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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문산 목사(노량진 강남교회)

떠남의 의미(1) -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by 복음과삶 2023. 9. 11.

2023.09.10.(주일). 떠남의 의미,  창세기 12:1~4.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4)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성경에 보면 많이 바뀌세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바꾸는 이유는 누구 때문이에요? 또 인간 때문에! 나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라고요? 나 때문이라니까요! 아니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이 아무리 약속을 주셔도 그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없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 연약한 죄인인 인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성경의 역사를 보면 자꾸 바꾸셨어요. 그래서 제1 경륜시대 1장부터 11장까지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하나 보고 반응하는 방식으로 일하셨다면 이제 12장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경륜의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고 그랬죠? 이제는 아예 그냥 사람을 불러다가 그 사람을 믿음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런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뭡니까? 여러분! 떠나라는 거예요. 뭐 하라? 떠나라. 이게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너는 거기서 떠나라는 거였어요. 이 명령을 시작으로 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시작이 되고요. 또 나중에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최종 시험할 때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시험받은 시험이 뭐예요?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겁니다. 여러분! 그 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이에요. 근데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 아들까지 받치라 그래요. 그런 최종 시험을 아브라함이 받을 때도 오늘 이 떠나라는 동일한 명령을 받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22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어떻게 하라? 그래요? 가서 이렇게 나오잖아요. 번역은 가서라고 돼 있지만 사실은 원문을 찾아보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떠나라고 하는 단어와 똑같습니다. 히브리어 글자가 하나도 틀리지 않아요. 똑같아요. 단순히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리아 땅으로 떠나가라 그 말이에요.  이렇게 아브라함은 떠남으로 믿음의 삶을 시작하였고 또한 떠남으로 믿음을 완성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죽는 날까지 떠나야 될지 몰라요. 물론 죽는 것도 이 땅을 떠나는 일이지만 계속해서 우리는 무엇인가로부터 떠나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과연 사람이 해야 될 게 무엇일까?

여러분! 아브라함 보세요. 떠남으로 믿음의 삶을 시작하잖아요. 또 떠남으로 믿음을 완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막 역동하기 시작할 때 인간이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나 없어요. 그것은 바로 부르심을 따라 떠나는 겁니다. 누가 불러주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부르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떠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떠남이 믿음의 시작이고 떠남이 믿음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떠나라라고 하는 히브리어가 할라크(הָלַךְ)라고 하는 동사입니다. “할라크가다, 걷다, 떠나다,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명령형으로 쓰이게 되면 앞에 있는 하라고 하는 게 떨어져 버려요. 제가 여러분에게 히브리어를 어렵지만 하는 이유는 뭐냐면 좀 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느껴지게끔 하는 거예요. 이게 목사의 말이 아니라 목사의 잔소리가 아니라 이게 오늘 여러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짜 음성으로 듣게 하기 위해서 히브리어를 쓰는 거예요. 지난번에도 외우셨죠? “, , 샤마임바벨탑 사건을 신나게 들으라고 그랬잖아요. 별거 아닌 걸로. 그러니까 오늘도 히브리어를 몇 가지 할 겁니다. 걷다란 말이 할라크인데 명령형으로 쓰면 앞에 있는 기시 글자가 떨어져 버립니다. 이게 원래 자음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할라크가 아니라 "레크"라고 됩니다. 레크이게 무슨 뜻이에요? 떠나라. 하나님의 간절한 그 마음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희한한 게 뭐냐면 이 히브리어 글자가 레크라고 하는 말만으로도 떠나라는 말인데 히브리어를 보면 그다음에 르까라고 하는 말이 나와요. "르까" 이 르까가 무슨 뜻이냐 하면 너 혼자그런 말이예요. 그런데 히브리어가 레크떠나라 하는 말 다음에 르까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글 개역 성경에는 이 뉘앙스를 살리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떠나긴 떠나는데 어떻게 떠나라는 거예요? 너 혼자 떠나라고 하는 말이에요. 한번 해보세요. “레크 르까무슨 뜻이에요? “너 혼자 떠나라히브리어는 순서가 바뀌어져 있어요. 한글하고 거꾸로 써요. 이렇게 옛날 한자 쓰듯이 떠나라” “너 혼자그 말이예요. 떠나라는 거죠.

 

그러면 그냥 아무도 없이 그냥 집을 그냥 가출하라는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니고 왜냐하면 창세기 오늘 본문을 봐도 아브라함은 롯과 친족과 가족과 함께 떠나잖아요. 함께 그러니까 혼자 떠나는 건아니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중에 창세기 22장에 가봐도 모리아 산으로 떠날 때에도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잖아요. 혼자 가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근데 왜 성경은 너 혼자 떠나라 이렇게 말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는 거예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과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홀로 서는 거예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지금 내 환경이나 여건이 떠날 형편이 안 됩니다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거 누가 부르신 거라고요? 하나님이 부르셨으니까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내가 뭔 생각이 들든 또 내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 그 부르심 앞에 홀로 우뚝 서라 그 말이에요. 그 말씀 앞에.

 

여러분! 이거 없이는 인생 안 바뀌어요. 여러분! 교회를 오래 다녀서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젖다 보면 변한다고요? 제 경험상 변한 걸 못 봤습니다. 여러분! 진짜로 변하는 건 한 번에 변하는 거예요. 한 번에. 단번에. 그 시간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장에 확 떨어질 때 변하는 거예요. 이 교회 저 교회 다녀보고 이 교회가 들을 만한 설교가 있고 이 교회가 다른 데보다도 좀 은혜스러운 것 같고 그래서 변화되는 게 아니고 누구의 말씀을 듣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딱 받을 때 그리고 다른 것이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우뚝 설 때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 사람들의 생각, 이거 다 뛰어 넘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홀로 붙잡으라 그 말이에요. 홀로 붙잡으라! 누가 붙잡겠어요! 내가 붙잡지! 사람들이 다 동의하고 사람들이 다 이해하고 설득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에요. 이거는. 이건 오늘 나에게 오는 말씀이에요. 나에게 응답을 주시는 말씀이에요. 그러면 내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알고 꽉 붙잡는 것. 그게 바로 너 홀로 떠나라 그 말이에요.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님은 이것을 뭐라 표현하셨냐면 하나님 부르심의 절대성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이게 너무 절대적이에요. 내 인생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찾아오면 이건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니까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동안 자기가 절대적이라고 생각됐던 것들이 다 상대화돼버려요.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려요. 비교 불능. 왜요? 말씀이 너무 절대적이에요.

 

여러분! 이런 경험 없으세요? 육신으로부터의 떠남이 없으면 영적 세계는 절대로 누릴 수가 없어요. 들어갈 수도 없어요. 육적인 세계는 내 경험이 나를 만들어 놓은 세계 아닙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야 된다라고 말하는 그러한 세계예요. 뭐 틀린 건 아니에요. 대체로 그렇게 살면 지혜서 말씀처럼 잘살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그냥 육신적인 세계일 뿐이에요. 육신의 세계에서 말씀을 받고 정확하게 떠나지 않으면 절대로 영적인 세계는 열리지 않아요. 그냥 항상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떠남이라고 하는 것은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 땅이 삶의 근거지나 궁극적인 소망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믿음의 행동이에요. 누구나 그래요. 떠나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예요. 그러니까 두려울 수밖에 없죠. 계산이 안 나와요. 너무나 막막합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고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구원의 여정으로 들어서게 된 겁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그러면 아까 우리 찬송했잖아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어디로 가요? 소돔 골짜기, 아골 골짜기로 가다 보니까 고생길이 열렸구나! 난 이제 큰일 났다! 하나님이! 왜 하필이면 옆 사람을 부르지! 날 불러 가지고 그냥 이렇게 고생할 생각만 하는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불러주셨다는 게 뭐예요? 너 내 거라는 거예요. 믿습니까? 여러분! 너 이제부터 내 거야! 너는 세상 게 아니야! 심지어는 너는 너의 것이 아니고 앞으로 너는 내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를 책임져야 할 거야 이런 말이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이게 얼마나 귀한 부르심입니까? 하나님이 붙잡고 책임지신다는 거예요. 그게 부르심이에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 말씀 듣고 떠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내가 그동안 의지했던 거 이제 소용없다! 고백하고 행하는 첫 번째 행동이라는 거죠.

 

아브라함은 비록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았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존재가 된 거예요. 왜요? 하나님이 붙잡으셨으니까. 생명이 붙잡은 거잖아요. 이 죽음의 땅, 아무리 열심히 살아봤자 죽음으로 끝날 이 땅의 삶이 이제 이 부르심으로 인하여 완전히 바뀐 거예요. ? 하나님이 불러주셨으니까! 능력 있고 돈 많은 사람이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러주셨으니까 이제는 이 사람은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은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도 두 발을 딛고 이 땅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속이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불러주신 저 하늘, 하늘에 소속된 분인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너 홀로 떠나라는 말씀과 함께 2개의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떠나면 어디로부터 떠나고 또 어디를 향하여 떠나야 될 거 아니에요? 그죠? 하나님께서 어디로부터라고 할 때 전치사를 뭐라고 하냐면 ”(מִן) 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를 씁니다. , 따라서 보세요. , 여기 프럼(from)이란 말이에요. “어디로부터떠나는 거예요. 그리고 어디를 향하여 갈 때에 ”(אֶל) 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해 보세요. , 이것은 이제 잘못 발음하면 엘로힘”(אֱלֹהִים) 하나님이 돼버려요. 원래 엘이라고 하는 건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전치사로는 어디 어디를 향하여라는 뜻이 있어요. 이게 도대체 히브리어 시간이냐! 설교 시간이냐! 할 수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 기도하실 때 이 히브리어를 통째로 기억하고 기도를 하세요.

레크 르까무슨 말이라고 그랬죠? 이때쯤 되면 다 잊어버리게 돼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또 해드립니다. “레크 르까뭐라고요? “너 홀로 떠나라그 다음에 은 뭐라고 그랬죠? “어디로부터” “은요? “어디를 향하여그래서 기도할 때 마음에 레크 르까 민 엘그래야 돼요. 아셨어요? 뭔 소리냐 이게? 이제 주무시다가 지금 깨신 분들은 이게 뭔 소린지 모른다는 말이예요. 따라서 하겠습니다. “레크 르까 민 엘어디로부터 떠나야 될까! 도대체 내가 새로운 인생길 앞에서 그동안 붙잡았던 것 어디로부터 떠나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까! 그리고 어디를 향하여 가야 될까! 난 누구의 조언을 들어야 될까! 나 지금까지도 애써서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진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야만 하는가를 기도할 때 기억하시란 말이에요. “주소서, 주소서, 주소서뭘 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시지요 아시지요, 이지지요뭐 이러고 있어요. 기도하기 싫으니까 아시지요? 아시지요? 뭘 알아! 자기가 모르고 있는데! 정말 그렇게 기도하실 겁니까? 그렇게 세월 다 보내실 겁니까? 나 떠나야겠다. 내가 어디로부터 떠나야만 하는가? 알려주세요. 성령님.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떠나가야 합니까? 성령님 말씀을 통해 알려주세요. 기도하셔야 될 거 아니에요. “레크 르까 민 엘

,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떠나요? 1절에 보니까 너의 고향 너의 친척 너의 아버지의 집이라고 목적어 나오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거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에요. 이 세 가지의 공통된 특징이 고대 근동사회에서 부족과 혈육이라고 하는 것은 생존의 기반이자 자기를 보호해 주는 일종의 울타리와 같은 거예요. 떠나래요. 뭐 하라는 말입니까? 죽으라는 말이에요. 쉽게 말하면 죽어라. 비장한 명령이죠. 생명의 안전판이라고 생각되는 거 네가 지금 하나님 없이도 살아왔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기반 자체를 완전히 떠나라 명령하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세계로 누가 들어올 수 있습니까? 영적인 세계로 누가 돌아올 수 있습니까? 무엇인가와 결별해야만 돼요. 그 결별해야 될 대상이 뭐냐? 바로 육신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혈통과 땅이라고 하는 삶의 근거지입니다. 그래서 떠남의 출발점이 뭐냐?

떠남의 출발점은 나를 나라고 여기는 그 나를 떠나라는 것이다.”

나를 나라고 여기는 그 나를 떠나라너무 심오하죠? 너무 철학적인 것 같죠? 내가 문제예요. 나를 버리라는 거예요. 나를 죽이라는 거예요.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나를 따라오려거든 말씀이신 예수인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어떻게 하고? 부인하고 미워하라는 거잖아요. 없는 것처럼 생각하라는 거잖아요. 우리는 나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얼마나 집착합니까! 1차적으로 떠나야 되는 떠남의 장소가 어디냐! 나를 나 되게 만드는 나, 이 못난 자아, 이 못된 자아, 여기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남았어요. “”. 그죠? “을 했으니까 ”,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떠나서 향할 곳은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I will show you)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앞으로 보여줄 땅이다. 여러분! 보여줬어요? 보여줄 땅이에요? 보여줄 땅이에요. 그러니까 어디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떠나야 하는지는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어디를 향하여 떠나야 하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내가 보여줄 것 앞으로 나의 안전과 안녕 그리고 생명을 버리고 가야 할 곳은 구체적인 그 어디가 아니라 놀랍게도 아직 어딘지 알 수 없는 앞으로 보여줄 곳이라는 거예요. 이게 힘든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 떠나이 집을 떠나 노량진으로 이사가 그러면 좋은데 저쪽에서 잘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떠나라는 거죠. 어디로 가야 될지 알지는 못해요. 여러분 떠날 수 있겠어요?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떠나는 거예요.

믿는 사람들은 이게 누가 말씀하신 거라고요? 하나님 말씀이신 거예요. 사람이 말하면 하겠습니까? 못하죠. 신기하게도 이게 떠나려고 발을 뛸 때부터 보이기 시작해요. 발을 안 뛰면 안 보여요. 일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그래, 내가 포기해야지, 내 생각을 포기해야지, 내가 나 되게 만드는 것에서 이제 출발해야지라고 결단하고 발을 딱 딛는 순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쪽으로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말씀으로만 주어지는 곳이에요. 이거는 말씀으로만 그러니까 부르심 앞에 선 인간은 나의 생각과 판단을 완전히 죽이고 생명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이죠. 히브리서가 이것을 뭐라고 표현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믿음이다. 딴 게 믿음이 아니라 이게 믿음이다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는데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떠나라고 하는 그 부르심 명령을 받았는데 순종했다 그 말이에요.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가서, 아직 몰라요. 무슨 땅인지, 그리고 갈 바를 알아요? 몰라요? 어떻게 찾아가야 되는지도 알지 못해요. 아니 장소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곳에 이르는 방법도 없어요. 그냥 믿은 거예요. ?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냥 믿고 가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라는 거죠.

 

여러분 뭘 믿고 있습니까? 누구를 믿음 좋다고 말합니까? 도대체 믿음이라는 게 뭡니까? 믿음은 말씀을 믿는 거예요. 뭘 믿는 거라고요? 누가 하신 말씀이요? 목사님이 하신 말씀?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하신 말씀을 신뢰하는 것, 그걸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어디 있든지 간에 나를 떠나서 말씀을 따라가는 것, 그게 뭐예요? 믿음이에요.

 

여러분 장소 옮긴다고 사람 바뀌지 않아요. 여러분 장소 옮긴다고 사람 망하고 복되고 그런 거 아니예요. 아니 그건 점쟁이들이 하는 말이에요. 하나님! 어디로 가야 됩니까? 노량진입니까? 성수동입니까? 점쟁이입니까? 하나님께, 왜 그렇게 기도를 하세요? 정해놓고 기도해요. 자기가 또 가고 싶은 곳으로, 믿음이 뭐라고요? 나를 떠나서 말씀을 따라가는 것. 우리는 보통 구체적인 곳이 정해졌을 때, 그 구체적인 것을 눈으로 보기만 하면 그때 떠날 수 있다, 기꺼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요! 그곳이 아닌 말씀을 약속으로 주세요. 약속이 뭐라고요? 말씀이에요. 이만큼 벌게 해줄게! 네 자식 잘되게 해줄게! 그런 약속은 별로 없어요. 성경에 그 말씀이 주어져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요. 그러니까 그 말씀이 주어지기만 하면 그것이 실제라고 이게 진짜구나.

 

여러분 만약에 오늘 기도를 하시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신다면 그거는 현실이에요? 아니에요? 현실이에요. 그게 여러분! 자꾸 사람들 말 듣지 말고, 살아보니까,다 그렇더라고, 그게 여러분 현실인 줄 알고 착각하죠? 여러분! 그거 다 거짓이에요. 현실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나셔서 방문하셔서 오늘 여러분에게 하는 그 말이 그 말씀이 현실이에요. 그게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할 겁니다. 그거 믿지 않으려면 뭐 하러 교회 다닙니까? 세상에서 열심히 사시지, 뭐 하러 시간 내서 교회 옵니까? 천국 티켓 입장권 때문에? 그래서 중세 때 팔은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니까 중세 때 교회에서 파는 게 그거 아닙니까? 천국 입장권! 우리도 한번 해볼까요? 돈 얼마나 많이 벌리겠어요. 교회 안 와도 된다고, 앞으로 그죠? 안 와도 된다고 입장권을 파는 거예요.

 

여러분 여기 왜 오십니까? 매주 마다? 뭐가 불안해서 오십니까? 어떤 안정감을 누리기 위해서 이곳에 오십니까? 여러분 말씀 받기 위해 오십니까? 아멘이십니까? 말씀을 받지 않으시려면 굳이 오실 필요가 없어요. 여기 오셔서 괜히 딴생각하고 찬송도 안 하고 목사가 따라서 한번 선포하라고 그러면 그냥 입 굳게 닫고 뭐 하러 예배를 방해합니까? 집에 계시지! 편하게! 온라인도 되는데 말씀을 받으셔야 합니다. 왜냐 그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는 약속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여러분만 바뀌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보장되는 약속이에요. 여러분의 직장 일터 나라와 민족과 연관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게 현실이라고 확신해야 돼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하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뭐라고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에요.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이제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말씀이 실제가 된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성경은, 이게 믿지 않는 자들이 보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믿는 우리조차도 황당한데,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보면 이게 나한테 이루어진다니까요. 이 산지를 나에게 주소서 그게 내 말씀이 되면 진짜로 그게 현실이 됩니다.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완전히 떠나서 그게 나에게도 또한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 이게 확실한 거예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해도 나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 인생길을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이 실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현실이 됩니다. 친척 본토 아버지 집이 내가 끝까지 의지하고 돌아갈 곳이 아니라 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본향이다라고 하는 영적 실제를 갖게 됩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응애하고 나왔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저 하늘로부터 어머니 뱃속을 통하여 이 땅에 출생시키시고 이 땅에 100년의 시간을 살다가 영원한 세상으로 부르신다라고 하는 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의 실제가 되어 찾아오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인생이 안 바뀔 수가 있겠어요! 맨날 세상 사람들 수준에서 어떤 면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만도 못한 그러한 비전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니 크리스천들이 아무런 힘이 없는 거예요. 우리의 삶을 떠나서 그저 막연한 것으로 떠나는 것이 떠남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허위의 세계, 거짓의 세계에서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탄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되었던 삶에서 이제는 참된 세계로 나아가는 것, 그게 바로 떠남의 진정한 의미예요.

 

여러분! 이렇게 영적으로 상담받아 보면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나 주위에 기도하는 분들이 끊어라! 떠나라!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럼 떠나야 돼요. 빨리, 왜 그걸 계속 붙잡고 있습니까? 아니 기도하는 분들이나 조금 신앙생활을 영적으로 해본 사람들은 그분의 인생을 붙잡고 있는 게 그거라는 걸 뻔히 아는데 그렇게 떠나라, 떠나라 해도 못 떠나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복이 시작되질 않아요. 어떻게 시작되겠어요! 1절에 보면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4절에 가보니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따라 떠나게 됩니다. 그에게 주어진 목적지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보여줄 땅이었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씀을 믿고 떠나니까 얼마 되지 않아서 땅이 아예 주어져 버려요. 7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7)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 자손에게 어떻게 하겠다고 그래요? 주리라. 이게 시간적 간격이 별로 안 돼요. 여러분 이 지면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이 말씀을 현실로 실제로 여기고 떠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땅이 이제 주신 땅이 돼버려요. 이거 주신 땅이 그냥 주리라하면 하나님이 내가 너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면 주시는 거예요? 안 주시는 거예요? 줬다가 뺏어요? 여러분 이거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요! 약속을 주잖아요? 그러면 심하게 말하면 내가 그 약속을 어겨도 약속을 지키십니다. 맞습니까?  내가 하는 거 봐서 약속 지키세요? 시대가 달라졌단 말이에요. 여러분! 시대가 왜 옛 시대에 머물러 계십니까? 도대체 시대가 달라졌어요. 복음의 시대가 열렸어요. 지금은 이제 나중에 설교하겠지만 지금은 제2 경륜 시대 아브라함의 시대도 아니에요. 아직 여러분이 이 폭발적인 은혜를 경험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신약의 시대까지 완전히 들어가야 되는데 여러분! 지금이 신약 시대 아닙니까? 지금이! 그래요? 안 그래요? 예수 만나면 그 사람은 복 받게 돼 있어요. 믿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해를 못해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제는 완전히 생명으로 들어오고 이제는 완전히 빛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져도 반드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아들 예수 때문에 끝까지 책임져요. 그러니까! 이 믿음이 너무 크다 보니까 막 사는 거예요? 그럴 수 없느니라! 도대체 이 은혜가 얼마나 크길래 그런 딜레마가 발생했겠어요! 이 은혜가 너무 커요. 나중에 보니까 나는 할 게 아무것도 없어! 맞아요. 할 게 없어요. 나는 그냥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등에 업혀서 가면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뭐 오줌 싼다고 버리겠어요? 똥을 싼다고 버리겠어요? 자식인데! 이제부터 아들 때문에 자식 돼버렸는데 버리겠어요? 좀 몸이 불편하다 버리겠어요? 부모가? 안 그러는 거예요!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바라는 것이 다 실제가 돼버립니다. 다 현실이 돼버린 거예요. 보이지 않는 것이 증거가 되는 믿음의 행동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떠나지 않으면 사실 신앙인들에게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게, 믿음! 말씀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 떠나면 반드시 벼랑 끝에 서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한 발을 딱 내딛는 순간 이렇게 길이 쫙 열립니다.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낯설고 두렵지만 하나님 말씀 받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 길이 쫙 열릴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요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에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에요. 진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가 된 상태 광야에 서 있는 상태 가난하고 초라하고 두 손 바짝 들고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 상태가 되었을 때에 이제야말로 비로소 일하시기 시작할 겁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목표로 삼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났어요. 하나님의 약속과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어요. 왜냐?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앞으로 최소한 22장까지 가야 되고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이 하늘의 별처럼 다 이루어진 거는 신약으로 넘어가고 얼마나 오랜 간격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목표로 나 자신에게서 떠나는 거예요.

 

레크 르까 민 엘홀로 떠나라! 어디로부터! 어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또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생활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신앙이 성숙하고 열매 맺어요. 넉 놓고 계시지 말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있어요.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어디든 함께하리라는 말씀이. 여호수아의 말씀을 주셨어요.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지금 저에게는 진행형이에요. 그러나 이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이루어진다니까요! 제가 받았다니까요! 하나님 말씀을! 그럼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간격이 있어요. 간격이! 그 말씀을 목표로 나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두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아브라함은 삶의 모든 것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하늘 비전을 좇아갑니다. 성경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부르심을 따라 자신을 정리하고 말씀을 따라갔어요.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언제든지 자신을 정리하는 임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게 부르심의 첫 순종입니다. “레크 르까 민 엘끊임없이 기도하는 겁니다. 순종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6가지의 복을 받아요. 큰 민족, 복 주심, 이름을 창대하게 하심, 복 자체가 되게 하심, 앞으로 그 사람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게 하시는 복, 또 마지막에는 그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이 엄청난 6가지의 복을 아브라함이 앞으로 누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졌나요?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여러분! 이루어졌어요. 그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경이 이것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이루어집니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떠나지 못해서, 내 자아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해서, 내 그 습관에서, 그 못난 습관에서, 그 죄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과거에 내가 무엇인가 말씀을 따라 떠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죠? 맞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복을 주셨잖아요. 그거 기억하세요.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 떠났을 때  어떤 중차대한 일 앞에서 내가 기도하고, 하나님이 보게 하라는 거 보게 하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길로 갔을 때에 여러분의 인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한번 돌아보세요. 그리고 집에 가서 부부끼리 좀 나눠보세요. 당신은 어떤 말씀을 받았어? 어떤 말씀을 목표로 올해를 살아가고 있어?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데 끊지 못한 것이 있나? 이렇게 서로 나누고 기도하고 순원들하고도 나누고 기도하고 그렇게 잘 점검해서 잘 정리해서 확실하게 떠나고 확실하게 방향성 잡아 떠나셔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이루실 복을 받아 누리고 여러분 자체도 복이 되시는 은혜가 있기를, 여러분의 앞에 인생길에 탄탄대로가 확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