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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승리하는 생활의 비결 - 잭R. 테일러

3-3장 성령 역사의 두번째 통로

by 복음과삶 2007. 9. 20.

 

 

 

 

승리하는 생활의 비결

 

 

3부 생활을 통해 나타나시는 그리스도

 

3장 성령 역사의 두번째 통로

 

“가정의 부흥”

 

잭 R. 테일러

 

제 3 장

성령 역사의 두 번째 통로

“가정의 부흥”

 

  가장 위대한 부흥이 일어난 곳은 가정이었다. 만약 몇 개월 전에 내게 행복한 가정을 가졌느냐고 질문했다면 나는 열을 올려 우리 집이 행복한 곳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까지 하나님의 영이 가정에 임할 때 그 가정에 오는 큰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방문은 1970년 4월부터 우리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항상 부흥이 일어날 경우 모든 일이 스스로 잘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가정과 거기에 수반되는 문제들도 다 그렇게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부흥은 나에게 새로운 흥분 자극과 일거리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나는 가정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나의 아내는 이런 내 생활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또 아내의 분노에 대해서 노했다. 우리 부부는 다같이 우리 생활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있었으나 그런 것이 우리의 가정 문제와 개인적 관계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우리 가정과 부부 사이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승리하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교회가 부흥되고 있는 동안 가정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우리가 17년의 결혼생활 중에 가장 위대한 사실을 발견할 위기의 순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승리 앞에는 언제나 위기가 오는 것 같다. 우리의 위기는 어느 금요일 밤의 오해로 인해 왔으며 이로 인해 우리 부부는 더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대화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 사교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회로 들어가서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우리의 기도는 서로 비슷했으나 우리의 마음은 통하지 않았다. 그때의 기도 중 한 가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우리 가정을 위해 기적을 일으켜 주옵소서.”라는 문구였다. 우리는 교회를 떠나 집으로 가면서 깊은 절망에서 어느 정도의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기 보는 사람을 구해 놓은 후에 우리 부부는 의논을 계속했다. 아내는 에베소서 5장을 펴고, “여보, 여기에 잘못이 있었나요? 제가 당신에게 순종하지 않았나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잠시 동안 이 이야기를 한 후에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성경을 펴는 순간 갑자기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화를 주관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절 앞과 뒤를 읽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우리의 눈이 열렸으며 우리는 성구의 전 후 관계를 생각지 않고 18절을 읽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에 나타난 진리를 읽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가정을 위한 승리의 명령에 대하여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한 발자욱을 내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가정을 승리로 이끈 우리의 체험을 들어 보시기 바란다 :

 

성령 충만

 

  이 말은 이미 앞에서도 논의된 바 있었으나 실증이 날 정도로 반복하지는 않았다. 성령 충만은 모든 신자들을 위한 하루의 명령이다 .가정의 남편은 성령으로 충만해 져야 하며 아내 역시 성령으로 충만해 져야 한다. 이것은 승리하는 생활의 첫 단계이다. 어린이들도 그들의 생활을 다스려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기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화 있는 의사소통과 즉각적 감사

 

  바울은 성령 충만을 체험한 후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엡 5:19)하라고 하면서 의사소통, 즉 교재의 순서를 말해 주었다. 성령께서는 의사소통을 허락하신다. 이 의사소통은 모든 사람들과의, 그리고 우리와 주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의사소통의 파괴에 있다.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피차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데 있다. 우리의 결혼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상호 복종의 기적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21). 이 말씀은 벽돌로 머리를 치는 것 같은 충격을 준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생각하고 추측할 수는 있었으나 체험하지는 못했다. 아내는 나를 쳐다보며, “나는 당신에게 복종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은 좋지 못한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당신의 기록도 별로 신통치 않구려.” (이런 대화는 박약했으나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성경을 보았다. 그 때 우리 눈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라는 구절이 들어왔으며 우리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우리는 피차의 좋지 못한 기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의해서 서로 복종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곧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내가 당신 때문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할 이유를 찾느라고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결국 그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우리의 남편이라면 우리의 복종의 대상을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아내의 생활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면 남편이 복종하는 것은 아내가 아니라 아내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일 것이다. 다시 이 말을 바꾸면,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는 실상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복되는 말같이 들릴지 모르겠으나, 가정에서의 “이중적인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말씀이다. 이 말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주기 바란다. 아내와 나는 우리에게 서로 복종하는 기적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우리 사이에 모셔야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이 기적을 성취시키는데는 두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서로 복종하라”는 말은 같이 도의하거나 뜻을 모으는 것 이상의 것이다. 우리는 결혼생활 17년 동안 이렇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 후에 이번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나는 당신에게 전적으로 복종하겠소.”하고 말했다. 아내도 즉시 나와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즉시 깜짝 놀랄 영적 수학을 발견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이다!

  우리는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말이 어떻게 사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을 읽었다. 그러나 우리는 막상 둘이 하나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려는 순간에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 둘 중 어떤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다면 각자는 상대자에게 들어와 계시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내도 남편도 그리스도와 충돌하면서 살 수는 없다. 부부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만이 남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복종이라는 불에 녹아서 한 덩어리가 되는 두 개의 쇠붙이와 같다. 이 복종은 생활 전반을 다 포함한다.

  그런 후에라야 다음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내들이여, 복종하라.

 

  대개의 아내들은 얼마나 쌀쌀하게 보이는가! 그녀들은 남편을 향해,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완전히 복종하기를 바라세요?”하고 말한다. 이 복종한다는 말은 성경의 문맥을 잘 검토해야 한다. 즉, 그 말 앞의 구절(21)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호 복종아내다운 복종의 기초이다. 부부가 서로 복종하는 생활을 할 때, 가장 큰 가정의 기쁨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참 자유가 생기는 법이다. 이 말씀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문구는 “그리스도에게”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남편 안에 계신다면,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만약 남편이 성령으로 충만해 있다면,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왔을 것이며 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는 남편이 된다는 곧 그리스도를 위한 것일 것이며 실제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한 가정의 남편이 될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남편들을 가진 아내들은 바로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점에 부딪히게 된다. 그녀들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남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은 남편에게 “하나님에게 하듯”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복종은 그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복종이 그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간증일 것이다. 만약 그 남편이 구원받게 된다면, 아내의 순종을 통한 간증은 남편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는데 꼭 필요한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나의 아내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그녀는 쉽게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진리를 깨닫고 상호 복종의 기초를 세웠을 때, 그녀는 일생 처음으로 남편에게 완전히 복종하였다. 거기에는 눈부신 조명도 음악도 없었다. 거기엔 무슨 감상적인 사건도 없었다. 그러나 거기엔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어떤 생동적인 일이 일어났었다. 한 아내가 자기의 위치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맡긴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가정의 왕(그리스도 안에서)으로 모셨다. 남자는 여자가 없이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여자 역시 남자가 없는 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상호 복종은 두 존재를 하나로 만들며 각자가 상대방과 연결되어 하나의 온전한 존재가 되게 한다. 아내의 복종은 그녀가 몸으로 있는 가정에서 남편이 머리가 되게 한다. 다음 단계로 그녀는 모든 왕은 왕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녀는 왕후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편을 가정의 왕으로 모시는 일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혼의 신비는 균형과 건전성에 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때 남편들은 전에 없이 아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또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순종으로 보다 완전해지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으로 보다 완전해질 수 있다. 그 때 비로소 남편은 그가 존재하는 이유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아내 역시 존재 이유에 합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성령 충만 없이는 결혼생활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 이 성령 충만은 영적 대화의 문을 열어주며, 상호 복종을 인도하며, 부부 간에 복종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우리 부부는, 부부의 관계가 개선된 후에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까지도 변화되었음을 발견하였다. 어린이들도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있으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생활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어떤 삶인가를 이해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서부터, 그들은 부모를 위한 진실한 지혜의 보고가 되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않고는 성령으로 충만해진 어린이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가진만큼의 지혜로 가지지 못하고서 분주하게 어린이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승리하는 생활의 비결을 터득한 어린이들 만큼 다른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자녀들은 성경이 그들의 생활을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열쇠를 발견했으며 그 열쇠는 그들의 생활 가운데의 어떤 문이라도 다 열 수 있다. 우리 가정에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나 계획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가장 실재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