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른교훈/은사(2) - 존 맥아더

12장. 하나님께서는 건강과 부를 약속하시는가? (2)

by 복음과삶 2007. 5. 8.

은사 ()

제 12장,

하나님께서는 건강과 부를

약속하시는가? (2)

존 맥아더

 

잘못 인식된 예수

말씀 신앙 운동에서 말하는 예수는 신약 성경이 말하는 예수가 아니다. 이것은 별로 놀랄 것이 못된다. 말씀 신앙 운동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성을 버리셨고, 우리 죄의 대속을 위해 사탄의 본성을 입으셨다. 케네스 코프랜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의혹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예언(은사Ⅰ 제2장을 참고하라)을 옹호하면서, “왜 예수님께서는 3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자기 자신이 하나님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않으셨는가?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

말씀 신앙 운동에서 말하는 예수는 약간의 신격이 부여된 인간일 뿐인 것처럼 들린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신적 능력을 가지고 계셔서 기적을 일으키시고 이적을 행하시며, 죄를 초월하신 분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예수께서 사신 것과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자발적으로 신적 능력을 버리고 오셨으며,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서의 생활을 영위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의 생활을 영위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은 누가복음 3:22에 기록된 대로 성령 세례를 받은 이후였다. 예수께서는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했다.

확실히 코프랜드의 논리에 의하면 예수께서 인간인지 하나님인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하나님의 신이 내게 말씀하셨느니라. 그가 가라사대 “아들아, 이것을 깨달으라” (지금 이렇게 나를 따르라. 네 자신의 전통에 따르지 말라). 그가 가라사대 “이렇게 생각하라. 중생한 사람은 그의 영역에서 사탄을 채찍질했다”라고. 그래서 나는 성경책을 던져버리고 그와 같이 앉았다. 나는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가 가라사대 “중생한 사람은 마귀를 이겼느니라. 많은 형제들 중 장자는 마귀를 이겼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그의 참 형상이요, 참 모사품이로다.”

나는 “선이란 자비로 인해 사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아, 주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내가 행할 수 있다고, 바로 내가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군요”라고 말했다.

그 분께서는 “그래, 맞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알고 있기만 하다면, 너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느니라. 너 또한 중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그 분은 “내가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그 힘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도 부활시키리라.” “나는 사탄을 심판하기 위해 그와 같은 복제품과 형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와 가족과 인류를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의 형상을 가지고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위의 언급은 대단히 신성 모독적이다. 나는 성경의 진리에 대해 가장 선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진정한 계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놀랐다. 그러나, 코프랜드의 사역에 대한 반응을 고려해 본다면 수천만의 사람들이 그것을 진정한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희생적인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주요 목적이었다. 대속은 신약 성경에서 대단히 강조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신앙과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말씀 신앙 운동의 가르침은 신성 모독적인 것으로 일탈해 있다.

코프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죄에서 의로 거듭 태어난 첫 번째 사람이다. 그는 새로 도래할 인간들의 전범이다. 하나님이여 영광 받으소서! 그대는 그가 한 일을 아는가? 새로 중생한 예수가 한 첫 번째 일은…… 보라, 당신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죄지은 인간처럼 무저갱에 들어갔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 분은 거기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께 감사라라. 그는 무저갱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악이 되었다. 예수는 사탄의 근성인 죄를 자신의 영에 받아들이셨고, 그 순간 예수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당신이 알 수 있으리오.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왜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장대 위에 어린양 대신에 뱀을 달았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의문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왜 당신은 사탄의 상징인 그 뱀을 들어 올리라고 했습니까? 왜 그 막대기에 양을 매달지는 않았나요?”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바로 사탄의 표였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께서는 “나는 내 영에 영적 죽음을 받아들였고, 빛이 사라졌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영이 죄악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죄되게 하셨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었으며, 바로 그 순간 그는 인간이 되었다. 실패할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지옥의 문턱으로 인도되기에 꼭 알맞게 되었다. 만약 사탄이 그곳에서 그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면 사탄은 세계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인간의 운명도 예수의 운명과 같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만약 그가 실패할 수 없는 분이었다면, 그것은 불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불법적이란 무슨 뜻인가? 코프랜드는 속전(Ransom)의 속죄론이라고 지칭되는 이단을 수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담의 죄 때문에 사탄이 인류에게 제시할 수 있는 법적 요구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사탄에게 제공된 속전(Ransom)이라는 이론이다. 이런 견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이지 사탄에게 제공되는 속전이 아니다(엡 5:2). 더욱이, 코프랜드와 말씀 신앙 운동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정말 죽으셨다고 가르침으로써 전통적 교리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때때로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분리된 것(마 27:46)을 가리켜 영적 죽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빛이 사라지듯) 소멸되었다거나, 삼위일체가 때때로 와해된다(그분이 하나님과 분리되고, 그 순간부터 운명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더욱 잘못된 것은 그리스도가 사탄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 삼일 주야로 고통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뉴스레터지(Newsletter)에 실린 프레드 프라이스(Fred Price)의 글이다.

우리는 죄에 대한 징벌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다른 두 명의 도적들도 당신의 죄값을 지불한 것이 된다. 아니다. 죄에 대한 징벌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지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탄과 지옥에 있는 모든 마귀들은 예수를 묶어 두었다고 생각했고, 예수에게 그물을 던졌다. 그들은 예수를 무저갱의 가장 깊은 곳까지 끌어 내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값을 갚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강도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를 수 있을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아니다. 예수의 신성과 무흠만으로도 그 분은 홀로 우리의 큰 대제사장(히 4:14-15)과 완전한 희생(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되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17-20))이 될 자격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프랜드는 담대하게 프라이스의 견해와 유사한 왜곡된 견해를 피력한다.

예수께서는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영적인 죽음을 맛보아야만 하셨다.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십자가 상에서의 육신적인 죽음이 아니다. 그 이유는 만약 육신적 죽음이 죄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예수께서 죽으시기 이전 2000년 동안 죽어갔던 하나님의 다른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그 값을 지불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 댁를 지불한 것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도 그와 같은 일은 할 수 있다.

더욱더 나쁜 것은, 코프랜드가 예수께서 “사탄에게 순종하셨고…… 의 속성 안에 사탄을 받아 들였다”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코프랜드는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마치 자신이 그때까지 살았던 죄인들 중에 가장 악한 죄인인 것처럼 사탄이 자신을 무저갱의 가장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셨다…… 예수께서는 사탄의 통제하에 기꺼이 계셨다…… 지옥에서 3일 동안 그는 마치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죄를 지은 것 처럼 고난을 받으셨다”라고 가르친다.

이 모든 가르침이 케네스 하긴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하긴은 이렇게 말한다 .

예수는 모든 인간들을 위해 죽음을-영적 죽음-맛보셨다. 보라, 죄는 육체적 행위 그 이상이다. 그것은 영적 행위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우리의 옛 모습처럼 되셨다. 그것은 우리가 그의 모습과 같이 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의 영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었다.

왜 예수께서는 수태되어 탄생하셔야 했는가? 그 분은 우리의 옛 모습-하나님과 분리된 모습-과 같이 되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맛보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영과 대속 사랑은 지옥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왜 이런 점을 간과하는가? 육체적 죽음으로는 당신의 죄를 없앨 수 없다.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 그는 영적 죽음을 맛보심에 관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중생한 첫 사람이셨다. 왜 그의 영혼이 다시 중생해야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말씀 신앙 운동은 죄인을 신들로 만들고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중생하게 만드는 하나의 신학을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서, 말씀 신앙 운동 신학은 사탄을 그리스도로부터 죄의 대가를 받는 의로운 재판관으로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왜곡된 것이며,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그것은 우리 주와 주님의 사역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마귀에게 죄값으로 영원한 생명을 사지도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6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길과 진리요 생명이시다(요 1:4, 5:26, 11:25). 예수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육체를 입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할지라도 그 분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더 나아가서, 대속은 지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우리었다”(요 19:30)라고 외치셨을 때 이미 대속은 완성되었다. 베드로전서 2:24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에서가 아니라 “십자가에 친히 못박히심으로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또한 골로새서 2:13-14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도말하셨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에베소서 1:7에 따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여기서 말하는 피는 그의 육체적인 죽음을 말한다-십자가 상에서 실제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마 26:28, 행 20:28, 롬 3:25, 5:9, 엡 2:13, 골 1:20, 히 9:22, 히 13:12, 벧전 1:19, 요일 1:7, 계 1:5, 5:9)”을 받았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눅 23:43). 분명하게, 예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준비를 하고 계시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옥의 권세가 정복되었음을 지옥에 알리기를 원하셨다(벧전 3:19). 성경에는 말씀 신앙 운동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어떤 종류의 구속도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말씀 신앙 운동에서 말하는 예수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