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를 내려 놓음 |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3).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하여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내에서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된다. 목사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도들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게 되어진다.
나름대로 믿음의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어느덧 내 안에는 나름대로의 기준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한 선악간 분별이 이루어지게 된다.
'저 정도의 사람이면 적어도 이런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상하다. 예수님도 섬기려 오셨는데 왜 섬김을 받으려고만 할까? 참, 말과 행동이 다르다.'
아니, 이 보다도 더한 마음들이 내 마음을 분주하게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로 인한 마음이 있으니 목회자와 지체들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지 실제가 될 수 없음을 보게 되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들이 얼마나 죄악된 것이며 추한 것임을 보게 되어졌다. 물론 옳고 그름을 본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것을 적용하는 문제가 문제일 것이다.
자신에게는 선과 악을 분별해서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리며, 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에게 적용될 때의 문제이다. 옳은 것은 지체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그의 영을 더 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에 의한 그른것, 잘못된 것, 죄된 것은 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며 나도 그런 자리에 있을 때에 그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경각심을 갖고 내가 그 자리에 설 때에 그런 죄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지 그에 대한 정죄의 눈길, 비난의 손길, 판단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겼는데 하물며 나일까보냐!
물론 이 말씀을 예전에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다 판단해 주실거야하는 마음속에 내가 옳다는 교만이 교묘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면 이젠 그 마음조차도 교만이며 죄악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 모든 판단기준(자기의)를 그 분 앞에 내려 놓는다.
한가지 나아가서 우리는 살면서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말로써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말 실수를 했다면 그에게 진심으로 회개를 해야 할 것이며,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말로 인한 상처를 받은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가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할 것이다.
회개를 했으니 이제 내 할 일은 끝난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상처로 아파하는 지체가 온전히 치유될 때까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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