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생활의 비결
2부 인간 생활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
4장 둘째 축복이 있는가? (2)
잭 R. 테일러 |
에반 라버츠(Evan Roverts)
에반 라버츠는 금세기초(今世紀初)의 유명한 웨일즈 부흥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인바 된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체험을 말하는 가운데 라버츠씨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3년 동안 나는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했었다. 나는 내 스스로 말했다. ‘나는 성령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날씨에도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나는 부흥기도회에 참석했다. 나를 그렇게 움직이게 한 것은 성령이었다. 한 집회에서 부흥 강사가 주님께서 ‘우리를 굽히도록’ 기도했다.” 성령께서 라브츠씨에게 말씀하는 것 같았다. “굽히는 것, 이것이 바로 네게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를 말한다 : “나는 가슴 속에 생동(生動)하는 힘을 느꼈다. 이 힘이 자라고 부풀어 올라서 내가 터져버리리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끓었다. 내 가슴 속에서 끓는 것은 다음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을 위탁하시다.’ 나는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앞에 있는 의자에 팔을 얹었다. 눈물과 땀이 그저 줄줄 흘러내렸다. 피가 세차게 용솟음쳤다. 나의 기도는 ‘주여, 나를 굽혀주소서! 나를 굽혀주소서!’였다. 내가 굽혀진 뒤에 평화의 물결이 나를 덮었고 회중은,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를 찬송하였다. 그들이 찬송하는 동안에 나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굽힐 것을 생각하며 그날에 굽혀야 할 사람들을 위하여 불쌍한 마음이 생겨 울었다. 그 때부터 심령 구원이라는 사업이 나의 어깨에 놓인 짐이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온 웨일즈를 복음화할 욕망에 불이 붙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능하다면 내가 나갈 것을 기꺼이 바라게 되었다.” 에반 라버츠는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성령 충만의 한 주요 인물이었고, 웨일즈 전체가 영적 부흥 속에 맏혔었다.
찰스 트럼벌(Charles Trumbull)
트럼벌씨는 여러해 동안 “선데이 스쿨 타임즈”(Sunday School Times)지의 편집자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Victory in Christ)라는 책에서 그가 새로워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38년 동안 병마에 시달려 온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너는 낫기를 원하는가? 그리하여 잠시 후에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걸어가라. 그리하여 그 병자는 그 자리에서 고침을 받았다…그는 일어나서 걸어갔다.’ “이 구절은 내게 큰 뜻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나는 38년 동안 죄의 사슬에 얽매어 영적으로 병든 상태에 있었던 다른 한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병 고침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께서 어느 날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걸어가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였음을 처음으로 공적고백(公的告白)한 것은 내 나이 열세살 때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죄를 이기기 위하여 이 생명 가운데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뒤 내 나이 스물 다섯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성실한 신자들, 곧 거듭난 사람들이, 주님의 이 능력 주심을 알지 못하여(나처럼) 구속과 마비 가운데 있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비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가 나누어 행하여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려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체험이 오기 전에 내 생활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이미 움직일 수 없이 확실했다. 다음 세 가지를 들게 된다 : 1. 나의 영적 생활 및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가까이 있다는 나의 의식에 많은 굴곡(屈曲)이 있었다. 어떤 때에는 나는 영적인 고지(高地)에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수도 있었다. 얼마 동안 깨어 있었으나 그것이 끝까지 가지 못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내 자신도 늘 하나님과 교제함에 있어 고지(高地)를 점령하는 생활을 마땅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본이 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예외적(例外的)인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소수파(小數派)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 그 소수파에 속하고 싶었다. 어찌하여 우리가 모두 그렇게 되어 그 소수파를 다수파(多數派)로 바꾸어 놓을 수 없단 말인가? 2. 내 생활에서 다른 하나의 의식하는 부족(不足)은 죄를 박멸하기 위하여 그것을 둘러싸기 전에 실패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떤 면에서 승리하는 싸움을 싸우지 못하고 있었다. 오, 나는 얼마나 열심히 나를 구해달라고 기도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구원이 오지 않았다.
3. 세 번째의 부족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기적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강력하고 자신 있는 영적 능력이었다 : 그 시대의 영적 거인(巨人)들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러한 체험을 두고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만일 내가 가지지 아니한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은 내가 보고 들은바 다른 사람들의 생활의 비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그러한 그리스도의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가졌던 어떤 것보다 큰 개념이며, 나는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과 용서하심과 사랑으로 내가 구한 것을 주셨다. 하나님은 내게 새로운 그리스도를 주셨다…온전히 새로운 개념의 그리스도요, 이제는 so 것이 된 그리스도의 의식(意識)이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것은 말로써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다르다. 그것은 정말 너무나 새롭고 참답고 놀랍고, 나의 생활과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기적을 행하시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개념이다.” 이 간증에서 트럼벌씨는 “성령”이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성령께서 그 순간에 충만을 그에게 부어주셨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프란시스 리들리 하버걸(Frances Ridley Havergal)
찬송가 작가이며 저술가인 그는 자기의 체험을 간단히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 “내가 진정한 성별(聖別)의 축복을 처음으로 본것은 1873년 12월 2일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전깃불의 섬광(閃光) 가운데서 보았습니다. 한번 본 것은 다시 지울 수 없습니다. 나는 그저 전적으로 주께 나 자신을 의지했으며, 주께서 나를 지켜주실 것을 믿고 부탁했습니다.” 그때부터 프란시스 리들리 하버걸의 생애는 달라졌다…성령께서 그를 주관하신 것이었다.
앤드루 머리(Andrew Murray)
머리씨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두 가지 국면(局面)이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첫 10년 동안의 생활을 보다 낮은 상태에서 보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언제 어디서 구원을 받았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봉사 생활에는 능력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드디어 전능하신 손이 나를 붙들었다. 열매 맺는 일이 없었다…그러나 그 때 앤드루 머리는 포도나무에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결심했다. 만족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룩하신 이가 갈망하는 심령을 만족케 해 주시며 주린 자를 선(善)한 것으로 채워주심을 알게 되었다.”
존 하이드(John Hyde)
하이드씨는 선교임지(宣敎任地)인 인도(印度)를 향하여 가는 도중이었다. 그는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 편지에서 친구는 하이드씨가 성령충만의 체험을 했는지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난 듯 그 편지를 구겨서 기선(汽船)의 갑판(甲板) 위에 던져버렸다. 그의 친구가 감히 자기의 성별(聖別)됨에 관한 질문을 함으로써 자기를 모독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선교사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대학과 신학교를 나온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모독감이 곧 뉘우침으로 변했다. 존 하이드는 무릎을 꿇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간구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는 그것을 받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기도하는 하이드”(Praying Hyde)로 알려진 존 하이드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스티븐 메리트(Stephen Merritt)
카부(Kaboo)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프리카 청년이 스티븐 메리트에게 성령에 관하여 배우고자 그 먼 길을 아프리카에서 뉴욕으로 건너왔다. 메리트는 뉴욕에 있는 목사였던 것이다. 그 카부 청년은 그에게 신앙을 가르친 선교사들에게서 사무엘 모리스(Samuel Morris)라는 이름을 받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씀하는”법을 배웠고, 그리하여 그의 모든 일을 그저 그와 같은 맹복적인 신앙 위에서 처리하였다. 그의 갈급한 심령이 많은 기적을 통하여 뉴욕으로 오게 하였다. 거기서 그는 스티븐 메리트를 만나서 말했다. “나는 사무엘 모리스입니다. 나는 막 아프리카에서 도착했는데 성령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메리트 목사는 어느 저명한 사람의 장례식을 맡아보기 위하여 할렘으로 나갔다. 그는 사무엘 모리스를 데리고 갔었다. 다른 교역자들이 도중에서 차에 동석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같은 차 안에 지저분한 흑인 소년이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못마땅함을 말했다. 차가 가는 도중에 그 흑인 소년이 물었다 :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기도해 본 일이 있습니까?” 메리트는, 그가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은혜를 받은 일이 종종 있었지만 정식으로 기도해본 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사무엘은 “우리 기도합시다.”고 말했다. 그들은 차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데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온 이 젊은이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시작했다 : “아버지, 저는 스티븐 메리트를 만나 성령에 관하여 말을 듣기 위해 여러달을 걸려 이제 여기까지 왔습니다. 메리트 목사는 뉴욕 항구도 보여주고 교회나 은행이나 다른 건물들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가 그렇게도 듣고 싶어하는 성령에 관한 말씀은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아버지께서 충만히 임재하시어 그가 아버지와 성령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설교도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차 안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는 바로 기적이었다. 스티븐 메리트는 그와 같은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그의 전 생명이 그 놀라운 순간에 변화를 받았다.
이 밖에 수백이 넘는 다른 보기들을 일일이 들 시간이 없다. 사람들이 이러한 능력을 구하지 아니하여 그리스도교가 영적 침체에 빠졌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생활을 응시하여 오늘날 그와 꼭 같은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귀한 영적 수준이 떨어져가고 있는 듯하다. 회의주의(懷疑主義)와 자기 만족이 왕처럼 수상(首相)처럼 다스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위에서 오는 능력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재평가(再評價)하고 정리하고 수양회를 가지고 위원을 임명하고 조직체를 운영해 나가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조직이라는 것은, 아무리 그 짜임새가 완전하고 구성인원(構成人員)이 능률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함께 하셔야지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거리낌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의 능력의 성령을 구하며, 우리 스스로의 “말과 병거”를 믿고 있었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며, 개인마다 생명 가운데 성령의 충만이 있기를 간절히 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필자는 강조한다. 우리는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뽕나무 꼭대기를 스쳐가는 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나아갈 때 하나님의 영의 능력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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