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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문산 목사(노량진 강남교회)

복의 의미(2) - 노량진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by 복음과삶 2023. 10. 30.

2023.10.29. (주일예배). 복의 의미(2). 창세기 12:1~5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세기 12:1~5)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이루시는 방법은 아브라함 자체가 뭐가 되는 거예요? . 복이 되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복이 되는 방법은 뭡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떠나는 거라고 그랬어요. 떠나야 복이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복이 되어야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6가지의 복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랬더니 또 한쪽에서 목사님 왠지 요즘에 그 말씀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아요. 가게를 옮겨야 될 것 같아요! 이사를 해도 될까요? 그 직장을 나와야 됩니까? 머물러 있어야 됩니까? 이런 질문을 하세요. . 참 곤란한 질문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붙잡고 먼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마치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점치듯이 어떤 삶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이 과연 나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내가 분명 떠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이것을 기도 가운데 발견하셔야 돼요. 기도 가운데 받으셔야 돼요. 말씀으로 들어와야 돼요. 그럴 때 이것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고 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창세기 12장에 위치해 있어요. 11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바벨탑 사건으로 마무리가 되죠. 바벨탑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그 원죄의 정점을 찍는 사건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 타락 이후에 계속해서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어요. 가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안에서도 어떻게 하면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고 그것을 이루어 왔어요. 그러니까 가인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바벨탑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민족이 공모하여 집단적으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그 원죄의 전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을 통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타락한 인간은 절대 자발적으로는 회개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모든 인류를 심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 이후에 발생했던 민족들이 회개했던가요? 하나도 변화된 게 없어요. 심판을 가해도, 그 무서운 물심판을 가해도 사람들은 절대 스스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 살았구나! 하나님이라는 분이 존재하는구나! 나 스스로는 하나님 될 수 없는 거구나! 이렇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거죠. 스스로의 갱생이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다 하는 것을 11장까지 바벨탑 사건이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그들은 그동안 축적했던 여러 가지 다양한 기술력이라든가 어떤 능력을 총동원해서 스스로 이름을 내고 하늘까지 탑을 쌓아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거죠. 성경 저자가 이렇게 증언하죠.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4)

 

우리의 이름을 내서 도시와 성을, 또 탑을 건축해서 우리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불멸의 존재임을 입증하자! 이렇게 이들이 주장했던 거예요. 여기서 결정적인 모순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복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어요. 여러분, 복이라고 하는 것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복이라고 하는 것은 떨어진다고 그러죠? 복이 터졌다. 복이 어디로부터 임했다.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스스로 복을 만들려고 하는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더구나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이미 창세기 65절에서 그 본질이 화요, 멸망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것 모든 게 악하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악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과 반대되는 말 아닙니까? 죽음과 멸망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러한 존재들이 도시를 구축하고 성읍을 쌓고 탑을 쌓아 올려서 스스로가 어떤 복된 존재임을 입증하고 만들어내려고 했다고 하는 사실이에요. 자신도 복된 존재가 아니고 또 다른 존재들에게도 복을 수여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이라고 하는 것이 임하는 건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또 모순적으로 그 복을 자기가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런 철학도 있죠? 그런 윤리학도 있죠? 내가 살기 나름이다! 맞습니까? 내가 노력하고 내가 애쓰면 복을 받던가요? 그렇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어떤 지혜서가 증언하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노력의 대가를 가져갈 수 없는 게 인생이에요. 어떤 사람은 진짜 땀 흘리도록 놀고 있는데 땀 나도록 쉬고 있는데 그 사람이 이익을 다 가져가요. 그게 지혜서의 증언입니다. 저 사람은 죄만 짓고 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자녀들까지 잘 되는 복을 받는가? 이런 것이 우리의 인생이란 말이죠.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복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복되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도 복을 수여할 수 없는 존재다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이 끝난 뒤에 곧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이 사건이 창세기 12장에 이렇게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벨탑과 이 아브라함을 강렬하게 대조함으로써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다?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복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창대케 하는 것은, 유명하게 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시 그것도 누가 하시는 거다? 하나님이 하시는 거다. 그리고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은 자기들끼리 공모해서 자기들끼리 협력하여서 거대한 도시를 구축할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도 누가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니까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12장에 곧바로 이어지는 아브라함 사건을 저자는 대조시키면서 오늘 그 사실을 우리들에게 명확하게 증언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결국 인간에게 죽음과 멸망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다. 이렇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를 꼭 기억하셔야 돼요. 다시 한 번요.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 누구다?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6번에 걸쳐 나오는 이 복의 주어가 하나님 자신이에요.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 (I will) 내가 할 것이다. 내가 할 거야. 내가 반드시 너를 그렇게 할 거야. 반드시 내가 모든 열방을 너를 통하여 이렇게 할 거야. 주어가 다 하나님이세요.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너는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너는 하지 마라. 네가 하면 망친다 그 말이에요. 내가 하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오늘 나의 바벨탑이에요. 우리 한번 크게 다시 선포해 봅시다. 이 말씀을 선포하는 거예요. 크게 하는 거예요. 잊지 않도록 시작.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인간에게 복 주시는 분이시다.” 아멘. 여러분 이거를 딱 정리해 놓고 계셔야 돼요. 여기에서 혼돈이 오기 시작하면 성경이 다 다르게 읽혀집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소용이 없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교회 열심히 다녀도 소용이 없어요. 복에 대한 개념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만 먼저 정리하세요. 복을 주시는 분은 누구다?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복되게 하신다. 나를 복 자체로 만드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몇 개의 복을 주셨다고 그랬죠? 6개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처음 아는 거죠? 6개인데 이제 좀 약간 복습을 해보도록 하겠어요. 이 복이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눠진다고 그랬어요. 2절에 나오는 복 3가지하고 4절에 나오는 복 3가지가 좀 차원이 다르다고 그랬죠?

 

첫 번째 복은 내가 너를 뭐예요?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너를 복 줄 것이다. 세 번째 내가 너의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 이건 다 아브라함 개인을 복 자체로 만드시겠다는 말씀이죠? 복의 근원으로 만드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은 생각해 보면 굉장히 놀라운 약속이에요. 왜냐하면 원래 복의 근원은 누구십니까? 복의 근원 강림하사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신데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만들겠다는 말은 곧 무슨 말이에요? 아브라함을 누구처럼 만들겠다? . 하나님처럼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원래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었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다는 말은 단순한 모조품으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고 이 땅의 피조물 중에 가장 하나님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신 거예요. 이제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 계신다. 누구를 통해서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두 번째 차원의 복은 이제 네 번째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할 것이다. 다섯 번째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받게 할 것이다. 여섯 번째는 모든 민족들은 너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삼으시겠다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복을 주시는 방법이 아주 명확해요.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만 따라가시면 돼요. 근데 사람들이 이 길을 안 따라가요. 이건 그냥 아브라함에게 하는 얘기지! 아브라함한테 해놓고 끝난 일이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격히 말하면 복 자체가 뭔지도 몰라요. 그래놓고 맨날 복... 거리는 거예요. ... 그냥 복을 달라고 뭔 복을 달라고 그러는지 그냥 달라는 거예요. 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그리고 영적인 자손인 우리들을 먼저 뭘로 만드세요? 복으로 복의 근원으로 그리고 복의 통로로 만드시는 방법으로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 같은 존재로 재창조하신다는 거예요. 신약의 원리에 의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그랬잖아요. 그죠?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제 뭐 죄 짓다가 죄 안 짓는 존재로 아주 지저분하게 살다가 착하고 깨끗하게 사는 존재로 그 정도로 변화됐다는 말씀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무너졌던 그 원래 형상이 하나님처럼 되는 그 형상이 이제야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회복됐으니까 이제는 나도 복이 되고 내가 들어가는 곳마다 다 복이 돼버려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아멘이 이렇게 작아서는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설마 나한테 이루어질까? 뭐 하러 여기 앉아 있냐고요? 나한테 이루어져야죠. 아멘이십니까? 믿으셔야 돼요.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아브라함 때의 그 원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완성돼서 우리에게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들이 철저하게 무엇과 연관돼 있다고 그랬죠? 하나님 나라와 연결돼 있어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까? 안 주십니까? 그래도 줬으면 좋겠죠? 그런 심보를 버려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는 복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왜 굳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지 않는 복을 구합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무슨 기도를 하더라도 다 무엇과 연결시켜서 기도해라? 하나님 나라와 연결시켜서 기도해라. 자식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기도가 달라져요. 무조건 1등하게 해주세요! 무조건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죄지만 나중에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이러면서 이상한 기도 안 하게 된다니까요.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연결하면 놀랍게도 내가 조금 가난해져도 내가 좀 병들었어도 내 주위에 슬픔과 고통이 찾아와도 이것이 결국 하나님 나라와 연결시켜 보면 복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국가의 3요소가 뭡니까? 국가가 국가다워질 수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있잖아요. 반드시 이 요소를 갖춰야 되는데 주권 국민 영토 맞죠? 주권이 있어야 돼요. 주권이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뜻이죠. 국가를 형성하는 의지와 뜻을 말합니다. 주권은 누구에게 있어요? 국민에게 있죠? 정치인에게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어요. 그리고 그 국민들이 실제로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그 국민들이 살아가는 실제적 땅이 영토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국가의 그 3요소를 정확하게 충족시키고 있어요.

 

첫째 하나님의 주권이 있습니다. 이게 좀 다른 점입니다. 사람들의 뜻이 아니에요. 이거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주권이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부르시는 백성이 있어요. 세 번째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 있지요. 정확하게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6가지의 복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어요.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연결이 되는지.

여러분 첫 번째 복이 뭐였죠?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그랬어요. 왜 민족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첫 번째 약속으로 주어지고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복이 목적하는 바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관심이 뭐냐?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시는데 그 복 받기 원하는 최종 목적지가 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지금 입증하고 있는 거예요. 이 민족이라고 하는 단어는 성경에 지금 처음 나옵니다. 고의(גּוֹי)라고 하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민족 백성을 쓸 때는 암(עַם)이라고 하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여기선 독특하게도 고의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거는 가족들 친족에 가까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가족을 불러모으시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바벨탑 사건까지를 보면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힘과 확장력을 가지고 민족이 연대하고 국가를 형성해 왔다면 하나님은 이제 아브라함 같은 사람들을 부르시는 부르심의 방식으로 민족을 형성하여 영적 백성을 당신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겠다 하는 것을 이 첫 번째 언약에서 보여주시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첫 번째 언약은 나머지 모든 복의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첫 번째 목적에서도 언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 복을 주시는 목적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깨달아야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왜 그 복을 나에게 주셔야 하는가? 왜 물질의 복을, 건강의 복을, 자녀의 복을, 하필이면 왜 나에게만 주셔야만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반드시 그 이유가 어디하고 연결돼야 된다고요?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돼야 된다. 안 주시면 어떻게 하는 거예요? 기다리면 돼요. 끝까지 안 주시면요? 안 주시면 말고요.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아닙니까? 반드시 주셔야 돼요. 나한테만 꼭 주셔야 돼요. 그럼 그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나한테만 주셔야 됩니다. 왜요?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거니까요.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거니까요. 그렇게 기도하시는 거죠.

 

두 번째 복은 뭡니까? 네게 복을 줄 것이다. 여러분! 이게 왠지 이게 중복되는 것 같아요. 왜냐? 전체적인 것도 복이고 또 복이 될지라고 하는 명령이 따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복이 뭐냐 하면 네게 복을 줄 것이다. 그 말은 뭐냐면 그동안 이 땅의 모든 인류가 저주와 죽음 아래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특별히 가인 이후에 모든 인류는 떠돌며 방황하는 운명을 마주하고 말았어요. 그들이 아무리 도시 문화를 건축하고 성을 쌓아도 소용이 없어요. 다 폐허 위에 억압 위에 노예 됨에 그 근본 위에다가 성을 쌓아가는 거예요. 유리하며 방황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데 그런 저주 아래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장소다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멸망과 저주 아래 있었지만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 구원과 생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 계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어디 가도 저주받지 않아요. 앞으로 어디 가서 살아도 상관이 없어요. 여러분! 크리스천들이 이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그쪽으로 옮겨갔더니 터가 안 좋아요! 무슨 말이에요? 도대체! 터가 안 좋은 데가 있어요?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 저주에서 벗어나 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어딜 가든 선포하고 사셔야 돼요. 그리고 다른 사람 다 망해도 여러분이 들어가면 거기 복으로 변화돼야 돼요. 아멘.

 

세 번째 복이 뭡니까?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고 했어요. 이 말은 단순히 그 사람을 유명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에요. 단순히 성공해서 세상에서 이름 날리게 하겠다 그런 뜻이 아니고 정확한 뜻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뜻이에요. 고대 근동부터 또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이름이 기억된다는 뜻은 불멸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멸.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바벨탑 쌓았던 사람들이 그토록 자기 이름을 내려고 했던 거예요. 이런 명성을 통해서 이런 거대한 문화를 통해서 이 문화를 누가 만들어냈다! 이 가문은 누구누구의 가문이다! 그런 식으로 영원한 불멸의 삶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런 방법은 안 된다는 거예요. 누가 기억하신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기억하신다. 여러분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 이야기 읽어보면 이름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집단 대명사 그들은 이렇게만 나와요. 이름이 잊혀진 거예요. 사라진 거예요. 결국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어서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의 이름인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책에 기록된 분들이죠? 이것만으로 충분하죠? 내 이름은 지금 생명책에 기록돼 있구나. 그 뜻은 뭐냐! 하나님이 날 기억하신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영원히 산다는 거예요. 믿으십니까? 그러니까 이 땅에서는 오래 사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너무나 빨리 갈 경우에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땅에서의 그런 사명들 소명들 그런 것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나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영원한 존재잖아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오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 산 자의 찬송을 받으시리로다. 어떻게 죽은 자의 찬송을 받겠어요?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영이 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산 자의 찬송을 받으시는 것이지 음악을 잘하고 외모가 출중하고 소리가 좋고 이런 걸 받으시는 게 아니잖아요. 영으로 받으시는 거잖아요. 그게 이름이 기억된다는 놀라운 뜻입니다. 그 이름만이 살아있는 이름만이 살아계시고 영존하신 하나님을 유일하게 찬송할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지금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여호수아가 참으로 놀라운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됩니다.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전쟁에서 패배하고 이제 끝장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올리게 돼요.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여호수아 7:9)

 

이게 여러분 굉장히 당돌한 기도예요. 쉽게 말하면 뭡니까? 아니 당신의 백성들을 다 이 땅에서 잘못했다고 멸하시면 앞으로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한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세도 그런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이러세요! 이런 백성인지 모르셨어요! 하나님! 이 사람들을 잘못한다고 여기서 광야에서 다 죽이시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이런 원리가 교회의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어요.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손가락질합니다. 오히려 교회가 없어져야 세상이 밝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짜증 내고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요.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여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머리 되신 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의 피를 이어받은 그리스도인의 그 이름을 통하여 오늘도 찬송받으시고 영광 받으시고 이 땅을 복되게 하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네 번째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을 준다 그랬어요. 다섯 번째는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한다 하셨어요.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저주라고 하는 단어예요.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들에게 내가 저주하겠다고 했는데 앞에 있는 저주와 뒤에 있는 저주는 다른 단어입니다. 이 앞에서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그 저주라는 뜻은 칼나(קְלָלָה)라고 하는 히브리어인데 정확한 뜻은 가볍게 여긴다, 경시한다, 멸시한다, 깔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반대말은 카베드(כָּבֵד) 무겁게 여긴다,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원래 사람을 저주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멸시하는 거죠, 깔보는 거죠. 그런 존재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 아라르(אָרַר) 이건 저주하는 거예요. 실제로 저주예요. 가인을 저주할 때나 이렇게 실제로 하나님께서 저주할 때 이 단어를 써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아브라함을 앞으로 깔보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하찮게 여길 경우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아라르. 저주해 버리신다는 거예요. 이런 강력한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흥미로운 건 뭐냐 하면 축복하는 자들은 복수로 나오고 저주하는 자는 단수로 표현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 겉으로는 아무리 강력하고 아무리 많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단수라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복되게 하는 존재들은 앞으로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여러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백성을 저주하는 그 배경에는 사탄이 있어요.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려고 멸시하려고 하는 거죠.

 

여섯 번째 마지막 복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복 자체가 될 뿐만 아니라 복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죠. 그죠?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복 받게 하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누구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예요. 또 어떤 방법이냐 하면 아브라함을 복으로 만드는 방법이에요. 그 외의 방법이 성경에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복이 되게 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세상이 복 받도록 만드셨다 그 말이에요. 다른 방법 없어요. 그렇다면 만약 내가 우리 집안에서 예수 믿는 처음 사람이다. 내가 교회 다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그 가정은 누구를 통하여 복이 들어가겠어요? 나를 통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복이 들어가는 겁니다. 믿으십니까? 배우자가 예수를 안 믿어요. 그래도 배우자가 살아있는 건 누구 때문이다? 여러분 이런 자부심 없어요? 여러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친족도 마찬가지고 우리 교회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노량진 땅은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믿음을 가지셔야만 해요. 그게 복의 원리예요. 다른 방식으로 임하는 건 뭐예요? 목사님 그거는 복이에요? 아니에요? 예수를 안 믿는데 너무 잘 돼! 그 집안은 너무 잘 돼! 모든 게 잘 돼! 복이에요? 아니에요! 아닌 걸 왜 그렇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중에 부자 되면 교회를 안 다니는 거예요. 자식들 대학 가면 그 자식이 교회를 안 나와요. ? 부모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을 복이라고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대학 가보니까 변화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게 복이에요? 이제는 정리합시다. 그건 복이 아닙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복이 진짜 복입니다. 이와 같은 복의 원리를 신약에서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설교했어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둘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3:25~26)


신약에 와서도 복의 원리가 똑같다는 말 아니에요? 너희들에게 복 주시려고 예수를 보냈다. 아브라함의 씨앗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 받게 하겠다는 그 언약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종을 이 땅에 보내사 너희로 먼저 회개하게 하시라고 한다. 왜요? 복 주시려고! 초대교회가 이 말씀을 받았어요. 여러분! 초대교회의 역사를 읽어보면 복이 터져버려요. 복이 폭발해버려요. 모이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흥왕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병마가 떠나가고 귀신이 떠나가고 지도자 그룹에 있었던 대제사장들조차도 예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로마가 대세계 평화를 주창하는 그때에도 진정한 평화를 구축했던 새로운 공동체가 막 여기저기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어요. 복이 막 터져버린 거죠. 지금은 왜 교회가 이토록 많은데 성도들이 이토록 많은데 가정은 변화되지 아니하고 이 나라와 민족은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지 않습니까? 왜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말합니까? 왜 내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사탄은 그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거든요. 오래 살아라. 그냥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살다 가거라. 그게 복이다. 그냥 네 자식들 잘 되는 거 그냥 그게 복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죠. 근데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 초대 한국교회도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우리의 조상 우리 선배들도 그렇게 살지는 않았어요. 이 노량진 땅 강남교회를 통해 복음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났어요. 대한민국 온 땅에 복음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났어요. 그렇게 가난하고 못 배우고 어려웠어도 서로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이끌어갔어요. 바울이 이걸 또 한 번 천명하고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8)


여러분! 이게 이신칭의 아닙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서 복을 받는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사람들은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대신에 여러분 이름 넣으면 돼요. 아브라함 너로 말미암아 이방이 복 받을 것이다. 고문산 너로 말미암아 이방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로 말미암아 가정이 복을 받고 일터가 복을 받고 지역사회와 대한민국 세계 열방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넣어서 그대로 기도하시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복은 누가 주신다고요? 하나님이 주신다. 어떤 방법으로 주십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으로 만들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똑같이 오늘도 하나님은 나 같은 존재를 아브라함처럼 부르셔서 복으로 만드시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가는 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이 6가지의 복이 창세기 12장부터 구약 전체를 읽어보면 이 약속이 하나하나 다 증명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구약의 시기를 통해 완전히 완성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에 오심으로 이 복이 이제 폭발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어요? 폭발 이후에 서 있어요. 다시 폭발시키셔야 돼요. 안 그렇고 종교생활로, 신앙생활로, 교회생활로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하면 사탄에게 다 속는 거예요. 오늘부터 이 말씀 꼭 붙잡고 하나님! 내가 복이 될래요! 진짜 복이 되게 하셔서 복이 나의 삶 속에 터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