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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문산 목사(노량진 강남교회)

하나님 감사합니다 - 노량진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by 복음과삶 2023. 11. 20.

2023.11.19. (주일예배).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편 136:1~26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1~26)

 

누가 보더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데 감사를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또 반대도 있죠. 누가 보더라도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둘 중에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인생이 어차피 내가 노력한 대로 주어지는 거고 살아봤자 100년인데 그게 그거지 반복일 뿐이지 하면서 모든 상황에 대해서 밋밋하게 그냥 지나가십니까? 아니면 뭐 하나라도 심지어는 내가 때로는 손해 보고 상실되고 뭔가 피해를 보는 그 상황조차도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살아가시는 그 은혜 의식 아래 살아가는 분들입니까?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 특히 절기 설교가 쉽지 않아요. 특히나 감사절 설교는 준비할 때마다 고민이 생겨요. 왜냐하면 보통 한 해를 돌아보잖아요. 그러면 감사의 조건이 막 넘쳐야 되는데 이상하게 슬픈 일이 자꾸 떠올라요. 가슴 아픈 일이 떠올라요. 대체로 성도님들이 안전하시고 평안하고 올 한 해 잘 오셨는데 또 작년에 코로나에 비하면 올해는 얼마나 감사한 계절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에게는 어떻게 감사를 말씀드려야 할까! 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불평할 수밖에 없고 원망할 수밖에 없고 답답할 수밖에 없는 그 떠오르는 그 성도님들에게 과연 이 감사에 대해서 어떻게 설교를 할까 참 고민이 됩니다. 물론 고난에도 뜻이 있다고 하죠. 보통 이렇게 경험해 보셨겠지만 성도들은 편안할 때보다는 고통당했을 때 그리고 작은 고난 말고 진짜 내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런 극도의 고난이 물밀처럼 갑자기 밀려왔을 때에 그때 하나님께 매달리게 돼 있어요. 그때 열심을 내게 돼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요. 하나님의 이름을 그때 더 크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다가 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죠. 전에는 그냥 설교 나만 듣고 좋다 그런 말씀이 있었구나 하는 것도 기도하다가 받으면 마치 비수처럼 내 심장에 꽂히게 되고 내 삶을 산산히 부서뜨리는 경험도 하게 되어서 고난도 성도에게 유익하다라는 말까지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 고난을 당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도 갑자기 고난을 당하면 너무나 엄청난 고난을 하루아침에 당하게 되면 쉽지가 않아요.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난, 뭐가 하나 끝나면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그래서 평온한 시간조차도 불안하게 되는 그 시간에 내가 이 고난을 신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감사하는 단계까지 나간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분들은 감사하시기를 바라고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이건 감사할 수 없다라고 하는 그런 분들조차도 오늘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의 메시지를 문자적으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는 성경이 오늘 시편 136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다시 보면 아시겠지만은 26절로 구성되어 있는 성경에 26번이나 감사하라고 하는 명령문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어요.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그래도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감사하다.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의 감사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보세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분들 이 말 들으면 감사할 수 있으세요? 아니 고난 중에 없더라도 감사절을 맞이한 우리 강남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정말 이 안에서 감사함이 나옵니까?

 

여기서 인자심이라고 하는 이 말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브리어 헤세드라고 하는 말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헤세드사랑, 인자, 성실, 긍휼, 진실함, 친절함, 다양하게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 때 하나님은 그냥 넉넉하신 분이구나! 하나님은 그냥 죄를 지어도 용서하시는 관대한 분이시구나! 내가 잘못해도 철없는 아이가 잘못한 거니까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그런 넓은 품의 아버지시구나라는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헤세드라고 하는 단어는 성경적인 문맥에서 보면 언약적 사랑을 말합니다. 무슨 사랑을 말한다고요? , 언약적 사랑이에요. 언약에 묶여 있는 사랑이에요. 그냥 사랑이 아니에요. 그냥 친절하심이 아닙니다.

 

이 언약적 사랑, 헤세드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호세아서입니다. 호세아서는 선지자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멜하고 결혼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억지로 결혼한 거예요. 사랑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창녀 같은 여자하고 결혼한 겁니다. 그럼 결혼하고 나면 정신 차리고 살아야 되는데 또 바람을 피워요. 제발 바람 피우지 말라고 집에다가 장애물을 다 설치해 놓니다. 철조망하고 가시 숲을 만들어 놓는데 결국에는 그것을 넘어서 살이 찢기고 피가 나도 밖에 나가서 바람을 피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또 데려오라는 거예요. 헤세드의 사랑을 가장 노골적이고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호세아서입니다. 그 인자하심, 그 헤세드의 사랑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어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브라함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셔서 나를 불러주셨어요. 뭐로 부르셨습니까? 아브라함은 복으로 부르셨지만은 언약적 사랑 안에서는 하나님의 파트너로 언약의 파트너, 더 쉽게 말하면 결혼의 당사자, 배우자로 우리를 부르신 거예요. 그래서 그 아무 조건 없는 나를 불러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살아가야 하는데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배신하고 세상으로 나가서 자기 마음대로 영적 간음을 일으키는 그런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여 끝까지 따라오셔서 그 언약을 이루시는 사랑, 그게 뭐예요? 바로 그 헤세드의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헤세드의 사랑이 영원하다. 그러니까 안심해라. 어떤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과 함께 시작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거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라. 오늘 시편 기자가 우리에게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과 3절의 말씀에 보면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에 대하여 감사하는 걸 보게 돼요. 2절에 보면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3절에 가보면 주들 중에 뛰어난 주님께 감사하라.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여러 명이다 그런 게 아니죠. 우리의 주인들이 여러 명이다, 그런 말이 아니에요. 진짜 하나님은 한 명밖에 없어요. 독존(獨存)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주인도 한 분밖에는 없죠! 근데 이걸 히브리어적으로 최상급으로 표현한 거예요. 최상급으로 가장 뛰어난 유일하신 하나님, 결국에는 모든 상황들을 최종 결정하실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고백하라, 감사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하셨는가에 대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감사절을 맞이해서 올 한 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뭘 해주셨나! 그러면 솔직히 감사한 것보다는 섭섭한 게 먼저 떠오르게 돼 있어요. 100개 중에 99개를 다 해주셔도 한 개 안 해준 것 때문에 섭섭해요. 그건 진정한 감사가 아니에요. 진짜 감사는 뭐냐 하면 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요.

 

여러분!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까? 사실 끝이잖아요. 그걸로 맞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세요. 모든 걸 책임지고 계세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해도 감사할 수가 있어요. 무엇을 주셔도 감사해요. 적게 주셔도 감사하고 많이 주시면 더 감사하고 안 주셔도 감사해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안 주셔도 감사할 수가 있어요. ?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내 기대 이상으로 채우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감사의 내용보다 감사의 대상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 하나님 계신 것만으로 오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제 시편 기자가 이 해세드와 관련해서 언약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관해서도 세 차원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시편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씀에 비하여서 인간의 어떤 응답적인 차원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율법의 말씀, 계시의 말씀을 하늘로부터 우리 인간들에게 내려주시잖아요. 그런데 시편이라고 하는 언어는 아주 독특하게도 그 말씀을 받고 기도하는 중에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예요. 인간의 응답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편은 대체로 편안할 때 기록됐겠어요? 고난의 상황에서 기록됐겠어요? 거의 다가 고난의 상황에서 기록된 시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가장 많이 기록된 것으로 봐요.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 이 노예 생활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 속에서 그들의 삶을 지탱해 준 말씀이 바로 오늘 시편의 언어인 것이죠. 그래서 기억하는 거예요. 되돌아보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셨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과연 과거에 어떻게 하셨나 하는 것을 세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하며 감사하라고 하는 거예요.


첫째는 4절부터 9절까지 보면 창조의 하나님이 소개되고 있어요. 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10절부터 15절까지 보면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16절부터 22절까지 보면 여기는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창조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완전한 3종 세트 만드실 뿐만 아니라 구원해 주시고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거예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생활의 기반이 환경이 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죠. 땅과 하늘, 바다, , , , , 공기, 사계절, 자연 모든 만물들이 사실은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것들이에요. 이러한 창조의 환경 속에서 우리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물 귀한 줄 모르고 공기도 별로 고마운 줄을 모르는데 이게 진짜 우리 노력으로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들입니까? 불가능한 거예요. 그냥 우리끼리 약속을 하고 거래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네 거다, 내 거다, 싸우고 있는 거지.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없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를 창조하셔서 이 땅에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감사하십니까? 하나님 왜 저는 여기 태어났죠? 아니 이왕이면 금수저 가지고 태어나게 하시지! 저는 왜 하필이면 이런 후진 동네에 태어났나요? 나는 왜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나요? 혹시나 원망하시지는 않습니까? 오늘부터는 거울을 보시면서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 놓으셨나요? 정말 내가 봐도 이렇게 기막힌 작품 이렇게 짧아도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만드셨습니까? 그렇게 약하게 생겨놓고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셨나요? 어떻게 애를 3명이나 낳는 그런 또 다른 창조자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나요? 사실은 이게 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에 의하여 가능한 거잖아요. 우리가 가족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힘들게 하는 자식들이지만 사실 귀하잖아요.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손길을 통하여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위대한 작품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도 하나님이 주시고 있어요. 우리는 언제 이렇게 숨 쉬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맨날 한숨만 쉬고 우리는 언제 이렇게 숨을 이렇게 쉬면서 야 숨 쉬는 게 이렇게 좋구나! 야 이렇게 자가호흡을 할 수 있는 게 이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구나. 숨 쉬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구나. 우리는 언제 이렇게 밥을 먹으면서 이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것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에 이 능력주의라는 게 요즘에 지배하고 있어요. 사람은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다. 노력하는 보상을 받는다. 근데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노력하면 노력한 대가가 주어지나요? 청년들 열심히 공부하면 다 명문대 가요? 그게 공로주의고 능력주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감사가 없어요. 다 자기의 노력으로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의 노력으로 안 되는 건 다 우연이고 다 팔자야.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조차도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심을 꼭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을 필연적인 결과로 만들어 가시는 분! 창조주 하나님이세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 돼요. 나를 만드신 분 하나님! 그래서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 누구? 하나님! 따라서 모든 것을 책임지실 분도 누구다? 하나님이시다.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사실은 내가 이룬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사람 만나게 하셨고 자녀들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 가정에 보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가정을 만드신 분은 누구다? 하나님이시다. 이 가족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 가정을 책임지실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라고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게 될 때 여러분 안에 진정한 감사가 넘치실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10절에서 15절까지의 고백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시편 저자는 특별히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여러분 출애굽기 읽어보면 열 재앙 사건 나오죠? 그런데 유난히 한 가지 최종 재앙에 집중하고 있어요. 애굽의 장자를 치신 사건이에요. 애굽의 장자라고 하는 것은 당시에 태양신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이에요 신. 다른 어떤 자연적인 기적에 대해서는 애굽 사람들이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궁궐에 있는 애굽의 장자가 그것도 왕의 아들이 죽었다, 생명이 죽었다 라고 했을 때에 모두가 다 충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언약 때문이에요. 헤세드 때문이에요. 뿐만 아니라 홍해를 건널 때에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인 애굽의 군사들을 수장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누구 때문에? 당신의 백성 때문에, 백성과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거죠.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홍해를 마른 땅 건너듯이 건너게 하셨어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오랜 노예 생활에 최종 종지부를 찍으신 분,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끝내신 분, 그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이세요! 지금 너희들이 그 후손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구원의 처음과 그 마지막을 하나님이 다 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도 배웠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수백 년이 지나도 잊지 않으세요. 나중에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으로 정복 전쟁을 들어갈 때 정확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의 장소들을 그대로 정복해서 들어가시잖아요. 헤세드의 하나님, 언약에 묶여 계신 하나님, 언약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장자를 죽이셨잖아요. 당신과 다름없는 그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어요. 인간의 운명에 드리워져 있는 그 죽음의 권세를, 그 막강한 죽음의 권세를 자기의 죽음으로 죽여버리셨어요. 오늘도 우리 공동체는 죽음의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슬픔은 그냥 인간적인 슬픔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벗어날 수 없는 그 영원한 어둠의 그림자, 사람들은 100년만 살고 사라질 거라고 말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 창조된 거예요. 앞으로 100년의 인생을 학교처럼 끝내다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든지 아니면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던 것처럼 영원히 하나님 없이 사는 존재로, 저주받은 존재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인데 하나님은 그와 같은 노예, 죄의 노예, 사탄의 종 되는 그 인간의 삶에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전히 종지부를 찍으시고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로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줄로 믿으시고 감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무것도 이제 더이상 주시지 않아도 아니 오늘 밤 당장에 나를 데려가시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미 찢으신 그 살과 흘리신 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세 번째 시편 저자가 17절에서 22절에서는요, 광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40년 광야 생활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시편 저자는 광야 인도 과정을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되 대신 전쟁하시는 하나님, 당대 최고의 왕들로 알려져 있는 그런 막강한 왕들을 무찌르시고 땅을 정복하시는 그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왜 전쟁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왜 그런 바산의 왕, 옥이라든가 아모리인의 그 왕 시온 그런 사람들을 왜 격파시키셨어요? 그 땅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언약 그 신실한 헤세드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 영적인 지평을 친히 만들어 가시고 우리를 위해 허락하셨음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세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여러분! 이게 믿어져야 돼요. 이게 믿어지셔야 돼요. 내가 혼자가 아니다. 내가 혼자 고군분투(孤軍奮鬪) 하다가 혼자 사라질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능력의 손을 펼치셔서 나를 보호하게 해주시고 나를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상상력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그게 신앙이에요 그게 믿음이에요? 그냥 머릿속으로만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지, 하나님은 강한 손을 펼치시지, 근데 그거는 내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 이야기지, 그러면 그건 제대로 믿음 생활하는 게 아니에요.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하셔야 됩니다. 절망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어둠의 그늘이 몰려올 때마다 기도를 하셔야 돼요.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죠. 이스라엘 백성도 건지시고 아브라함도 불러내 주시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도 강한 손으로 건져내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선포하셔야만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지배되어야만 그것이 여러분 승리하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 마귀는 지금도 교회를 공격하려고 성도들 가정을 공격해서 무너뜨리려고 영적인 지도자들을 무너뜨리려고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어요. 여러분! 그냥 평안한 게 평안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 그렇다고 여러분들에게 막 긴장하게 하고 막 두렵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인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하나님이요 여러분 대신 지금도 싸워주고 계세요. 내가 스스로의 죄 때문에 넘어져도요, 하나님은 정죄하거나 탓하지 않고 일어나라고 손을 내미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니십니까? 그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절부터 25절의 내용은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앞의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면서 필요한 것들을 끝까지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이제 마무리로 소개를 하고 있어요. 메마른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리고 불기둥으로 밤에는 춥지 않도록 그렇게 해주셨어요.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죠? 그리고 가끔은 또 뭘 내려주셨죠? 특식을 내려주셨어요. 바위를 터뜨리셔서 암반수를 먹이시는 하나님, 한 번도 그 메마른 땅을 통과하는 시간 동안에 메마른 삶이 아니었어요. 물론 노예 때 애굽의 삶과 비교하면 비유가 안 되는 삶이었겠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것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걸어갔던 그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번도 부족함이 없는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심을 체험했던 그런 기간이었어요. 우리 신명기 말씀 한번 볼까요?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신명기 29:5)

 

이게 참 신기한 일이죠? 신기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고백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굶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여러분 막 추위에 떨게 하셨습니까? 먹을 것도 주시고 입을 것도 주시고 잠잘 곳도 주셨잖아요. 그렇죠? 그 집이 내 집은 아니지만! 전세지만! 아직도 빚은 남아있지만! 남들처럼 떵떵거리고 자랑하며 살 수는 없지만! 모자라지 않게 넘치지도 않게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나눠주며 살아올 수 있도록 이 광야 같은 메마른 세상을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23절의 말씀이에요.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23)

 

여러분! 시편 136편을 긴 노래 가사라고 생각한다면, 23절의 가사는 굉장히 특이한 구절이에요. 전체 문맥에서 볼 때 굉장히 강조되고 있는 구절의 노래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서 기억하셨다. 물론 비천하다고 하는 말은 낮은 상태를 말해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상태.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처음에 선택할 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인이었잖아요. “히브리라는 말이 뭐냐 하면 히브리어로 지나간다는 뜻이에요. 정처 없이 지나간다는 뜻이에요. 물 건너고 산 건너고 그냥 지나간다는 뜻이에요. 아무 근거도 없는 민족, 전쟁은커녕 살길이 없는 민족을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맥락에서는 언약의 파트너로 합당하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살아보니까 처음부터는 아닌 줄 알았는데 불러서 살아보니까 더 아닌 거야.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파트너로서는 부적합한데 그냥 사랑해서 불렀어요. 살아본 거야! 어때요? 역시 아닌 거예요. 성경에 보면 얼마나 말을 안 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시려고 한 적도 있었어요. 여러분 살아보니까 지내보니까 그 은혜에 감사하여 감격하여 살아야 되는데 해방의 기쁨도 잠시고 그 광야를 통과하는 순간 불평으로 시간을 다 채우고 3일 길이면 갈 길을 40년을 돌아가요. 40년을 돌아갑니까? 불평하느라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감사하기는커녕 그 족속들을 비교하고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저 족속들보다 더 잘 살게 세상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하면 높일까! 그거 고민하면서 계속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시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걸 알지만! 내가 너의 존재를 알지만 내가 너의 가능성조차도 다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내가 너와 맺은 그 언약 때문에 내가 실언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하나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겠다. 그 말이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 말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그게 바로 다윗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훌륭한 거예요. 다윗은 이걸 기억하고 이렇게 기도해요.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편 25:7)

 

젊은 시절을 기억하지 마시고 뭘 기억해 달래요?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헤세드를 따라 그 언약을 따라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내가 젊은 시절에 철없이 했던 것, 예수를 믿었지만은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 시절에 내 마음대로 했던 것, 그거 기억해 주지 마시고 예수 안에서 언약대로만 나를 기억해 주옵소서. 만약 젊은 시절에 우리가 한 대로 하나님 기억하고 벌하신다면 이 중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이 자리에 못 있을 것 같아요. 아내가 요즘에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원래 우리 아내는 좀 시크한 사람이라 눈물도 별로 없고 감사하다는 말도 잘 안 해요. 근데 요즘 따라 이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뭐가 그렇게 감사해요? 여보! 나는 진짜 지나온 시간들이 요즘 따라 너무 감사하고 지금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러는 거예요. 그게 뭐가 그렇게 감사할까? 그때만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만큼 하나님께 매달려 본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만큼 하나님의 일을 간절하게 부르고 하나님을 그렇게 깊이 만났던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걱정하지 말아라. 친구가 너를 버려도 심지어는 너의 가족들이 너를 멸시하고 조롱하여도 나는 너와 함께할 거야. 내가 너의 인생을 책임질 거야. 그러나 하나님을 그 고난의 시간 동안에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왜 하나님이 하필이면 왜 나한테만 이러세요라는 시간이었지만 그 하나님이 기도 가운데 만나서 그때의 고난으로 인하여 오늘 내가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우리 아내가 셋째 딸이거든요. 깍쟁이 셋째 딸, 사랑만 받고 자라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요, 이렇게 고통당하는 분들도 이해할 줄 알게 되고 또 나눌 줄도 알게 되고 그런 사람으로 바뀌게 돼서 나는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돌아봤어요. 제가 이제 목회 10년이고 이제 후반전을 이제 출발해야 되는 그런 시점에 있는데 난 뭘 감사할까? 그런데 감사하는 게 떠오르질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감사했어요. ? 강남교회, 교회 담임이 됐으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근데 그것도 제가 생각할 때 한 3개월 갔던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지금도 돌아보니까 좋은 일이 하나도 떠오르질 않아요. 갑자기 여기서 억울한 게 막 올라오는 거예요. 나 여기 왜 왔을까! 제가요 이렇게 체중만큼이나 가벼운 사람이거든요. 몇 번을 말씀드리지만 저 심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근데 내 지나온 시간들을 10년을 생각해 보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억울하고, 그래서 안 되겠다. 그럼 올 1년을 한번 돌아보자. 1년 감사의 조건을 찾는데 아까도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잘 안 된 분들만 얼굴에 떠오르는 거예요. 아픈 어린 아이, 아프다가 떠나간 아이, 우리 아들 같은, 원래 감사절에 이러면 안 되는데 그리고 또 오늘도 가셨잖아요. 이게 너무 힘들어요. 내가 기도하면 진짜 신유의 은사라도 주셨서 바로바로 치료되시든가, 속절없이 가버리시는 거죠.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또 하나 힘든 건 뭐냐 하면 여기 우리 사역반 집사님도 계시는데 훈련을 아무리 해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거, 잘 안 변해요. 설교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사역을 나름 열심히 하고 제 젊음을 다 바쳐서 목회를 해도 그렇게 변하지 않더라고 사람들이, 그게 굉장한 좌절감으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감사한 건 뭐냐 하면 그것 때문에 겸손하고 또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물어보게 돼요, 기도하게 돼요. 하나님 왜 그래요!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 줄 아십니까? 아프냐? 그게 그렇게 아프냐? 나도 너 때문에 아프다. 내가 너 때문에 아프다! 그래 잘 안 변하지? 너도 그렇게 안 변해. 내가 너 때문에 힘들어. 그러나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고 나는 너와 함께할 거고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런 응답을 주셔요. 그런 마음을 딱 갖게 되니까 목회가 좀 편안해져요.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네가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다 하는 거잖아. 네가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요즘 들어서 약간 성도님들이 그런 말씀하십니다. 전에는 완전히 싸가지가 없었는데 약간 싸가지가 생긴 것 같다고 굉장히 깍쟁이고 굉장히 똑소리 나는 똑부러지는 여기서 그냥 모든 게 미끄러질 정도로 이렇게 그냥 빈틈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요즘에는 그래도 조금 편안해요. 목사님이 좀 편안해지셨어요. 설교도 은혜가 됩니다. 철부지 목사, 아무것도 모르는 목사,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거죠. 지금 우리 성도들 중에도 얼마나 힘듭니까!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내 배우자가 아프고 내 사랑하는 자식들이 아프고 견디기 너무 힘든 일이죠. 물질의 문제 참을 만해요. 건강의 문제도 늘 기도하지만 나이 드는 거 어떡하겠어요!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의 병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훤한 대낮에 깜깜한 밤을 살아가요. 이렇게 맑은 가을 하늘 안에서도 물속을 살아가는 그런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요! 우리가 자식이기 때문에 고난의 시간에 있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관심을 갖고 계세요. 그렇잖아요! 편안하게 잠자는 아이보다도 배 아프다고 일어난 아이에게 부모에 관심을 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여러분 그 어느 시간대보다도 그 고난의 시간 속에서 함께 하시고 가까이 계시고 끝까지 인도하심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쉴만한 물가 그리고 푸른 초장으로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하나님은 함께하시고 심지어는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는요 미리 선포하셔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는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원래가 죽을 인생에, 원래가 무능한 인생이에요. 다 알고 계시고 그래서 부르신 건데 절대 우리를 놔두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그 순간에 하나님을 붙잡으세요. 하나님이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승리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미리 선포하면 언젠가는 그 감사가 실제로 나의 분명한 감사가 될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절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것들을 완성하실 겁니다.

끝으로 시편 기자가 우리를 초대하는 것처럼 이 시편 기자의 초대에 응해서 우리도 한번 감사합니다. 한번 이렇게 선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 거예요. 감사하다는 말이 찬양하다, 노래하다, 읍조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이번 한 주간 읍조리시고 또 남은 생애도 읍조리시다보면 이 고백이 다 여러분 그대로의 삶으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크신 분이라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들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난 중에도 기도할 수 있고 응답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영생이니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