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생활의 비결
2부 인간 생활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
1장 예수는 주님 (1)
잭 R. 테일러 |
제 2 부 인간 생활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14:9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로새서 3:11
“오 그리스도시여, 오늘날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부터 당신을 주님으로 모십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의 사랑, 우리의 생명, 우리의 생각, 우리의 뜻, 우리의 길을 바쳐드립니다. 주여, 우리를 취하시어 당신 뜻대로 써주시옵소서, 각 마음을 당신의 보좌로 삼으시옵소서. 그리하여 구속받은 우리 모든 힘을 오직 당신 한 분의 것으로 삼으시옵소서.”
A. B. 심프슨
제 1 장 예수는 주님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 신자(信者)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승리의(형통하는) 생활에 대한 열쇠(비결)를 발견하는 것에 비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통치하심을 발견하는 것은 그 열쇠로 생활의 자물쇠를 여는 것에 비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주(主)되심은 추축(樞軸)이며 그 주위를 그리스도인 생활의 승리를 가져오는 모든 일이 선회(旋回)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생활 중에 부단(不斷)의 실재(實在)가 되지 않는 한 거기에는 충만이라는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풍족함을 알고 또 그것을 즐기고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되 그 정도(程度)를 가감(加減)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서 사는 기쁨의 충만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구주요, 또한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한 없이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구속사업의 대설계(大設計)다.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14:9에서 천명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그리스도인이 증거 할 바 대동기(大動機)이며 근본 원천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마 28:18-19).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모든 역사적 줄(線)이 향하여 올라가는 정점(頂點)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 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설계를 위한 하나님의 으뜸가는 목적이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주)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생명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내재를 생명을 통하여 유출시키는 일에 연결지어주는 본서의 촉매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영화)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의 영광을 성령의 쏟아 부음으로 연결 짓는 대비결(大秘訣)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비결로서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과 앞으로 올 영화(榮化)를 바라보시는 가운데 이것을 언급하셨고, 또 베드로도 하나님의 역사를 돌이켜 말하는 가운데 이를 언급하였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7:39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다음에 베드로는 사도행전 2:33, 36에서 말하고 있다 :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것은 성령과의 개인적인 체험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그처럼 중대한 개인적 발견이므로 발견한 자의 삶의 어떤 부분도 전과는 같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주되심 주에 계속되는 빛 가운데서 사는 것은 끊임없는 모험(冒險)을 아는 것이다. 제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새로운 표현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복잡한 문제뿐만 아니라 단순한 문제들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알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것을 보았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한다 : 예수께서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그리스도께서 그의 주되심을 나타내실 때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된 것과 같았을 것이다. 제자들은 빨리 잊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나타내신 증거의 사슬을 이어 나가셨으며 한 고리 한 고리씩 그의 주되심을 나타내시도록 들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람을 꾸짖으심으로 자연물에 대한 주되심을 스스로 증명하셨다. 죽은 자를 불러일으키심으로 죽음에 대한 주되심을 보여주셨다. 모든 종류의 인간의 질병을 고쳐주심으로 그가 병마를 다스리시는 주 되심을 다짐하셨다. 그리스도는 이미 스스로 “싸움에 능하심”을 증명하셨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및 이 생의 교만”을 가지고 사탄이 도전했지만 패퇴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조롱과 증오(憎惡)를 이기시는 주되심을 보여주시고 사랑으로 십자가에 몸을 맡기셨는데 그 사랑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심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모든 것 위에 계심을 증명하시는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제자들은 더욱 깊은 믿음으로 주를 따랐다. 그리하여 드디어 가장 큰 시험이 닥쳐왔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주셨던 것이다. 몸과 영이 헤어졌다. 마지막 원수는 그가 손에 쥔 미끼를 사흘 동안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른 아침에 내 구주의 영은 그 움직이지 않던 몸에 들어오시고,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몸을 둘렀던 세마포 옷을 차근히 개켜서 옆에 두셨다. 그는 가이사의 봉인(封印)을 찢으시고 죽음과 지옥을 여는 열쇠들을 허리에 차시고 무덤을 걸어 나오셨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다스리시는 주(主)시다! 죽음은 그의 미끼를 잡아둘 수 없었다. 예수 내 구주 ; 그리스도는 가로막는 창살을 제거하셨다. 예수 내 주!
예수 주시다! 그는 시간과 영원의 주님이시다. 그는 만물의 창조 전에 계셨고 또 시간의 끝을 선언하시기 위하여 계실 것이다. 그는 알파요 오메가시며 시작과 끝이시다.
그는 생명과 죽음과 심판의 주님이시다. 그는 말씀하셨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나는…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 이런 까닭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다. 그리스도는 과거 역사와 장래 역사의 주시다. 천사들이 그를 주님으로 선포하였고, 사람들이 그를 주님으로 모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주로 선언하셨다. 만일 도처(到處)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 영광의 단 한 조각이라도 맛봄으로써 이 거창한 사실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거리에서도 정부 청사 안에서도 또는 오두막 안에서도 큰 환희의 고함 소리가 울려나올 것이다. 예수는 주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뜻을 변화시킨다. 그거슨 현재의 사건들의 뜻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가장 큰 걱정거리에 대한 이유를 소멸시키며 모든 가슴에 밝게 불타는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는 주시다! 국가가 그것을 믿으면 한 새 영혼을 발견할 것이다. 교회가 그것을 발견하면 새로운 불이 붙을 것이다, 개인이 그것을 발견하면 그는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주 되심은 시험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니다. 여러 번 도전을 받았으나 패배당한 적이 없다. 그것은 연약하거나 비실거리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악한 지옥에도 견디며 오히려 더 굳건하게 선다. 이 보좌는 종종 공격을 받았으나 절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거대한 힘으로 늠름히 서 있다.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그의 젊은 날의 어리석음을 말하였다… “배움을 주로 삼는다”, 그러나 뒤에 말하기를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한다”고. “웃음이 주다” 그러나 뒤에 말하되 “그것은 미치게 하는 것” “술이 주”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 화평도 없고, “생활의 호사가 으뜸”이라고 하겠으나 결국은 헛되며, “정욕”을 좇았으나 만족이 없었다. 드디어 환멸에 지친 나이 많은 사람이 지금은 지혜자가 되어 말했다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다시 말하노니 “예수는 주시다.”
예수는 태양이 그의 여행을 계속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스리실 것이요, 그의 나라는 달이 차고 기우는 일이 없어질 때까지 끝에서 끝까지 전파되리.
다음과 같이 말한 찰스 램(Charles Lamb)은 진정 옳았다 : “모든 뛰어난 사람들이 다 한데 모인 가운데 셰익스피어(Shakespear)가 들어온다면,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그에게 존경을 표시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거기에 들어오신다면 그들은 무릎을 꿇고 그를 경배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고백한 나폴레옹의 말은 옳았다 : “진정 나는 사람을 안다. 그런데 예수는 사람이 아니시다. 예수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진실로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누가 에머슨(Emerson)에게 그가 만든 대표적 인물표(代表的 人物表)에 왜 예수를 포함시키지 않았는가를 묻자. 그는 대답했다. 곧 예수께서 입고 계신 영광의 겉옷을 광채가 예수를 다른 사람들과 도저히 배교할 수 없게 만들었고. 예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주시다! 왜 우리는 그가 주님이시라고 믿는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주셨다
사람들과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사야는 말한다 :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했다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 1:29). 마태는 말했다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천사가 요셉에게 와서 말씀했다 :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0-21). 그리하여 그녀는 첫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이름을 주실 때…그것은 주였다! 그는 그리스도시다. 그가 옛 언약에 따른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시다. 그가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주시다…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그 이름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9)라고 하신 성경 말씀은 명백하고 결정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주로 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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