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9장. 후퇴의 원인과 치료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너희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하라." (수7:13)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요단을 거뜬히 건너 가나안 땅으로 당당하게 들어갔으며 길갈과 여리고에서 하나님을 잘 순종하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승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본장은 뒷걸음의 연속이다. 승리를 이끌어 온 여호수아는 실의에 차서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다.
그는 퇴각없는 전승만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사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든지 아니면 가나안 땅의 강력한 적들을 하나님이 감당할 수 없었든지 둘 중의 하나였다. 이스라엘은 위기에 봉착한 듯하였다. 사실 이스라엘의 힘은 가나안의 강적들과 비교가 안 되었다. 겨우 교두보를 세운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강으로 즉각 철수할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 되겠는가? 여호수아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주여,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패배보다 하나님의 명예가 손상되는 사실을 더욱 중대하게 여겼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아이에서의 패배는 가나안 정복을 통해 처음으로 단 한 번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단회의 실패도 실은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은 모든 교인들이 죄에 대하여 늘 이기도록 계획하셨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죄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도록 만드시지는 않으셨다. 그대신 하나님은 우리들이 죄를 안 짓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패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있을 필요는 없다.
물론 충만한 구속의 땅으로 전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의 승리를 청구하는 자녀라고 해서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교인보다 위험이 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사는 사람은 응달에서 살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살므로 적의 극심한 공격목표가 된다. 그는 보다 높은 수준에서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오히려 적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워 날카로운 겨냥의 대상이 된다.
패배는 앞에서 말한 대로 있을 필요는 없지만 맛보게 되는 수도 있다. 그래서 만약 패배가 오면 그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해야 한다. 그럼 아이에서의 패배원인을 알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패배를 진단해 보자.
아이에서의 첫 실패원인은 자기과신이었다. 무너진 여리고에 비하면 아이는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전군이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아이 시를 정찰한 정탐들은 여호수아에게 2~3천명으로 충분히 함락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함락시켰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여리고성을 걸어서 돈 후에 소리를 지른 것뿐이었고 함락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폐허가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자신의 능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이에서 한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여리고의 사건을 통해 자기들에게 상당한 힘이 부여되었음을 전제로 하고서 앞으로의 모든 공략에 거뜬히 나설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여기에서 잘 익혀두어야 할 교훈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승리의 순간처럼 위험이 많은 때는 없다. 처음으로 죄로부터 구속을 체험한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하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라. 마치 자기의 팔로 구원을 받게 된 것처럼 자만에 빠지기가 일쑤이다. 한번 승리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큰 힘을 주신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지상생활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피를 떠나서는 아무리 작은 유혹이라도 우리들은 감당할 수 없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누리는 교제에서 우리들이 갖는 승리는 우리들에게 아무 힘을 부여하지 않는다. 어제 당신이 거둔 승리는 오늘 당신에게 능력을 주지 못한다. 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우리들은 큰 교훈을 배워야 한다. "내 육체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나니"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우리들의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가 다음에 올 모든 전투에서 또 승리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아이에서의 실패는 자기과신에 원인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두 번째, 아이에서의 실패원인은 기도를 무시한 일이었다. 2절에서 보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길갈로 돌아갔어야 했다. 여리고의 승리에 도취되어 그는 다음 영토의 정복에 마음이 휩쓸려 있었다. 백성들이 여리고의 승리를 위해 함성을 질렀을 때처럼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렸더라면 아이의 패배로 땅 위에서 뒹구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만일 승리의 순간에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더라면 진영 안에 죄가 있음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기도를 안하면 죄에 무디어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만일 승리의 순간에 기도할 수 있다면 패배를 당하고 탄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패배의 시간에 하나님께 간구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이 때는 무엇을 해야 할 시간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고 나무라셨다. 지금은 기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죄를 뿌리 뽑아야 할 실천의 시간이었다. 만일 여호수아가 승리했을 때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렸었다면 하나님이 아이의 공격은 백성들이 깊이 깨닫기 전에는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계시해 주었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힘으로 당신이 승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받기 쉬운 유혹은 기도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당신이 스스로 강한 듯 여기고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여 크게 기도가 필요치 않다고 느끼면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게 된다. 승리의 순간에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교통하지 않으면 실패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승리의 순간은 겸비의 순간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죄로부터의 구원을 체험하게 하는 희열의 순간은 자만이 아닌 겸손의 시간이다.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망쳐 버리고 죄에 면역이 된 채 무분별한 교인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밀착되어 있지 않으면 사탄의 힘센 손아귀에 의하여 부림을 받게 된다.
세 번째 아이의 패배원인은 불순종이었다. 11절을 읽어보라. "이스라엘이 범죄하여...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여기서 바친 물건이란 하나님을 위해 따로 정해둔 물건을 말한다. 이 대목에서의 교훈을 잘 명심해 두도록 하자. 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속한 물건을 훔치고 승리의 노략물을 감추었었다. 진 중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간이 범죄하였다" 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 고 하셨다. 한 사람의 실수로 전 군대가 패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민족이었다. 그들은 한 완전한 단체로서 취급을 받고 구속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 단일 민족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려고 그들을 단체적으로 다루셨다. 그래서 아이에서 한 개인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 고 말씀하셨다.
지역교회에서 누가 죄를 지으면 그 죄는 한 사람의 죄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범죄하였다" 고 판결하신다. 개인이 축복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을 저지르면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주님의 눈에는 자기 백성이 다 죄를 지은 것으로 비친다.
교회 전체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고서 죄를 짓지는 못한다. 한 개인의 영적생활이 식어지면 주위의 형제들에게도 그 영향이 가기 마련이다. 교회 전체의 승리는 각 교인들의 승리의 삶에 달려 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직책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변명할 수 없다. 수많은 신자 속에 끼여서 존재도 없는 처지라고 해서 자신의 행위가 남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기 지역과 세상에 대한 교회의 모습은 각 신자들의 승리의 삶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못돌리는 문제는 나 개인의 신앙생활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같은 순례의 길에 있는 각 개개인의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격려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성령의 연합과 기도의 유대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승리의 간증이다.
아이에서의 세 가지 실패원인은 자기과신, 기도하지 않음, 불순종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경험을 받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요구한 교인이 패배를 당하고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혹은 자기과신에 빠져 기도도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좌절을 당한 교인들의 형편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이제 패전의 원인은 알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치유책이다. 아이에서 결국 승전하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고백이 있었다. 아간은 하나님의 군대가 패주하는 것을 보고 자기 집에 하나님께 속한 물건이 감추어져 있음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36명의 사상자가 아군 편에서 생기는 것을 보고 자신의 책임을 더욱 통감하였을 것이다. 21절을 보면 아간이 여호수아가 집행하는 법정에서 심문에 답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의 고백은 "내가...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였다. 이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었다.(요일2:16). 그는 죄의 짐에 눌려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였다.
당신과 나는 죄의 영향이 얼마나 크게 미치는지를 깊이 깨닫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간의 죄를 범한 일이 한 번도 없다." 고 말할런지 모른다. 당신은? 당신은 다른 형제 자매의 삶을 손상시킨 일이 없는가? 당신은 남에게 씻어지지 않는 충격을 준 적이 없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재산을 훔친 일이 없는가? 그것은 모두 아간의 죄들이다. "내가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교우여, 당신은 아간의 실수에 빠진 것이 없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영혼에 죄의 씨앗을 뿌리고 악한 영향을 끼치고서 이를 덮으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바로 이것이 아간의 짓이었다. 우리는 모두 마음으로 죄를 수치스럽게 여길 망정 죄가 드러나는 것은 두려워한다. 우리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처음 시도하는 일은 그 죄가 탄로나지 않도록 감추려는 데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물이 당겨진다. 그 때에는 죄가 드러나고 성령께서 "너는 범죄하였다" 고 선언하신다. 그러면 우리들은 창피해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또는 흔히 교인들 앞에서까지 "주 예수님, 저는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라고 자백하게 된다.
아간의 죄 때문에 그의 가족이 몰살을 당하였다. 얼마나 무서운 벌인가! 어떤이들은 이 구절을 보고 신약의 하나님이 구약의 하나님처럼 아간과 그의 전 가족을 벌하신다면 도무지 하나님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하나님과 나의 구주님이 죄된 것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깨닫게 되어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또 나의 생활과 경험에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은 모조리 쓸어 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무서운 결의를 보는 듯하여 전신이 떨려 온다.
이스라엘을 패배케 하고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한 악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이를 제거하는 길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우리들이 지은 죄를 시인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한 시간이라도 이렇게 스스로 물어본 적이 있는가? "왜 그 일이 일어났을까? 원인이 무엇일까? 그렇게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었을까? 왜 내가 그렇게 되도록 내 버려 두었을까? 나는 기도하지 않았고 교만했으며 불순종했었다" 고 당신은 실수한 장소로 돌아가서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야야 한다. 약점의 뿌리까지 내려가 본 후에 당신은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시인하라. "나는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그 다음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1서 1:9) 라는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죄를 지은 교인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그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3). 또 이 말씀도 기억하라.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수7:13).
사랑하는 형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심을 다하여 권면할 말씀이 있다. 하나님과 바르게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집을 떠나라. 교회의 신자수도 좀 줄어드는 것이 오히려 승리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낮춤을 당하는 일이 아무리 큰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당신 안에 있는 아간을 샅샅이 찾아서 제거하라. 남의 말이나 눈치를 볼 것이 무엇인가? 우선 하나님과 바르게 되는 일이 시급하지 않은가? 주 예수님의 존전에서 당신의 죄를 버리고 보혈로 씻기운 사실을 요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