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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스펄전

3. 스펄전 - 주께 돌아온 후의 체험들

by 복음과삶 2007. 10. 1.

 

주께 돌아온 후의 체험들

Experiences after Conversion

 

- 챨스 H. 스펄전 -

 

 

 

내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때 그분은 내게 매우 실재적인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나의 죄의 짐이 내 등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은 내게 실제적인 용서와 실재적인 해방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예수는 나의 것"이라고 말했을때 그것은 내게 실재적으로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이었다. 내가 주를 믿고 얼마 되지 아이한 때 하나님을 만나는 은밀한시간을 가질 때 부르는 노래마다 참다운 시편이었고 기도를 할 때는 얼마나 주의 말씀 따랐는지! 그것은 참으로 기도였다. 또한 평온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가까이 갈 때 그것은 어떤 흉내나 형식적 행동이나 단순한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와의 참다운 대화였다. 그리고 그때 내가 내 구주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그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었다. 그때 죄인들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느꼈던가! 내가 비록 소년이었지만 나는 전도하고 싶었다. 그리고...   "주위의 죄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무나 귀한 구주를 만났다고"

 

내가 처음으로 주를 안 때 내가 가졌던 큰 슬픔 가운데 하나는 내가 불경건한 행실을 끼쳐준 사람들과 내가 범죄하도록유혹한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가 항상 기도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내가 유혹한 여러 죄들을 통하여 잃어버린 바 되지 않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죠지 와이트필드도 나의 경우처럼 그가주께 돌아오기 전에 함께 카드놀이를 하던 사람들을 잊지 않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께 인도하는데 기쁨을 가졌던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한 때 나의 기쁨이 넘쳐 그리스도가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던 그 날 이후 닷새동안의 날을 생각한다. 그때 갑자기 나는 낙심되는 슬픔에 빠졌다.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를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마귀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분명한 것은 마귀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으므로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나의 본성의 타락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공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카우퍼가 쓴 다음 시(詩)를 읽었다.

 

" 내가 주의 발 앞에 엎드린 후 나의 모든 어리석음이 뿌리채 잘렸구나"

 

그리고는 이 시인이야말로 자기가 읊은 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도 카우퍼가 말한 것과 같은 큰실수를 입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의 모든 어리석음이 뿌리채 제거되게 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어리석은 것이 다 제거되고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에 잠겼던 것이다.

 

나는 완전하게 되려고 했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깊이 빠졌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도 아니한 것 즉,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려는 불신의 악한 마음이 내게 침입해 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간단한 설교말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간단한 설교말씀을 통해서 처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렸던 푸리미티브 감리교회로 찾아갔다. 그때 마침 설교의 본문 말씀은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이었다.  "여기에 바로 나를 위한 말씀이구나! 하고 속으로 나는 외쳤다. 나는 그 주간에 바로 이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내 믿음을 가졌음을 알았다. 또한 내가 얼마 전 그 기도의 집에 앉아 있을때 나의 믿음은 구속자의 대속에 단순히 그리고 전심으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에 무거운 짐을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큼 거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죄 없이는 살수가 없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날 때 나는 모든 거칠은 말과 악한 생각과 표정을 삼가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근심을 안고 이 교회로 찾아 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기 " 때문이었다. 그 교회 목사는 이처럼 서두를 꺼냈다. "바울이 이 말을 할 때는 그가 아직 믿는 자가 아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내가 믿는 자임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말씀의 줄거리를 보아 바울도 역시 믿는 자였던 것같이 내게 보였다. (지금 나는 분명히 바울이 그 당시 믿는 자였음을 확신하다.)

 

그 목사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마음속에 이러한 갈등을 느낄 수가 없다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나는 모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교회를 떠났다. 그 후로 나는 그러한 곳에 거의 가지 않았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이것이 감리교파에 대한 나의 관념이다.

낯선 사람을 불러 들이는 것은 고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들어와 앉아서 그곳에서 꼴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곳인 것이다. 그곳은 마치 공설 우리와 같이 방황하는 양들을 끌어 모으는데는 적합할지 모르나그 안에 꼴이 없으므로 그들은 먹을 풀을 찾아서 가급적 속히 다른 곳으로 떠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나는 그 목사가 경험적인 신학 즉 실제적인 마음의 신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그가 알았더라면 이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당한 것과 같은 일을 취급하기에는 전혀 적합하지가 않은 것이다.

 

나의 영혼을 엄습하는 죄의 세력을 실감한 이후 내가 죄에 대해 얼마나 공포에 떨었던가! 오! 죄, 죄, 나는 너를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구나! 너는 나를 잠시의 기쁨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이 죄를 생각할 때 이날까지 내 마음 속에 타는 듯한 깊고 무서운 고통이 찾아 오는 것이다. 내가 이 같이 죄에 대해 깊은 반응을 보일 때 어떤 사람은 이것을 소위 '병적인 민감"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죄에 대한 생각 때문에 얼마나 벌벌 떨었던가!  이 죄가  그 당시에는 너무나 추악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돌이킨 후 첫 번 일주일은 내가 잘못을 범할까 두려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는 것을 두려워 했다. 내가  하루를 반성할 때 내가 화를 낸 실수가 있었다든가 천박한 말을 했다든가 아니면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이 생각나면 나는 자신을 심하게 꾸짖었다. 그 당시 만일 내가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알기만 했다면 나는 그것을 행하는데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라면 그 일이 그 시대에 맞건 안 맞건 내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주의 뜻만을 따르고 그가 자기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나 가기를 바랬다. 그때 나는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데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것같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체험이 나와 같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돌아온 후 한동안 내 일생에 겪을 수 없었던 가장 지독한 어려움을 당했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죄의 무게를 알았을 때 그것은 내게 짐이요, 수고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내가 믿음과 사랑과 은혜 안에서 자라나기를 주께 구했을 때 그의 구원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그의 얼굴을 더 간절히 사모했을 때"

 

그리고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내게서 풀어 주심으로서 나의 간구를 들어 주셨을 때 , 죄들을 그전보다 내게 더욱 무서운 것같이 보였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이집트 안에 있었을 때보다 이집트 밖에 있을 때에 더욱 무서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전에 알았던 죄들은 비록 잔인한 감독을 같았지만 그 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떠나올 때 뒤를 쫓았던 칼과 창을 들고 병거를 몰고 온 군병들(죄)에 비하면 절반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가까이 접근하지 아니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의 노예로 있을 때보다 더욱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옷을 갈아입고 오와 열을 맞추어 행진했으며 그들이 나올 때 틀림없이 기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일의 고된 일과 잔인한 노예생활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 뒤에서 무시무시한 소리와 병거의 소리 군사들의 아우성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행진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드디어 그들이 이집트인들을 눈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그들 뒤에서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뽀얀 먼지를 보았을 때 그들은 이제는 적의 손안에서 완전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내가 주께 돌아온 후 (이런 체험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당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으나 내게는 심각했다.) 나의 대적이 말하기를 "내가 습격해서 잡아 죽이겠다. 내 욕망이 만족되리라. 내가 칼을 빼어 들고 내 손이 그들을 진멸하리라"고 말한 그 시기가 있었음을 나는 회상한다. 이처럼 사탄은 한 영혼에게서 떠나기를 몹시 싫어하며 끈질기게 달라 붙으려는 것이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그 영혼을 자기 손에 다시 넣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주께 돌아온 이후에 무서운 갈등의 시기가 와서 그 영혼이 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받는 일이 종종있다.

"이집트에 무덤이 없어서 우리에게 이 같은 일시적인 자유를 주었는가? 우리가 대적에 의해 더 큰 고통을 당하지 않는가?" 불신은 이처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마지막 한번의 채찍을 드심으로 그의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해 내셨다. 미리암이 소고를 잡았을 때 그는 이것을 알았다. 그래서 여인들과  함께 나아가서 승리의 기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너희는 주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며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나는 무엇보다도 모세의 노래가운데 이 구절을 제일 사랑한다. "큰물이 그들을 덮으니... 거기 그들 가운데 한 명도 남은 자가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대적들이 모두가 없어진 것을 알고 그들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넘쳤을까! 내게도 이같은 경험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내가 주께 돌아온 후 죄에 의해 다시 습격을 받았을 때 나는 나의 모든 죄들을 뒤덮는 구속의 사랑의 큰 물줄기를 보았고 "큰물이 그들을 덮었도다" 한 것이 나의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나는 어렸을 때 더러운 욕설은 거의 알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욕지거리도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 양육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리스도인의 초기에 너무나 악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것이 입밖에 나갈까 두려워 내 손으로 입을 막았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사탄은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구출한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유명한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괴로움을 당했다. 어느 때 내가 유혹하는 자에 의해 무서운 공격을 받았을 때 나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에게 갔다. 나는 무서운 경험을 말한 다음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이 확실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이처럼 악한 생각들을 내가 가질 수가 있겠어요?"  그러면 다정하신 할아버지께서는

 

"정신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챠알스야, 네가 이처럼 유혹을 받는 것은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증거야. 이러한 나쁜 생각들은 네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마귀의 새끼들이란다. 마귀는 그런것들을 그리스도인의 문에 놓아두기를 좋아한단다. 그것들을 너의 것으로 여기지 말고 집안에나 마음의 방 속에 자리를 주지 말아라."

 

나는 나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을 듣고 크게 위로를 받았다. 특히 이 말씀은 내가 구주를 찾고 있는 동안 내가 당한 체험들에 대해 옛 성도들이 내게 말해 준 것들을 확인시켜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의 시를 대하여 놀려댄다.

 

"내가 간절히 알고 싶은 것은 그리고 자주 내게 번민을 주는 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냐? 내가 그의 것이냐 아니냐?"

 

만일 그들이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를 놀려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를 쉽사리 자신있게 알게 하는 것은 그들의 체험이 아직 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심한 고난의 때는 항상 있는 법이며 이를 만날 때 비록 가장 믿음이 강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자기가 멀리로 서 있는지 발로 서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큰물에서 일하는 항해자는 때때로 예상 못하는 폭풍을 만나 이리저리 시달리고 술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때 만일 예수님이 내가 그분의 것임을 속삭여 주신다면 그 즉시 단번에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영혼은 사탄의 면전에서 흔들어 보일 한 개의 표를  받는 것이다. 그때 사탄은 사라지고 나는 나의 길을 기쁘게 갈 수 있다.

 

http://www.lloydjones.org/technote3/read.cgi?board=C307&y_number=2&nnew=2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