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습3:16-18)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시련의 시기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시련의 시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거룩한 대회는 치욕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대회는 그의 영광이었습니다. 잔치와 제상의 기간 동안 온 나라가 기쁨으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주일은 그들의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대회가 치욕을 당했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집회에서 복음의 찬란한 빛이 죄악으로 빛을 잃었을 때 우리는 서글픈 고통에 빠집니다. 의심 많은 목소리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갈 때, 그리고
오직 진리만을 전해야 하는 자들이 사람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교리와 시대의 가치들을 말할 때 복음의 순수성은 더럽혀집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계시 대신 철학을, 하나님의 흠 없는 가르침 대신 추측을 말하려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보와 성장의 산물로서 전해지고 해마다 수정되고 다듬어져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나팔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때
교회와 세상은 모두 병들어 있습니다. 누가 있어 전쟁을 대비하겠습니까?
거룩한 교회의 집회에 생명 없음과 무관심, 그리고 영적
능력의 결핍이 살금살금 기어들어 오는 것을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극치일 것입니다. 신앙의 생명력이 침체되고
기도 모임이 무시될 때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사를 통해 우리의 모습은 차지도 덥지도 않아서 그리스도가 입에서 토해 내야
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초상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 교회는 부요한 것을 자랑했고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으므로 인해 세상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내내 그 교회의 주인은 밖에서 단단히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열정을 잃은 교회에 적용되었으며,
살아 계신 주님이 대속의 교리의 문 앞에서 거부되고 있는 동안 스스로의 풍성함과 명성에 빠져 있는 교회에 적용되었습니다. 오, 그가 들어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는 너무나 간절히 들어오고 싶어했습니다. 교회는 곧 허상 속의 부요함을 던져 버렸을 것이고 그가 교회를
단련된 정금같이 만들어 놓으시고 흰옷으로 갈아 입혔을 것입니다.
아! 교회는 주님을 떠난 채 만족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육과
화려한 달변, 과학, 그리고 다른 많은 어릿광대의 지팡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교회에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때 시온의 거룩한 대회는 구름으로 덮이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에 부합하려는 태도가 교회에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헛된 재미거리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라고 부르짖으며
애가를 부를 만한 충분한 이유입니다(애4:1).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었던 나사렛 예수는 이제 숯보다 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애3:46).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더 이상 뚜렷하고 명백한 구별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이 불신자들과 손잡을 때 우리는 진정 괴로움으로 울부짖을 것입니다! 병든 시대가 교회와 세상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심판을 기대합니다. 주님이 분명 이런 자들에게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대회가 더렵혀질 때 - 쫓겨난 자를
모으며
거룩한 대회가 더럽혀질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병든 시기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로 인한 치욕은 진정한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들은 근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렇게 무거운 짐이 마음에 지워졌을 때 그들이 근심 속에 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그들을 비탄에 빠지게 하는 악한 영의 영향력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저는 자를 구원하며." 선지자들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시온을 향한 순례자들은 내내 다리를 절어야 했습니다.
순수한 복음이 선포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여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힘을 빼앗기게 됩니다. 여러분이 빵을 빼앗으면
아이들은 주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양떼에게 독초를 먹이거나 사막처럼 황무한 들로 인도해 간다면 그들은 곧 파리해지고 목자를 따라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다리를 절게 됩니다.
교리는 곧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이 그저
쉬는 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잠을 잡니다. 진리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도,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끼치지도 못하는 것들을 신물나게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곳에서 양떼들이 먹을 양식을 기대하며 고개를 들지만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아! 많은 이들이 19절에 있는 "쫓겨난 자를 모으며"에 나타난 자처럼 쫓겨나 있습니다.
거짓 교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삶의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본성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죄로부터 회개시키는 진리는 더 이상 선포되지 않습니다. 구하는 자들을 평안으로
인도하는 진리는 구름으로 가리워지고 영혼들은 불필요한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능력을 느낄 수 있도록 은혜와 영광스런
대속의 교리가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모든 악한 것들이 그 뒤를
따라오게 됩니다.
이 끔찍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교회에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머뭇거림은 멸망으로
치닫게 되고 약한 자들은 동요되며 강한 자들조차도 당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가능하다면 택한 자들을 속이려
합니다. 이런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마음은 근심에 빠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동안 내내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방황하는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본문에 동일한 의미가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습3:19).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3:20).
대적들은 영원한 증거를 침묵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나무에
매달고 그의 몸을 내려다가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고는 그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분명히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목적과 뜻이 있었습니다. 자랑하지 말지어다. 너희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아! 돌로 막고 지키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가!
정한 때가 왔을 때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세마포가 구속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의 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요!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4)
사랑하는 여러분, 치욕은 아직 거룩한
대회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나팔 소리 같은 하나님의 진리가 다시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고 추수할 볏단처럼
많은 회심자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때 짐 지고 근심하는 자들은 기쁨과(p.337) 아름다음의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의 속죄는 찬양과 영원한 기쁨이 되어 그들 머리 위에 되돌아올 것입니다. 의심의 갈등이 사라진 전쟁의 끝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외치는 그 소리를 듣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19:6).
교회가 가장 낮은 곳에 처할 때도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교리에 의해서 세워지고, 온전하시고 충만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지옥의 문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인해 기뻐합시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했기 때문에 무한히 부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수 만명의 페르시안인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알렉산더의 용기는 더욱더 빛났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한 명의 푸줏간 주인이 무수한 양떼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소?" 다른
사람이, "아, 그 많은 페르시아인들이 활시위를 당기면 태양이라도 어둡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영웅은 "어둠 속에서 싸운다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소리 높이 외쳤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다나시우스는
말했습니다. "나 아다나시우스는 세상과 대적할 것입니다." 이 말은 유명한 격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전쟁에서 홀로 싸우는 것은 영광스런
일입니다. 우리에게 여섯 명의 아군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힘을 더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돌봐야 할 연약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홀로 싸워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쳐 아무도 주위에 남아 있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그 모든 빈자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사12:6)......
배를 조종하고 있는 주 예수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 오,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십시오. 그리고 인내하며 그를 기다리십시오.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사35:4).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mid=Puritan05&category=94&document_srl=32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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