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1. (주일예배). 쪼개짐으로 열린 생명의 길. 창세기 15:1~21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5:1~21)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어요.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상숭배자입니다. 당시에 달신 난나(Nana)를 섬기고 있었던 그런 사람인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내셨어요. 이 사건은 그동안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그 인간의 욕망 내가 하나님 돼서 내 마음대로 살겠다. 내 나라를 내가 구축하겠다라고 하는 그런 원죄적 욕망에서 비롯된 그 세상 나라를 이제 끝장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겠다라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거죠. 하지만 당시에 아브라함에게 당장 축복의 길만 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그 땅에 갔는데 심한 기근을 만나고 말았어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굽 땅으로 내려갑니다. 거기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려는 그 비열하고 악한 방법을 사용했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혼내시기는커녕 벌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극심한 부자가 되게 하셔서 이집트를 나오도록 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존과 풍요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내 삶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정말로 나를 불러내신 하나님이 모든 걸 책임지시는구나! 그분께서 앞장서서 나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아브라함이 깊이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깨달았다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이어지는 사건에 그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조카 롯과의 영토 분쟁에서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그 땅을 양보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돼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14장으로 넘어가 보면 중동 패권 전쟁에 들어가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이방인에 불과했던 변두리를 살아가고 있던 아브라함이 엄청난 풍요와 함께 중동 패권을 차지하는 주인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깨달음 이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이 전쟁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영적 전쟁이 찾아옵니다. 소돔 왕 베라와 또한 살렘 왕 멜기세덱을 그가 맞이하게 되죠. 영적 전쟁입니다. 멜기세덱이 제공하는 떡과 포도주는 그가 받아먹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수받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며 십일조를 그 멜기세덱에게 드리게 되죠. 반면에 소돔 왕 베라가 제안하는 것 사람은 다 보내고 네가 취한 전리품은 다 가져가라 하는 그 제안을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하게 됩니다. 진정한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자신의 부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고백이에요. 뿐만 아니라 나의 소속이 어떤 중동 국가에 소속되거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같은 풍요로운 이 땅에 소속된 자가 아니라,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 근거를 알 수 없는 살렘 왕과 같은 이 멜기세덱이 속해 있는 그러한 나라에 나도 소속된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여기에 담겨져 있는 거예요. 여러분에게도 깨달음이 있고 반드시 그 깨달음 뒤에 고백이 이어지는 신앙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이런 과정은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가르쳐주고 있어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기 오늘 처음 오신 분도 계실 거고, 10년, 20년, 50년, 70년을 믿은 분들도 계실 텐데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먼저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부르심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모으시는 분이다. 첫 번째로 자기 백성을 어떻게 하신다고요? 부르시는 하나님. 여러분! 부르심을 받으셨습니까? 아멘이시죠? 부르시는 방식이에요. 신약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하게 부르시는 방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약속하시는 땅으로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어떤 하나님이라고요?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불러놓고 인도를 안한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인도하다가 나중에 힘들면 포기한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끝까지 인도하시는 분이에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했을 때 나 같으면 벌을 줬을 텐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참으셨어요? 침묵하시며 참으셨어요. 왜요?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아시니까! 아브라함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으세요. 연약하다는 걸 알아요. 원래부터 연약하니까 믿음 없는 자니까 내가 끝까지 도와줘야겠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세 번째 어떤 하나님입니까? 연약한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걸 아브라함이 배우게 됐다는 거예요. 이것을 사도 바울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시잖아요. 우리를 택하기로 정하셨어요. 이유는 알 수가 없어요. 왜! 나 같은 걸 부르셨는지 이유를 알 길이 없어요. 어떤 자격도 능력도 없는데 부르시기로 작정하시고 때가 찼을 때 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불러주셨어요. 그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너는 내 부르심에 응했으니까 너 의로와 그리고 의로울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중에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성화시키고 영화시키는 하나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은 부도덕한 하나님,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는 오해까지 감수하셔야만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자신의 그 신실하심 때문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에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신실하심. 뭘 지키신다고요? 자기가 말한 걸 지키신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면 말씀하신 걸 반드시 지키세요.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여러분이 기억하고 기도하셔야 돼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이렇게 약속하셨잖아요. 하나님은 우리 공동체, 우리 교회 공동체 가운데 이런 비전을 말씀을 통하여 주셨잖아요.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선포하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땅 선택권을 양보했을 때 하나님 어떻게 하셨어요? 잘했다. 이제부터 네가 눈을 들어 보는 거 다 네 땅이야 동서남북 다 네 땅이야 다 네거 해! 이러셨어요? 어떤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 나는 하나님만 믿고 삽니다. 이제부터는 딴 거 안 보고 하나님만 보고 삽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보는 거 안 보고 하나님이 보라고 하는 것만 보고 그 보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하는 자에게 복을 반드시 주시는 하나님이예요.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단번에 중동 부족 국가에서 패권을 쥐게 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전쟁을 해봤습니까? 전쟁할 능력이 있습니까? 그냥 변두리의 변방의 나그네일 뿐이고 이방인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결국에는 어떻게 하세요?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백성을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도 올해는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등장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늘의 비밀이 열려지게 됐어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이어주는 제사장이 필요하다. 인간이 아닌 어떠한 존재, 인간의 족보를 따르지 않는 하늘의 한 존재가 이 일을 감당할 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어요. 어떤 하나님입니까? 자신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예요. 여러분! 하나님을 오해하시지 말아야 돼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짓는 거 다 알아요. 그러나 그 죄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계신 분이에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와 자기 백성을 화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하늘의 존재인 멜기세덱이 직접 나타나 가지고 선포했어요. 천지의 주제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 하나님께서는 점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신앙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고 동시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가 점점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어요. 이 두 가지가 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점점 무르 익어가면서 드디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식을 체결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알게 되는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냐! 언약의 하나님이다 하는 거죠. 아브라함이 이걸 처음부터 알았을까요? 우리는 항상 설교 말씀 듣고 언약하니까 그래 우리 언약 백성이지! 이렇게 생각하지. 진짜 언약이 뭔지 아세요? 여러분 언약이 어떤 건지 아세요? 진짜로 여러분 언약백성이십니까? 언약을 알고 언약백성이라 그러셔야죠.
여러분! 결혼하셨죠? 결혼하신 분 많죠? 결혼도 언약이에요. 한번 이거를 잘 이렇게 유비 관계로 이렇게 비유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조금씩 강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을 이 언약의 당사자로 자격을 갖추게 하시려는 의도였던 것만 같아요. 왜냐하면 언약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서 믿음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언약을 체결하는 시점만 보더라도 아브라함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약에 있어서 기본 전제가 뭡니까? 언약 당사자 간의 믿음이죠. 그렇죠? 여러분! 결혼할 때 상대방을 믿고 결혼하신 거 맞죠? 내가 당신 믿습니다. 또 그 사람도 나를 믿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식을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도 마찬가지인데 언약 당사자 간에 믿음이 있어야 이게 언약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동시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어야 언약에 있어서 최소한의 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래 신실하시니까 하나님이 신실하게 변화되실 필요가 없어요. 문제는 바로 이 아브라함 쪽에 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 관계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신실하심과는 달리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미완성의 상태라고 하는 점이에요.
이것이 우리의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우리 이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여러분 같으면은 아무 자격도 없고 능력 없는 자를 며느리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을 내 사위로 내 딸을 준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하나님과 지금 아브라함 사이가 그렇다는 거예요.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과 믿음 사이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고 서로 믿음이 있어야 계약 효력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잖아요.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가 바로 계약의 첫째 조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금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조금씩 강화되고는 있지만 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진보를 장담할 수 없는 여전히 타락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이죠.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아브라함의 무엇을 믿고 또 다시 말하면 무엇을 담보로 하여서 언약을 맺으려 하시는가!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포인트가 됩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창세기 15장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를 통해 그의 자손을 그 씨를 별처럼 많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신 내용이에요. 뿐만 아니라 땅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내가 온 땅을 너에게 다 주리라 약속하셨어요.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도대체 나한테 땅 주신다는 거 나는 어떻게 믿어야 됩니까? 도대체 무엇으로 알 수가 있습니까라고 의심을 하자 그거 내가 말했잖아 그건 내가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는 거잖아. 나 하나님이야. 내가 이거 반드시 내가 말했으니까 내가 지킬 거야라고 하는 표시로 오늘 언약을 체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의 언약은 짐승들의 중간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사이를 언약의 당사자 둘이 지나가는 방식으로 체결돼 있어요. 마치도 결혼식을 하면 하객들이 있는 이 사이를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입니다. 과거에는 여기에다 붉은 카페트를 깔았어요. 피의 언약이라고 그랬어요. 보통 언약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도 언약이라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언약 당사자들이 만약에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여기에 지금 쪼개져서 죽어 있는 이 짐승처럼 될 것이다라고 하는 각오를 가지고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쪼개짐! 그 자체가 “베리트(בְּרִיתוֹת)”라고 하는 언약이라고 하는 단어예요. 언약의 충실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언약 “Covenent”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의 “베리트(בְּרִיתוֹת)”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단어는 “둘로 자르다” “둘로 찢어버리다”라고 하는 “바타르(בָּתַר)”라고 하는 동사에서 유래됐다고 해요. 오늘 본문 10절에 중점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짐승을 쪼갠다. 쪼개버린다. 찢어버린다. 두 쪽으로 나눈다. 이거 한쪽 네 거. 이거 한쪽 내 건데. 이렇게 안 지키면 둘 다 죽는 거야. 이런 언약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인간은 참으로 이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담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사를 걸어야 하는 일종의 모험이 되는 것입니다. 왜요? 안 지키면 죽으니까! 하나님은 언약을 지킬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언약의 불이행으로 인하여 인간은 나중에 쪼개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라는 인간을 보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에요. 도대체 왜 이런 인간과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려고 하는가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씨와 땅을 약속하시면서 그 언약 불이행 시에 쪼개짐이 시행되는 즉 죽음이 시행되는 언약을 지금 맺고 계신 거죠. 본문은 쪼갠 고기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가 지나갔다 이렇게 서술하고 있는데요. 우리 17절의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세기 15:17)
본문을 자세히 보면 둘이 지나가야 되는데 하나님과 아브라함 둘 중에 한 편의 당사자만 지나갔음을 보게 되요. 깜깜한 밤중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상징하는 타는 횃불만이 그 고기 사이를 지나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만 지나간 거예요. 아브라함은 그냥 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언약의 책임을 지는 언약의 당사자가 되신 것이고, 아브라함은 언약의 권리는 누리되 언약의 책임, 언약의 의무에서 벗어난 언약의 당사자가 된 것입니다. 희한한 언약이죠. 쌍방이 맺은 언약인데 일방적이에요.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언약은 다 일방적이에요. 하나님이 혼자서 시작했다고 일방적인 게 아니라 둘이 같이 해도 일방적이에요. 내가 지나가겠다. 내가 이 언약의 불이행까지 난 책임지겠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이미 알고 계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언약 파기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아브라함 언약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죠. 굳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퍼포먼스를 보여주신 거예요. “기억해! 이 언약은 말이야! 내가 책임지는 언약이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언약을 불이행했을 때에 모든 책임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해 주고 계시는 거죠. 일방적인 선물이자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해 놓으시고 아담과도 언약을 맺으셨어요. 물론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언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읽어보면 다 언약이에요. 너 이 말 지켜라. 이건 다스리고 잘하고 이건 먹지 마. 그러면 넌 복을 받을 거야. 다 언약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그런 언약을 늘 어겨왔죠. 호세아서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세야 6:6~7)
여기 간접적으로 시사돼 있잖아요. 하나님과 아담이 언약을 맺은 거예요. 그런데 그 후대의 모든 후손들은 다 너희의 조상 아담처럼 그 언약을 다 어기는 자들이 되었다. 이 말 아닙니까? 그다음에 하나님 어떻게 하셨어요? 너의 후손을 통하여 너의 씨앗을 통하여 그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너를 속이고 나와의 관계를 무너뜨린 그 사탄의 권세를 대가리부터 박살 내겠다. 이것도 언약으로 주신 겁니다. 3장에 나오잖아요. 그런 다음에 6장에 보면 노아를 통해서 무지개 언약이 등장합니다. 세상 모두를 심판하시고 다시는 내가 물로 심판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이 잘못하면 그 심판의 결과를 내가 당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무지개 모양으로 보여주셨다고 그랬죠. 이게 활이라고 그랬어요. 활(קֶשֶׁת), 하늘을 향해 있어요. 무지개가 낭만적인 게 아니에요. 그런 다음에 오늘 아브라함과의 이 언약 이 쪼개지는 언약이 시행되고 있는 도대체 이게 무슨 언약입니까?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이제 언약이라고 하는 방식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전형적인 방식이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이 언약은 언약의 의무를 온전히 하나님께서 홀로 감당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자기 희생과 진실하심이 드러나는 일방적이고 전적인 은혜의 언약이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아브라함의 언약의 특징은 살아있던 짐승들을 쪼개는 거예요. 이게 특징이에요. 살아있는 거를 그러니까 죽었던 걸 쪼개는 게 아니라 산 것을 산 채로 잡아서 쪼개 죽여요. 이게 언약의 전제가 됩니다. 죽음을 각오한 언약이에요. 죽음을 전제한 언약입니다. 그 둘로 쪼개진 짐승들 사이를 언약의 당사자들이 걸어감으로써 언약이 체결됩니다. 하나님의 죽으심과 인간의 죽음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 언약은 성립되질 않아요.
사실은 결혼식도 그런 거예요. 살겠다는 게 아니라 나는 당신 앞에 죽겠다는 서약이 결혼식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상대방 앞에서 죽기 싫은 분들은 결혼하지 마세요. 죽으려고 결혼하는 거예요. 저 사람을 위해서 난 죽도록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나중에 나를 배신해도 절대 버리지 않고 당신이 날 죽여도 나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게 결혼이에요. 여러분! 성격 안 맞는다고 헤어집니까?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헤어집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는 언약도 마찬가지예요. 죽어도 지킨다.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한 마음이 이 언약에 대한 자세 하나님께서 기꺼이 이 언약의 당사자가 되어 주신 거예요.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아브라함이에요. 아브라함이 죽기를 각오한들 이 언약 이행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 각오한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언약에 있어서는 별 가치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내가 희생을 한다고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뭐 순교를 하고 죽는다고요? 그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거 별로 가치 없어요. 하나님 나라에 이러한 무가치한 인간의 목숨값이 가치가 있으려고 하면 반드시 보증인이라는 게 있어요. 그렇잖아요. 내가 보증한다고 내가 이 사람 지금 가난하고 그러지만 내가 보증한다고 근데 그 보증하는 사람이 누구여야 해요? 같이 못 살아. 그럼 뭐 보증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그거는 어느 정도 자타가 공인하는 사회적으로 좀 덕망 있고 유명 그런 사람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죠? 아브라함에게는 보증인이 필요해요. 죽어야 할 인간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이 언약을 체결할 때는 적어도 죽는 존재가 아닌 불멸의 존재가 보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모든 의무를 책임지시는 언약의 당사자이자 동시에 인간의 보증인으로 언약을 체결하신 거예요.
이게 참 희한한 언약이죠. 몸만 와라. 이런 거거든요. 결혼식으로 말하면 너 몸만 와라. 내가 너 책임진다. 내가 네 상태 원래 알고 있으니까 또 중간에 도망칠 수도 있고 한데 괜찮아. 내가 다 쫓아가서 끝까지 찾아올 거고 감옥 안 보내고 나하고 끝까지 살겠다. 이렇게 표현해도 표현이 잘 안 돼요. 좀 희한한 언약이에요. 언약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님 자신이 부르신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보증인이 되셔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감당할 능력이 있으신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보증인이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 이 언약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대신 죽음, 그 둘로 쪼개짐의 죽음을 통해서만 언약은 준비되고 또한 완성이 됩니다. 생명이 둘로 쪼개진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이로 그 틈새로 언약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고, 생명의 하늘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록한 공관복음서는 공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해 놓았던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 우리 마가복음 15장 말씀 한번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에스키스테, escisqh) 둘이 되니라.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15:37~39)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걸 보고 저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한 게 아니라 그가 죽으심으로 오랫동안 성소에 가려져 있던 휘장이 하늘로부터 땅까지 찢어지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찢어졌다“라고 하는 말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쪼갠다“라고 하는 동사와 똑같은 동사 ”쪼갠다“ ”둘로 찢어낸다“ 성소의 휘장이라고 하는 게 뭡니까?
보세요. 언약괘가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 바깥에 성소가 있어요. 엄격하게 이 사이를 휘장이 가리고 있어요. 이것은 수달의 가죽으로 내린 겁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은 젖히기도 힘들어요. 엄청난 무게입니다. 여기를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휘장을 써놨어요. 왜냐? 여기 들어가면 죽어요. 거룩함 앞에 생명 앞에 빛 앞에 죄인이 더러운 존재가 들어가면 그냥 누구라도 죽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살을 찢는 순간에 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구속사적인 관점에 볼 때에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언약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당신의 그 쪼개짐의 자리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찢어짐의 길이었던 것이죠. 예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예수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어요. 예수의 둘로 쪼개짐으로 인하여 제사장이라도 흠이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하나님의 자리 지성소 지극히 거룩하고 거룩한 그 자리로 가는 길이 우리에게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나가야만 지성소로 돌아갈 수 있고, 예수님의 그 둘로 쪼개지심을 통해서만이 아버지의 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쪼개심으로 나눠주심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예수님의 그 죽으심으로 지성소(the holy of holies)를 가렸던 휘장이 찢어져 하늘 가는 밝은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부분을 아주 명확하게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오 휘장(카타페타스마, katapetasma)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할렐루야! 아시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왜 예배 현장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야만 되는지 아십니까? 그 휘장이 그 찢어진 휘장이 바로 예수님의 몸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실 때 몸이 둘로 찢어졌고 그 사이로 새롭고 살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회복입니까? 무엇이 부흥입니까?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회복이에요? 이전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는 게 그게 부흥입니까? 아니요. 여러분! 여러분 안에 복음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 말고 세상 이야기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 가운데 온몸으로 이루신 이 구속사의 이야기, 이 복음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이나라 이민족과 교회가 살아나는 역사가 경험될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살길이 활짝 열렸어요. 세상 사람들 말 듣지 말고 잘못된 조작된 이야기 듣지 말고 이 복음이 말하는 예수가 말하는 이 생명길로만 용기 있게 담대하게 걸어 나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비상해 날아오르시는 한 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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