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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문산 목사(노량진 강남교회)

복의 의미(1) - 노량진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by 복음과삶 2023. 10. 16.

2023.10.15. (주일예배). 복의 의미(1). 창세기 12:1~4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4)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복을 주시기 위한 거예요. 오늘 본문에도 보면 여러 가지 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2절만 해도 민족에 대한 복, 또 복 자체에 대한 거, 세 번째로는 이 창대한 이름을 복으로 주시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에 보니까 그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렇게 명령을 하셨어요. 이건 명령이에요. 내가 되고 싶고 안 되고 싶고 그런 선택의 상황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란 말이죠. “너는 복이 되어라이렇게 명령하시는 겁니다.

 

이 구조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민족에 대한 것, 복에 대한 것, 그리고 창대한 이름을 주시겠다라고 하는 이 복은 미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보니까 복이 될 것이다. 이거는 명령형이에요. 여러분 미완료형이라고 하는 거는 아직 완료가 안 됐다는 뜻이죠?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다 그 말입니다. 반면에 완료형이 뭐예요? 이미 과거에 완성된 거예요. 과거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3) 그리고 3절에 보면 여기 나오는 동사들 역시도 다 미완료형이에요. 아직 완성된 게 아니죠. 첫 번째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다. 또 너에게 저주하는 자는 내가 그 사람을 저주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다 미완료형이예요. 아직 안 된 거예요.

이것을 문법대로 정리해서 해석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 하나님은 너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줄 것이다
2. ‘너에게 복을 줄 것이다
3.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유명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니) 너는 복이 될지라
4.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릴 것이고
5.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할 것이다
6.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지금 6개의 복이 등장하고 있는 거예요.
첫 번째 복이 뭡니까? 나 하나님이 너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두 번째 복은요? 너에게 복을 줄 것이다.
세 번째 복은?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즉 유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러니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네 번째 복은 3절에 이어지고 있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릴 것이고,
다섯 번째는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
여섯 번째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6가지라고 할 수가 있어요. 이 모든 6가지의 복이 다 미래에 이루어질 겁니다. 이 보기들이 이루어지려면 그러면 무엇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느냐! 아브라함이 복이 돼야 된다 그 말이에요. 이런 유일한 조건을 하나님께서 붙이신 겁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다 주어졌어요. 그런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뭐가 먼저 이루어져야 된다고요? 네 아브라함 자체가 복이 돼야 된다 그 말이에요. 아브라함이 복이 안 되면 이 약속은 이루어지질 않아요. 이러한 6개의 복이 복이 될지라라고 하는 명령형을 중심으로 이렇게 위 아래로 퍼져 있는 그런 대차 대구(對句:말의 가락과 표현이 비슷한 어구를 나란히 늘어 놓음)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표를 가지고 보겠습니다.

 

첫 번째 복이 뭐라 그랬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이게 마지막에 등장하는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와 관련이 있는 거죠. 무슨 말이에요? 내가 너부터 큰 민족을 만들 거야. 그런데 앞으로 나올 모든 족속들은 바로 그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두 번째 복은 뭐예요?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 주면 그 사람을 누군가가 저주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너한테 복을 줄 건데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쫓아가서 저주할 거야. 그러니까 너를 건드릴 수 없을 거야 그런 말이에요.

 

세 번째 복이 뭐죠?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유명하게 해주겠다. 그 말은 뭡니까? 바로 너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에게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앞으로 아브라함 이후에 올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이름 그리고 그 예수의 이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축복해 주겠다는 말이에요. 그 중심에 뭐가 있다고요? 복이 될지라! 복이 하나님께서 복이 되라고 명령하셨으니까 아브라함은 얼른 내 그러고 답하면 될 일이죠. 그렇죠? 복이 될지라! 그러면 아멘! 그러면 끝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복이 되라고 명령한다고 과연 복이 되느냐 하는 거예요. 개역 성경을 보면 복이 될지라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이것은 너 앞으로 복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 미완료형도 아니고 너 복이 되라 이렇게 강력하게 선포하는 말도 아니죠. 아주 애매하게 번역을 해놨어요. 뭐라고 번역됐죠? “복이 될지라.”

 

여러분 성경을 읽으면 이거 좀 이상하구나 이렇게 느끼셔야 돼요. 성경을 읽으면 그런가 보다. 이게 뭐 나하고 관련 있는 일이냐 이게 뭐 아브라함이라고나 관련 있는 일이지 이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그리고 그냥 건성으로 읽어 넘어가면 안 되고 복이 될지라가 도대체 뭐야? 이게 이렇게 의구심을 가져야 된다 하는 거예요. 개역 성경은 이 부분을 아주 심사숙고해서 번역을 한 것 같아요. 명령형이라고 그랬잖아요. “복이 되라그러면 아주 간단한 건데 뭔가 뉘앙스를 더 살린 거죠. “복이 될지라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히브리어에 독특한 문법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히브리어에 명령형 2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명령형 2개가 와우라고 하는 그리고” “그러면이라고 하는 접속사가 들어가게 되면 앞에 해석과 뒤에 해석이 연결되서 조금 달라져요. 앞에 거는 어떻게 해석하냐면 말 그대로 권고형, 명령형으로 해석합니다. “, , 해라근데 그다음에 나오는 명령형은 앞에 나오는 명령형과 연결되어서 결과적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될 것이다이렇게 해석이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운동해라그랬어요. 그리고 건강해라다 명령형이죠. 근데 이게 히브리어 와우그리고라고 하는 접속사하고 연결이 되면 앞에는 운동해라그러면 뒤에 게 어떻게 해석이 돼요? “건강해 질 것이다” “건강 자체가 될 것이다이렇게 번역이 된단 말이에요. 운동을 열심히 하면 건강해지는 건 사실이죠? 그런 뉘앙스를 히브리어가 가지고 있어요.

오늘 2절에 나오는 복이 될지라라고 하는 이 결과는 그렇다면 앞에 또 다른 명령형이 하나 더 나와야 되는 거죠? 그래야 의미가 완성될 거 아닙니까? 2절 앞에 어떤 명령형이 있는 거예요? 1절에는 떠나 가라” “레끄 르까가 있죠? 그러니까 이것을 복이 될지라와 연결을 시켜보면 떠나 가라” “그러면 너는 복이 된다그 말이에요. 맞죠? 말씀만 붙잡고 자신을 떠나라 부인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어떻게 하시겠다? 복으로 만들어주겠다. 떠나지 않으면? 가만히 있거나 그냥 마냥 기다린다고 복이 올까요? 안 올까요? 여러분 웃으면 복이 옵니까? 그래도 찡그리는 것보단 나아요. 그러나 성경적인 복은 아니에요. 그냥 내가 복을 빈다고 해서 간절하게 청결하게 죄 안 짓고 하나님 앞에 빈다고 해서 복이 오는 게 아니에요. 성경적 의미에서의 복은 떠나야 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떠나야 다시 말하면 내가 주인 되고 내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계획된 삶을 살아가는 그 자리로부터 떠나야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복의 조건은 뭐죠? 아브라함이 복이 되는 거예요. 6가지의 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 자체가 뭐가 돼야 된다고요? 복이 돼야 돼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복이 되는 조건은 뭐예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 붙잡고 자신을 떠나는 거예요. 여러분 정리되시죠? 6가지의 그 대표되는 모든 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 되어야 돼요. 그리고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 따라 떠나야 된다 하는 것이죠. 떠나지 않으면 아무 복도 없어요.

우리의 인생의 복을 가로막고 있는 게 과연 뭐냐? 기도를 안 해서일까?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아니요! 떠나지 않아서요. 여러분 세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복이 주어질까요? 내 마음대로 사는데 내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우리 주시고자 하는 그 복이 우리한테 과연 임할까요? 절대 임하지 않습니다. 떠나야 돼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이 아브라함처럼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다니까요. 약속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어요. 근데 그 복은 말씀을 의지해서 자아를 죽일 때에만 비로소 나에게 복으로 다가오게 돼 있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떠남이 곧 복의 조건이다. 더 나아가서는 떠남 그 자체가 복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합니까? 아니 왜 떠나라고 하면서까지 복을 주시려고 하냐 심하게 말하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못 주셔서 안달이냐 이거죠. 그 복을 주시려고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지금 중요한 지점에 있어요. 왜 주려고 하실까?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을 살펴보면 두 종류로 나눠지는 것을 보게 돼요. 첫 번째 복이 뭐였습니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예요. 두 번째 복은 너에게 복을 주겠다. 세 번째 복은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그러니까 다 아브라함 개인에게 주어지는 복이죠. 그런데 네 번째 복이 뭡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겠다 그랬어요. 다섯 번째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주어지는 복이죠.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 자체를 복의 근원으로 만드시려고 그랬어요. 복 자체가 되기를 원하셨어요. 그런 다음에는 그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복을 받는 복의 통로로 만들어 주시겠다라고 약속하신 겁니다.

여러분 이것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들어가셔야 돼요. 그게 복이에요. 여러분 다른 게 복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적인 복이 혹여라도 죄를 지어서 손상당할까 봐 두려워해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남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도 좀 잘 믿으면 나도 저 정도의 물질적인 복은 누리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는 절대 그게 아니에요. 네 자신이 복이 돼야 된다. 그런 다음에 너를 통하여 누군가가 다 복을 받아야 돼요. 이런 원리가 오늘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창세기 1장에서 천지와 함께 에덴동산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에 아담을 만드시는 상황을 연상하도록 만들어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똑같이 만드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처럼 만들었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처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드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놓고 복을 주시되 이렇게 나와요. 복을 주시되 하나님이 인간 자신을 복된 존재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만물까지도 그 인간을 통하여 복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받아서 잘 다스리고 잘 통치하면 모든 것들이 잘 살아나게 돼 있어요. 왜냐? 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거든요.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겁니다. 진흙 같고 먼지 같은 존재가 하나님의 생명력을 받고 살아나는 게 복이에요. 그런데 그 복된 존재가 만물 속에 들어가서 만물을 다스리니까 동물도 살아나고 식물도 살아나고 가정도 살아나고 이웃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 복의 이중 구조, 즉 아브라함 개인에게 주시고 관계를 통해 주시는 이 구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최초의 인간, 원래 인간이 받았던 그 복의 본질을 지금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회복되는 거예요. 이게 원래라니까요! 원래 복이에요. 이게 죄 때문에 잃어버렸던 복이에요. 상실되었던 복입니다. 그러니까 복이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 개인을 위해 주어지는 운수, 대통하는 개인의 행운이나 혹은 건강과 재물과 같은 물질의 대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복으로 삼으시고 또한 복의 통로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대리인, 청지기, 파트너, 동역자로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셨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복으로 만드시고 복의 통로로 만드신 거예요. 우리가 지난주에 이태후 목사님 선교사님 모시고 말씀 들었잖아요. 참 놀랍지 않습니까? 세계 최강국이라고 하는 미국 사회 안에서 미국 정부도 손을 댈 수 없는 슬램가의 낙후된 지역에 들어가서 다음 세대 청소년들을 살려내는 사역을 지금 감당하고 계시잖아요. 그게 복이지 본인이 복이에요. 자기가 복이니까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복이 되는 거죠. 노영순 선교사님도 마찬가지잖아요. 그 잠비아 땅에 가셔가지고 수요일 날부터 깁스까지 하고 오셨더라고요. 혼자서 그냥 머리도 제대로 이렇게 다 헝클어져가지고 깁스를 하고 오셨어요.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왜 그렇게 사세요? 내가 물어봤어요. 하나님이 보내시니까! 그죠? 그분 때문에 잠비아 땅 다음 세대 유치원 청소년 세대들이 살아나고 있잖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사실 겁니까? 앞으로 나만 위해 사실 겁니까? 그냥 내 자식들 내 가족들만을 위해서 하실 겁니까? 그것도 훌륭하지만 우리의 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토록 회복하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 없는 복을 구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받으시겠어요? 안 받으시겠어요? 그 기도를 받으시겠어요? 안 받으시겠어요?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해 줄 이유가 없어요.

여러분! 자식에 대한 성공! 모든 부모가 원하는 겁니다. 그죠?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의 소원이겠어요? 안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요. 하나님! 내 자식이 좀 명문대 가게 해주세요. 기도한단 말이에요. 내 자식이 제발 좀 성공하게 해주세요. 제가 하는 사업이 좀 잘 되게 해주세요. 그게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의 소원이겠냐고요? 냉정하게 생각해서 내 욕망 내 욕심 심지어는 내 과거에 씻겨지지 않은 그런 상처를 해결하기 위한 잘못된 내 욕망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그 기도를 들으시겠냐고요? 안 들으시죠! 그래서 그 기도는 쓰레기통으로 간다 하는 책도 있잖아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쓰레기통으로 가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왕이면 하나님께 복을 구할 때 하나님 나라와 연결시켜서 기도를 하세요. 하나님 제가 공부를 못하는 것보다 제 자식이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합니다. 나도 공부 안 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얘는 도대체 나보다 더 능가하는 진짜 공부 못하는 애입니다. 하나님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부 못하지만 하나님 나라 안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도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이왕이면 하나님 제 사업은 보잘 것 없습니다. 저 겨우 먹고 삽니다. 하나님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 일조차도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만나게 하셔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고 돈벌이는 좀 소소할지라도 영원히 살아나는 영적 사업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밑거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대박 맞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만 기도하지 마시고 제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기도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그곳의 복으로 삼으시고 여러분을 통하여 남들도 복 받게 되는 역사를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그 이전 세대들이 다 아담적 자아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잖아요. 대표적으로 가인 아닙니까? 아담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그 후엔 가인, 니므롯, 라멕, 11장까지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 다 어떤 사람들이에요? 다 자기 이름 내려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자기 명예, 자기 강함, 자기 능력, 풍요,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쌓아갔던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하나님이 중단시키신 거 아닙니까? 아브라함 너 일로 와! 너는 이제 앞으로 너 자신이 복이 돼! 네 자체가 복이 돼! 그리고 너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복 받게 되는 존재로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했던 분이 누구냐?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아담적 자아를 떠나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인생의 모범을 보여주셨어요.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너희도 그렇게 살 수 있다. 너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인 존재인 나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서 육신을 입고 있는 너희도 얼마든지 나처럼 살 수 있다라고 샘플을 보여주신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게 뭡니까? 그냥 예수 믿고 의롭게 돼서 천국 가는 겁니까? 그게 전부라고 하면 기독교는 너무 힘이 없는 거예요. 뭐 하러 힘들게 모입니까? 그게 의롭게 된 것의 전부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보여주셨잖아요. 예수님은 철저하게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 기도만 올려드렸어요. 어떤 자신의 안정이나 평안이나 풍요에 대해서 기도한 적이 없어요. 겨우 하루 일용할 양식 구하시고 누군가를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고 어떻게서든지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기도만 올려드렸다 하는 거죠. 왜 그렇게 하셨어요? 우리 보고 따라서 하라고!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요. 이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나에게 집중하십니까? 왜 하나님이 강남교회에게 복을 주시려고 원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중단된 하나님의 나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몸으로 시작하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분을 통하여 완성하시고자 하나님은 지금 계속해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세요. 이 부르심에 순종하셔야 돼요. 근데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으면 하나님께 안 옵니다. 그러니까 망하면 오는 거예요. 망하면 그때는 좀 늦잖아요. 망하지 않을 때 오세요. 병들고 더 이상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때 두 손 바짝 들고 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오면 할 일이 없어. 지금 오세요. 지금 부르심에 순종하세요. 내가 너를 복으로 만들겠다. 너 때문에 너의 가정이 변화될 거야. 너 때문에 너의 일터와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변화될 거야.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신다는 거예요.

 

개신교회는 중세 교회의 그 암흑기를 뚫고 나온 교회 아닙니까? 중세 교회가 잘못한 게 뭐 있습니까? 여러분! 성직자 중심으로 자기들끼리만 성경 연구하고 그게 진리라고 성도들한테 막 가르쳤죠. 결국엔 뒤로 물질을 축적한 거 아닙니까? 연옥에 있는 사람도 헌금 땡그랑 떨어지는 순간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가르친 거 아니에요? 왜요? 돈 때문에, 성당 만들려고, 개신교회는 어떻습니까? 지금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맞습니까?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까? 맞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구원받아요. 그러나 여러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겁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거예요? 진짜로 그게 믿음입니까? 정말 그게 무슨 믿음입니까? 그게 가짜 믿음이죠!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슨 믿음입니까? 가짜 믿음이죠! 마음대로 죄 짓고 이제 나는 어차피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으니까 난 세상에서 내 욕심대로 내 욕망대로 마음대로 살아도 나는 어차피 죽어서 천국 간다. 그게 진짜 믿음입니까? 가짜 믿음이에요! 그거는 잘못된 믿음이에요. 개신교회는 복의 개념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교회는 복의 개념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지금까지 병패가 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여러분 우리 강남교회 성도들이라도 복의 개념 자체를 바꾸셔야 돼요. 복의 의미는 너무나 단순하고 강력합니다. 한번 따라 읽어볼까요?

 

너 자아를 떠나 말씀을 잡고 나아가라. 너를 복으로 만들고 너를 복의 통로로 삼아 나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

 

이거 외우셔야 돼요. 말씀 붙잡고 떠나기만 해라. 그러면 내가 너를 복으로 만들고 너를 복의 통로로 삼아 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달라집니다. 돈 버는 것도 똑같이 버는 거 아니에요! 공부해도 똑같이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 결혼을 해도 똑같이 결혼하는 거 아니에요! 오래 살아도 똑같이 오래 사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폭발적으로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그 복의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