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해설자의 집(The Interpreter's House)
'무지', '게으름', '거만'과의 만남
한참 후 나는 '크리스챤'이 강가 근처의 들판을 걷고 있는 것을 꿈속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옆에는 세 남자, '무지'와 '게으름'과 '거만'이 단잠을 자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들 세 사람의 발에는 모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크리스챤'은 그들을 보고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거친 벌판에서 쇠사슬을 단 채 자는 것은 거친 파도를 만나 침몰될 위험이 있는 돛단배 위에서 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겼습니다. '크리스챤'은 그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무관심한 세 방관자
"이것 보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당신들은 매우 위험한 잠을 자고 있어요. 제가 이 쇠사슬을 풀어 보도록 할테니 어서 일어나요." 그러자 그들 세 사람은 '크리스챤'을 한번 힐끔 보더니 귀찮다는 듯이 각자 한마디씩 했습니다.
"위험하다니요! 천만에요!" '무지'가 말했습니다. "아, 난 더 자야겠소." '게으름'이 그의 말을 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거만'이 말했습니다. "대체 당신이 누구길래 남의 일에 참견하는거요?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소. 인간은 다 제 힘으로 살아가게 마련인 것이오."이렇게 말하고는 그들 세 사람 모두는 또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크리스챤'은 자신의 길을 향해 계속 걸어갔습니다. 그는 위험에 빠진 그들을 도와주려고 한 자신의 친절을 오히려 귀찮게 여겼던 그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좁은 문 앞에서의 '악마'의 시험
그 후로도 '크리스챤'은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떤 문이 보였습니다. 마침내 좁은 문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화살이 그의 곁을 휙 스쳐 지나가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에 꽂혔습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보았습니다. 좁은 문의 반대편을 바라보니 견고해 보이는 성이 칠흑같은 어둠속에 우뚝 서 있었으며, 그 주변에 있는 험악한 모양의 물체들도 보였습니다.
'크리스챤'은 얼른 좁은 문에 쓰여져 있는 글귀를 바라보았습니다.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마 7:7)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힘껏 문을 두드리는데 두 번째 화살이 또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문지기 '선의'와의 만남
"누가 왔소?" 문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크리스챤'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나는 '멸망의 도시'에서 이곳을 찾아 온 나그네입니다. 지금 저는 등에 짊어진 짐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좁은 문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문지기인 듯한 사람이 좁은 문을 열어 '크리스챤'을 맞아 들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선의'였습니다.
악마의 정체를 말해주는 '선의'
"이 화살들은 어디서 날아온거죠?" '크리스챤'은 이상히 여기며 물어 보았습니다.
"바알세불이라는 악마의 성에서 날아온 것들이오. 그곳에 있는 사악한 자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시기하여 늘 화살을 쏘지요. 당신은 참 재수가 좋은 사람이구려. 그들의 화살을 피해 살아서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그러자 '크리스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이곳에 들어와 기쁘기도 하지만 그 화살을 생각하면 아직도 온 몸이 떨리는군요."
여정의 일들을 설명하는 '크리스챤'
"이곳에는 당신 혼자 오셨나요?" '선의'가 묻자 '크리스챤'이 대답했습니다. "저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앞으로 임할 멸망과 죽음에 대해 누누이 말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그들은 세상의 안락에 푹 빠져 있거든요."
"그럼 당신을 따라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단 말이요?" '선의'가 물었습니다.
"있었어요. '유약'이라는 사람이었어요. 함께 길을 가다 '낙심의 수렁'에 빠졌었는데 그때 그만 포기하고 돌아갔지요."
"딱한 친구 같으니라구! 그런 고통하나 참지 못했단 말이요?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다면 당신과 함께 이곳에 있지 않았겠소?" '선의'가 안타까운 듯이 말했습니다.
"사실 '유약'과 마찬가지로 저도 '세상 지식인'의 유혹에 빠져 이곳에 못 올 뻔했어요. 갈 길이 암담하여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전도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그를 만나지 못했었다면...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등에 짊어진 이 짐 때문에 늘 괴로웠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선의'의 조언(助言)
나는 '크리스챤'이 등에 있는 짊을 내려 줄 수 있는지 '선의'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을 꿈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 권한 밖의 일이에요. 아마 어느 누구도 그 짐을 벗겨 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 곧고 좁은 길을 따라가 보세요. 구원의 장소에 이르러서야 당신은 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오."
'해설자'의 집에 도착
그래서 '크리스챤'은 다시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 이번에는 또 얼마만큼이나 더 가야 하나!"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지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계속 걷다 보니 '선의'가 알려준 '해설자'의 집이 보였습니다. 그 집을 보니 그의 말대로 분명 자신의 소망을 이룰 것 같았습니다. 결코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집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이 문을 두드리자 주인인 듯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시온 성에 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 곳에 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다기에 이렇게 왔습니다." '크리스챤'이 자신의 뜻을 전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오."라며 '해설자'가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해설자'의 설명
곧이어 '해설자'는 '크리스챤'을 먼지투성이인 거실로 안내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어떤 하인이 나와 그곳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먼지가 많은지 '크리스챤'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을뿐더러 몸을 가눌 수조차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해설자'는 "물을 뿌린 다음 청소하시오."라고 하인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청소하기가 훨씬 수월해졌고 하인은 신이 나서 쓸고 닦고 했습니다.
이때 '해설자'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소? 이제 내 말을 주의하여 들으시오. 먼지는 바로 인간의 죄를 말하는 것이오. 즉 이 거실은 더러워진 인간의 영혼을 보여 주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면 인간의 영혼도 이렇게 쉽게 깨끗해질 수 있답니다."
쇠창살에 갇힌 사나이의 비참한 모습
다시 꿈 속에서 '해설자'가 '크리스챤'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방으로 안내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크리스챤'은 쇠창살에 갇혀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두 손을 움키어 쥔 채 어설프게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만 보고 있었으며 괴로운 듯이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참으로 처량한 모습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곳에 있나요? 하도 이상하여 '크리스챤'이 물었습니다. 그러나 해설자는 "당신이 직접 물어 보시오." 라고만 답변할 뿐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이런 처지에 놓여 있나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믿음이 좋은 신자였고 나 또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했었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적인 안락이나 기쁨 따위에 잠시 한눈이 팔렸었어요. 그 결과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이런 모습이 되었답니다. 이제는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나를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해설자'가 '크리스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자, 당신이 본 일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는 아까 들어왔던 비슷한 모양의 문으로 '크리스챤'을 이끌고 갔습니다.
다시 용기를 얻은 '크리스챤'
그 문 옆에는 어떤 사람이 책상에 앉아 있었고 그 책상 위에는 책 한 권과 잉크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문을 통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이 아주 단단히 무장을 한 채 그 문을 지키고 서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은 매우 무섭고 근엄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그 문에 들어가려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그 자리에서 웅성거리며 서성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들 무리중에서 용감하게 보이는 어떤 사람이 그 문 곁으로 갔습니다.
"내가 들어갈테니 이름을 적어 주시오."라고 말하고서는 칼을 빼어 들더니 문 쪽으로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를 필사적으로 방해했습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안간힘을 썼습니다. 결국 그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겨우 그 문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이제야 깨달았어. 이 세상의 어떠한 방법도 결코 나를 지켜 주지 못해. 오직 참된 용기만이 나를 구할 수 있어.'
'크리스챤'은 용감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용기를 얻은 그는 서둘러 길을 갔습니다.
무거운 짐에서 해방된 순례자
나는 꿈을 꾸면서 왜 유독 '크리스챤'의 등에만 무거운 짐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멸망의 도시'에 있을 때 '크리스챤'은 그다지 자신의 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마치 필사적으로 싸우는 싸움터의 전사마냥 자신의 짐을 벗어 던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또 꿈 속에서 '크리스챤'이 벽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무거운 짐을 진 채 헉헉거리며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벽은 '구원'이라는 이름의 벽이었습니다.
그는 그 길을 달려가다가 언덕 밑에서 한 열린 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갔더니 언덕 위에 십자가가 꽂혀 있었습니다. '크리스챤'은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밟았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토록 그를 괴롭혀 왔던 무거운 짐이 벗겨졌습니다. 언덕 아래로 떼굴떼굴 굴러간 짐은 열린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저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무거운 짐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직접 목격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놀라운 나머지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크리스챤'의 등에는 무거운 짐보따리가 없었습니다. 비로소 그는 그토록 소망했던 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세 천사들의 인도
그 때 천사처럼 보이는 세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났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이제 죄에서 해방되었도다."
다른 한 사람은 그에게 헌 누더기대신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 옷을 입혀 주었고, 또 다른 사람은 두루마리를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을 잘 간수하시오. 이 두루마리가 없으면 천국문에 들어갈 수가 없소."
'크리스챤'은 앞으로도 몇 배나 더 많은 고통이나 위험 따위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크리스챤'은 마음이 흐뭇하고 기쁜 나머지 팔짝거리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된 용기를 가진 자는 그를 인도하는 자를 보겠네. 이곳에 온 자는 그 모든 죄에서 해방되지요. 가벼운 마음으로 기뻐 뛰겠네.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한 결심을 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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