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가장 간략하게 나더러 답변하라면 나는 이와 같이 말하겠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그 말씀가운데 얘기하신 모든 것이 다 사실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그 말씀가운데 이르신 대로 행동하시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 자신, 이 믿음, 이 신뢰가 곧 신앙입니다.
감정이란 것은 신앙에는 조금이라도 관여되는 물건이 아닙니다. 감정은 어느 모로 보든지 신앙과는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됩니다. 느낌이 강하든지 약하든지 감정은 절대로 신앙을 좌지우지 못합니다.
오직 상관되는 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요, 기타 우리 자신이나 느낌에 있지 않습니다.
가망성이 있다 없다, 공산이 크다 작다 등도 신앙과는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보통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야 믿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믿음은 절대로 이 소위 가능성이라는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가망성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볼 수 없게 되고 우리의 사리로 판단할 수 없을 그 때에 신앙은 비로소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 없음을 자탄하고 낙망 중에 빠져 있습니다.
믿을만한 아무 느낌도 일어나지 않고, 믿는 기분이 생기지 않고, 아무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스스로 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어떠한 형세도 결단코 신앙에는 관여될 수 없습니다.
오직 문제는 하나님이 그 사실을 그 말씀 가운데서 말씀하셨느냐 않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믿음의 친구들이여,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믿음이 여러분 안에 습관화되어 있는지 없는지 자문 자답해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구하는 것이 그 말씀에 언급된 사실과 부합하느냐 않느냐를 일심으로 살피는 일입니다.
시련은 신앙의 양식입니다.
자녀들의 신앙이 성장되는 것을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처음에는 연약하더라도 활용하는 도수에 따라 계발되며 강해지는 것입니다.
시련 없는 승리를 원하거나, 인내의 훈련을 멀리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믿음의 한 육성책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반겨 취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시련, 장애, 곤란, 때로는 패배까지도 모두 다 신앙에는 좋은 음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각처에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게 편지를 해 옵니다.
『뮐러씨, 제가 이 편지를 하는 것은 저의 너무 약한 믿음과 보잘 것 없는 신앙을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강건해 지기를 열망한다면, 그 신앙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하나님의 손에서 단 마음으로 취해야 합니다.
시련과 슬픔과 고통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훈육하시도록 해야겠습니다.
신앙을 단련시켜 더욱 더욱 계발하는 것은 시련을 통해서 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시련기를 당하여 이와 같이 내 안에 역사 하시도록 하나님께 내맡겼습니다.
오직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오직 그에게만 매어 달리면서 나는 마태복음 6장에서 발견한 약속의 말씀에 전체를 맡겨 휴식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25-34를 정독해 보십시오.
나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에 안식하고 그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 안에 머물게 하십시오.
한꺼번에 전 믿음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한꺼번에 완전한 신앙을 얻으려고 껑충 뛰는 식의 일은 나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이 조그마한 믿음도 한꺼번에 얻어서 된 믿음이 아닙니다.
강한 믿음을 얻어 보려고 여러 가지 질문으로 편지해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양육시키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증진될 것입니다.
『나는 아무래도 뮐러씨와 같은 그런 믿음의 은사는 받을 수 없을 것 같군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여기에는 티클 만큼의 진실성도 없습니다.
나의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공통으로 가진 믿음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진 것과 같은 믿음이요, 또한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나의 믿음이나 그들의 믿음이나 다 같습니다.
다만 나의 믿음은 그들의 믿음보다 더욱 많이 단련되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내가 행사하는 바로 그 믿음인 것이며 다만 정도에 차가 있음은 나의 믿음이 그들보다 더욱 강하게 단련되었다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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