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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C.H.Mackintosh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by 복음과삶 2010. 4. 19.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위의 구절은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고별인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매우 암시적이며, 교사의 일과 장로들의 일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주목할만 한 사실은 바울은 사도였을 뿐 아니라 복음전도자(evangelist)와 목자(pastor, '목사'. 오늘날 일반적인 의미인 '목사'와 구별하기 위해 본 글에서는 '목자'로 번역하여 사용함-편집주)와 교사(teacher)도 겸했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에서 보듯이 목자와 교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사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목자는 진리를 적용합니다. 교사는 깨닫도록 가르칩니다. 목자는 마음의 상태를 주의합니다. 교사는 영적 자양분을 공급합니다. 목자는 영적 자양분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는 것에 주의합니다.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 전념합니다. 목자는 영혼을 돌봅니다. 교사의 일은 대부분 공개적입니다. 목자의 일은 대개 비공개적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한 사람이 겸할 때, 가르치는 재능은 목자에게 무한한 도덕적 권능을 주며, 목자적 요소는 교사에게 애정이 넘치는 다정함을 줍니다.

독자는 절대로 목자를 장로 또는 감독과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장로와 감독은 종종 바뀌어 사용되지만, 목자는 결코 장로 또는 감독과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로는 지역적 직무이고, 목자는 은사(gift)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장, 에베소서 4장에서 은사에 관한 주제가 완전히 드러내고 있지만, 이들 장(章)은 장로 또는 감독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의해서 은사와 지역적 직무를 구별해야 합니다. 장로 또는 감독은 다스리고(rule) 감독(oversight)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사와 목자는 먹이고(feed) 세우는(edify) 것입니다. 장로는 교사 또는 목자일 수 있지만, 이 둘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근거 위에 놓여 있으며, 절대로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짧은 글에서 우리의 목적은 결코 사역에 관한 논문을 쓰거나 영적 은사와 지역적 직무 사이의 차이점에 관하여 장황하게 논(論)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목자라는 은사의 무한한 중요성에 관하여 몇 가지를 언급하여, 교회의 위대한 머리이신 분께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도록 고무시켜서, 그분께서 은혜 가운데 기꺼이 이 값진 은사를 우리 가운데 더욱 풍성하게 주시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궁핍하지 않습니다. 영적 삶의 보고(寶庫)는 고갈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사랑하시며, 그분의 몸을 양육하고 소중히 여기시며, 그분의 무한한 충만으로 몸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 전체에 목자의 돌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목자직(pastorship)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과 교회의 참된 상태를 잘 아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참된 영적 목자는 얼마나 드문지요! 직함을 가지며, 직무를 맡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목자직은 직함도 직무도 아니며, 살아있는 실제, 곧 교회의 머리이신 분께서 자신의 지체들의 성장과 축복을 위하여 나누어 주시는 신성한 은사입니다. 참된 목자는 참된 영적 은사를 소유한 사람일 뿐 아니라, 자신의 피로 산 양무리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마음 가운데 가지셨던 그 사랑으로 고무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양무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참된 목자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목자입니다. 참된 목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를 위한 마음과 모든 지체들을 향한 메시지와 사역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장로나 감독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나 감독은 그러한 직무를 위임받은 지역의 제한을 받는 지역적 직무입니다. 그러나 복음전도자의 범위가 온 세상이듯이, 목자의 범위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뉴욕에서도,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목자는 목자이며, 어느 곳에서든지 그의 복된 일을 갖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목자에게 복음전도자, 교사, 장로 또는 감독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면, 이는 신약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참된 목자를 발견하기가 얼마나 드문지요! 목자의 은사, 목자의 마음을 찾기가 얼마나 드문지요!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라는 이 글의 표제에 포함된 두 가지 중대한 요소를 적절히 겸비한 자를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요? 혹 어떤 사람이 주일에 우리에게 짧은 설교를 하거나 주중(週中)에 강의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집집마다"(KJV)라는 측면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요? 날마다 부지런히 친밀하고 진지하게 영혼들을 찾는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요? 너무 어려워서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공개적인 가르침은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분명하게 와 닿는 것은 "집집마다" 다니며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주중에 사랑이 많은 목자가 방문하여 참된 의미와 올바른 적용을 전할 때까지 공개적으로 가르친 것이 완전히 오해되고 오용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목자의 영역에는 공개적인 교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의심의 여지없이 공개적인 가르침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사의 일은 매우 귀중한 것이며, 그가 목자의 깊고 부드러운 애정어린 마음으로 교사의 일을 할 때, 영혼의 여러 가지 필요들을 채우는데 실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고 신실하게 집집마다 다니면서 가르치는 사랑이 많은 목자는 영혼의 무거운 행실과 마음의 슬픔과 마음속의 혼란한 문제와 양심을 누르는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애정 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깊은 동정심으로 삶의 행로 가운데 있는 어려움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긍휼의 자리(mercy-seat) 앞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 자와 시험을 당하는 자와 좌절 가운데 있는 자와 슬퍼하는 자와 함께 마음을 쏟아 기도하며, 긍휼의 아버지요 모든 은혜의 하나님으로부터 달콤한 위로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공개적인 교사는 이러한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일 그가 자기 안에 목자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공개적인 가르침에서 수많은 영혼들의 개인적인 행실과 슬픔과 어려움들을 미리 고려하여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개인적인 필요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목자의 거룩한 일입니다. 목자와 영혼의 관계는 의사와 몸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는 반드시 질병과 처방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치료를 적용하기 위하여 반드시 영적 상태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 이러한 목자들이 얼마나 적은지요! 직함을 갖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독자여, 우리 가운데 참된 목자들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 뜨거운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를 진심으로 간청하는 바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참된 목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의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이들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일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양무리들을 돌 볼 시간이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백성들이 공적으로 모이는 경우에 조차도 그 값진 영혼들을 위한 참된 목자가 얼마나 적은지요! 참된 목자가 없이 얼마나 오랫동안 황량하게 영적인 가난 가운데 지내왔던가요! 참된 목자가 없이 드려지는 찬송가와 기도는 어떠한지요! 신성한 사랑의 잔잔한 물가에서 성경의 푸른 초장을 통하여 양무리들을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요! 사랑이 넘치는 목자가 집을 방문하며 안부를 묻는 일이 일주일 내내 없습니다. 각자는 모든 순간을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일에 써버립니다. 슬프게도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는 말씀은 오래된 슬픈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빌 2:21).

그러나 복된 사도는 얼마나 달랐던가요. 사도는 천막을 만들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드렸습니다. 사도는 성실한 복음전도자로서 대륙 전역에 걸쳐 사역하며 교회를 세웠을 뿐 아니라, 사랑이 많은 목자이며, 자상하게 혼들을 돌보며 치료하는 능숙한 영적 의사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와, 그 몸의 각 지체를 위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참된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가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의 복됨과 진보를 갈망하며, 나의 능력에 따라 이러한 것들을 고무시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그분의 마음을 따라 성령으로 충만하며, 그분의 교회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고무되어 있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가르치는데 유능하며 준비된 목자들과 교사들을 세워주시기를.

 

 

출처 : http://www.christi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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