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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A.W.Tozer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by 복음과삶 2010. 10. 12.

그리스도인으로서 연륜이 깊어지고 또 더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가는 길에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우리 영혼의 원수에게서 더 많은 대적을 받게 되리라고 예측을 할 수 있다. 이 점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사실로 그리스도인에게 제시하는 일은 드물지만 모든 경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이는 정말이지 분명한 사실이며, 또 이것을 다루는 방법을 우리가 배우게 되지만 혹 배우지 못한다면 넘어지게 되고 결국 타락하게 될 수도 있다.

진짜 그리스도인을 사단이 미워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단의 미움을 사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그 아버지를 닮았고 또한 믿음의 한 식구들과 닮았기 때문에 미워한다. 사단이 옛날부터 갖고 있는 시기심은 조금도 줄지 않았으며 하나님에 대한 증오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사단에게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독한 증오의 대상이 되며 여기에 다른 이유는 없다.
세 번째 미워하는 이유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전에 사단의 노예가 되어 그의 배를 젓다가 탈출했으며 이로 인해 당한 모욕 때문에 사단은 그리스도인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유는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사단의 정부에게 끊임없는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반역자로 이 세상에 풀려나 있으면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사람이다. 사단은 어느 쪽에서 자기에게 위험이 닥칠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언제 다른 엘리야가 일어날지 아니면 다니엘 같은 인물이 또 일어날지, 혹 루터나 부스같은 위험한 인물이 다시 나타날지 누가 알겠는가? 조나단 에드워즈나 찰스 피니같은 영적인 거물이 나타나 말씀을 전파하고 기도를 해서 한 동네나 혹은 한 지방 전부를 해방시킬지 누가 알겠는가? 이런 위험을 그냥 참고 말기에는 너무 큰 터라 사단은 이제 막 믿은 사람에게 가능한 빨리 다가가서 그 사람이 너무 무서운 적이 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한다.

갓 구원받은 신자(信者)는 그리하여 즉시로 마귀가 쏘아대는 불화살의 주요 목표가 되고 만다. 사단은 군사를 제거하는 최상책이 어른이 되기 전에 그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임을 알고 있다. 젊은 모세 같은 인물이 해방자로 자라나서 한 민족을 해방시키게 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아기 예수라도 감히 어른으로 자라 세상 죄를 위해 죽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일찍 파멸을 시키든지 아니면 최소한 제대로 못 자라게 해서 훗날 그다지 골칫거리가 안되도록 만들어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사단이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육신적으로 죽이는데 골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투에서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하다가 죽은 군사는 그 군대에서 그다지 큰 손실이 아니며 오히려 그 나라로 긍지를 갖게 하는 대상이 된다. 한편 싸울 수 없거나 싸우려하지 않고 적의 총소리를 듣자마자 도망가는 병사는 그 가족에게 수치요 자기 나라에 치욕스런 존재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고 죽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있는 의의 군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되는 것이 아니며, 마귀에게 승리를  안기는 것도 결코 아님이 틀림없다. 그러나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의 부대원 전부가 너무 겁이 많아서 싸우지 못하고 너무 잘난체 하느라고 부끄럼도 모른다면 이것을 보는 원수는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 틀림없다. 또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이다.

마귀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용하는 일급전략은 우리를 육신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며(물론 육체적으로 죽게 하는 것이 사단의 계획에 더 부합하는 특별한 상황도 때로 있긴 하다), 바로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벌이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은 이러한 전략으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오늘날 보통의 그리스도인은 조금도 해로운 존재가 못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이가 없다. 요즘의 그리스도인은 전사의 갑옷을 입고 있지만 조금도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어린아이다. 또 날개가 있지만 높이 날을 수 없는 병든 독수리 새끼다. 그는 지쳐버린 나그네며 여행을 포기하고 창백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서 전에 길을 가다 꺾은 꽃향기를 맡으며 낙을 삼으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단의 손길이 닿고야 말았다. 사단은 일찌감치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릇된 가르침이나 부족한 가르침을 받게 하거나, 아니면 타락한 교회로 인해 엄청난 좌절을 맛보게 함으로써 사단은 믿는 자들의 결심을 약하게 하고, 믿음을 어중간하게 만들어 버리고, 공을 세우려는 인간본래의 충동을 부채질하는데도 성공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종교기관의 유지에 그저 재정적으로 기여하는 통계숫자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이런 복받은 영적인 소장품들로 가득한(혹 사분지 일만 차있는) 교회를 무슨 박물관인양 여기고 자기는 그 박물관장 노릇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단이 갓 믿은 신자들을 대적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더 차원 높은 삶을 살려고 매진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그 대적함이 훨씬 더 맹렬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성령 충만한 삶은 평안하고 잔잔한 즐거움이 있는 삶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이기 십상이다.
이쪽에서 보면 성령 충만한 삶은 강도가 들끓는 숲을 지나가는 나그네 길이다. 또 저쪽에서 보면 마귀와의 무서운 전투다. 항상 투쟁이 있고, 때로는 우리 자신의 본성과 열띤 공방전을 벌이기도 한다. 우리 본성에는 공격로가 하도 복잡해서 적이 어디 있는지 찾아낸다거나,  또는 어떤 충동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육에서 온 것인지 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길을 가기만 하면 완전한 승리가 우리 것이 되지만,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은 그 점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의 요지는 만일 우리가 이런 싸움을 피하고 싶다면 그저 물러나서 오늘날 받아들여지고 있는 허약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사단이 원하는게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능력은 땅에 처박히고, 성장은 저해되고, 우리는 어둠의 왕국에게 아무 해도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타협하면 모든 압력이 사라지게 된다. 사단은 싸움을 그만둔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싸움을 그만둔 대가는 고요한  침체의 삶이 될 것이다. 영원한 아들인 우리가 그런 삶을 살수는 없지 않은가!□

 

 

출처 : http://www.christi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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