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의 교제
A.W. 토져
신약 성서를 지적으로 읽는 독자가 즉시 충격을 받을 사실 하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동체적 성격일 것이다. 사회적인 대명사들-우리들, 그들, 우리에게, 그들에게-이러한 것들이 어느 곳에서나 발견된다. 하나님의 이상(理想)은 신앙의 교제 즉, 그리스도의인의 공동체였다. 결단코 많은 무리의 신자들로부터 떨어진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아 누리도록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반드시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은 동떨어져서 외롭고 조용한 가운데서 생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는 은혜로 역사하시는 신비한 역사나, 성령이 기름 부으시는 역사는 개별적인 진행이기 때문에 제삼자는 무엇이 생겨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같이 나눌 수 없는 그러한 깊고 또한 완전히 내적인 체험들이 있는 것이다. 벧엘과 브니엘에서의 야곱, 불타는 떨기나무에서의 모세,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 밧모 섬에서의 요한 등이 성서적인 예들이고, 그리스도인 자서전들을 보면 훨씬 많은 것들을 나타내 줄 수 있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 공동 사회는 이처럼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각각 만났던 사람들에 의하여 구성되어지는 것이다. 가족이 얼마나 크든 간에 모든 사람은 다 개별적으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쌍둥이, 세 쌍둥이 조차도 한 때에 하나밖에 낳을 수 없다. 각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각 성도는 반드시 개별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분별하여 읽는 독자라면, 모든 자녀들은 각각 다른 이로부터 떨어져서 탄생하나 결국 가족 안에 탄생하게 되고 또한 그 후에는 가족의 다른 이들과 함께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의로운 회개와 믿음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나오게 된 자는 가족 속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워진다. 그리고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기르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어떤 아이든지 혼자 놓아두면 정상적인 어른으로 자라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친교에서 떼어 놓으면 그 결과 영적인 큰 결함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결코 바랄 수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의 것에 대해서만 너무 지나치게 되고 다른 이에 대해서는 충분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되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끔 창조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골방에 들어갈 수 있고 또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비밀스럽게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서 사람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종교적인 가족 가운데 산다는 것이 바로 그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을 우리가 승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종종 그들의 백성을 책망하고 경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스도까지도 매 안식일마다 가셔서 다른 이들과 같이 섬기셨다. 사도 시대 이후 개혁자들과 부흥주의자들은 언제든지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들이 외롭고 극단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그들이 괴로운 심정을 도움받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마음이 같은 무리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인 예가 게시된 진리의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나 우리가 족히 따를 수 있는 한 법칙을 마련해 준 것이다.
어떤 이든지 혼자 살기에 충분할 만큼 현명하거나 선하거나 강한 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광범위하게 우리가 서로 의존하게 만드셨다. 우리들은 우리의 형제들로부터 어떻게 일을 하게되는가를 배우게 되고 또한 어떻게 그것들을 하지 않는가 하는 법까지도 배우게 된다. 노래 부르는 자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그의 고질적인 결점들을 고치기 위해 반드시 코치를 가져야 한다. 오직 자기 자신이 하는 설교만 듣는 설교자는 그의 가장 나쁜 특성까지도 뛰어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 중에서 무엇을 고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독교 가족의 범위 안에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이치는 마찬가지이다. 교제는, 약하고 결점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그가 깨닫기도 전에 그의 생활방식으로부터 돌이키게 해주고, 경건하고 열매맺는 성도는 더 온전한 생활을 하도록 격려해 주는 자극제가 된다.
하나님 자신 다음으로 우리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혹시 목자를 보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목자를 다시 찾기 위해 그의 양 떼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목자는 언제든지 그의 양 떼들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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