를 아셔야 합니다. 이보다 더 확실할 순 없으며, 당신은 절대로 예수님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은 바다의 물결처럼 흔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람처럼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때는 해변가 모래밭에서 쉬고 있다가도 어느 때는 자신이 바닷가로 달려가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당신이 왜 지금 이 순간 주저하시는 줄 압니다. 바로 당신의 불신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분을 확실히 믿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Puritan05/3784/pag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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