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3. 주일설교.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4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4)
창세기는 50장으로 돼 있어요. 우리가 이 창세기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장부터 11장까지 그리고 12장부터 50장까지를 크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보통 1장부터 11장까지를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는데 이것을 원시 역사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류의 이야기에 근간이 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부터 살펴볼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의 말씀을 일반적으로 족장사다 이렇게 말합니다. 족장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이르기까지 족장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펼치고 있어요.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 중에 정말로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바로 이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 오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복을 흠뻑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복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특별히 이 원시 역사 속에서는 다시 말하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이 복은 세 가지 개념과 연결이 돼 있습니다. 생육과 번성과 충만이라고 하는 개념과 연결이 돼 있어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들이 이 땅에 생육하고 그러니까 열매를 맺고 짐승은 새끼를 낳고 사람은 아이를 낳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또 점점 더 번성해 가고 온 땅에 충만해지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세기 1:22)
여기 정확히 나오죠? 1장부터 11장까지는 복의 개념이 철저히 여기에 국한이 돼 있습니다. 이러한 복의 개념에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덧입어 각각 생명력을 가졌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여러분 선인장에 꽃이 핀다든가 나무에 열매가 맺어졌다든가 가을에 단풍이 드려지면 신앙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생명력을 느끼셔야 돼요. 또 오늘처럼 아기가 출생했을 때는 뭐 하나 낳나 보지! 이렇게 무덤덤 하시면 안 돼요. 엄청난 생명력이 그 나무를 통해, 그 아이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거죠. 여러분! 믿으십니까? 여러분!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신앙인들의 입장에서는 영적으로 점점 더 성숙해가고 있는 거잖아요. 거울을 보고 흰머리가 생기면 야!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그레이로 염색을 시켜주셨네! 감동을 해야죠! 감격을 해야죠! 변하는 건 생명력이니까! 더구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의미가 하나 있고
두 번째 의미는 그 생명력으로 이 땅에 가득하게 된다라고 하는 의미에요. 그래서 그게 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만물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어야만 해요. 하나님의 어떤 속성이라든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피조물을 보면 야 멋있다! 야 예쁘다! 왠지 좀 이렇게 경배하고 싶다 하는 이 모든 마음을 갖게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가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주 좋은 상태예요. 피조물들이 계속해서 그 생명력을 이어가며 각각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속성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축복하시고 이어가는 전형적인 방식이에요. 거기에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만물 중에서 인간에게는 이 생명의 충만함이라고 하는 복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는 특별한 복을 하나 더 해주셨어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그들에게, 여기서 그들에게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예요. 인간들에게 앞에 부분은 다른 만물과 똑같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라. 그런데 인간들이 너는 더 나아가서 정복하고 다스리라 이렇게 복을 더하셨어요. 원래 만물을 다스리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죠.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엄청난 피조물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이 막중한 사명을 이제 인간에게 부여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복으로 여기셔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정을 섬기든 일터를 섬기든 선교를 하든 전도를 하든 무엇인가 일을 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여기셔야 돼요. 나는 뭐 이제 일 안 해도 될 정도로 재산이 있습니다! 이것도 복이겠지만 진짜 복은 뭐냐면 팔을 걷어붙이고 오늘 하루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든지 간에 어느 곳에서든지 이곳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장소로 믿고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런 관리자 청지기로서의 어떤 사명감을 회복한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복인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인간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만물은 탄식하고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의 생명력을 덧입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 특히 인간은 이 생명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스리고 보존하는 이 복의 기본 틀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변함이 없어요. 여러분! 이걸 좀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창조주의 축복이 역사 속에서도 계속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한번 말씀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세기 5:1~3)
여러분! 창세기 5장은 인간의 타락이 일어났던 창세기 3장 이후의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복 주시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셨어요. 계속해서 복을 주셨어요. 그 증거가 뭐냐? 아담이 아이를 낳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죄를 지었으면 모든 것이 중단되고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인간을 향한 기본적인 복! 원래 주시고자 했던 그 복이 변경되지 않았어요. 사람이 때가 되어서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 것! 이것은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변함없는 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9장 가보면 노아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주시죠.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1)
어때요 여러분! 처음에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복과 지금 타락 이후에 노아 홍수로 완전히 싹쓸이 돼가지고 세상이 다 망했어요. 그런 이후에 이 복이 변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변함이 없어요. 여러분! 착각하면 안 돼요. 타락 이후에도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우리를 향한 인간을 향한 그 하나님의 마음이 변함이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할 때가 많이 있어요. 내가 하나님께 뭔가 잘해야 복을 받는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래 우리는 좀 이게 심한 말인데 잘했거나 못했거나 복 받게 돼 있어요. 아멘, 안 할 줄 알았어요. 얼마나 신념이 강하신지! 아니 뭐 그런 하나님이 다 있어! 아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하든 잘못하든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어떻습니까? 아주 잘해야 돼요? 그럽니까? 그러지 않잖아요. 그죠? 어쨌거나 부모의 속마음은 이 아이가 좀 부족하고 연약하고 좀 공부 못해도 잘 되기를 바라잖아요. 맞습니까? 하나님의 마음도 똑같아요. 하나님께 반역하고 반항하고 자기들끼리 성 쌓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되려고 하고 그렇게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죄를 범해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그 복은 변함이 없다. 그 복을 망가뜨리는 건 누구예요? 그게 인간이라니까요. 가정을 파괴하고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고 죄송합니다. 또 여러 가지 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의 기본적인 복은 변함이 없어요. 홍수 이후에도 변함이 없어요. 이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는 게 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되는 이 족장사 구원의 제2 경륜 시대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그리고 노아의 심판, 홍수 심판 이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던 이 생육과 번성과 충만함의 이 복이 원시 역사가 끝나는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단절되었다고 하는 것이에요.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만 합니다. 데라의 족보 한번 보겠습니다. 11장 마지막 부분이죠!
“아브람과 나올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올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오.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나에서 죽었더라." (창세기 11:29~32)
11장의 족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내용에 보면 족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등장하고 있죠? 쌩뚱 맞은 문장이에요. 뭡니까? 전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아요. 물론 사람이 살다가 다 애를 낳고 뭐 짐승이 다 새끼를 낳을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 저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임신하지 못하고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에 지금 주목하고 있죠. 강조하고 있죠. 아니 애 낳지 못한 여자가 사라 밖에 없겠습니까? 이 당시에도 많겠죠.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유난히도 데라의 족보 원시 역사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이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거죠. 무슨 의미일까요?
창세기 11장 마지막에 인류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생명력이 끊어져 버린 상태다. 생육과 번성과 충만함의 복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상태라고 지금 결론 내리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하는 그 상태가 깨져버린 겁니다. 만물과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상태에 대한 결론은 하나님의 생명력이 끊어진 상태다. 이렇게 결론짓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리 애를 많이 낳아도 아무리 화려한 문화를 형성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문화는 결국 끊어질 수밖에 없다. 생명력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그 복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오늘 성경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창세기 12장을 시작하기 전에, 창세기 12장의 결정적인 중요성은 아브라함에 대한 부르심을 통해 떠나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듣고 실제로 떠나가는 이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자, 여러분!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거예요. 그러니까 11장까지를 떠나서 이제는 잊어버리셔도 돼요. 이제 12장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셔야 돼요. 진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 심지어는 저기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는 이 말씀과 순종의 역사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현재 창조의 축복, 복의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예요. 그죠? 이것을 어떻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헤쳐나올 길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복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이제 창세기 12장부터의 이야기다라는 거예요.
복 받고 싶으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을 회복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유일한 조건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회복돼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귀 기울여 듣고 오늘 나에게 내 가정에게 이 나라의 이 민족과 열방에게 주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며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여러분이 마땅히 받아내야 될 복이 회복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불순종하면 생명은 결국 끊어져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이 땅에서는 화려하게 살지 모르지만 결국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거예요. 끊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생명은 회복되게 돼 있어요.
12장의 부르심을 시작으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점점 더 강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거기에 따라 점점 더 강해지는 아브라함의 순종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 회복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아브라함 이야기를 잘 보세요. 처음에는 간단해요. 말씀이 뭐예요? 떠나라 이거예요. 간단하죠?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점점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강화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브라함도 순종하는 강도가 점점 세져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나중에 자기 아들 이삭까지 바쳐야 되잖아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대체로 거꾸로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처음 믿었을 때의 뜨거움으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자기가 그때 은혜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때는 좋았다는 거예요. 그때 처음에 은혜받았다니 너무 좋았다는 거죠. 정말 그게 정상적인 믿음입니까? 지금 더 뜨거우셔야죠.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강화되어서 그 영혼과 그 공동체에 임하게 되어 있어요. 거기에 순종하는 것의 크기만큼이나 놀라운 복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너 이거 했으니까 복 하나 줄게! 너 이거 안 했으니까 뺏어갈게! 그게 아니고 원래 복 받게 돼 있는 존재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족장사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 제2 경륜 시대부터 복의 메카니즘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리셨어요. 이전만 해도 그동안은 어떻게 했어요? 만물에게 보편적으로 내리셨던 그 생명력이라고 하는 복이 이제는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집중이 되고 이제는 그를 통하여 만물이 복을 받게 되는 독특한 구조로 바뀌게 됩니다. 이게 기독교예요. 이제 본격적인 기독교입니다. 이게 한 사람을 통해서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세상은 전적으로 아브라함의 순종을 의존하여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리를 잘 깨달으셔야 돼요. 아브라함 한 사람이 이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그 주위에 있는 세상의 운명이 결정돼 버려요. 그 이야기가 계속 등장합니다. 조카 롯이 아브라함의 그 믿음의 순종에 따라 이 조카 롯의 운명이 왔다리 갔다리 해버려요. 죽었다가 살아났다 왔다리 갔다리, 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 이집트와 가나안 연합군의 운명이 아브라함을 기준으로 하여 구원을 받든지 심판을 받든지 정해지게 됩니다. 대표성의 원리가 작용되기 시작하고 있어요. 믿음의 1세대들은 잘 들으셔야 됩니다. 특별히 내가 혼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저 혼자 신앙생활하고 있다, 가족들도 원래 믿었는데 지금 다 믿음 생활 안 하고 떠나가고 나 혼자 믿고 있다 하는 분들일수록 이 말씀을 아주 잘 들으셔야 돼요.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그 가정을 지키고 계시는 거예요. 그 기도하는 소수 때문에 그 교회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과 열방까지도 하나님께서 지키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주인공이 돼야죠.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죠. 내가 말씀을 받는 사람이 돼야죠. 내가 복이 돼야죠. 왜요? 그 시대가 열렸으니까. 이러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조상으로서 이제 우리들의 모델이 될 거고 순종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말씀은 이렇게 받는 거구나! 모델이 되고요. 이런 하나님의 방식은 복의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나의 샘플을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처음과 아브라함의 끝을 보세요. 어떻게 바뀌나! 아브라함의 처음 순종과 아브라함의 마지막 순종이 어떻게 점점 더 익어가고 커져가는지를 여러분 성경을 통해 한번 보세요. 그것만 따라가시면 똑같이 복 받는 거예요. 자꾸 다르게 살려고 해. 그러니까 문제예요. 이제 세상은 다른 방식으로 아브라함의 순종은 결국 아들 이삭을 바치는 데까지 나가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고난받고 죽으심으로 순종했던 구원자 예수님의 그 구원 사역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성의 원리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죠. 그리고 그 말씀은 곧 생명이라고 그랬어요. 우리 요한복음 1장 말씀 한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1~4)
여러분! 이 말씀이 쉬워요? 어려워요? 쉬워요? 이해되세요?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렇죠?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였다. 그 말씀이 생명이고 그 말씀이 빛이다. 누구를 얘기하는 거죠? 예수님을 얘기하는 것입니다.여러분! 이 말씀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우리가 이해하지요? 이 말씀이 뭡니까? 말씀 그 자체, 그 자체이신 예수를 내가 믿음의 순종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이 나에게 무엇이 된다는 거예요? 생명이 된다는 거예요. 어둠이 빛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만 받아들이면 말씀 자체이시니까 생명 자체이시니까 그분을 내 안에 모셔드리게 되면 그 인생이 생명력을 갖게 되고 또 누군가를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고 어둠은 떠나가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믿음의 시초를 시작으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믿음의 완성이 인간 생명의 회복이다. 하나님의 구원이다라고 하는 것을 지금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말씀과 순종을 통한 복의 회복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다음과 같이 갈라디아서 말씀에서 요약을 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7~9)
혈통으로가 아니라 우리는 아브라함과 혈통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죠.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는다. 왜요? 아브라함이 그렇게 복을 받았으니까! 아브라함이 혈통을 떠나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끊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복을 받았기 때문에 너희도 똑같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가면 너희도 복 받는다!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는 거잖아요.
이래도 말씀을 안 받으시겠어요? 말씀을 받으셔야 된다니까요! 여러분! 말씀을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건 안 돼요. 무릎을 치면서 설교가 너무 좋다고 너무너무 감동적이라고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설교라고 칭찬을 하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씀이 진짜로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 가슴에 확 받으셔야 돼요.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게 순종이에요. 다른 게 순종이 아니에요. 말씀 받는 게 순종이에요.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섭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대응적 방식으로 일하셨어요.
언약을 놓고 이 언약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에 따라서 복도 주시고 심판도 하시고 하는 일을 하셨어요. 그걸로 안 되는 걸 아시고 이제 12장부터는 먼저 부르세요. 그리고 주도적으로 그 사람을 만들어 가세요. 적극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십니다. 아브라함이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어떤 특별한 조건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조건이 있다면 애가 없어! 아내가 애를 못 낳아! 하필이면 그런 조건에 있는 사람을 부르셔 가지고 순종하도록 하세요. 보면, 아브라함이가 원래 순종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거의 약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도록 하시고 믿음이 더욱 믿음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것이죠. 이러한 모든 과정은 떠나라, 떠나라 하는 명령으로부터 이제 시작을 합니다. 떠남은 자기 부정을 말하는 거예요. 일단 떠나야 돼요. 아브라함이 누릴 복,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완성될 그 구원자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복이라고 하는 것은 다 자기 부정으로부터 시작이 돼요. 아브라함은 평생 한 일이 뭐냐! 자기를 부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연단을 받는 거예요. 왜냐? 말씀이 생명이고 생명이 복의 근원 아닙니까? 본질 아닙니까? 생명 외에 뭐가 있어요? 목숨을 잃으면 다른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살맛 나고 사는 것 같고 이 땅에서도 살고 영원히 사는 것 그게 복의 본질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사실 아브라함은 죽을 때까지 연단만 받다 갔어요. 히브리서 저자가 증거하잖아요. 아브라함은 그거 다 누리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우리는요? 이미 예수를 경험한 사람들이에요. 예수가 이 땅에 내려오셨고 말씀 그 첫째이신 예수가 이 땅에 내려오신 이루신 그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적 현실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을 통한 연단을 받으셔야 돼요. 저는 여러분들이 되도록이면 고생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슬픔도 없었으면 좋겠고 상실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언제나 그냥 편하게 그냥 넉넉하게 항상 웃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인생이 그러던가요? 절대 그렇지 않잖아요. 그죠? 다 고생합니다. 다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신앙인들은 말씀으로 연단을 좀 받아보세요. 오늘 주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좀 갈등도 해보시고 그 말씀 때문에 좀 고민도 해보시고 이 말씀을 부여잡고 현실과 한번 싸워보기도 하고 직장 가서 정말 말씀대로 한번 살아보다가 손해도 한번 보시고 멸시도 좀 당해보세요. 여러분! 그게 신앙인으로 사는 거 아닙니까? 주일날 말씀 잔뜩 들어놓고 평일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작되는 모든 삶에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원래 인생은 그런 거라고 나만 특별히 살 수 있나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어요 아브라함처럼 점점 강화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힘들지만 순종하는 그런 순종으로 나가게 될 때 여러분도 복을 받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복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신앙인들은 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아멘이죠? 또 받아 누려야만 해야 돼요. 나눠줘야 돼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복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예요. 대체로 어떤 복인가요? 물질의 복, 건강, 회복, 관계 회복이에요. 이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다 받아야 돼요.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주세요. 아멘입니까? 하나님 먼저 주세요! 순종할 테니까! 이러시면 안 돼요. 진짜 피곤해져요. 그거 주세요. 하나님 막 협박하듯이 뭐 맡겨놓은 것처럼 내가 그거 주면 내가 한번 순종해볼게요. 그건 순종이 아니에요. 말씀을 먼저 순종하세요. 오늘 어떤 말씀을 주셨는지 순종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하지 않아도 그것은 보태어 주시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말씀 제대로 받지 않고 순종한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요. 그런 분들이 가끔 있더라고요.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교회 일에 열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어요. 성령 체험이 없어요. 말씀이신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데 그냥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냥 교회 안에서 성실하게 착하게 순종하는 거예요. 반드시 본전 생각납니다. 자기 공로로 끝날 확률이 굉장히 큽니다. 말씀이신 예수를 내 안에 모셔드리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아를 죽이고 그분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딱 주시는 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학기가 시작이 됐어요. 우리 강남교회 성도들 중에는 아직도 소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 강남교회는 소그룹을 관리하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관리 목회가 아닙니다. 주일날 선포되는 말씀을 순장이 수요일 날 또 받습니다. 또 나눕니다. 저하고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순원들과 함께 또 나누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신앙의 성숙이 일어나겠습니까? 집사님 저는 이번 주에 이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받았어요.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했던 기도의 제목이 이 말씀을 통하여 응답이 됐습니다. 설교를 그렇게 들었는데도 그렇게 나를 향하신 하나님 말씀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어요. 너는 앞으로 복이 될지어다. 그렇게 사랑방에서 간증하게 될 때에 아무 생각 없이 왔던 순원도 정신이 번쩍 나가지고 사모하게 되고, 그 말씀을 자기 말씀으로 받게 돼서 말씀이 충만하게 열매 맺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교회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전폭도 그렇고, 제자 훈련, 사역 훈련, 모든 아기 학교든 이 모든 게 말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훈련이에요.
여러분, 꼭 말씀을 받으십시오. 소그룹에 꼭 참여하시고요. 그러면 여러분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어떠한 자연적 조건을 타고났던지,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왔던지, 어떠한 사회적 계층에 속해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 그 말씀이 창조적으로 작동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있는 사람까지 복을 주신다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복이 되시는 복을 전하시는 믿음의 주인공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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