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본문에서 사람들이 필요를 느낄 때 얼마나 도움을 간청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문둥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비참한 처지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동네에서 추방되었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모든 교제에서 끊어졌다.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비참함을 진실로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그러나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의 애처로운 처지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나타낼 말을 찾았다. 구원의 기회가 눈앞에 나타나자 나음을 얻기 위하여 간절히 부르짖었다. 이 열 문둥병자의 행위는 매우 교훈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실질적인 문제에 대하여 빛을 던져 준다. 그것은 기도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혀 기도하지 않음은 어떻게 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틀에 박힌 말들을 되풀이하는 것에 만족하고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음은 어찌된 일인가? 구원받거나 멸망 받으면서 죽어 가는 남자와 여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하고 일상적인 기도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돈 일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고 단순하다. 인류의 대부분은 죄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 그들은 영적인 질병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죄책과 자신들이 잃어진 자들이라는 사실과 지옥의 문턱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자기 영혼의 고통을 발견하게 될 때에 그는 곧 기도하기를 배우게 된다. 문둥병자처럼 그의 필요를 나타낼 말을 찾게 된다. 그는 도와줄 것을 부르짖는다. 많은 진실한 신자들의 기도가 때때로 냉랭한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들의 기도가 그토록 연약하고 미지근하고 집중적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대답은 또한 너무도 분명하다. 그들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만큼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능력에 대하여 참으로 민감하지 못함으로 자비와 은혜를 열심히 간절히 구하지 않는다. 이 사실들을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끊임없이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 성도들이 고통받는 열 문둥병자들이 그들의 몸을 보듯이 자기들의 영혼을 볼 수만 있다면 훨씬 더 나은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본문에서 어떻게 순종함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자. 그 문둥병자들이 우리 주님께 부르짖었을 때 주님은 단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주님은 그들을 만지셔서 병이 떠나도록 명령하시지 않았다. 주님은 씻거나 약을 처방하시지도 않았고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방편을 사용하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함께 신유의 능력이 나타났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자마자 고통받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다.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이와 같은 사실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에게 교훈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순종의 지혜를 보여 준다. 우리 주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명령을 받았을 때 우리가 가만히 서서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그 문둥병자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했더라면 그들은 결코 고침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려고 해야 한다. 우 리는 공개적인 은혜의 방편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가 요구하시는 의무이며, 우리가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헛되고 궤변적인 질문을 하지 말고 그것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저함이 없는 순종을 통하여서만 그리스도가 우리를 만나며 축복하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진정한 감사가 얼마나 찾아보기 어려운 일인가를 살펴보자. 그리스도가 고쳐주신 열 사람의 문둥병자들 가운데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드린 자는 한 사람 뿐이었음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주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씀들은 매우 엄숙하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은 매우 교훈적이며, 마음을 감찰하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홉 문둥병자와 너무도 흡사하다. 우리는 찬양하기보다는 구하기를 좋아하며,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기가 쉽다. 원망과 불평과 불안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자비를 끊임없이 말 아래 숨겨 사랑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의 궁핍과 고통을 드러내는 자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세상과 교회를 아는 모든 자들은 이것이 사실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감사할 줄 모르는 풍조가 팽배해 있는 것은 오늘 우리 시대의 수치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겸손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하여 매일 기도하자.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마음이다. 다윗과 사도 바울은 두드러진 감사의 인물들이었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통하여 가장 기쁨에 넘쳤던 성도들이 가졌던 특징적인 정신인 것이다. 맥체인(M'Cheyne), 비커스테드(Bickersteth), 홀데인(Holdane), 스트워트(Stewart) 등은 모두 항상 넘치는 찬양의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의 분위기를 주장하는 정신인 것이다. 천사들과 "영화롭게 된 자들"은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고 잇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기쁨의 원천이 되는 정신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으려면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빌4:6)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의 죄악성과 죄책, 그리고 자격이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되도록 기도하자. 결국 이것이 감사하는 정신을 가질 수 잇는 참된 비결인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매일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진 빚을 실감하고 자신이 진실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하는 사람이다. 감사의 마음은 깊은 겸손의 뿌리가 아니면 결코 피어나지 않을 꽃이다.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Puritan05/1966/page/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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