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의 비밀
14장. 위험요소 (3)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유산을 믿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수준 높은 비판들 -
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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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삶에 관해 가장 이상한 사실은 그것이 성경에 매우 명백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오랫동안 성경을 세심하게 연구한 후에 비로소 이 삶의 영광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목사들이 솔직히 고백해 왔다. “우리는 이 진리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더디 이해를 할까? 하나님께 헌신된 두 사람의 내적 경험을 통해서 이런 전형적인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가 이 중의 하나이다. 그는 성경에 적혀 있는 대로 거룩함을 추구해 보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야 거룩해지는지 속수무책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여동생에게 써 보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허드슨 테일러의 고백 “나는 기도하고, 금식하며, 노력하고, 다시금 결심도 하며,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해 보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의 매일, 매 시간마다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 다음엔 자문해 보곤 했다. 「무슨 해결 방법이 없을까? 계속 번민하면서 승리는커녕 실패만 거듭해야 한단 말인가?」나는 자신을 미워하고 죄를 증오해 보았지만 대처할 만한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방법에 관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기도나 예배 등 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열심히 달하리라 생각했다. 영혼의 괴로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떤 편지의 한 구절이 내 잘못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성령께서는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편지의 한 구절이란 대체 무슨 내용이었겠는가? 허드슨 테일러는 계속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흘러내리는 통로는 믿음에 의해 형성된다. 마른 가지가 열매 맺는 줄기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내부에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아주 거룩하다. 믿음이 부족 할 때 장벽에 부딪치며 많은 사람들이 실족한다. 투쟁하거나 노력함이 아닌 단지 거하는 것, 그를 바라보는 것, 하나님께서 지금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 내부의 모든 죄를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 완전한 구원의 기쁨 속에 안식하는 것, 모든 죄로부터의 구원, 하나님은 진정 지고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바라는 것 등은 새로운 사실들은 아니지만 내게는 새로웠다. 나는 무한한 바다의 끝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그리스도만이 봉사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셨고 변함없는 기쁨의 토대가 되셨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자라는 것인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함으로만 가능하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 죽음, 사역, 그분의 인격 등에 관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믿음을 갖고자, 또는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미쁘신 분을 바라봄이,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전적으로 안식함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의 전부이다. 이것은 내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단지 전에 잘못 이해했을 뿐이다.”
실패에서 승리로 허드슨 테일러의 주의를 끈 편지의 한 구절은 바로 마지막 문장이었다. “믿음을 가지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미쁘신 분을 바라봄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의 전부이다.” 우리는 편지를 길게 인용했다. 이는 우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요약했기 때문이고, 나아가서는 승리의 삶을 갈망했던 하나님의 사람도 이 가르침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과거를 돌이켜 보건대, 새롭지도 않고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이 승리의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무척이나 놀랐었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도 많은 경건한 학자들이 승리의 삶을 이야기 하거나 심지어는 발견조차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기를 구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성경을 읽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분개하며 이 사실을 부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고의적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속이거나 적어도 속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성스런 모울 주교까지도 자신이 신학 대학의 학장이지만 승리하는 삶에 관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틀리고 비성성적이라 확신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모울 주교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중에 이 진리를 어떻게 깨우치게 되었나를 기억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이 진리에 관해 수많은 저서를 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보겠다. 바울은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고후3:6)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해 주시지 않으면, 생명력 있고 승리로운 삶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오는”은 과거 시제가 아니라 현재 시제이다. 말씀은 항상 지금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성령은 “죽이는 의문”을 거두어가고, 대신 성령께 의뢰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능력과 생명을 감지케 한다.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요16:13)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입에서 지금도 나오고 있는 말씀에 의지해서 산다. 니케아 신조에서는 성령을 “생명의 주시며 공급자”라고 칭하고 있다. 승리하는 삶을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함으로서 그렇게 하신다. 씌어진 말씀의 의미뿐만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재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탄생하셔서 성령의 행동하심으로 인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종종 “승리하는 삶은 성령충만과 같은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럼,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려고 오셨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점 “별 새로운 것이 없군!”이라고 위의 가르침에 대해 종종 불평을 한다. 그러나 이 어조에는 이 새롭지 않은 가르침을 정말로 이해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나타나 있지 않다. 제일 곤란한 점은 비판을 좋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소위 수준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승리하는 삶이 성경적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암암리에 생각을 한다. 오,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단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린 아이같이 단순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단순하다면 말씀대로 주님을 받아들이리다. 우리의 삶은 주님의 영광 속에서 언제나 빛날 것이리라. 가장 수준 높은 비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가능함을 믿지 않고 완전히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승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기쁨은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있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라는 분명한 명령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가? 무슨 일에든지 염려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일에 염려를 한다고 슬프게 고백하고 있다. 수 년 전에 저자는 유명한 내과 의사를 찾아갔었는데, 그는 심장의 무리로 오랫동안 휴양을 요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목사들에 대해 한 마디 할까요?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했는데, 소위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사람만큼이나 몸에 대해 걱정들을 합니다.” 이 무슨 꾸지람인가! 저자를 빗대놓고 나무라는 것이었지만 걱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러했던가? 저자는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이다.
확실한 세 가지 진실 저자는 믿는다고 말만 했지 실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인용하곤 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시55:22).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아주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영적 생활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불신앙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세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지요”라고 프란시스 리들리 하버갈은 말했다. “첫째, 주님께서는 자신이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가 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주님의 명령은 항상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셋째, 주님은 전능하셔서, 명령하시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권능 부여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하나님께 순복한 사람이 걱정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 하나만 순종해도 지상에 있는 천국을 발견하기 시작하리라. 그런데 내가 그 명령을 지키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사시며,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신다. 참새가 울새에게 말했다. “인간들은 왜 저리 바쁘고 걱정이 많지?” 울새가 대답했다. “그건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일거야.” 이제 우리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롬8:32). 왜 걱정하는가? 정말로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염려가 있다면, 당신의 영적 생활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며 더욱 풍성한 삶을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된다. 당신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기적적인 능력을 당신에게 부여해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나? 우리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는 죄를 범할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제시하는 두 성경 구절이 있다. 하나는 에베소서 6장 16절이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다른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정말로 놀라운 말씀들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가! 이는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죄의 뿌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슬픔은 죄로 인한 것이며 모든 염려도 죄로 인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를 정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오르락내리락하는 흔한 경험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시도록 신뢰하며 맡기라. 성경에서 위로를 주는 또 다른 구절이 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12:9). 이는 약속이 아니라 확고하게 변치 않는 사실이다. 한 집회에서 저자가 이런 말을 했더니 조금 후에 어떤 수녀가 다가와서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은 생각지 않으셨군요.” 『무슨 조건을?』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 은혜에 만족하게 되지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독자여, 당신의 믿음이 있고 없음이 사실을 변경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신이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는 네게 족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는 항상 “양식이 풍족”하다. 탕자가 먼 나라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할 때에도! 항상 풍족하므로 탕자는 집으로 돌아가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족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언하고 계시다. 당신에게 갑작스런 유혹이 닥쳐올 때, 그 유혹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는가, 혹은 유혹에서 승리하도록 그리스도를 바라보는가? 누군가가 말했다. “유혹을 받을 때, 「어떻게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가 아니라「무엇이 유혹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주 예수님은 마음속에 계셔서 악한 생각이 죄가 되기 전에 소멸시키는 일을 하신다. 악한 생각들로 괴로움을 당할 때, 내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을 지키신다는 분명한 약속을 상기하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성경 구절로 말미암아 웨브 페플레라는 목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겪은 후에 그는 이 구절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짐을 여호와께 맡길”수 없었다. 일어서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고뇌를 호소했다. “주님, 이 성경 구절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게 닥쳐온 이 깊은 슬픔 가운데서 당신의 은혜가 제게 족하다니요. 오 주님! 그렇지만 족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위대한 경험 무릎을 꿇고서 그는 이 기도를 계속했다.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벽난로 위에 있는 반짝이는 장식 패를 쳐다보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 순간 그는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바보같이, 이미 족한 것을 하나님께 달라고 간청하다니! 일어나서 하나님을 신뢰해야지.”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 후 웨브 페플레 목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족함을 잘 아는 바울은 이렇게 약속할 수가 있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그리스도인이여, 이보다 더 위대한 약속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이 공급은 순간순간 주어지는 것이다. 만나는 날마다 광야지면에 내렸다. 우리는 매 순간 영적 생활의 자원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또 한 가지 명령이 있다. 이것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명령과 같은 구속력을 지닌다. 그것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명령이다. 이 말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는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됨, 우리에게 주신 은혜, 우리 안에서 하신 일, 혹은 하나님과의 교제 등으로 인해 기뻐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일 때문에 기뻐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 즉 하나님의 인격과 그분이 소유하신 것만으로 기뻐하라는 명령이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로 기뻐할 만한 놀라운 이유가 됨을 당신은 이해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정복하는 승리를 주실 때만 기뻐한다면, 우리가 실패를 겪을 때는 기쁨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의 기쁨이 우리 안에 이루신 하나님의 일에 기초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바로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과도하게 우쭐대거나 낙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쁨이 요동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 인격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가 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1:31).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시34:3). 때때로 하나님을 생각하라.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당신의 생각과 찬송의 주제로 삼으라. 믿음에 의해 당신의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이 영광의 하나님을 늘 묵상하라.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배하실 때 당신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쁨으로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외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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