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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승리자의 비밀

10장. 하나님의 선물

by 복음과삶 2008. 2. 29.

 

 

승리자의 비밀

 

10장. 하나님의 선물

 

- 승리의 삶은 믿음으로 받은 선물이며,

노력이나 투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

 

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은 선물이지 우리 편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처럼 점차적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삶은 선물의 형태로 온다. 우리의 육체적인 삶은 그저 물려받은 것이다. 영적인 삶은 “하나님의 선물”(롬6:23)이며, “더욱 풍성한” 삶도 선물이다. 우리는 선물을 점차적으로 받을 수는 없다. 선물을 받는 데는 주저하거나 미룰 수 있다. 받기 전에 온갖 마음의 투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물을 받을 때는 단번에 받는다. 선물은 받는 것이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승리하는 삶은 분명한 행위로 얻을 수 있다. 물론, 인간이 완전히 성화되기까지에는 “은혜 안에서 자라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생명은 그의 아들 안에 있다(요일5:11).

아들을 우리의 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선물로 생명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완전히 순복시키기 전에, 길고도 무서운 투쟁을 벌이곤 한다.

하지만, 이는 승리하는 삶이 시작되기 이전의 일이다. 싸움을 그칠 때야 비로소 승리가 시작된다. 그리스도께 완전히 순복하고, 내재하시는 주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바로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당신을 지배하신다.

 

말씀에 근거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

주님께서 안에 거하시는 것은 당신의 감정과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시는 방법은 당신의 생각과는 별개인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놀라운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특별한 감정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든가, 혹은 능력 없고 항상 불안한 밑바닥 수준의 그리스도인 생활에 만족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시작과 과정

거룩하고자 하는 결정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고비이다. 그럼으로써 그에게 하나님의 즉각적인 계시가 오며 알고 있는 죄에 대해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점차적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말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헬라어 시제 상으로 볼 때, 이것은 분명하고 결정적인 행위로 단번에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다. 이 결정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이 결정 뒤에는, 성화라는 평생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생활과 인격을 점점 닮아가는 것이다.

 

흔히 실수하는 것

저자는 성화(聖化)의 첫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과정을 밟아가려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많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점에 관해 오랫동안 설명을 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순복하기까지에는,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결단을 내린 경험이 있는가?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벧전3:15)라는 명령에 순종해 본 적이 있는가? 믿는 자들의 마음속마다 그리스도가 구주로 와 계시다. 그분이 정말로 당신의 주인이 되어 있는가?

그러나 순복, 즉 “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것은 단지 우리 편에서 장애물을 제거하는 직업에 불과하다. 순복으로 충분하다면, 의지의 행위만으로도 성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는 것에 의해 구원 받거나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는 평강의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순복한 후에,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부활의 삶을 살도록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순복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당신의 편에서 하나님을 돕겠다고 노력하지 말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이다.

구원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이루어진다. 과거, 현재와 미래, 즉 칭의, 성화, 영화이다.

 

영생은 선물

영생도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 롬11:6 참조).

바울은 그 이상을 말한다.

 

더 풍성한 삶- 선물

현재, 즉 성화의 시작과 그 과정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 성화의 작업을 승리하는 삶이라고 불러왔다.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믿음으로 주장할 때, 시작이 있게 된다.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나갈 때, 그것이 바로 과정이다. 주님께서는 구원해 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며, 앞으로도 그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실 것이다. 성화의 문제에 관해,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실까? 사단에 대항해서 얼마나 더 싸우고 괴로워해야 하는가? 성화 과정에 있어서도, 참으로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시다. 전능하신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내가 투쟁해서 도와드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연약함은 결코 어떤 도움도 될 수 없음을 기억하라.

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이 주제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기나긴 투쟁이 아닌가요? 싸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사실은 정반대이다. 투쟁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도우실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하는 삶은 단지 현재의 구원에 불과하다. 모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는가? 단순한 믿음으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5:25).

이 구원에 관해 인간이 도울 일은 조금도 없다. 그런데도, 성화의 문제에 있어서 “노를 저어야만 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투쟁이 아닌 신뢰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무익한가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면서 죄를 이겨보고자 얼마나 괴로워하며 기도를 했었던가? 그러나, 기도를 끝내며 일어서자마자 다시금 죄에 빠져 버린다. 그리스도의 약속은 우리에게 능력을 줄 수 없다. 믿음조차도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죄와 사단을 정복하셨다. 정복자이신 그분은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롬6:14).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롬8:37) 우리는 정복자 이상이 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흔히 범하는 죄를 정복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욕망 자체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기적적인 일은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다.

이것을 입증하는 몇 가지 간증이 있다.

런던에서 유명한 한 인사가 최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갔다. 그는 주정꾼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몇 주가 지난 뒤, 그는 술을 다시 마시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이 유혹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방법을 가지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런던 북쪽에 있는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오 하나님,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을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죄다 없애 주셨으며, 다시는 그런 욕망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울 주교는 노상에서 무서운 유혹이 그를 엄습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즉시 발을 멈추고 「성령이여 들어오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 자신에게 「힘센 악령이 여기 있구나. 그렇지만 나는 전능하신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 성령께서 이 유혹을 처리하시도록 맡길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함께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 2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롬5:10).

즉,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있음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신뢰하는 누구에게나.

 

자기 노력은 실패를 의미함

우리는 노력해서 선하게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선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중지하라. 싸움을 그치고 구주께서 위대한 일을 하시게 하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하시려고 오셨다. 우리는 그분을 믿을 수 있다.

“일을 아니할 지라도…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서운 죄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얼마나 괴로워하며 싸워왔단 말인가! 그러나, 당신 내부에서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다.

당신은 항의하고 싶을 것이다.

“제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에요.”

당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

여태까지 슬퍼해왔던 당신의 연약함이 가장 큰 자랑이 될 것이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다(벧전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푯대를 향해서 좇아감

그러면, 우리는 그냥 앉아서 찬송만 부르면 된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까지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구원-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왔다. 이 모든 것은 선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실 때, 능력도 함께 가지고 들어오신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리라”(눅24:49).

능력이란 그 힘이 감지되는 것이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까지 바울은 말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

투쟁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구원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구원을 방해하고 저지시킬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악한 세대 가운데 있다. 마귀는 우리 주위에 수많은 함정을 파놓는다. 마귀는 유혹을 하며, 죄에서 가장 큰 기쁨을 발견한다. 죄가 정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했던 바울은 우리에겐 싸워야 할 격투, 달려야 할 경주와, 해야 할 씨름이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20).

우리는 모든 힘- 우리의 영, 혼, 육-을 다해서 이 큰 과제를 수행해내야만 한다. 이 “경주”에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빌3:14)고 말하고 있다. 어떠한 상인가? 죄의 용서, 유혹을 극복하는 힘, 또는 영생의 선물은 결코 아니다. “경주자”는 이미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히12:1)는 벗어버렸다. 그렇게 안했다면 경주하는 대열에 끼지도 못했으리라. 그 “상”은 영생도 아니다. 영생은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엡6:12)에 대항하는 격투와 씨름과 경주는, 우리가 사단의 일(음행, 더러운 것, 호색 등- 갈5:19~21 참조)을 파괴하신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때 경험하는 것이다. 이 외적인 행위에서까지도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주심으로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예

주님께서도 싸우셨다. 그분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셨다(히12:4). 그러나 내적인 욕망이나 죄의 유혹에 대항해 싸우신 것은 아니다.

요컨대,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심한 투쟁이 있을 것이다. 실상, 다른 사람을 사단의 굴레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는 싸워야할 커다란 전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영혼에 관한 한, 승리하는 삶은 모든 싸움에서 해방된 삶이다.

저자는 소년 시절에 죽마를 타고 걷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차츰 죽마를 익숙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걷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주의를 해야 하며 때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금만 잘못해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람과 접하게 되면 대개 떨어져 버리곤 했다.

그리스도인이 걷는 모습도 이와 같다. 노력하며,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계속 떨어지며, 다시 시작하는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무능력, 모두 부자연스러운 걸음이다.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를 구하라.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걸음은 우리가 발로 걷는 것처럼 쉬워질 것이다.

폭격으로 인해 신경적 충격을 받은 군인들은 정상적인 다리를 하고서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걸을 수가 없다. 노련한 의사는 그들이 걸을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든다. 그러면 실제로 걸을 수 있게 된다. “믿음으로 걷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당신의 손 안에 있다. 그리스도를 신뢰해 보지 않겠는가?

열 세 살 난 소녀가 승리하는 삶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소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이 진리를 알기 전에는 제 기질과 싸움을 하곤 했지요. 그러면 항상 제가 졌었어요. 지금은 기질이 제 마음 문을 두드리려고 하면, 주님께 물어봅니다.「주님께서 저 대신 문 좀 열어 주실래요?」사단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죄송합니다. 집을 잘못 찾았군요」하며 도망갑니다.”

 

승리하는 방법

그리스도만이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주위에 있는 “마귀의 일”(요일3:8)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승리를 거두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날 가장 위험스러운 이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는 선데이 스쿠울 타임즈지 편집자가 쓴 기사 제목이다.

그는 기독교 과학, 영지주의 및 다른 “주의들”을 살피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가장 위험한 이단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이「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것」대신에「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에 강조를 두는 일이다.”

주님을 위한 일을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그럼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더 풍성히 기도하고 교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장을 끝내기 전에, 우리의 승리하는 삶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제까지는 우리 자신만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그친다면, “승리하는 삶은 누려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섬기기 위해 구원을 받았다. 저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많은 편지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 -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하지만 섬기려는 준비가 안 된 많은 남녀들 - 로부터 온 것이었다.

맨체스터의 새 주교가 된 템플 박사는 자신의 성직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설교자의 변술이나 완벽한 조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닌 능력을 나타내는 정도에 의존합니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물리칠 때, 그와 같이 죄로 심히 괴로워하던 우리 친구들이 그 능력을 보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랑은 정복자

사랑의 힘에 감동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은 무한하다.

미국 전쟁 당시, 피터 밀러라는 검소한 침례교 목사가 에프라타에 살았는데 워싱턴 장군과 친했다. 그 마을에는 미카엘 휘트먼이라는, 성질이 고약한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밀러 목사에게 온갖 욕을 퍼붓고 험담을 해댔다. 그러다 휘트먼은 반역죄에 연류되어 체포를 당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고령의 목사는 필라델피아까지 칠십 마일이나 되는 길을 걸어서 그 사람의 생명을 탄원하러 갔다. 그리고 워싱턴을 만나서 그를 살려 줄 것을 하소연했다.

“안 돼, 자네 친구의 생명을 구해 줄 수 없네.”

『친구라니! 원수도 철천지원수라네.』

“뭐라고? 원수의 생명을 구하려고 칠십 마일씩이나 걸어왔다고! 그렇다면, 다른 면으로 생각해야 하겠구만…용서해 주겠네”라고 워싱턴은 말했다. 밀러 목사는 사형당하기 직전의 미카엘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원수가 아니라 친구가 되었다. 사랑은 험담가를 사형대로부터 갈보리 십자가로 데려 왔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여, 들으라!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 당신 자신과 사역을 위해서, 주님이나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도 -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순복하라!

믿으라!

받아들이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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