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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문산 목사(노량진 강남교회)

땅의 의미 - 노량진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by 복음과삶 2023. 11. 13.

2023.11.12. (주일예배). 땅의 의미. 창세기 12:5~9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세기 12:5~9)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이 사건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아담에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제1 경륜 시대가 이제 마무리가 되고, 그 안에서 시작되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지나가고,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경륜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신다는 그런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국가가 형성되기 위해서 주권, 국민, 영토가 필요하다고 그랬는데 그 세 가지 조건에 정확하게 부합되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 즉 주권을 세우셨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부르심의 방식으로 아브라함, 그리고 그의 씨앗들, 후손들을 백성들로 만들어가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고 있는데 이제 그 씨가 앞으로 머물러야 하는, 살아가야 하는 그 땅의 실체가 오늘 세 번째로 본문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은 어떤 땅이었습니까? 121절에 보면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이에요 이미 보여주셨어요? 아직 안 보여주셨어요?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이에요! 그죠? 아직 안 보여주신 땅이란 말이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땅을 일방적으로 정하신 겁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걸 두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8)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이 시점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시에 최강대국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대표적 도시인 우르와 하란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음을 볼 때에 적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The Promised Land)은 사람의 힘으로 세워진 도시나 강력한 문명은 아니라고 하는 점이죠. 하나님이 정하시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땅, 그 땅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땅, 세상 사람들이 꿈꾸고 만들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벗어난 변방의 가나안 땅을 하나님 나라의 땅으로 정하셨다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 오늘 5절의 말씀 보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이 지나간 장소를 성경이 특별하게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에 명시된 그 장소만 지나갔겠습니까? 그런데 유난히도 성경 저자는 오늘 본문 5절에서 9절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세 장소를 거쳐 갔음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죠. 어디입니까?

 

먼저 세겜이라고 하는 땅이에요. 그다음이 벧엘이라고 하는 땅입니다. 나중에 마지막 절에 보니까 남방으로 갔다! 남방! 헤브론이라는 곳이에요. 네게브라고도 말하지만 네게브라고 하는 고유명사가 있기 때문에 성경은 여기를 그냥 남방이다!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어요. 헤브론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작 자신이 어디로 지나갔는지 몰랐겠지만, 창세기 저자는 이 지역들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나안 땅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오늘 우리들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가 한 기원전 이천 년 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사천 년 전이 되겠네요. 주로 가나안의 중앙산지와 남부 사막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6절이 밝히고 있고 따라서 아브라함은 일종의 이방인으로서 외부인으로서 소유한 땅 하나도 없이 그냥 외곽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우린 추측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이 땅이 중요하냐 하는 것이죠! 세겜, 벧엘, 남방이라고 하는 장소가 왜 성경 저자의 관점에서 중요하냐! 하는 것입니다.

 

지역적으로 가나안 땅을 놓고 봤을 때 세겜, 벧엘, 남방, 이곳은 정확히 지도상에 북부, 중부,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당시에 아주 중요한 거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무엇을 합니까? 6~7절에 보니까 아브람은 세겜에 이르러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창세기 12:6~7) 하나님께 처음으로 단을 쌓습니다. 예배의 단을 쌓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8절에 가보니까 베델 동편에서도 역시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배한 거죠! 기도한 거죠! 그리고 마지막 9절에 보면 남방으로 내려왔는데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1318절에 가보면 여기서도 여호와께 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남방 지역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냐 하면 나중에 창세기 23장에 가보면 아브라함이 바로 여기에서 땅을 하나 사게 돼요. 그 땅이 뭐냐 하면 마므레 막벨라 굴이라고 하는 땅입니다. 나중에 사라의 무덤으로 사용이 되겠죠! 2318절에 가보면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창세기 23:18) 어떻게 됐다? 확정되었다. 뭐가요? 이 마므레, 이 막벨라 굴이 아브라함이 그 땅을 삼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땅은 앞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땅이야라고 증인이 보는 데서 확정됐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성경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남방 헤브론이라고 하는 곳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것이죠. 지도를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으로 옮기십니다. 그런데 세겜, 벧엘, 헤브론이라고 하는 지명을 성경 저자는 강조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이 장소가 왜 중요하냐!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 나라의 씨앗인 바로 아브라함을 통하여 바로 여기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땅으로 하나님이 만들어가고 계시기 때문에 여기가 중요한 것이에요. 특히 이 세 중심 거점은 아브라함이 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영적인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광대한 계획을 보여주는 지역들이에요.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이 이끄신 대로 이곳들을 지나면서 하나님을 섬겼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그냥 아브라함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신앙 이상의 구속사적 계획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사용하셨다는 점이에요. 나중에 세겜과 벧엘과 남방이라고 하는 지역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 즉 이스라엘로 나중에 바뀌죠. 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가 깊어지고 완성되는 지역으로 발전이 됩니다.

 

결국에 또한 수백 년 이후에 가나안 땅을 떠났다가 애굽에 오래오래 살다가 나중에 돌아온 출애굽 하는 후손들에게 있어서 이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 종교적, 영적 근거가 마련이 되고 있는 거예요. 도표로 보겠습니다.

 

세겜! 오늘 본문에 등장하죠? 벧엘 동편, 그리고 남방, 네게브입니다. 오늘 본문에 관련된 아브라함이 구속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처음으로 세겜의 단을 쌓습니다. 벧엘 동편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요. 또 남방에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1318절에 가보면 여기에서도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근데 더 중요한 건 뭐라고 그랬죠? 여기서 나중에 이곳에서 땅을 하나 구입하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이것이 야곱의 이야기에도 고스란히 반복이 되고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창세기 33장에 가보면 야곱이 밭의 일부를 사서 여기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단을 쌓습니다. 또 여기서 가족들에게 우상을 척결할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여기 밑에다가 이렇게 묻어버려요. 벧엘 동편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 기둥을 세우게 되는데 거기가 바로 벧엘 동편입니다. 나중에 남방 네게브로 헤브론으로 야곱이 이르게 되었다라고 성경이 이렇게 암시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대로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그 길을 야곱이 그대로 걸어가요. 그다음에 나중에 수백 년 이후에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 땅을 그대로 밟게 됩니다. 세겜에 들어와서 에발산에 단을 쌓고요. 우상을 버리라고 명령하고 거기에 상수리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우게 되고 벧엘 동편에 여호수아가 첫 점령에 치고 들어간 지역이 바로 중앙에 있는 벧엘 동편이죠. 그리고 나중에 보면 남방 북부로 흩어져서 위아래를 점령하게 됩니다.

 

정리해 드리면, 왜 성경 저자가 아브라함이 걸어가는 이 지명을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느냐! 나중에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고 있는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볼 때 또한 모세 오경을 기록하고 있는 모세의 관점으로 볼 때에 즉 가나안 정복 전쟁이 눈앞에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정복해야 할 장소가 앞으로 어디라는 거예요? 바로 이 세 부분, 중앙, 남방, 북방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 세 부분에 대한 세 번의 정복 전쟁이 정확하게 치러지고 그 거점이 바로 세겜, 남방, 벧엘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무런 소유권 없이 무작정 가나안 정복 전쟁으로 들어갔는가! 나중에 그냥 정복 전쟁을 하다 보니까 여기는 과거 아브라함이 땅을 샀던 곳이네! 단을 쌓던 곳이네! 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거지요? 그게 아니라, 정확한 구속사의 관점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브라함이 걸어가고 예배드렸던 그 장소를 정확하게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난한 정복은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 아브라함의 땅(막벨라 굴), 즉 하나님 나라의 땅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며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머물렀던 곳(세겜, 벧엘)에 대한 하나님 나라 회복 전쟁이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또 이 말씀을 악용하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이 정당하다라고 하는 유튜브를 끊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자꾸 유튜브에 귀를 기울이고 유튜브가 진리 있냥! 오늘 이 설교 나가면 분명히 유튜브 뜨게 돼 있어요. 여러분, 그건 신약의 영적 의미하고 완전히 반대되는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이 정복 전쟁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의 언약의 관점에서 이 역사 속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거예요. 여호수아와 모세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전쟁이 가나안 정복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은 자연스럽게 그의 후손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고 준비하고 계셨던 거예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요 우연인 것처럼 느껴져요. 내가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그 집안에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오게 됐을까! 나는 그 서울에서도 왜 노량진으로 와서 강남교회를 다니게 됐을까! 나는 왜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게 됐을까!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은 사실은 하나님의 필연이라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요! 지금도 곳곳에서 주목하고 계시는데, 어디를 주목하고 계시느냐? 예배하는 곳, 기도하는 곳, 찬송이 울려 퍼지는 곳을 세상 그 어디라도 주목하고 계시고 그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내 가정에 혼자 예배드리고 있다! 나 혼자 예수 믿고 있고 외롭게 기도하고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기도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이 그 가정을 지키고 계시고 그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반드시 바꾸실 것이고 그 사람이 가는 곳, 직장 어디든지 간에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원리는 똑같아요.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 안에서 아브라함의 역할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광대한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시고 진행하고 계셨던 거예요. 우리도 그냥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면 돼요. 오늘 예배드리는 날이면 예배드리고 오늘 가정을 지키는 날이면 가정을 지키고 일터로 나가라고 하면 그냥 일터에 나가서 일하고 그러면 되는 거죠.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그 위대한 비밀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하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돼요. 우리의 시각이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이라고 하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시각과 같아지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 신앙, 여호와 신앙이에요. 안 그러면 여러분 그건 종교 생활이에요. 지난주에 소개했던 무속, 유교, 불교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뭘 바꿔야 된다고요? 이 시각을 바꾸셔야 돼요. 자꾸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시각을 성경에서 확인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전인수격으로 다 해서 붙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알든지 알지 못하든지 간에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거예요. 그 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결국 나를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에요. 초라해도 괜찮아요. 부자라도 괜찮고 가난해도 괜찮고 건강해도 괜찮고 병 들어도 괜찮아요. 못 배워도 괜찮아요. 그러나 그런 주어진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믿는 사람을 통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일만 하면 돼요. 고문산은 고문산 일만 하면 되요. 여러분은 여러분 일이나 하세요. 좀 제발 자꾸 애들 신경 쓰지 말고, 본인은 공부 안 하면서 맨날 애들한테만 공부하라 그러고 또 공부 안 하면 집어 던져버리고 깨뜨려버리고 그러지 마시고 그래야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남은 생애 동안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요 우리 신앙인들이 걸어가야 할 신앙의 여정을 그대로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는 방식을 아주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꼭 이 말씀을 붙잡으시고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셔야 돼요. 일주일 동안 이걸 가지고 기도하시는 거예요. 새벽에도 그 새벽에 주신 말씀도 있지만, 주일날 선포되는 말씀이 내 말씀이 되도록 그 말씀 붙잡고 기도하시길 축복합니다.

 

첫 번째 방식은 뭐냐면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방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부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 부르셨다고요? 복으로 부르셨습니다. 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복의 통로 복으로 부르신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나는 부름 받은 존재다.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부름 받은 존재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다. 그죠? 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그가 따라갔고이렇게 나오잖아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나님 나라의 씨앗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아멘이죠. 아브라함 이전에 땅의 사람들 보세요. 자신의 강력한 힘과 눈부신 화려함을 따라 바벨탑을 중심으로 모인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 예수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삶의 방식을 갖는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뭐라고요? 하나님께 단을 쌓습니다. 벧엘 동편으로 이동해서 또 단을 쌓고요. 마지막 남방에 가서도 여전히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죠.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는 고백이에요. 내가 과거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였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땅을 나그네처럼 살다 보니까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살아갈 이 땅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을 가지고 단을 쌓는 거죠.

 

세 번째 삶의 방식은 뭡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בָּנָה)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בָּנָ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세기 12:7~8) 여러분 바벨탑을 쌓았다는 말과 단을 쌓았다라고 할 때 사용된 이 동사가 똑같아요. 바나(בָּנָה)라고 하는 말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탑을 쌓든지 도시를 건설하든지 가문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의 단을 쌓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일평생, 아니 유일하게 영원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입니다. 예배자로 거듭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 땅에 수없이 정착하며 이 땅에 영원하기를 소망했던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가죠.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거기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창세기 12:8)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장막을 쳤다라는 이 8절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요.

 

네 번째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장막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 장막이 뭡니까? “이 육신 장막을 떠날 때도임시 처소란 말이에요! 텐트란 말이에요! 이 땅에 수없이 정착하며 영원하기를 소망했던 그 바벨탑의 무리들과는 다르게 아브라함으로 시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며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이라고 표현했어요. “믿음이게 믿음이다.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믿음으로 그(아브라함)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브리서 11:9~10)

여러분 무엇이 믿음입니까? 이 땅을 남의 땅인 것처럼 사는 게 믿음이에요. 이 땅을 오늘 밤에라도 당장 떠날 사람처럼 사는 게 믿음이에요. 영원히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사는 것, 믿음과 정반대의 삶의 방식이에요.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마치 자기는 이방인인 것처럼, 짐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오늘 하룻밤만 잠자고 떠날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는데 히브리서 저자는 그걸 믿음이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동일한 약속을 받은 자기 아들과 자기 손자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믿음이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며 살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땅 늘리지 마세요. 집 늘리지 마세요. 건물 늘리지 마세요. 그거는 기독교인들이 사는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시면 받으세요. 억지로 가지 마세요. 그게 마치 자녀들에게 복인냥!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인양! 그렇게 삶으로 가르치지 마세요. 절대로 자녀들의 마음속에 믿음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제 앞으로 거부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서 자신의 돈을 가지고 산 건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게 뭡니까? 나중에 헤브론 땅 가서 마므레 숲에 있는 막벨라 굴, 여러분 굴이 뭐예요? 무덤이에요, 무덤. 무덤밖에는 사지 않았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의 삶이 끝난 이후에 저 영원한 진짜 도시, 도성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그가 가졌기 때문에 그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받고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전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배이며 우리 남은 생애가 하루가 됐던, 몇십년이 되었던, 마치 오늘 밤에 떠날 사람처럼 그렇게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게 될때에 이것을 믿도록 하시고, 또 믿은 대로 살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