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지금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린 이 말씀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의미가 아주 풍성한 귀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본문은 신자들에게 매우 복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신자들이 누리는 귀한 특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이모든 축복의 근원인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
첫째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 참여하게 되는 모든 축복의 근원을 먼저 지적해드리겠습니다. 그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말은 아니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신성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중보자로서 역할하신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는 영원한 언약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 택한 자와 언약을 맺었나니 곧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신 것이라”. 여기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와 더불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시고 수난을 받으셔서 죄를 위한 제물로 자신을 드리게 되면 “그는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기도 속에서 우리 주님은 이 언약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준 모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졌습니다. 아니 차라리 확신을 가지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내게 주신 그들로 하여금 내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옵소서". 이 동일한 이유 때문에 사도는 하나님을 향해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찬송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으로서 택한 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표현하신대로 '창세 전부터' 사랑하신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우리 주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로부터 복받는 자들이여 창세전부터 너희를 위해서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받으라”. 그러기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십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말하면서 그들의 구원이 그들 자신의 신실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위해서 또 그들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에 대해서 돌아보도록 회상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서 나온'자입니다.
이 교리에 대해서 보다 더 생각했더라면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맺은 구속의 언약에 대해서 보다 더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 선택의 교리를 두고 왈가왈부하여 심지어 마귀의 교리라는 심한 말들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참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고 하면 이 사실에 대해서 알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선택의 교리를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나쁜 징조라고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가 누구든지 그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참되게 알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선택을 부인한다고 하면 우리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인간의 자랑은 이 교리를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에 따르면 아무도 자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선택은 선택의 사랑에 깊이 도취한자의 말로서 표현된 찬란한 빛이 빛나는 신비입니다. 그 빛은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에게 조차도 그 연약한 눈에 너무 눈부실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사랑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모든 축복을 받고 그 특권을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부터 받아 누립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택함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축복
둘째로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택자들에게 주어진 이 축복에 대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참된 지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 참 지혜란 무엇일까요? 내가 여러분에게 묻는다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육체의 쾌락을 누리는 것이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적인 욕망의 충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땅 위에 있는 식도락가의 감각적인 쾌락을 위한 미각과 풍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혜는 집에 집을 더하고 토지에 토지를 더하고 땅을 자기 이름으로 칭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는 가끔 그 자체가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하늘을 향해서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이 사라질 뿐입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사람의 생명이 그가 소유한 물질의 풍부함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왜냐하면 부가 그 가진 자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소유자는 부를 곧 떠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자도 또한 죽어 그 부를 다른 사람에게 끼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들의 부는 무덤에서부터 그들을 구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속히 지나가는 자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부나 쾌락을 멸시하고 책에 있는 지식에다 지혜를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별들의 수효를 말하게 하고 그 모든 별들을 이름을 따라서 부를 수 있지만 여전히 어리석은 자일 수 있습니다.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갈구하는 우리의 공통적인 학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양을 갖춘 어리석은 자를 만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더 이상 망설이게 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한 이방인의 학교에 여러분을 보내어서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은 희랍의 지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남긴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참된 지혜입니다. 이것은 본문이 말하고 있는 지혜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택함 받은 죄인들에게 이런 지혜가 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해야 할 이상 그들을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전에 그들은 어두움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그 및 가운데 그들은 그들 자신의 어두움을 이제는 봅니다. 그들은 날 때부터 타락한 피조물인 것과 죄와 허물로 죽은 자신을 보고 지옥의 자식이며 진노의 자녀인 이제 슬퍼합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모든 의가 더러운 누더기와 같을 뿐임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에는 아무런 활기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가련하고 비참하고 눈멀고 헐벗은 자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구원이 되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구주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 필요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구주로 임명하신 분은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정하신대로의 구원을 기꺼이 받아드리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의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지혜가 되신 것입니다.
주 우리의 의
이제 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이 되셨으니". 그리스도의 모든 개인적인 의는 그들에게로 전가되어 그들의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 하나님은 그들의 범과를 제거하셨습니다. 짙은 구름으로 덮음 같이 덮어 주십니다. 그들의 죄와 허물을 더 이상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믿는 모든 자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지금 그들 안에 아무런 죄를 보시지 않습니다. 모든 행위의 언약은 그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의롭다고 인정되고 방면되고 하나님의 눈에 의로운 자로서 간주됩니다. 그들은 그 사량하는 자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들은 그 분 안에서 완전해졌습니다. 전에 사방으로 움직이던 하나님의 진노의 화염검은 이제 제거되었고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밀음의 팔을 펴서 생명나무를 따먹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복된 특권의식을 가지고 사도는 승리의 고백을 합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그리스도니 누가 정죄하리요”. 죄가 정죄합니까? 그리스도의 의는 모든 죄책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구주이시고 그들의 죄에 대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택한 자를 송사하겠습니까? 율법이 정죄합니까? 그들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므로 그들은 행위의 언약으로 말미암는 율법의 요구에 대해서 죽은 자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그들을 대신해서 성취하셨습니다. 죽음이 그들을 위협합니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의 쓰는 것은 죄고. 죄의 권능은 율법이지만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의를 그들에게 전가해주시므로 그들에게 이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에 천사들이 비천한 목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보라 내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구주의 탄생을 믿는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들은 불쌍한 죄인이 회심할 때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들의 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고개를 드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여러분의 의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 우리의 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이제부터 무엇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하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로”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여러분에게 의가 되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여러분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가 누리는 축복의 시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의가 되실 뿐만 아니라 거룩함이 되십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모든 외적인 규정을 차선으로 지키는 것을 그들의 의무와 특권으로 생각하지만 거룩함이란 외적인 율법 규정을 위선자처럼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함이란 외적인 생활의 개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잠깐 잠깐 스치는 죄의식이나 죄에 대한 애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거룩함이라고 말할 때에는 전인의전적인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은 신자에게 법적인 자격을 갖추도록 하고 거룩함은 그들을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로 만듭니다. 의로움은 그들을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주고 거룩함은 영광에 합당한 자로서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과 혼파 몸이 전부 거룩해집니다.
그들의 지식은 전에는 어두웠지만 지금은 주 안에서 밝아졌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전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항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위에 있는 것들에 지금 쏠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것들로 지금 채워져 있습니다. 그들의 자연적인 양심은 지금 더 밝아졌습니다. 전에는 더러움의 도구로서 불의에서 불의로 치닫던 그들의 지체는 지금 새로운 피조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옛 것이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죄는 지금 더 이상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음과 생활에 있어서, 모든 행동 양식에 있어서 거룩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은혜는 그들의 영혼에 모방되고 전수됩니다. 그들은 그의 모습을 닮아서 변화합니다. 그는 그들 안에서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그 안에 거하고 그는 그들 안에 거합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그로 인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임마누엘이셔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살아계신 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처소가 되어져서 모든 삼위께서 그들 안에 거주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여기에서부터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이미 앉았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그들의 머리이시고 그들의 구속자이시고 그들의 창조주이시고 그들의 신랑되신 그 분과 밀접히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의 살 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입니다. 마치 사람이 그 친구와 함께 말하고 동행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그와 함께 말하고 그와 함께 동행합니다.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신 것처럼 그들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거룩함이 되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 야수와 같은 인생이 성도로서 변화합니다. 마귀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 되었습니다. 사탄의 나라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썩어져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나는 그것들을 생각할 때에 거의 현기증을 느낍니다. 사도가 신자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정말로 그들은 죽어가는 자리에서조차 언제나 기뻐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 이 사실은 자연인에게는 숨겨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사람 자신에게도 신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는 신자조차도 그 전모를 헤아릴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되신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현기증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빛이 비칠 때, 그의 복된 얼굴빛을 여러분의 영혼에 비춰주실 때에 여러분은 어지러움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성령으로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된 것을 느낄 때에 여러분은 놀라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의 홀을 가지시고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주시겠다고 말하실 때에 여러분은 감격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모든 생각을 초월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시고 다스리지 않습니까?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없는 기쁨이 아닙니까? 충만한 영광이 아닙니까? 나는 그것이 그러하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내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영혼에 부은 바 될 때 여러분은 거기에 삼켜진 바 되고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솔로몬과 함께 주께서 참으로 그 백성과 함께 계신다고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한 교제가 무엇인지를 알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마음에서 이와 같은 진리를 말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을 내어다보십시오. 여러분 앞에는 영원한 행복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은 가나안 땅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포도송이와 같이 첫 열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가올 훨씬 더 좋은 것의 보증일 뿐입니다. 추수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제 후로는 영광 가운데 삼킨바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위대하신 여호수아, 자비로운 대제사장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안식의 땅, 약속의 땅으로 넉넉히 들어가도록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구속함이 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마지막 특권에 대해서 설명하고 묵상하기에 앞서서 성화와 내적인 거룩에 대해서 말은 하지만 성화를 칭의의 원인으로 삼는 자들의 잘못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화는 칭의의 결과로서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 혹은 우리 밖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눈에서 가련한 죄인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빛도 아니고 우리 안에 역사하는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호의를 가지시고 보시는 근거입니다. 우리의 최선의 거룩함도 현세에 있어서는 불완전합니다. 비록 우리가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출함을 받았지만 우리는 죄의 내재함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죄가 지배함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것이지 죄의 내재함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보고 욕망의 기회를 주지 말라고 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탐내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원리가 남아있는 한 우리는 결코 거룩해질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희망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한 의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입니다. 이로 인해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거룩함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성화의 사역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반율법주의자들과 형식적인 위선자들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잘 믿는 척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지 아니하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의가 아니십니다. 그들은 영광의 소망에 대한 아무런 실질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성화가 원인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것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의로움와 거룩함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다시 행위 언약 아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살펴보면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고 새로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상태가 완전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주는 근거가 됩니다. 그것은 성경 안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음으로서 참으로 하나님의 성령에 참여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부터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말할지라도 우리는 율법적 설교자를 반대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심령과 삶에 있어서 거룩하지 않다고 하면, 만약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령에 의해서 거룩해지고 새로워지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이고 다만 위선자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결합시켜 둔 것을 우리는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극단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야만 합니다. 한편으로는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만 주장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우리 삶 속에 그가 계신 증거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미래의 행복한 삶에 대한 준비가 없는 밖에 계신 그리스도만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고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내적인 의와 거룩에만 의존하는 그리하여 우리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를 배제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 > 조지 휫필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아는 지식 (고전 2:2) (0) | 2010.07.12 |
---|---|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속함이 되신 그리스도 2 (고전1:30) (0) | 2010.07.09 |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창3:15) - 조지 휫필드 (0) | 2010.03.03 |
소경 바디매오 - 조지 휫필드 (0) | 2009.09.07 |
모든 사람들의 장소(전도서 6:6) - 조지 휫필드 (0) | 2009.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