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의 비밀
12장. 위험요소 (1)
- 거룩한 삶을 저해하는 위험들과 그것들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방법 -
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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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삶이란 아무런 방해 없이 도달할 수 있는 정상처럼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승리는 순간순간의 믿음으로 인해 매 순간 얻어지는 것이다.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한, 믿는 자에게는 지속적인 승리가 있다. 단순한 믿음을 상실하자마자 죄를 이기는 승리는 깨어지고 만다. 주님께서 “죄”를 “믿음이 없음”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보혜사 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8~9). 또한 사도 요한이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고 말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단번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삶의 도처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화가 언제고 함께 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평강이…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우리를 위해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내재하시는 그리스도 거룩한 삶을 저해하는 위험들이란 무엇인가? 미리 알면 대비 할 수가 있다. 위험에 대처하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① 자기 노력 승리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뻐하는 초기 단계엔, 우리의 소유를 꼭 움켜쥐려고 하는, 즉 그것을 고수하고자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의 생각을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에 집중시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잃어버릴 것 같은 감정 말이다. 아마 이런 감정은 승리하는 삶을 하나의 축복 - 우리가 몰수당하거나 상실할 수 있는 하나의 소유물 - 으로 간주함에서 오는 것이리라. 사단은 항상 우리에게 승리하는 삶은 우리 수중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인격”이지 “사물”이 아니다. 승리하는 삶이란 바로 우리를 소유하려고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 자체인 것이다. 즉 우리가 그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다. 우리는 그분의 수중에서 빠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고 약속하고 계신다. 이것이 저자가 “성령의 풍성함” 보다는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해 오랫동안 설명한 이유이다. 한때 축복을 구했으나, 지금은 주님만을. 한때 감정을 구했으나, 지금은 그분의 말씀을. 한때 은사를 구했으나, 지금은 은사 주시는 분을. 한때 신유를 구했으나, 지금은 내 주 예수님만을.
우리가 주님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또한 주님은 우리를 능히 지키실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주 예수가 우리 생각의 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그분 - 자원하는 손님 - 을 소유하고자 애쓰며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바라봄”은 긴장된 눈길이 아니라 편안한 응시인 것이다.
안전한 곳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주님께선 말씀하신다. 승리의 삶에 관한 한 그분 안에서 다만 편하게 쉬라. 불안할 때나 유혹이 닥쳐 올 때마다, 만세 반석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숨기만 하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라.” 노력도 수고도 분투도 아니한다. 다만 햇빛 속에 있으며 수분을 흡수하기만 한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주님께서는 산상 수훈을 통하여 묻고 계신다. 주님의 생각 속엔 신체적인 키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승리하는 삶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이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37:3). 우리 주위에 있는 악과의 투쟁에서까지도, 우리는 자신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주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다음에는 무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빈틈없이 무장하라”고?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하셨다. 왜 그러한가? 그분은 우리의 방어물이시며 방패이시기 때문이다. ② 유혹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승리하는 삶이란 유혹을 받지 않는 삶이 아니다. 단지 한 사람만이 지속된 승리의 삶을 살았는데 바로 우리 주님이시다. 그리고 주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신” 분이다. 죄 없는 천사들도 시험을 받고는 몇몇은 타락했다. 그러므로 사단이 우리를 시험할 때 놀라지 말라. 승리하는 삶은 정말로 값진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모든 힘을 다해 우리를 끌어 내리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시험을 받을 것이나 온전히 기뻐할 수가 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가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엡6:16)한다는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믿음의 태도 ③ 우리가 타락한다면 범죄할 가능성은 항상 있으며, 또한 범죄했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레위기 4 : 3). “이 구절은 죄란 불가피한 것임을 증명하지 않나요?”라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다. 항해하는 모든 선박은 난파나 충돌시를 대비해서 구명보트들을 준비한다. 이는 선장이 난파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구명보트를 미리 준비했다 해서 모든 선박이 난파당한다는 것을 뜻함도 아니다. 어쨌건 제사장이나 백성이 범죄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승리하는 삶이란 믿음의 행위로 얻어지며 단지 지속적인 믿음의 태도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순간적으로 실수해서 범죄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다음엔 어찌 되겠는가? 사단은 즉시 다음과 같이 우리를 설득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승리를 더욱 다짐하려고 할 것이다. “승리의 삶이란 존재치 않는다. 존재한다 해도 그 축복을 누릴 수는 없다. 승리의 삶을 누렸다 해도 이젠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는 승리의 삶을 상실한 것이다.” 게다가 승리하는 유일한 길을 보지 못했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사단의 주장을 후원하려 할 것이다. 경건하고 진실한 신자들까지도 승리의 삶에 관한 가르침은 위험한 이단적 교리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단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 우리는 성이 “위험한 이단적 교리”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계시며, 바울 서신이나 요한 서신을 통해서도 이것은 거듭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여러 번 실패한 뒤에 하나님께서 승리의 삶을 주셨음을 기억하라. 그렇다면 한 번 더 실패한다고 그것을 영원히 거두어 가실까? 결코 아니다.
사단의 속삭임들 사단이 승리의 삶을 단념하도록 당신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다음엔 회복을 지연시키고자 시도할 것이다. “슬픈 실패 뒤에 얼마간은 좌절 상태에 있게 된다. 승리의 삶을 다시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애써서 올라가야만 하는 지루한 회복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등등 사단은 계속 속삭일 것이다. 당신은 이런 사단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제까지 설명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력과 분투가 우리를 결코 회복시키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범죄할 때,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당장 용서를 구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즉각적인 용서와 즉각적인 회복, 이는 구약 율법 시대에도 그러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다윗이 회개하며 말했을 때,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라고 선지자 나단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당신의 실패는 그리스도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지킬 능력이 있으시다. 그분은 실패한 적이 없으시며 앞으로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받자마자 죄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라. 바울은 말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죄라고 해도 좋다]은 잊어버리고…좇아가노라”(빌3:13~14).
거룩함의 방해물 이것은 죄를 축소하거나 과소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승리의 삶을 사는 사람만큼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는 없다. 또한 이것은 패배하고 난 후 자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죄에 대한 회상은 현재 거룩함에 가장 큰 방해물 중의 하나임을 우리는 분명히 느끼고 있다. 이러한 회상은 우리의 호기심을 약화시키며 능력을 저해하고, “죄의 즐거움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간증이 흐려지며 열매가 없고 다시 죄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후회나 비통, 혹은 가책이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속죄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충분하다. 사실 너무 충분해서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고 죄의 용서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명령은 단지 죄들을 하나님께 자백하라는 것뿐이다. 용서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이유란 명백하다. 그리스도의 성령이 마음속에 내재할 때, 죄를 미워하게 되며 용서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항상 자백하게 된다. ④ 과신하지 말라 훌륭한 목사님 한 분이 저자에게 말했다.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가 내재하심을 인식하는 것은 너무 놀라온 확신이어서 과신할 위험성이 있다.” 그의 견해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과신할 수는 없다! 이 목사님이 말하는 바는 과거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현재의 안전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승리를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기 쉽다. 바울은 이 위험성을 잘 알았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우리의 연약함은 결코 강해질 수 없음을 명심하라.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3:5). 모든 것이 언제나 그리스도의 것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승리로운 삶의 위험들』의 저자인 C. G. 트럼벨의 말을 인용해 보자.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승리이다. 10년 간 지속된 승리의 기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도 강화시켜 주지 않으며 풍성한 그분의 은혜를 증가시키지도 않는다. 그분의 풍성함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승리를 지속하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우리의 훌륭한 이력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인 것이다. 지속된 승리의 이력은 승리를 보장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순종의 필요성 게다가, 얼마 동안 지속된 승리는 사단은 약화 시키지도 않는다. 사단을 강력하고 능동적이며 보복을 하려고 기회만을 노리는데, 그 기회란 우리가 과신하거나 영적으로 자만할 때이다. ⑤ 주님의 명령에 순종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 후 매우 행복해 보이는 부부가 대화하기를 원했다. 그 중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여러 달 동안 승리하는 삶의 진리를 경험해서 잘 압니다.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변화시켰죠. 이젠 성찬식에 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참석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가요?” 『가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저자가 물었다. “한 번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더 이상 성찬이 필요 없다고 바울이 말했기 때문이죠”라는 매우 놀라운 말을 했다. 나는 신기해서 그런 명령을 한 구절을 아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6절에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미 오셨기 때문에 성찬식에 참예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부는 “오실 때까지”가 주의 재림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바울은 승리하는 삶을 살며 그것에 관해 설교를 했지만 여전히 성찬식에 참예했다.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7). 우리는 주님의 어떤 명령에도 불순종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이 부부는 하나님께 불순종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기뻐하며 성령의 열매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불신앙 때문이 아니라 무지해서 명령에 순종치 못했다. 주님은 자비롭게도 그들을 축복하시고 알맞은 때 더 좋은 길을 알려 주셨다.
삼위일체의 내재 저자는 경건하고 겸손한 성공회 성직자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 데, 그는 승리하는 삶에 관한 대화는 흥미 있지만 그런 가르침은 성찬의 필요성을 배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더 이상 성찬 문제로 근심하지 말라.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성찬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적이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내재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삼위일체의 전 인격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 다짐해 두자.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 우리는 성령께서 영원토록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과 육을 완전하게 성화시키신다. 그러나 주님의 어떤 명령에도 순종하지 않는 한 승리를 생각할 수 없다. 주님께서 “이것을 하라” 하시면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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