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의 비밀
3장. 하나님의 사랑
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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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종종 언급한 것처럼 거룩하고 온전한 삶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신약에서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과 약속하는 것을 찾는 일이리라. 두 가지 거룩함과 온전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거룩함”과 “온전함”은 같은 뜻인가? 그런데, 그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열심과 좌절의 양면을 가져다준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을 추구하지만 “온전함”엔 겁을 먹는다. “온전함이란 있을 수 없어”라는 것이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우리의 대답은 어떠한가? 어찌 되었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하라고 명령하셨다.
“온전함”이 지금 여기에
어떤 신학 교수는 “온전함이란 우리가 영원토록 추구해야 할,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온전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정말로 신실하다면 주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다. 현대의 한 설교가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명령이다. 그리고 주님께서「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함과 같이」를 덧붙이실 때, 우리는 깜짝 놀라서 절망한 나머지 순종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 덧붙인 말들이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장 온전함에 관한 그릇된 생각들을 제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함이란 어느 정도일까? 분명히 모든 면에서 그러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신이고 우리는 인간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신처럼 온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적인 무죄, 권위, 영광, 능력, 지혜 등 모든 면에서 온전하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이러한 온전함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우리는 온전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란 단어는 분명히 전에 말한 것을 지칭한다. 그 뜻은 무엇인가? 단지 사랑으로 충만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친구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명령하고 계신다. 이 생각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힘을 가져다주었다. 승리하는 삶은, 단지 완전한 사랑의 삶인 것이다.
우리 주님의 “새 계명”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여기에 하나의 기준과 그것에 도달하라는 명령이 있다. “그리스도가 사랑한 것 같이”, 이것이 그 기준이며 완전한 사랑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상기시키고 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완전한 사랑」에 관한 한 연설의 서문이다. 그렇지만, 이 질문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접근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령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정말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을 명령하시는 건지 사실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옛날의 구도자처럼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가? “ 어떻게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지?”라고, 과연 “완전한 사랑”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확실히 존재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완전하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완전하다.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며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롬5:5)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시는 이유가 된다면,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겠는가. 이 점에 관해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6).
비밀- “완전한 사랑”
여기에 비밀이 있다. “완전한 사랑”은 분명히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실 때만 가능하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오래 전에 이 점을 이야기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요일4:16~17).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한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몸을 채움으로써 얻을 수 있다. 그래야만 요한의 엄청난 비교를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사도 바울이 기쁨에 넘쳐 담대하게 외쳤을 것은 당연하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에베소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는 승리하는 믿음 가운데 간곡히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그러면, 몇 가지 다른 의문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랑 하나만으로 충분할까?” “사랑이 정말 내 삶에서 죄를 없애 줄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을 해결하려면,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사랑의 속성을 깨닫기 위해 고린도전서 13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 사랑은 오래 참고 - 조급한 마음은 모두 없어진다. • 사랑은 온유하며 - 불친절은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 •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 질투심은 모두 물러난다. •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 자랑과 자기주장은 사라진다. • 교만하지 아니하며 - 마음속에서 교만을 찾을 수가 없다. •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 무례란 것은 없어진다. •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 “자아”는 죽은 것이다. 이기심이란 것을 모르게 된다. • 성내지 아니하며 - 화와 분노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불의”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악과 무정함이란 없다. • 모든 것을 참으며 - 불평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 모든 것을 믿으며 - 불신이 우정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 모든 것을 바라며 - 절망, 불안, 낙담이 사라진다. •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바울은 계속해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이라고 말했다. 이 “온전함”이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상태를 말한다. “완전한 사랑”이 죄의 굴레를 벗기고 우리를 충만하게 채운다면, 우리는 감사와 기쁨이 넘쳐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사랑이시라”고 드높이 외칠 것이다. 이전에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굉장한 재산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완전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계속 지속시킬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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