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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스펄전

16. 스펄전 - 시편 강해 124편1-8절

by 복음과삶 2009. 9. 7.
제목 없음

- 챨스 H. 스펄전 -

 

  

[개 요]

주제-이 시에는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다. 물론 최고의 비평가들은 이 머리말이 부정확한 것이라고 공격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임의로 믿을 수는 있다. 그들은 이 짧은 송시에 다윗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은 어법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의 지혜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의심스러운 진술을 많이 말했다. 분명히 이 노래 방식이 다윗의 방식과 아주 비슷한데, 왜 그를 저자가 아니라고 배제해야 하는지 우리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그가 쓴 것이든 아니든, 이 시는 다윗 왕이 쓴 것이 분명한 노래들의 생동감 있는 정신과 동일한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구성-이 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5절 특별한 구원의 방법으로 얻은 호의에 대한 감사.

6, 7절 여호와를 찬송하는 감사의 예배 행위.

8절 장래의 모든 시련에도 주님을 신뢰하겠다는 선언.

 

우리가 체험을 통하여 다윗 시대의 성도들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신뢰로 인해 우리가 사람에 대한 모든 신뢰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강 해]

1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3그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4그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5그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1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시작하는 문장이 갑작스러우며 미완결형으로 되어 있다. 이런 시작은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시(詩)라는 불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번진다. 걷잡을 수 없는 불꽃을 갑자기 튕긴다. KJV처럼 의역하지 않고 미완결 상태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가 우리를 위하셨도다 하고 이스라엘로 말하게 하라!

만일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우리를 대적하러 일어설 때에

그가 우리를 위하셨도다!

 

영광스러우신 주님은 우리의 동맹이 되셨다. 그분이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와 맹약을 맺으셨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아니시라면, 우리는 어디에 있겠는가? 이 능력과 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를 원수의 교활함과 악의에서 보호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며, 선하신 보호로 인하여 하나님께 존귀를 돌리게 하라. 여기 두 번의 '가정법'이 나오는데, 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정하는 가정법이다. 주님은 우리 편이셨고 지금도 우리의 옹호자이시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러하실 것이다. 거룩한 확신을 갖고서 이 즐거운 사실을 크게 기뻐하자. 우리는 감사를 표현하는 일에 너무도 느리다. 그러므로 마땅히 표현해야 할 감탄의 말을 '이스라엘로 말하게 하라.' 우리는 이 사실을 감동 없이 중얼거리지만, 우리의 감사에는 박차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친절한 친구가 우리의 느끼는 바를 말하게 하는 것이 좋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는지 생각하라.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신실하셨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라. 찬송을 드릴 온갖 것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우리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자.

 

2절.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사람이 연합하고 온 인류가 이스라엘의 집을 짓밟기 시작할 때, 언약의 주님이 간섭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는가? 그들이 일어나 연합하여 우리의 평온과 안전을 공격했을 때, 주님이 또한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들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도와줄 수 있거나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곁에 없었고, 주님의 손만이 원수의 모든 연합 군대와 대적하여 자기의 백성을 넉넉히 보존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우리의 구원자 외에 다른 제2의 원인 덕분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구원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능과 전지가 아니고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없었다. 다른 모든 원고가 한편에 있더라도 우리는 즐거워한다. 주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이다.

 

3절. "그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들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데 혈안이었으므로, 우리의 일부라도 산 채로 한 번에 완전히 삼켰을 것이다.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의 격노는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치며,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완전히 멸절하는 것 외에는 그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는 타오르는 불과 같고, 연료를 끊임없이 공급받으므로 그것을 끌 수 없다. 분노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할 때 가장 사납다. 불똥이 불꽃이 되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불길에 던질 때 화로는 일곱 배로 뜨거워진다. 여호와께서 그 길을 막지 않으신다면, 잔인한 세상은 경건한 씨를 완전히 끝장낼 것이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 잔인한 목구멍은 삼킬 수 없고, 소멸하는 불은 파멸시킬 수 없다. 여호와가 아니시면, 우리의 도움이 모든 피조물로부터 온다면, 우리에게는 탈출구가 없었을 것이다. 오직 주님이 살아 계시므로, 그 백성이 살아 있다.

 

4절. "그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나일 강처럼 저항할 수 없는 물길은 거침없이 일어나 곧 우리 머리를 덮쳤을 것이다. 강력한 물길 너머로 걱정스럽게 눈길을 보내며 탈출구를 찾지만 허사이다. 왕가의 모토는 '이리저리 흔들려도 잠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경구보다는 비명이 필요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격류에 떠밀려 물속에 잠겨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돌진하는 격류는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생명을 익사시켰을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비유는 천천히 일어나는 물길과 급히 돌진하는 시내일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두 세력을 맞설 수 있는 자 누구이겠는가? 이 정복되지 않을 세력은 모든 것을 잠그거나 휩쓸어감으로써 파멸시킨다. 세상의 악의가 배출구를 발견하면, 일어나 돌진하며, 날뛰고 구르며, 아무것도 그냥 두지 않는다. 핍박과 시련의 큰 물길에서 여호와 외에 누가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바로 이때 우리는 그분께가 아니면 어디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전능한 은혜가 우리를 구출하려고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세상과 지옥의 연합 세력이 우리를 끝장내려던 것을 체험한 적이 있다.

 

5절. "그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여기에서는 물이 교만을 상징하며, 그래서 물은 약한 배의 현장(舷墻)을 넘어 시시각각 배를 침몰시키려 위협한다. 사람들의 반대는 종종 우리의 모든 경건한 활동을 광신주의나 완고한 무지로 비방하는 오만한 조소에 의하여 격해진다. 교회의 모든 핍박을 보면, 잔인한 멸시는 대개 적대와 결합하여 영혼을 압도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경멸스러운 원수는 우리를 하찮게 생각했을 것이며, 산같은 격류가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몰아 가듯이 우리를 덮쳤을 것이다. 우리의 재화와 소유가 떠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용기와 우리의 소망도 맹렬한 공격에 빼앗겨 버리고 우리의 적대자의 경멸에 파묻혔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었을 일들을 생각하며 우리를 홍수 가운데서 지키시고 그리고 홍수 위로 올리신 보호의 권세를 경배하자. 우리를 보존하시는 이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무서운 위험의 때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6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6절.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사나운 홍수의 은유에서 이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경건한 자를 먹이로 삼고자 하는 사나운 짐승에 비유한다. 그들의 이는 찢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들은 경건한 자들을 자신의 희생물로 생각한다. 주님의 종들이 격노하는 자들의 턱 사이에 있을 때 삼키지 않게 하신 주님은 진심으로 찬송받으실 만하다. 이는 주님이 허락하기 전에는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음을 뜻한다. 주님이 그들에게 넘겨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들의 먹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지금까지 주님은 원수가 우리를 멸망시키도록 허락지 않으셨으니, 그의 이름을 찬송하라. 위험이 임박할수록, 우리 영혼을 위험 가운데서 멸망하지 않게 하실 긍휼은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를 저주에서 지키셨으니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소서. 원수의 격노를 억제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여호와는 찬송을 받으소서. 본절은 단지 소극적인 은혜처럼 들리지만, 이보다 더욱 명백하게 값비싼 은택은 있을 수 없다. 주님은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를 결코 원수에게 넘겨주지 않으실 것이다.

 

7절.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우리의 영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새와 같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새의 연약함, 어리석음, 올무에 걸려 유혹당하는 안이함이 비슷하다. 사냥꾼은 작은 새를 잡는 방법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사탄은 영혼을 덫에 빠뜨리는 방법을 많이 갖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악한 동무에게 유혹당하며, 어떤 이는 맛있는 음식에 유혹당한다. 배고픔은 많은 사람을 덫에 걸리게 하며, 공포는 수많은 사람을 그물에 뛰어들게 한다. 사냥꾼은 새들을 알며, 어떻게 잡을 줄을 안다. 그러나 새들은 올무를 보고 피하지 못한다. 그들은 올무를 끊고 도망칠 수 없다. 강하고 힘세고 위험할 때 즉각 등장하는 구원자를 둔 새는 행복하다. 그러나 주님이 밤이고 낮이고 그물에서 그 발을 꺼내 주시는 영혼은 훨씬 행복하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이 노래에는 참으로 큰 기쁨이 있다. 해방된 자는 즐겁게 노래하며 오르고, 오르며 노래한다. 우리 중 사람에게 이런 곡조로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우리의 본성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고, 죄책과 타락과 구습과 죄의 통치에서 벗어나 우리는 참으로 즐거움을 체험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너무도 그릇된 길로 가는 우리가 두려운 사냥꾼의 손에 죽지 않고 벗어나게 하심은 얼마나 놀라운 탈출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들으셨고, 우리를 악에서 건지셨다.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이 노래는 부르고 또 부를 가치가 있다. 이처럼 위대한 긍휼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좋다. 올무는 그릇된 교리나 교만이나 정욕이나 수단에 골몰하게 하는 시험이나 절망이나 우쭐대는 것일 수 있다. 이런 것을 우리 눈 앞에서 부서지게 하여 우리에게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은 참으로 큰 은혜가 아닌가! 우리는 긍휼을 보지 못하는 동안은 올무에 있게 된다. 아마 우리는 너무 어리석어서 사탄의 마력을 끊어버린 것을 한탄할 수 있다. 탈출한 것을 볼 때, 우리가 어떤 것에서 벗어났는지, 어떤 손에 의하여 해방되었는지를 깨달을 때 감사가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우리의 입과 마음에서 나오는 찬송을 받으실 만하다. 우리가,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하는 곡조로 하늘과 땅을 울리며 드리는 찬송 말이다. 우리는 시험받았지만 사로잡히지 않았고, 내동댕이쳐졌으나 파멸하지 않았으며, 혼란에 빠졌으나 절망하지 않았고, 자주 죽음 가운데 처했으나 여전히 살았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라!

이 노래는 스페인 무적함대 시절에 영국이 부르기에 적절한 노래였을 것이다. 또한 신자들이 강력한 시험을 당할 때 부르기에 적절한 노래일 것이다.

 

8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8절. "우리의 도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 현재와 장차 올 모든 시련에서 믿음을 지킬 우리의 근거.

"천지를 지으신." 우리의 창조주는 우리를 보존하시는 분이시다. 그의 창조 사역은 무한히 위대하시다. 그는 작은 것 몇 개만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온 하늘과 둥근 지구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이다. 우리가 경배할 때 창조주는 우리로 우리의 권위자를 더욱 신뢰하게 하신다. 창조주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볼 수 없는 해악으로부터 우리를 보존하실 수 없겠는가? 우리를 조성하신 분이 우리를 돌아보시니 그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그는 그렇게 하셨고 위험한 순간에 우리를 도우셨다.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이시다. 오직 그분만 그러하시다. 그는 끝까지 모든 올무를 깨뜨리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을 지으셨고, 우리를 하늘로 이끄실 것이다. 그는 땅을 지으셨고, 우리가 떠날 때가 올 때까지 땅 위에서 우리를 구하실 것이다. 그분의 손으로 하신 모든 일은 오직 그분께 의존할 의무와 기쁨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온 자연은 이렇게 외친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4).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여호와의 계시된 성품은 우리의 확신의 근거이다. 여호와의 인격은 우리의 확실한 힘의 원천이다.

상당히 주저되긴 해도 다음과 같이 이 시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겠다.

 

여호와가 계시지 않으시면, 나의 영혼은 이렇게 외칠지니

여호와께서 내 편이 아니시라면,

그분이 구원을 가까이 가져다주지 않으셨다면,

나의 무력한 영혼은 멸망했으리.

 

여호와께서 내 편이 아니시라면

나의 영혼이 사탄에게 죽음을 당했으며,

도벳이 입을 크고 넓게 벌리며

부질없이 나를 탐내지 않았으리.

 

보라! 진노의 홍수, 지옥의 홍수가

사납고 맹렬한 격류로 흐르도다.

여호와께서 잘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물들이 내 영혼을 삼켜버렸으리.

 

사냥꾼의 올무가 끊어져

새가 즐거운 날개짓으로 도망치듯이,

나의 영혼은 사탄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기쁨으로 튀어나와 날아 오르며 노래하도다.

 

내 영혼은 구주의 찬송을 여호와께 부르며,

즐거움과 환희로 찬송을 발하도다.

장차 하늘에서 여호와께 찬송을 드릴 것이니,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에게로다.

 

 

[주해와 설명들]

머리말. 이 머리말은 이 거룩한 행진곡이 다윗 왕에 의하여 지어진 것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우리는 시의 주제를 통하여, 그 진행이 왕과 그의 충성스러운 군대가 위험천만한 모반을 제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개선식을 가리킨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깨닫는다. 이 모반은 압살롬과 그의 강력한 모반 세력이 많은 백성을 부추겨서 일으킨 것이었다. -존 메이슨 굿(John Mason Good).

 

시 124편 전체. 이 시는 다윗이 쓴 것이라고 되어 있다. 특정한 위험이나 구원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시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구속받은 자들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부를 수 있는 노랫말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적대적인 환경에 살게 된다. 배반자들이 진영에 있으며, 바깥에도 원수가 수없이 많다. 만일 원수들의 악의와 힘이 좀더 높은 힘에 의하여 억제되고 패배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곧 소멸될 것이다. 그래서 이 찬양의 송가는 결코 진부해지지 않는다. 숭앙의 감사를 머금은 이 어조가 미풍에 실려 퍼진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시의 터져나오는 환희가 들리지 않은 나라가 어디인가! 이 시는 요단과 나일 강둑에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둑에서 불려졌다. 테레베와 라인 강, 템스와 포스 강둑에서도 불려졌다. 갠지즈와 인더스 강, 미시시피와 이라와디 강둑에서 불려졌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가 그 모든 곤경을 극복하고 승리의 기치를 휘날리며 이 찬송 시를 지구의 모든 나라와 대륙에서 부를 때를 고대한다. 하나님의 구속받은 자들의 해가 틀림없이 온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땅끝까지 퍼질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해방이 있을 때, 민족들이 즐거워 외칠 것이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자기들의 구원자를 찬송할 것이다. -맥마이클.

 

시 124편 전체. 1582년에 이 시는 에든버러에서 눈에 띄는 때에 불려졌다. 감옥에 갇힌 사역자 존 더리(John Durie)가 풀려나 200명의 친구들과 만나고 환영을 받으면서 읍에 들어갔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났고 존 더리는 결국 2,000명의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긴 중앙로로 올라가면서 찬송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은 매우 엄숙하게 4부 합창으로 노래를 불렀고 모두 함께 유명한 곡조를 따라 이 시를 찬송했다. 그들은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그 찬송을 들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최고 검사 가운데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에서 경험한 그 어떤 일보다 이 광경과 노래에 놀랐다고 한다. -앤드류 보나(Andrew A. Bonar, Christ and His Church in the Book of Psalms, 1859).

 

1절.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여호와는 영적인 의미에서 그 백성의 옆에 계신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그들의 형편은 나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 백성의 편이시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한 언약 때문에 그러하시다. 그래서 온갖 선한 것이 그 백성에게 공급되며 베풀어진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그 백성에게 해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눈동자와 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로운 임재를 허락하시며, 온갖 시련과 문제에서 그들을 지지하시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며, 그 능력으로 그들을 지키시고, 그들을 모든 원수로부터 보존하신다. 그래서 그들은 사방 어디서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리스도는 그들 편이시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한 안전이시며 그들의 구주이시다. 그들의 모든 영적 원수, 곧 죄와 사탄과 세상과 사망을 대적하여 그들의 편이 되시며, 그것들과 싸우사 그것들을 정복하셨다. 그는 그 백성의 구원의 대장이시며, 그들의 머리에 있는 그들의 왕이 되사, 그들을 이곳에서도 보호하고 지키시며 하늘 법정에서도 그들의 친구가 되신다. 그들의 보혜사와 중보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이 되사, 사탄에 맞서서 그들의 소송 사유를 변호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모든 복을 가져다 주신다. 여호와의 영이 또한 그들 편이 되사, 그들 안에서 사역하시고, 그들이 기도와 간구할 때 그들을 도우시며, 그들을 사탄의 시험에서 안전하게 하시고, 원수가 홍수처럼 그들에게 밀어닥칠 때 그들을 위하여 기치를 세우시며, 온갖 절망으로부터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격려하시며 그들을 안전하게 하늘로 이끄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존 길.

 

1절. "이스라엘." 이 시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라반의 집에 있는 이스라엘일 수 있다. 미드라쉬 테힐림은 그가 이 시를 말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이 시의 어떤 구절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때만이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암필드.

 

1-4절. 이 시의 초두에 있는 것과 같이 돌연하고 미완결된 표현은 화자가 문장을 끝맺지 못하게 하는 큰 기쁨과 환희를 나타낸다.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1, 2절. 이 구절들을 다소 알기 쉽게 바꾼 번역은 요점을 약화시키고 의미를 흐리게 한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원수를 이기도록 하셨다는 뜻만 의도되고 표현된 것이 아니다. 이 시는 모형적이고 예언적이다. 이 시는 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형편을 표현한다. 이 교회는, 무자비한 미움을 품고 있고 격노로 미쳐 있으며 파멸을 꾀하는 원수들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다. 이 시는 교회의 보존과 지속적 승리에 대한 확신을 준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교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시는 교회의 모든 원수가 당할 장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파멸을 예언한다. 홍해에서 부르던 노래를 다시 울린다. 이 노래에는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부를 새 노래의 곡조가 들린다. 이 찬송과 감사는 예호아(hwhy), 계시되신 엘로힘(!yhla)께 드리는 것이다.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롬 1:20). 또한 예호아(hwhy), 계시되신 엘 쉬다임(!ydv la)께 드리는 것이다. 조상들은 자기들에게 행하신 큰 일 때문에 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았다. 또한 예호아(hwhy), 곧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구속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들은 이스라엘(larcy)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거룩한 나라, 다른 모든 민족보다 하나님께 특별한 보물이며, 그래서 랍비들이 말하듯이 아람(!ra, 사람들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사람)들이 적대하여 일어서서 파멸시키려고 하는 모든 사람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larcy), 하나님의 택하신 자, 언약의 백성이며, "개인적으로 '나의 것'이 된 완전한 즐거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여호와는 '라누'(wnl), 즉 우리의 것이시다" 하고 노래하는 백성이다. '우리 편에 계시다'는 번역은 무기력하고 냉담하다. 여호와는 그들의 것이셨다. 그분은 그들의 안전이고, 복이며, 기쁨이었다. -에드워드 토머스 기브슨(Edward Thomas Gibson, 1818-1880).

 

1, 2절. (1) 하나님은 우리 편이셨다. 하나님은 우리 편을 드시고 우리의 주장을 지지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셨다. 그는 우리를 돕는 자이셨는데, 우리만 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셨다. (2) 하나님은 여호와셨다. 여기에 강조점이 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무한한 능력과 완전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가 아니셨다면,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를 정복했을 것이라. 그러므로 여호와, 곧 자충족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신 백성은 복되도다. 이스라엘이여 이것을 말하여 하나님을 존귀케 하라. 그리고 결단코 그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매튜 헨리.

 

1, 2, 8절. 나는 이 셋을 마음에 품겠나이다. 오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이는 과거에 해당한다. "올무가 끊어지므로." 이는 현재에 해당한다. "우리의 도움은······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이는 미래에 해당한다. 내가 이 '세 줄'을 잡아 쥔다면,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 줄에 의하여 붙잡히는 한, 사탄과 싸우든지, 세상과 교류하든지, 나의 사악한 마음이 튀어나오든지 겁내지 않을 것이며 겁낼 수도 없다. -알프레드 에더샤임.

 

2절.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사람이 아니라 괴물인 이 사악하고 야비한 원수들을 온건하게 말하고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는) 그들은 도무지 그런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 그들은 그 속에 사람 같은 것이 없고 사람의 겉모양만 가졌을 뿐 실은 야수이며, 사실상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양을 한 사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의 지독한 비방을 그들의 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께 맡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긴 하지만 그 욕망과 성질이 짐승 같은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그들의 사악함을 부각시켜 보일 것이다. -다니엘 다이크(Daniel Dyke , Comfortable Sermons upon the cxxiv. Psalme, 1617).

 

2절.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이 반복은 공연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우리의 두려움은 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이 이미 지나간 다음에 우리는 그것이 실제보다 덜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줄이고 흐리는 이 짓은 사탄의 속임수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와 같은 반복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로운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만들며, 그들이 거쳐 갔던 위험들을 확대하여 보여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느낌과 감정이 우리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지나간 괴로움과 시련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배운다. -마르틴 루터.

 

3절. "그때에······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이 은유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삼키는 굶주린 야수에게서 취한 것이다(시 5:5과 비교). 혹은 이 구절은 무덤에 산 채로 갇혀(잠 1:12) 거기서 사멸하도록 내동댕이쳐졌거나(민 16:30) 지진에 삼켜 버리운 사람의 경우를 지칭할 수 있다. -다니엘 크레스웰(Daniel Cresswell).

 

3절. "그때에······우리를······삼켰을 것이며." 이 말은 만족할 줄 모르는 식욕으로 먹어 치우는 것을 말한다.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면 삼켜야 한다. 그러나 대식가는 먹는 사람이 아니라 삼키는 사람이다. 그는 목구멍으로 고기덩이를 집어 삼키며 씹지 않은 채로 먹어 치운다. 뱀으로 변한 모세의 지팡이는 애굽 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켰다.' 이 말은 압제를 표현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35:25). 즉 우리가 그를 깨끗이 해치웠으니 그는 이제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원수의 탐욕스러운 격노는 이런 말로 서술되었다. -조셉 캐릴.

 

3절. "산 채로." 땅에 살거나 깊은 물속에 사는 탐욕스러운 괴물이 때때로 음식을 산 채로 삼키듯이 교회의 원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교회를 파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간섭하셨다. -윌리엄 플러머.

 

3절. 반론.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건한 자는 언제나 승리하며 원수들에게 결코 제압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인가? 경험상 우리는 경건한 자의 수가 불의한 자의 수보다 적고, 힘이나 완력 면에서 그들보다 약하며, 재치나 수법 면에서 그들보다 단순하고, 부지런함과 주의를 살피는 면에서 원수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우세하겠는가?

대답.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 8:10에서 이 점을 선포하는데, 짧은 말로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1) 그는 모든 사람보다 힘세시므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것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를 격퇴하실 수 있고 하늘과 땅에서 원하시는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우셔서, 그들의 모든 길에서 그들을 막는 법과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는 법을 아신다.

(3) 그는 모든 사람보다 부지런하셔서, 주의깊게 관찰하시다가 유리한 형편이 있을 때 그것을 취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시 121:4)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4)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사람보다 복되셔서, 그 모든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신다. 왜냐하면 그는 손대시는 모든 일마다 여전히 형통하시며 아무도 그분의 생각을 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 전쟁 때 승리할 대장에게는 다음 네 가지 일이 전제된다. 첫째로 그는 강하다. 둘째로 그는 지혜롭다. 셋째로 그는 부지런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는 행운이 따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강한 자라고 해서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며 지혜로운 자라고 해서, 부지런한 자라고 해서, 행운이 따르는 자라고 해서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승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이 네 가지가 동시에 구비되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는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그분이 치르시는 전투마다 언제나 정복하고 승리를 얻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토머스 스틴트(Thomas Stint, 1621).

 

4, 5절. 익숙하지만 지극히 재치있고 중요한 비유이다. 맹위를 떨치는 화재를 보노라면 끔찍하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파괴적인 것은 둑을 넘어 사납게 돌진하는 강물이다. 왜냐하면 어떤 완력이나 힘으로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가 말하듯이, 강은 대단히 격렬하게 흘러가며, 그 과정에 마주치는 모든 것을 휩쓸어 가서 파괴시킨다. 교회의 원수가 발하는 분노도 그러하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교회는 둑에 매달려 있는 작은 배에 불과하여 강력한 물들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강둑에 자라는 관목 같아서 쉽게 홍수에 뿌리가 뽑히기 때문이다.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의 열방과 비교할 때 그러했다. 오늘날 교회도 원수들과 비교할 때 똑같다. 우리는 자란 지 얼마되지 않아 견고한 토대를 갖지 못한 작은 관목과 같다. 우리 각자는 악한 영의 위력에 이처럼 비교될 수 있다. 그는 흘러넘치며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한 힘을 지닌 엘베강과 같다. 우리는 나무에 살짝 붙어 있는 마른 나뭇잎과 같고, 그는 나무들을 뿌리채 뽑고 집어 던지는 힘을 가진 북풍과 같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힘만 가지고 어떻게 그것을 저지하고 자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마르틴 루터.

 

4, 5절. 처음에는 "물들"(KJV 직역-역자 주) 그 다음에는 "시내" 혹은 격류, 그 다음에는 높이 고개를 쳐드는 "넘치는 물"이라고 전개한다. 첫째로 물들이 우리를 삼킨다. 그런 다음 격류가 우리 영혼을 덮친다. 또한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덮친다. 물들이 경계를 넘쳐 흘러 온 땅으로 돌진할 때 그 빠른 봇물을 어떤 힘이 저지할 수 있겠는가? 물들은 계속해서 거칠 것 없는 힘으로 휩쓸어 간다. 그리고 사람과 가축과 곡식과 집이 파괴된다. 맹렬한 물들이 터져 흐르게 되면, 몇 분 안에 생명과 산업과 행복은 폐허와 불행으로 변해 버린다. 아마 여기서는 홍해에서 벌어진 애굽인의 파멸을 암시하는 것 같다. 홍수가 그들을 덮쳤고 깊음이 그들을 덮었다. 그들은 돌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시려고 그 손을 펼치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제압했을 것이다. 위험한 때에 여호와께 피할 수 있는 자들은 복되다. -맥마이클.

 

5절. "그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이것도 역시 위험의 중대함과 구원의 위대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크신 복을 가볍게 지나치지 말고 그것들을 가장 중시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같다. -존 트랩.

 

5절.

 

바람과 바다가 날뛰며 나를 혼란시키려 위협할 때

내가 주님께 구하기만 하면

주님은 그 분노를 누그러뜨리시는도다.

 

강한 바람이 지난 밤에 내 영혼을 삼키려 했으나

빛이 나타나 온화한 고요가 뒤따랐도다.

내가 온통 질병에 사로잡혔으나

주님이 아니고서는 불행이 짖거나 물지 않으니

내가 무엇을 절망하리?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1591-1674).

6, 7절. 다시금 두 개의 비유가 사용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면 파멸이 어떻게 임박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첫째로 사나운 짐승 비유가 앞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위험의 긴박감을 서술하기 위하여 하나가 추가되었다. 사나운 짐승은 그들을 기다리기 위해서 단순히 누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물을 잡으려고 튀어오르려고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제물을 덮쳤다. 사나운 짐승은 제물을 실제로 움켜잡았다. 심지어 제물은 그의 이빨 사이에 있다. 이 얼마나 생생한 서술인가! 한순간이라도 지체하면 모든 도움이 허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자리에 나타나신다. 그는 흉포한 짐승에게 나타나셔서 벌벌 떠는 제물을 그의 피흐르는 턱 사이에서 빼내신다. 위험이 임박했다. 그러나 주께는 까다로운 일이 없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시 57:4),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6: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시 57:3). 두번째 비유는 사낭꾼의 비유이다. 사냥꾼은 능숙한 솜씨로 올무를 준비했다. 새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올무로 들어간다. 그물이 새를 덮친다. 곧바로 새의 자유는 없어진다. 가련한 새는 심장이 심하게 팔딱거리며 그물을 벗어나려고 작은 날개를 휘젓지만 소용없다. 새는 완전히 사냥꾼의 손아귀에 빠져들어 갔고,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시금 주님이 나타나시며, 주님의 임재는 곧 안전이다. 주님은 그물 쪽으로 가서 그물을 땅에서 들어올려 주신다. 새는 거기서 도망쳐 옆의 나무로 사뿐히 날아가 앉아 가지 사이에서 노래를 부른다. '분명히 그분이 너를 사냥꾼의 올무에서 건지실 것이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 원수의 노골적인 폭력에서 건지시듯, 그들의 교활함과 음흉함으로부터 건지실 것이다. -맥마이클.

 

6, 7절. 우리는 (1) 맹수의 턱에서 벗어난 어린 양처럼 구원받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 힘이 없으며 하늘에서 주신 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포기하시지 않으면 그들은 원수의 이에 씹히는 먹이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파멸하지 않게 하시므로 그들은 구출받는다. (2) "새"처럼, 작은 새처럼 구원받았다. 이 말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난' 참새를 말한다. 원수들은 매우 음흉하고 악의적이어서 하나님 백성을 죄와 괴로움에 빠지게 하고 그들을 거기 붙들어 두려고 올무를 놓는다. 때때로 그들은 승리하는 듯이 보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올무에 잡혀 약하고 어리석은 새처럼 스스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때는 그들을 도우시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때이다. 다른 모든 친구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올무를 끊어버리시고 원수의 계획을 어리석게 만드신다.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매튜 헨리.

 

7절.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여러 가지 올무가 새를 잡으려고 놓여 있다. 덫과 올가미와 총 등. 사탄과 세상이 경건한 자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을 헤아릴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는가?(시 91:3; 호 5:1).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 자신의 재주나 잔꾀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벗어났다. 그래서 모든 계획이 헛되게 되며, 자유는 보존된다. -마틴 가이어.

 

7절.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나는 사탄이 우리 영혼에 올무를 놓지 않은 날이 우리 평생에 없다고 확신한다. 보이지 않으니 더욱 위험하다. 그리고 볼 수 있다 해도 부주의하고 무시하므로 위험하다. 또한 나는, 밤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하지 않아 양심이 꺼릴 것이 없고 마음이 편안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능력에 속하지 않으며, 주님이 그의 안내자와 보존자가 아니시라면 그가 삼키는 자의 이에 씹히는 먹이처럼 되어 버렸을 것이며, 스스로가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사탄이 모든 악의와 힘을 쏟아 내고 욥의 경우처럼 유혹에 유혹을, 시험에 시험을 더하는 지독한 시련의 시기에 하나님의 성도라도 절실한 필요에 처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길 옆에 쓰러지지는 않는다 해도 기절한다. 그런데 그들이 그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사탄은 대패하여 떠나게 되고 자기 먹이를 손에서 풀어 주게 되며, 그들은 감사하게도 제정신을 찾는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그렇다. 이것을 의지하라. 우리의 가장 높고 유일한 소망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바르통 부시에.

 

7절. "우리 혼이 새가······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사냥꾼의 올무는 이 세상의 덫이다. 우리 영혼의 날개는 덫에 걸렸다. 즉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끌렸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벗어났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토머스 애덤즈(Thomas Adams).

 

7절. "우리 혼이 새가······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영혼은 많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1) 영혼은 세속화에 사로잡힌다. 하나님의 백성이 특별히 자신을 지켜야 할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는, 모든 신령한 생각과 감정을 반대하는 원수이다. (2) 영혼은 이기적 태도에 사로잡힌다. 이는 모든 일편단심의 순결, 모든 포용력 넓은 관대함과 기독교적 박애주의에 대한 원수이다. (3) 영혼은 불신에 사로잡힌다. 이는 기도와 참된 확신과 모든 개별적인 기독교적 활동에 대한 원수이다. 이는 가공의 위험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생활에서 이것들을 만난다. 이것들은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며 종종 우리는 이로 인하여 마음에 입는 상처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지 발로(George Barlow, Homiletic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1879).

 

7절. "올무가 끊어지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는 일은 쉽다. 심지어 원수들이 경건한 자들을 손아귀에 잡고 있을 때에도 그렇다. 마치 새를 잡아 놓은 실그물을 찢듯이 말이다. -데이비드 딕슨.

 

7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사탄의 올무에 걸려 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리석은 새처럼 언제나 올무에 끌려 들어간다. 주님이 우리로 벗어날 길을 주시는 데도 말이다. 사탄이 우리를 가장 확실하게 손아귀에 쥐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에 의하여 올무가 끊어지고 우리는 벗어난다. 마음에 시련을 당하여 영혼이 심히 짓눌려 무거운 사람에게서 그런 일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이 완전한 절망 가운데 있고 곧 파멸할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극한 곤경의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의 성령의 달콤한 위로가 임하여 그들을 다시금 소생시킨다. 우리가 금방이라도 파멸할 것 같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즉각 도우신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시 94:17) 하고 다윗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연약한 양심의 위로를 위하여 이를 다시금 주목한다. 사탄은 그 음흉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동요시킨다. 그들에게도 육적 부패가 있으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듯이 사탄은 그들을 손에 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속이는 자가 된다. 그는 완전한 성화라는 그릇된 법칙으로 우리를 시험한다. 이는 하늘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어울리는 잣대이지, 땅에서 전투하는 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내 속에 머물러 있는 죄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땅에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성이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새로운 성향을 일으키는 은혜는 의심할 나위없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을 증명한다. -토머스 스틴트.

 

8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그는 올무가 놓여 있는 땅을 만드셨으니, 자신의 영역에 불법적으로 놓여 있는 올무를 합법적으로 파괴하실 수 있다. 그분이 하늘, 곧 자신이 구원하신 영혼들이 날개짓하며 올라가는 참된 영역을 만드셨으니, 그들은 즐거워하며 이전의 감옥에서 위로 날아갈 수 있다. 그는 땅에 내려오셨으니, 올무를 끊기 위하여 우리의 도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 예수님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가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사 60:8)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늘로 돌아가셨고, 거기서 길을 보여 주셨다. -리처드 롤(Richard Rolle of Hampole, 1340).

 

8절. "우리의 도움은······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우리의 과거 경험을 통해 맺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이곳에서처럼 장차 올 시대에도 그분을 확신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딕슨.

 

8절.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시편 기자가 말했듯이 내가 하늘과 땅을 보는 한 결코 불신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에서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그러므로 나는 이 능력의 두 가지 영구한 기념물인 하늘과 땅을 보는 한, 결코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베드로전서 4:19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전능하신 창조주를 신뢰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는 능히 도우실 수 있으니, 당신의 형편을 결코 절망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라. 참으로 놀랍게도, 하나님은 일할 기초가 없을 때 창조하실 수 있었다. 역시 놀랍게도 하나님은 일할 도구가 없을 때 창조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무엇이 도구로 적절했겠는가? 하나님이 하늘의 아치를 만드셨을 때 흙손이 어디 있었는가? 바다를 파서 만드셨을 때 삽이 어디 있었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기초로 삼거나 도구를 가지고 일하셨는가? 하나님은 무로부터 세상을 만드셨다. 이제 당신은 그 신실하신 창조주께 당신의 영혼을 의탁하라. -토머스 맨턴.

 

8절. 로마인들은 큰 위기 때에 너무 견디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신들의 신전에서 무기를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다.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적인 위기에 교회의 무기인 기도와 눈물을 취해야 한다. 스파르타인들의 방벽은 창이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방벽은 기도이다. 그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다. -에드먼드 칼라미(Edmund Calamy).

 

8절. 프랑스 개신교도들은 언제나 이 시의 마지막 절을 읽고서 공예배를 시작했다. 이보다 더 용기를 얻고 위안이 되는 신념은 없다. -잡 오턴(Job Orton, 1717-1783).

 

8절. "우리의 도움은······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이는 의기양양하고 승리한 믿음의 말이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마치, 하늘과 땅의 조물주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돕는 자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시편 기자가 큰 위기에 어디로 날아가는지 안다. 그는 낙담하지 않고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구출과 위안을 발견할 것이라고 확실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당신도 이 소망에 거하라. 그리고 예전처럼 그렇게 하라. 다윗도 극도로 절망할 지경까지 시험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시험받는 것은 슬픔과 절망에 삼켜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만일 당신이 지옥의 문까지 내려간다 해도, 여호와께서 분명히 다시 일으키실 것을 믿으라. 만일 당신이 상처받고 무너진다 해도, 여호와께서 다시 도우실 것을 믿으라. 만일 당신의 마음이 슬픔과 짐으로 가득하다 해도, 상한 심령을 제사로 드리라고 하시는(시 51:17)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구하라. 그래서 시편 기자는 모든 괴로움과 위험, 모든 시험의 홍수와 범람에 맞서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모시며, 한숨에 온 세상과 지옥의 맹렬한 분노를 삼킨다. 마치 강력하게 불타오르는 불이 작은 물 한방울을 삼키듯이 말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 세상과 그 모든 위력과 힘이 대체 무엇이겠는가? -토머스 스틴트.

 

 

[설교힌트]

1절. '우리 편에 계신 여호와.' 그는 누구신가? 왜 우리 편이신가? 어떻게 그것을 입증하시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3절. (1) 야곱 혹은 이스라엘의 생애를 통하여 (2)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3) 교회의 연대기를 통하여 (4) 우리의 개인 약사를 통하여 이 본문을 보라.

 

1-5절. (1) 있었을 법한 일. (2)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1-5절. (1)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① 원수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2, 3절) 이스라엘은 모세의 시대에 바로와 그의 군대의 손에 맡겨져 있었고,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손에, 기드온의 시대에는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히스기야의 시대에는 유다가 앗수르인들에게 맡겨져 있었다. "그때에······(그들이)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② 그들 자신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4, 5절). (2) 주님이 그들 편에 계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가? ① 그들을 대적하는 원수의 모든 계획이 좌절된다. ② 그들의 내면적 슬픔이 즐거움으로 변한다. ③ 안팎의 괴로움이 합력하여 그들에게 선을 이룬다. -G. R.

 

2, 3절. (1) 우리를 산 채로 삼킴. 몹시 화난 우리 원수들의 욕망. (2) 우리를 산 채로 살림.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역.

 

4, 5절. 물들의 위험. 시련과 격류의 유사함에서 수많은 생각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6절. (1) 어린양. (2) 사자. (3) 주님.

 

6절. (1) 그들은 흔쾌히 우리를 삼킬 것이다. (2)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그들은 우리를 삼킬 수 없다. (3) 하나님은 그들이 우리를 해치게 하지 않으시므로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

 

6절. (1) 의인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악의. ① 의인을 약탈하려고. ② 의인을 파멸하려고. "저희 이에 주어." (2) 하나님의 선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① 하나님의 선의가 말하는 바. 선한 사람들이 잠시 동안 얼마간 불의한 자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 ② 하나님의 선의가 확언하는 바. 선한 사람들은 그들의 손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았다. -G. R.

 

7절. (1) 올무에 잡힌 영혼 ① 누구에 의하여? 불의한 자들은 사냥꾼이다. 그러므로 사탄에 의하여 잡힌 것이다.

 

사냥꾼인 사탄은 무방비의 영혼을

수천 가지로 속이도다.

 

② 어떻게? 시험에 의하여. 개인의 취미와 습관에 따라, 교만이나 세상적 태도나 술취함이나 실수나 정욕에 의하여. (2) 벗어난 영혼. "우리 혼이 벗어났도다." 우리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올무가 끊어졌도다." -G. R.

 

7절. (1) 새. (2) 올무. (3) 잡힘. (4) 벗어남.

 

8절. 우리의 창조주는 우리의 돕는 자이시다. 이 점에서 창조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특별한 위로.

 

8절. (1) 돕는 자:"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그 행하신 일을 통해 친히 하실 수 있는 일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주시는 여호와. (2) 도움을 받는 자들. "우리의 도움"은 ① 그 이름에 약속되어 있음. ② 그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임. 이리하여 그 도움이 우리의 것이 됨. -G. R.

 

8절. (1) 우리는 도움을 얻는다. 괴로운 죄인으로서, 어리석은 학생으로서, 벌벌 떠는 고백자로서, 경험 없는 여행자로서, 연약한 일꾼으로서 도움을 얻는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서 도움을 얻는다. 그의 완전에서.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민 6:27). 그의 복음에서. "내 이름을······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의 권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3)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한다. -W. J.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mid=Puritan05&category=94&page=2&document_srl=8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