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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J.C.Ryle

그리스도의 죽음과 표적(마27:45-56)

by 복음과삶 2011. 3. 19.

 라일(J. C. Ryle)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6시간 동안의 지극한 고통이 지난 후 주님은 죽음에 순종하여 "영혼이 떠나시게"되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세 가지 요점에 특히 주의를 두게 된다. 이것들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도록 하자.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유명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말씀 속에는 어떤 인간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신비가 담겨 있다. 틀림없이 그 말씀은 주님이 단순한 육체적 고통 때문에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런 설명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며 우리의 거룩한 주님께도 불명예스런 것이다. 그보다 그 말씀은 세상 죄가 주는 거대한 짐이 주님의 영혼에 미치는 압박감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말씀은 진실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주님이 우리의 대리인이 되어서 죄인이 되었고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사 이 세상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를 주님 자신의 몸으로 받으셨던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 두려운 순간에, 우리들의 모든 죄악을 주님 위에 극도로 쌓여지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다(사53:10). 주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불법을 지켰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인 주님이 자신을 한 동안 버려진 자로 말씀하실 바로 그때에, 그 짐은 틀림없이 무거웠을 것이며 주님께서는 실제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우리를 대신하셨을 것이다.

 

이 표현을 깊이 명심하고 잊지 말도록 하자. 주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친 것 보다 더 강하게 죄의 죄됨과 그리스도의 고통의 대속성을 증거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외침을 듣고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 주님의 최후를 묘사하는 말씀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은 간단히 "주님의 영혼이 떠나시다"라고 말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마지막 순간은 결코 없었다. 그처럼 많은 것이 좌우된 사건은 없었다. 로마 병사들과 십자가 둘레에 서서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군중들은 이 속에서 눈에 띄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처럼, 십자가 위에서 죽는 사람들과 별다를 것없는 고뇌와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는 영원한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죽음은 죄인들이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큰 빚을 갚아버렸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문을 열어놓았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만족시켜 주었고 하나님께서 의롭게 되실 수 있게 했으며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실 수 있게 하였다. 그 죽음은 단순한 자기 희생의 본보기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조건과 앞날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죄를 위한 완전한 속죄와 화해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이 어떻게 완전하게 거룩하시며 어떻게 완전하게 자비로우실 수 있는가 라는 어려운 문제에 해답을 주었다. 그 죽음은 전 세계에 모든 죄와 부정(不淨)을 씻을 샘을 열어놓았다. 그것은 사단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고 공개적으로 그 사단을 망쳐놓은 사건이었다. 그것은 모든 죄악을 멈추게 하고 그 죄악에 대한 화해를 가져왔으며 영원한 의로움, 또한 가져왔다. 그것은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 같은 희생이 필요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증명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속죄하기 위해 보냄으로써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죽음은 과거에도 결코 없었고 미래에도 다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그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에 땅이 진동한 것은 조금도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세상의 굳건한 토대가 흔들리고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사53:10).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에 유대 성전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성소 휘장이 둘이 되었다라는 말씀을 읽는다. 지성소를 성전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시켜서 그를 통하여 대제사장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그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우리 주님의 죽음에 수반하여 일어났던 모든 놀라운 표적 중에서도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세 시간 동안의 대낮의 어둠도 놀랄 만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바위를 터지게 했던 지진도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갑자기 나누어진 사건 속에는 지적인 모든 유대인들의 마음을 찌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양심은 그 둘로 나뉜 휘장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참으로 당황하였을 것이다.

 

휘장이 나뉜 것은 의식법의 종결과 사라짐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희생제물과 의식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표적이었다. 그 일은 이제 완성되었다. 그 일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순간부터 사라져버렸다. 지상의 대제사장과 언약궤의 뚜껑과 피를 뿌리는 일과 향을 드리는 일, 그리고 속죄의 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참된 대제사장이 마침내 나타나셨다. 하나님의 참된 어린양이 도살을 당하였다. 참된 언약궤의 뚜껑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림자나 어렴풋한 윤곽은 이제 더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이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제단을 세우는 일, 희생제, 제사장은 이제 환한 대낮에 촛불을 켜는 일처럼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 휘장이 나뉜 일은 구원의 길이 모든 인류에게 열려졌음을 선포하였다. 그리스도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임재의 방법은 이방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었고 오직 유대인들에 의해서만 희미하게 보였었다. 그러나 완전한 희생제물로서 이제 자신을 드리고 영원한 구원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어둠과 신비는 사라지게 되었다. 초대받은 모든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 있게 하나님께 다가간다. 한 문이 열려졌고 생명의 길이 전 세계 앞에 펼쳐있다. 이것을 우리 모두 기억하도록 하자. 예수님께서 죽으신 때로부터 평화의 길은 결코 신비로 덮여 있지 않게 되었다. 어떤 제한도 없다. 복음은 시대와 세대를 걸쳐 숨겨져 온 신비에 대한 계시가 되었다. 이제 신앙을 신비로 덮어 싸는 것은 기독교의 장엄한 특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십자가상의 죽음에 대해 읽을 때마다 찬미하도록 하자. 그것이 우리가 자신 있게 용서함에 대한 소망을 두게 하는데에 대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자. 우리의 죄는 많고 또한 아주 크지만 우리의 위대한 대리자가 치루신 대가가 그 모든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케 해줌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자.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은 확실히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자신을 믿는 모든 백성들에게 동정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을 크게 찬송하자.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셨던 분이다. 주님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 주님은 이 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몸과 마음을 가진 자들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구세주인 것이다.

 

 

출처 : http://lloydjon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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