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해/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알란 레드파

적의 전략

by 복음과삶 2005. 7. 2.

 

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11장. 적의 전략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뉘에 싣고." (수9:3~4)

 

그리스도인들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계속 싸우고 있다. 이 목표는 충만한 구원과 죄로부터의 완전한 구속이다. 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반드시 다 승전한 것은 아니다. 또 졌다고 해서 만사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죄가 있는 한 투쟁은 계속된다. 당신과 내가 장래에 구속을 받을 이 몸을 가지고 사는 동안 유혹은 계속된다. 어떤 죄나 악도 경솔하게 다루어서는 안된다. 사탄과의 타협은 재난을 의미한다.

 

패배의 원인은 기도에 의해서 발견된다. 그러나 패배로 인해 잃은 것은 기도만으로는 다 메꿀 수 없다. 우리들은 우리 영혼의 적을 단 한번의 승리로 거꾸러뜨리지 못한다. 구속의 과정은 점진적이다. 우리들의 총사령관을 믿고 복종하는 것이 승리의 삶을 위한 비결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바라만 보지 말고 순종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승전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겨 보자. 여호수아는 치밀하게 가나안의 적들을 누르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그는 여리고에서 서쪽을 질러 적지의 중심부를 강타하고 적의 세력을 갈라 놓은 후에 남쪽을 정벌하고 여세를 몰아 북쪽까지 밀고 나갔다. 이 작전은 용의주도한 계획 아래서 수행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생활에서 신령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실패하는 일이 많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득점보다 실점이 더 많은 생활을 하고 있다. 날마다 단련을 쌓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전략을 세우는 훈련이 심히 부족하다. 그 결과 전략에 능한 사탄의 전술에 걸리게 된다. 사탄은 우는 사자일 뿐 아니라 간교한 뱀이기도 하다. 사실 사자의 울음소리는 뱀의 스치는 소리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

 

여호수아 9장은 적의 간계와 교활에 비해 우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들의 실수가 덮여지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됨을 감사한다. 그럼 우리 영혼의 대적이 얼마나 간교한지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의 승리는 적들로 하여금 일종의 불가침 조약을 강구하게 하였다. 첫 절을 보면 가나안 민족들은 부족들과의 쟁의나 사소한 이해관계를 제쳐놓고 이스라엘 군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동단결을 한 듯하다.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삶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사탄의 전면공격을 초래하는 초청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축복의 경험으로 들어갈 때마다 사탄은 또 하나의 공격을 시도해 온다. 축복과 투쟁은 나란히 걸어간다. 만일 당신이 사방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거든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험이 너무 크고 싸움이 극도로 치열하면 이는 기뻐할 일이다. 당신은 시름과 고통에 젖어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좋은 징조이다. 당신이 좌우로 시험을 받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의 정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나는 그런 시험을 몇 년째 받아 본 일이 없이 무사하게 지나고 있어 그런 시험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라고 말한다면 이는 무엇인가 당신에게 잘못된 것이 있다는 증거이다. 어서 주님 앞으로 나가서 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아야 한다.

 

전면공격은 사탄보다 우리들이 해야 한다. 이차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온 교회가 연합하여 이 영혼의 적을 총력전으로 부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들이 사소하고 부수적인 일들을 놓고 시간을 보내고 정력을 낭비하는 데 있다. 시간이 지나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신학적인 교리를 놓고 온갖 질문과 함께 힘을 소진하다 보면 언제 적을 향해 싸울 겨를이 없다. 지옥에 가면 사소한 문제들로 하나님의 교회를 골려준 일을 놓고 지르는 환성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교회가 만일 전면 공격을 위해 일심으로 사탄을 침공한다면 사탄은 교회가 희망의 비결을 터득한 줄 알고 주춤거리며 우리들이 자신의 전법을 배웠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가나안의 거민들은 이스라엘에게 전방에서 공격을 하기 전에 우선 이스라엘을 속여서 동맹을 맺고자 하였다. 기실 가나안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과의 대전은 무익한 것이었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모두 자기들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앞에서 맞서서 싸우지 않고 위장동맹을 통해 이스라엘의 침략을 방어하는 계책을 마련하였다.

 

이 때의 형편을 잠시 그려보자. 기브온 사람들은 길갈에 와서 먼 곳에서 온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에게서 지시를 받은 일이 없는 어떤 원방의 지역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잘 꾸미기 위하여 낡은 신발과 옷을 입고 다 해어진 물통을 차고 왔었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여리고와 아이에서 당한 일들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내어놓으면 자기들이 멀리서 왔다는 말이 탄로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만 이스라엘이 광야의 행진을 끝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고 그 위에 덧붙여서 자기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존경하고 믿는다고 주장하였다.

 

사탄은 간교한 모든 술책들을 동원하여 교회를 공격한다. 사탄은 헌신한 교인들에게는 전방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교인들은 조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얼른 눈에 뛰는 공격은 하지 않는다.

 

사탄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에 비추어서 매우 하찮게 여기는 미미한 일은 놓고 화친을 맺고자 속삭인다. 이를테면 우리 생활에서 어떤 일부분의 일을 골라서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이 간여하실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접근해 온다. 사탄은 우리들이 너무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든지 융통성이 없는 교인이라고 충고한다. 또 너무 사람이 소견이 좁고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 지나치게 열심이라고 일러준다. 사탄은 시간과 돈과 마음을 다소 딴 일에 조금씩 돌리며 사는 것도 과히 나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사탄은 우리들이 게을러지고, 타협적이 되고 영적이 아닌 일에 빠지기를 원해서 온갖 방법을 다해서 유혹해 온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교인의 증거를 흐리게 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속여서 나쁜 길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사탄은 우리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수준을 떨어뜨리며 가끔일지언정 타협을 하며 살도록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당신은 사탄의 전법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사탄으로부터 이와 같은 간교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생활에서 어떤 구석진 부분을 붙잡고 이런 것까지야 하나님이 주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조금씩 허리띠를 풀고 좀 여유를 가지라고 속삭였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사탄은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인정하였을 것이다. 사실 사탄은 철저히 근본주의자임을 선언하였다. 그는 절대적인 정통주의자이다. 한 순간이라도 그는 절대적인 성경을 불신하는 적이 없다! 또 한순간이라도 부활하신 주님과 그의 재림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탄은 살그머니 들어온다. 그의 가장 때문에 당신은 넘어갔을런지도 모른다. 사탄의 술책은 어느 구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교회 재정을 맡은 자들에게는 돈의 사용에 지혜를 쓰라고 전제하고 그 방법에는 세속적인 수단을 소개해 준다. 교회와 하나님의 일이라는 명칭 아래 그리고 상식적이고 인정된 일이라는 관념에서 하나님의 돈이 비정상적으로 쓰여지는 것을 격려한다. 또 믿음은 비이성적이라고 하면서 현재의 형편에 맞도록 요령있는 처신과 행정을 하라고 간언한다. 사탄은 가면을 쓰고 당신의 벗이 되려고 한다. 그의 제안과 충고는 모두 그럴 듯하고 선의와 진심의 표현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으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처럼 생각된다. 사탄은 자기의 방법이 항상 이익과 성공을 가져온다고 끊임없이 설득한다. 그러나 그의 본의는 당신의 파멸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4:1).

 

사탄의 간교한 유혹보다 공개적인 적을 다루기가 훨씬 쉽다. 그래서 유다보다 가야바를 대하기가 쉬운 법이다. 선민의 역사상 처음으로 길갈에 세워진 신령한 진영에 이스라엘의 적이 들어오게 되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따로 불러내진, 즉 하나님께 헌신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진멸시키라고 명령한 사람들과 섞이에 된 것이다.

 

기브온의 거민들은 교회생활, 개인의 신앙생활, 신자들의 사업과 가정에까지 들어와 있다. 사탄은 가장을 하고 우리들의 성역에서 들어와서 신앙의 힘줄을 끊고 있다. 원수들의 계책이 얼마나 교활한가!

 

한편 하나님의 자녀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생각해 보라. 14절을 보면 백성들의 우매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무리가...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기도를 무시하면 문제가 생기고 식별력이 죽는다는 교훈을 알면서도 이를 실천에 옮기려면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 기도를 게을리 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우리들의 판단을 내세우는 것을 뜻한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어리석은 처녀들도 현명한 처녀들과 아주 유사하였다. 삯군의 음성은 목자의 음성과 흡사하다. 국도 옆에는 샛길이 이어져 있다. 둘 사이의 차이는 식별하기가 어렵다.

 

교회와 가정에 슬픔과 패배를 몰고 온 요인은 대개가 이런 무익한 조약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처음에는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장담하며 주님 편에서 잘 지내다가 몇 년 가지 못하고서 떨어져 나가는지 모른다. 이들은 자기들의 생활로 하나님의 사랑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교인생활을 망치고 있다. 말로만 혹은 열심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서 전혀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 일생 동안 한 사람의 영혼도 불쌍히 여기는 일이 없이, 거듭나지 못하고 교회에만 출석하는 등록교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당시에는 교인생활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느끼던 일들로 수많은 교인들이 생애를 죽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능력이 없는 것은 사탄에게 한 발을 양보하고 그럴 듯한 그의 말에 넘어가서 생활의 한구석을 내놓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의 간증은 흐려지기 시작한다. '꼭 한 번만', '요번만 한번' 하는 스스로의 결단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내리막 길로 질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젊은 남녀들 중에서도 배우자를 고르는데 이런 함정에 빠져 일생의 삶을 망치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들은 피해야 할 위험 속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며 조심없이 죄의 길로 들어선다. 사망의 본능을 안고 오는 사탄의 속삭임에 귀를 대며 더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들은 삼가야 할 관계를 질질 끌며 적과의 회담을 자원한다.

 

어떻게 해야 이 원수의 책략에 넘어가지 않을까? 그 대답을 들어 보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단코 당신의 판단을 믿지 말라! 당신이 상식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그 일은 하나님의 축복과 믿음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급한 일이 생겨서 곧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재촉을 당하여도 반드시 하나님의 자문을 듣고 행해야 한다. 아직 의심이 생기거든 잠자코 기다리라. 어떤 일에 부름을 받고 급해서 기도할 틈이 없거든 그 일을 하지 말라. 어떤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켜야 할 입장에 처했는데도 그 문제에 대해 마음의 평안을 하나님에게서 받지 못했으면 일을 진행시키지 말라. 담대하게 기다리며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라.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탄을 물리치는 유일한 길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내 가슴을 찌르는 말들입니다. 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사업상 적과 조약을 맺었었습니다. 나는 결혼을 잘못하여 적과 회담한 셈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이제 그 결과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저지른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저는 너무 늦었습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사탄의 가장 교묘한 공격에 주저앉아서는 안된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마귀의 술수에 묶였다고 믿게 한다.

 

21절을 보라.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 이 얼마나 멋있는 말씀인가! 나는 당신에게 사탄의 간사한 술책에 대해서 말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런데 더 기쁜 것은 이런 악착같은 사탄의 끈질긴 속임수에도 하나님은 해답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은 패전할 때가 있다. 당신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싸움에 졌더라도 아직 이길 수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은 우리들의 실수와 죄까지도 축복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기브온 사람들은 나무를 패고 물을 길러야 했다. 누구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였는가?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였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들은 제단에 불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를 패고 성막의 의식을 위해 물을 길어왔다. 이스라엘이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받게 된 고통이 오히려 유익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을 속인 기브온 거민들은 도리어 수모를 당하고 제단의 불을 타오르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섬기는 예배를 정화시키는 일에 사용되었다.

 

기브온과의 맹약을 깨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후에 이 관계를 끊으려고 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울은 기브온과의 동맹을 끊었다가 고통을 당하였다.

 

친애하는 형제여, 만일 당신이 실수를 하였고 전쟁에서 졌고 어려움에 처했어도 그것 때문에 약속을 어기지는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원칙과 신임의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어떤 약속은 깨뜨리는 것이 더 나은 때도 있다. 가령 헤롯이 헤로디아의 뇌살할 듯한 춤을 보고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한 맹세는 살인을 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었으므로 안 지키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공적으로 한 약속 중에 이처럼 확실한 죄에 빠진 것이 있으면 오늘 당장 끊어 버리고 파약하기 바란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서 시험이나 결혼에 있어 엉뚱한 약속을 하고 기브온에게 당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남편된 자여 네가 아내를 구원할른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7:12,16). 그렇다고 이것이 불신자와의 결혼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면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이 된다.

 

그런데 당신은 부주의로 그런 결혼에 들어가게 되어 말로만 신자가 되겠다고 하고서 장가나 시집 온 상대로 인해서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당신은 이 맹약을 깨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이 겸허한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 앞에서 자백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배우자가 된 기브온을 기도의 중요 수단으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주의 제단에서 더욱 활발히 타오르게 되어 당신의 생애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존 웨슬레가 그러한 경우에 처했으며 그 후 수 많은 남녀들이 같은 형편에서 축복을 받았다. 저주라고 생각했던 실수와 도저히 풀려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기브온의 굴레가 기도생활을 심화시키고 헌신의 제단으로 나아가게 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다.

 

오! 하나님의 기이한 사랑! 오, 저 비견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 우리들의 모든 실수와 패배와 죄를 자신의 영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하나님은 나의 얼굴을,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주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저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저는 당신이 해충이 먹은 과거를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마귀가 저를 끌고 내려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내가 지은 죄와 실수와 잘못으로 가끔 기억의 시달림을 받지만 오히려 그런 약점이 나를 날마다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고 정결과 용서와 능력을 받게 한다. 한 때 죄 때문에  비참한 형편에 있었던 사람은 이제 이 죄가 구주를 섬기는 헌신의 봉사에 이르게 한 도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강해 > 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알란 레드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리의 열매  (0) 2005.07.02
최후의 일각까지  (0) 2005.07.02
자유의 율법  (0) 2005.07.02
후퇴의 원인과 치료  (0) 2005.07.02
승리의 축제  (0) 200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