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42:5)
시편 기자가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영혼은 침체되었고, 그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슬프고 우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새 사냥 하듯이 다윗을 추격하였던 사울 왕의 박해,
믿었던 친구인 아히도벨의 배반, 압살롬의 반역,
그리고 다윗의 죄들에 대한 기억은
강인한 다윗을 압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다윗도 따져 보면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산(山) 정상의 기쁨만 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때때로 우울과 침체의 늪에서 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고,
자신의 슬픔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사냥꾼의 화살에 맞고 쓰러져서
소리만 지르며 버둥거리는 짐승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성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직시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도전하였고
우울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하는고?”
그는 침체의 이유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이 침체에서 회복되는 첫걸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을 끓이며 불평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화를 내고 주먹을 휘둘러 보았자 영육 간에 하등의 유익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자성과 자문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하는고?”
우리는 심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낙망이 내게 무슨 유익을 가져오겠는가?
앉아서 언짢아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 아닙니다.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침체에 빠진 영혼은
자신의 유리된 감정과 언짢은 기분이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슬피 울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경건한 삶에 대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침체는
외적인 혹독한 고난에서건 혹은 내적인 시련에 의해서건
근본적으로는 불신과 반항적인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불신과 반항심에 제압되지 않도록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하는고?”
당신은 정말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담을 받지 않으면
당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합니까?
당신은 마음속 깊이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이미 알거나
아니면 짐작이라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스스로 행한 어리석음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 빠져서 번민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시119:75)
당신이 지금 썩은 것을 거두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자기 의지를 내세웠거나, 자기 의에 빠졌거나,
남을 일방적으로 정죄했거나,
그릇된 동기를 감추고 자기 욕심을 채운 어떤 죄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그 사실을 고백하고 약속에 의지하십시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당신이 현재 섭섭한 까닭은 무엇인가?
당신의 악한 이웃은 하나님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데
당신에게는 그러한 은혜가 내려지지 않기 때문입니까?
다시 시편의 교훈을 경청하십시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시 37:1)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새번역)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침체에 빠진 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진정한 치유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당장 보이는 전망은 어두울 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밝습니다.
피조물은 당신을 실망시킬지라도
당신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면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을 건지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원이 고갈되어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므로 다함이 없습니다.
신자들에게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시46:1)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으로 피난처를 삼는 자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필자는 이 사실을 수없이 체험하였습니다.
현재의 역경은 신령한 은혜의 충족성을 배우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필요한 것들이 모두 눈앞에 보이는 때에는
믿음이 행사될 수 없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당신은 과거에 나쁜 죄를 지었고,
지금도 지은 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연한 징계를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죄를 참회하면
그 모든 죄들을 완전히 지워 주는 주님의 넘치는 자비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모든 문들이 닫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도움이 올만한 곳이 다 끊어졌다 하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너무 힘들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속이고 약속을 어기며
현재 어려움에 빠진 당신을 돌아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주님은
온전히 의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진정으로 소망을 둔 자들이 누리는 복된 확신입니다.
그들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것을 압니다.(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그들은 또한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시30:5)
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불같은 시련이 자기의 일을 마치고 당신의 결박이 풀리면
당신은 지금 당하는 즐겁지 않는 시련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내일을 대망하십시오.
아더 핑크의 “인간의 좌절 하나님의 위로”(양무리 서원 역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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