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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로이드존스

죄에 관하여 (사1:4)

by 복음과삶 2010. 4. 1.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1:4)

 

여러분의 영혼이 치료받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하게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두려움 없이 죽음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죄의 특성에 대해 말해 주는 이사야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의 말을 따라가 봅시다. 그가 이끌어 가는 대로 계속 따라가면 4절에서 실제로 죄 때문에 생기는 일 중 몇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슬프다‘라는 단어를 통해 이사야는 두려움과 놀라움을, 분노와 슬픔을 그리고 부끄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나라를 보면서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나라인가를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올 수 있는가를 바라보면서 탄식하고 놀라움과 슬픔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목적은, 그리고 설교의 전체적인 임무는 우리의 사태를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야만 우리가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 앞서 가졌던 것과 같은 놀라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놀랐습니까? 우선 죄의 무서운 성격과 죄가 만들어내는 무서운 일에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4절의 교훈을 세 가지 제목, 세 가지 원리로 정리해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죄는 사람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물러가는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죄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경멸하는 것이며 화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이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모든 것을 경멸하게 만듭니다.

세상은 꼭 탕자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태초에 첫 번째 사람이 의문을 갖고 마귀의 말을 듣기 시작했을 때 일어난 일을 사람들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모순에 빠져있습니다. 죄 안에서 타락의 결과로 사람들은 언제나 상류 사회에 끼고 싶어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며, 정상에 오르기를 열망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각계 요인들을 알려고 야단법석이지만 하나님을 향해서는 등을 돌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영광의 주님과의 교제를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방식 또한 멸시합니다.

 

이런 무시와 멸시를 지금의 사람들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 하나는 신앙생활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가리켜 ‘독실한 척 하는 것’이거나 ‘좁아 터진’것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일인지!’라고 말합니다. ‘저 사람들 좀 봐 저렇게 살다니!’ 세상은 기독교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비웃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들의 생각을 앞세웁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셔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인가! 편파적이지 않은가?’ 간음하지 말라 말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 사람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일에 빠져들지 마라. ‘무슨 인생이 그래? 살맛이 안나잖아’.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 그분이 정하신 생활방식, 그리고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게 하신 그 가정의 특징이 되는 모든 것을 무시하였습니다.

 

세상이 오늘날처럼 된 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과 그분이 정하신 모든 것을 버린 채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방식을 버리되 의도적으로 버리고 그분에게서 떠나서 듣기를 거절하고 그분의 길을 비웃고 그 길에서 멀리 벗어나서 걸어갑니다.

 

2. 죄의 결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린 후에 죄가 이끌어 가는 삶의 양식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지금 선지자는 그의 동시대인들의 눈을 열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곤경에 처해 있고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갈텐데, 그들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만족스러워하고 있고 즐기고 자랑하는 바를 알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 때문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즉시 회개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탕자처럼 그들이 제 정신이 들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바보인가를 깨닫고 말할 겁니다. ‘내가 이 먼 나라에서 이 쥐엄 열매와 돼지와 뭘하고 있는거지? 아름다운 우리 집에 살았던 내가 말이야!’. 이것이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일어나는 바로 그런 일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 또는 도덕적인 원리를 위반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정확한 정의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고의로 어기는 것입니다. 계명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난 할거야’라고 말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허물진 백성’ - ‘허물’ - 허물은 불의 즉 의의 철저한 부재를 의미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포기할 때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의가 선하고 옳은 것이듯이 허물은 꼬이고 뒤틀린 상태입니다. 허물은 사악을 의미하며 총체적인 부정으로 끌고 갑니다.

‘행악’ - ‘나쁨, 사악함’을 의미합니다.

‘부패한 자식이로다’ 이사야는 이 표현을 통해서 하고싶은 말은, 그들이 스스로 부패했고 다른 사람들도 부패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패’- 썩었고 변질되었다는 뜻입니다. 악화되고 타락하고 저하된 것을 뜻합니다. 이는 왜곡된 것, 오염된 것, 곪고 짓물러지기 시작해서 냄새가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부가 썩은 덩어리, 즉 부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인류가 스스로 소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부러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그 일을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주변과 좌우를 둘러보십시오. 거의 모든 부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삶의 부패를 보십시오. 세상사람들은 십계명을 버렸습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세상사람들은 뭘 보여줍니까? 오직 죄, 사악함, 악, 부패밖에 없습니다. 신문의 외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외설, 엽기적인 생각, 넌지시 하는 저질스런 말들, 하나님의 선물인 성(性)을 오락으로 만드는 일, 성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킵니다.

아무 것도 거룩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깨끗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고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농담이고 모든 것이 우스갯소리입니다. 거룩함도, 진실한 마음도 더 이상 없으며 단지 냉소와 암시뿐이며 모든 것이 의심을 받습니다. 이들은 부패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부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부패하게 하며 그것을 좋아하고 자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1장 말미에서 무시무시한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죄는 사람들을 이 모든 일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며 무관심하게 만듭니다.

 

인생은 지금 보는 대로 아주 나쁘지만 끔찍한 것은 사람들이 그 인생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것이 성경의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4-5절).

사람들이 자기 지혜에 빠져 저버리는 이가 바로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온 세계의 재판관이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와 같이 사람들은 그 때와 똑같이 마시고 장가가서 시집가고 있고 아주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 각자는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며 그분의 진노가 죄에 대하여 내려질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은 ‘진노의 날’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비웃을 수 있으며 언제나 웃어 왔습니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비웃었습니다. 그리스도 당대의 사람들도 세례요한의 설교를 조롱했으며 주님 자신의 설교를 우습게 알았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러게 했고 세상이 비웃었다는 사실은 약간의 차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마지막은 올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져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될 심판의 날이 올 것이며 누구든지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계1:7절과 같이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버리고 반대되는 죄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곧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수전노를 보십시오. 그가 원하는 일이란 돈을 모으는 일뿐입니다. 그는 그의 모든 동전을 지킵니다. 큰 재산을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삶, 하나님을 버린 삶을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의견과 생각과 자신의 생활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스스로 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일마다 개개인의 장부에 기록되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 http://lloydjones.org/zbxe/Lloydjones02/2272/page/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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