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고난의 언덕(The Hill Difficulty)
'형식주의', '위선'과의 만남
'크리스챤'은 이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에서 어떤 두 사람이 담을 넘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형식주의'와 '위선'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충고하는 '크리스챤'
'크리스챤'이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당신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허영'이라는 곳에서 왔어요. 그리고 지금 천국이라는 곳에 가는 길이오."
근데 왜 도둑같이 담을 넘어서 들어 왔나요? 좁은 문이 있지 않소?"
'크리스챤'이 이렇게 추궁하자 그들은
"우리가 좁은 문을 이용했더라면 아직도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이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지름길을 좋아하지요. 오랫동안 내려온 관습이라오. 약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긴 하지만 크게 잘못된 일은 없지 않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크리스챤'은 그들을 타일렀습니다.
"나는 주의 말씀에 따라 엄연히 허락을 받고 들어왔지만 당신들은 제멋대로 들어온거란 말이오."
그러자 그들은 겸연쩍어 씩 웃고는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국으로 향하는 길에 세 사람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계속 걸어가다가 세 갈래 길에 이르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습니다. 왼편과 오른편 길은 넓게 트여 있었고 다른 길 하나는 언덕과 곧장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주 좁다란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고난'이라 불리웠습니다.
세 사람이 망설이며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형식주의'는 왼편으로 난 넓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은 무성하고 음침한 숲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길은 바로 다시 나오지 못할 '위험'이라는 길이었습니다. '위선'은 어떤 길을 택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오른편에 나있는 길을 택했는데 그 길은 늪과 언덕이 도처에 깔려있는 '멸망' 이라는 길이었습니다. 아마 그 길을 걷다 보면 쓰러지고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좁은 길을 선택한 '크리스챤'
이제 '크리스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선 곁에 있는 샘물을 들이마셔 기운을 차린 다음 두 갈래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덕을 향하여 곧게 뻗어 있는 좁은 길로 발걸음을 기운차게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크리스챤'은 그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신나게 올라가더니 마침내는 손과 무릎으로 기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일까요? '크리스챤'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지쳐 버렸습니다.
정자(亭子)에서의 휴식
그 때 언덕 중간쯤에 아주 아담하게 지은 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그곳으로 달려가 우선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곳은 언덕의 주인이 언덕을 오르느라 지쳐버린 나그네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은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전에 받아 두었던 두루마리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또 그때 얻어 입은 예쁘게 장식된 겉옷을 뿌듯해하며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감싸자 그는 곧 단잠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 '크리스챤'은 자신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겁쟁이', '의혹'과의 만남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서야 눈을 뜬 '크리스챤'은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많이 지체됨을 알고는 언덕을 향해 열심히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있는 쪽으로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어떤 두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겁쟁이'와 '의혹'이었습니다.
두려움에 갈등을 느끼는 '크리스챤'
'크리스챤'이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당신들은 언덕을 도로 내려오시나요?"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자들이라오. 부지런히 올라가려고 했지만 가면 갈수록 힘든 일만 겪었지요. 정말 '고난의 언덕'은 너무나 힘든 곳이에요." '의혹'이 '겁쟁이'의 말을 받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내려온 것이라오. 그 중 가장 우리를 겁나게 한 일은 두 마리의 사자를 만난 것이었어요. 이놈들이 깨어 있는지 잠자고 있는지 분간하기가 힘들지 뭡니까! 꼭 우리를 잡아먹을 것만 같아 얼른 도망쳐 왔어요."
그들은 여전히 겁에 질린듯한 표정으로 황급히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크리스챤'은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내려가는 그들을 보면서 '크리스챤'은 얼떨떨해졌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죽게되는 것이 아닐까?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죽게될 건 마찬가지고. 아! 이제 난 어떻게 해야하지?"
잃어버린 천국 허가증서
이런 생각에 깊이 잠겨 있던 '크리스챤'은 이제껏 도움을 주었던 그의 두루마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겉옷 속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두루마리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이 확실했습니다. 두루마리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허가증서나 마찬가지였기에 그것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찾은 천국 허가증서
달리 방도가 없었으므로 '크리스챤'은 가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부주의함을 나무라며 슬피 울며 내려가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게다가 음침한 바람과 함께 이상한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사히 그 정자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정자에 '크리스챤'이 그렇게 찾았던 두루마리가 있는 게 아닙니까? '크리스챤'은 두루마리를 두 손에 쥔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난 어떻게 해야하지?'
말씀의 위로를 받음
아직 완전히 날이 저물지 않았기에 '크리스챤'은 두루마리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더 좋은 나라를 구하라. 곧 하늘나라이니라." 그는 이 말씀에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아름다움'성을 발견
언덕을 한참 올라가다 보니 으리으리한 궁전의 망대가 치솟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화려한 성이었는데 그 성의 이름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 저 성에서 하룻밤만 자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루마리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벌써 한참 갔을텐데. 괜한 고생을 이렇게 되풀이하다니."
두려움에 떠는 '크리스챤'
밤이 점점 으슥해지자 그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다시 후회하였습니다.
"나태의 잠아! 너 때문에 이렇게 무섭고 캄캄한 길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구나!"
그 순간 사자 때문에 되돌아오던 '겁쟁이'와 '의혹'의 겁에 질린 모습도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사자들이 먹이를 찾다가 이런 나를 발견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는구나! 도망이나 칠 수 있을까?"
'크리스챤'이 두려워하며 급히 서두르는 모습이 꿈 속에서 보였습니다. 사자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점차 가까이 들려 왔습니다. '크리스챤'이 좁은 길로 들어서자 약 200m쯤 되는 거리에 있는 문지기의 집이 보였습니다. 집 앞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떡 버티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챤'은 순간 '아! '의혹'과 '겁쟁이'가 사자를 보고 도망쳤던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이제 나도 그들처럼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문지기 '주시(注視)'의 도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보고 문지기 '주시'가 외쳤습니다.
"이봐요. 괜찮아요. 사자들은 묶여 있어요. 그러니 아무 생각말고 빛을 따라 길 가운데로 걸어 들어오세요."
'크리스챤'은 문지기의 말에 용기를 얻어 그가 가르쳐준 대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을 보자 또다시 몸이 굳어졌습니다. 사자들은 양쪽 길가에서 으르렁거리며 그를 잡아 먹으려고 아우성이었고, 그를 낚아채기 위해 발톱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용감하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늦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크리스챤'
"죄송합니다만 하룻밤 신세를 좀 질 수 있을까요?"
문지기를 보자마자 '크리스챤'이 얼른 물었습니다.
"글쎄요. 어쩔지 모르겠군요. 사정에 따라 다르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왜 이곳에 오게 됐소?"
문지기가 '크리스챤'을 한번 훑어보더니 수상쩍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저는 '멸망의 도시'에서 도망쳐 온 '크리스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찾아 천국으로 가는 중이요."
"벌써 날이 저물었는데 왜 이제서야 도착했소?"라고 문지기가 다시 묻자 '크리스챤'이 대답했습니다.
"언덕을 올라가다 너무 지치고 피곤하여 잠시 산중턱에 있는 정자에서 눈을 붙였지요. 그런데 그때 그만 두루마리를 떨어뜨렸지 뭡니까! 그 사실도 모르고 전 게속 올라갔어요. 나중에 아무리 찾아도 두루마리가 안 보이길래 다시 정자로 내려갔다가 그걸 찾아오느라고 시간을 다 허비해 버렸어요. 안 그랬으면 벌써 도착했었을텐데."
'크리스챤'의 딱한 처지를 다 들은 문지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안됐군요. 그렇다면 이곳에 계신 아가씨 한 분을 모셔오겠소. 아가씨가 당신의 사정을 듣고 허락한다면 당신을 묵게 해 줄 수 있소. 그렇지만 허락하지 않으시면 당신은 이곳에 묵을 수가 없어요." 말을 마친 문지기 '주시'는 종을 울렸습니다.
'분별'과의 만남
종소리가 나자 '분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숙하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가씨는 '크리스챤'에게 이곳까지 오면서 어떤 것들을 보았으며, 또 무엇을 만났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었습니다. '크리스챤'은 아가씨의 질문에 상소히 답변해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가씨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이어 아가씨는 '크리스챤'에게 말했습니다.
'분별'의 친절
"이 집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당신같은 나그네들을 잘 보살펴야할 책임이 있어요. 이 집은 순례자들을 위해 이 산의 주인이 마련해 놓은 것이거든요. 당신은 주님의 은총을 받으셨지요! 자, 어서 집으로 들어오세요."
'크리스챤'은 아가씨의 따뜻한 말에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그는 아가씨와 자매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그들은 주님의 보호를 간구한 뒤에 각자의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들은 '크리스챤'을 이층에 있는 '평안'이라 불리는 넓은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방은 참 아늑한 방이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크리스챤'
그 방에서 '크리스챤'은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그에게는 힘을 재충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모르고 있지만 내일 무서운 '악마'와 싸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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