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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문산 목사(노량진 강남교회)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 - 노량진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by 복음과삶 2024. 1. 29.

2024.01.28. (주일예배).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 창세기 15:1~7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창세기 15:1~7)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중에 하나죠. 교회는 물론 사람을 위한 것도 있지만 그 교회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이 땅 가운데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계셔야 돼요. 하나님의 뜻은 다른 게 아니라 이 대한민국 땅에 또 전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거구나. 이렇게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전형적인 방법이 바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언약!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찾아와서 어떠한 방식으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언약을 사용하셔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그런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는 이러한 경영 방식들이 있어요. 다양한 경영 방식들이 있는데 이것을 전문용어로 하나님의 경륜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에 오이코노미아(οiκονομία)” “경제, 경영(economy or administration)” “집안 일(management of a household)” 라고 하는 말에서 왔어요. 이 오이코노미아는 원래 오이코스(οικος)”라고 하는 이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안 살림을 말하는 거죠. 가장이 집안 살림을 운영한다. 그래서 현대 영어로도 보면 Economy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가장이 되셔서 이 땅의 백성들을 자기 가족처럼 잘 돌보며 지켜나가시는 모습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성경을 읽으면 여러분이 다른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구나! 그리고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해놓고 이렇게 이루어 가시는구나!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읽으셔야 돼요.

 

그렇다면 이 경륜의 최종점이 무엇인가? 성경이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 경륜의 최종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경륜의 마지막 종착점이 뭐라고요? 예수 그리스도다! 그 말이에요.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오셨고 다시 오시는 이 종착점의 종말의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굉장히 두렵고 떨리고 감격적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셔야 돼요.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점!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를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 즉 통일하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경륜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비밀이 구약에서는 감춰져 있다가 신약을 통해서는 완전히 드러났어요. 대표적으로 에베소서 17절 이하에 보면 이 비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7~10)

 

아멘! 분명히 밝히고 있죠. 하나님께서 왜 아들을 보내셨는가! 왜 아들을 통하여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영원토록 사해 주셨는가! 그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되게 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러한 경륜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사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그 몸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죽으신 사건, 그리고 뿐만 아니라 3일 만에 부활하신 이 모든 사건들은 바로 그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이 완전히 드러났다는 거예요. 경륜이 어떻게 드러났다고요? 완전히 드러났단 말이예요. 더 이상 드러날 게 없어요. 하나님의 경륜이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났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볼 수가 있어요. 그 예수님께만 집중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모든 계획도 다 알 수가 있는 거예요. 이미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그 하나님 나라 회복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하게 완성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그 중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미 와 아직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가 있어요. 이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럼 우리는 막연하게 주님 오실 날만 팔짱 끼고 기다려야만 하는가!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천국 들어가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죽음의 권세로부터 승리했어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망 권세가 완전히 박살 났어요. 예수님이 완전히 승리하셨어요. 따라서 이미와 아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적 승리는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께서 이기셨는데 무엇이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가? 마귀가 하는 겁니다. 마귀가 자꾸 속이는 겁니다. 네가 뭘 한다고 그래! 너나 잘 살아! 너 혼자나 잘 살아! 네가 뭘 잘한다고 그래! 네가 뭘 할 수가 있어! 이거 누가 하는 거예요? 마귀가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가게 되면 이미 확정된 승리가 바로 나의 승리가 될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승리하며 사세요. 이미 이기셨어요. 방법은 하나예요. 너무 간단해요. 우리의 왕이신 이 나라의 왕이신 그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나아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러고 나가시면 됩니다.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통독이 목표는 아닙니다. 새해가 되면 나는 올해 1독은 꼭 해야지, 나는 이번에 한 10독은 해야지. 좋은 목표예요. 성경을 전혀 안 읽는 분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몇 독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요. 이 말씀이 유난히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전에 읽었던 말씀이고 알았던 말씀인데 유난히 나의 가정에 나의 자녀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혀지고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신 게 믿어지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나와 내 가족 가운데 이루실 것을 믿게 되는 말씀의 역사가 올 한 해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게 성경을 읽는 목적이에요. 성경 집에 아무리 꽂아놓으면 뭐 합니까? 성경 주일에 아무리 들고 다니면 뭐 합니까? 이 성경 속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셨는지 우리가 특별히 구약의 내용을 공부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기 위해서예요. 우리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내가 한국 사람인데 이스라엘의 역사까지 알아야 되는가?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방식이 성경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그래요. 특별히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인물들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 그 구속의 역사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요셉과 같은 특별한 인물을 통하여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을 소개할 때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랬어요. 출애굽기 315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애굽기 3:15)

 

아멘! 대대로 영원히 기억할 이름이다. 우리도 기억해야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역사하셨구나. 하나님이 이삭에게, 야곱에게, 요셉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심지어는 사라에게 하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이 똑같아요. 일정해요. 다양하지만 일정해요. 동일성이 있어요. 그 역사가 나의 내 가정의 역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대단해서 소개되는 게 아니죠. 이삭이 대단해서 이삭이 겸손하고 순종을 잘해서, 야곱이 거대한 가족을 이루고 그래서 대단해서 성경에 기록돼 있는가! 그렇지 않아요. 바로 이들을 통하여 그 일을 행하신 바로 그 하나님만이 창조주가 되시고 구속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님은 없다는 거예요. 다른 하나님은 기억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엘로힘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너희가 상상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역사했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제발 너희가 상상하는 하나님은 만들지도 말아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구속의 역사가 기록된 성경 외에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의 경륜을 몰라요. 내가 살아보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런 것 같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내가 오래 살다 보니까 그래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요. 그거는 개인의 간증에 불과한 겁니다. 그리고 옳지도 않아요. 맞지도 않아요. 성경 외에 다른 하나님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신들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진짜 신이 아니죠. 엘로힘(אלהים)이 아니죠. 그저 우상일 뿐이에요. 그냥 아이돌(Idol) 엘로힘으로 가장한 아이돌 하나님을 가장한 우상일 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 아닌, 인간을 만드신 신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경륜을 기록하면서 인간들의 가장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어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렇다. 생각을 바꿔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여러분들의 삶이 바뀝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여러분의 삶으로 바꿔버리면 안 돼요. 내가 살아보니까 하나님은 이런 분일 거야. 하나님이 이런 분이었으면 좋겠어. 다 우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 내가 나를 바꿔야지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는구나. 내가 사는 삶의 방식을 가치관을 바꿔야지 그것이 참된 변화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런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독특한 방법이 뭐냐! 그것을 언약이라고 했어요. 언약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냥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이 경륜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과 약속하시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거예요. 이거 참 독특한 방식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경륜을 혼자 이루시지 하필이면 나 같은 연약한 인간과 약속을 이루는 방식으로 경륜을 이루어 가실까요? 언약은 서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당사자들 간의 계약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각자가 지킬 의지는 있어야 돼요. 그죠? 그리고 자신의 그 의지를 이룰 만한 능력도 있어야 돼요. 이 두 가지 조건입니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어떤 믿음이라는 게 존재해야 돼요. 그렇지 않아요? 약속을 지킬 것 같다든지 나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든지 지켜야 한다든지 어떤 그런 기본적인 충성심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어야만 언약이라고 하는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겁니다.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 사실상 조건이 성립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킬 능력이 있지만 인간은 지킬 능력이 없어요. 하나님은 늘 신실하시지만 인간은 늘 배신하고 무지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어요. 언제나 게으르고 나태합니다. 그러니까 쌍방의 언약이 형성될 수가 없어요. 이 계약이 성립되려면 전혀 신뢰할 만하지 못한 인간 쪽에는 아예 처음부터 희망을 두지 않는 쪽이 나아요. 그죠? 그래서 이 언약은 어떤 언약이냐 하면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어요.

 

첫째, 스스로 낮아지셔서 언약의 상대가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하늘 같은 존재, 땅바닥에 있는 존재가 있는데 언약을 맺기 위해서 성육신을 하셨어요. 이렇게 낮아지셨어요. 몸을 입고 수준을 인간 수준에 맞췄어요. 어때? 이래도 나하고 언약을 못 맺겠어? 내가 내려왔는데? 이런 언약이에요. 스스로 내 상대가 되어 주셨어요.


둘째, 그 언약을 쉽게 깨버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하심.

 

하나님은 인간이 이 언약을 깰 것을 알아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할 때 그래 너 어차피 언약을 못 지킬 거야. 그렇지만 네가 못 지킨다 할지라도 난 널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야. 나 끝까지 기다릴 거야 하는 게 이 언약 속에 들어있습니다.

 

셋째,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무궁하신 성실과 신실하심.

 

그러니까 완벽한 언약이에요. 하나님이 지켜버리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라는 언약 당사자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이다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의외로 이걸 잘 모릅니다. 뭔가를 내가 자꾸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안 하면 마음에 죄책감도 들고 양심의 가책도 느껴져요. 자꾸 불평밖에 안 생겨요. 나는 뭔가를 해야 되는데 자꾸 못하는 거예요. 은혜 안에 못 들어가셨어요.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잘 몰라요. 여전히 내가 자아가 살아있는 거예요. 교만하든지 겸손하든지 상관없어요. 아직 은혜를 모르는 분이에요. 일방적 언약이에요.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약속할 만한 가치가 없는 나에게 약속해 주시고, 또 약속을 깨는 나를 끝없이 참아주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 존재를 던져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그런 하나님의 속성이 이 언약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거죠.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지죠. 구약은 Old Testament, 신약을 New Testament 라고 합니다. Testment 라고 하는 말은 라틴어의 테스타 맨툼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언약이라는 뜻도 있지만 계약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실제로 계약서를 작성한 거예요. 그리고 유언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죽음의 의미가 여기 담겨져 있어요. 그러니까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이죠. 그것을 가르는 기준점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하늘의 비밀이 구원 사역을 본격적으로 이루시기 전에 이를 위한 모든 약속이 구약에 다 기록되어 있어요. 구약을 읽으셔야 돼요. 구약을 버리면 안 돼요. 신약만 가르치는 곳은 이단이에요. 구약을 다 알아야 돼요. 그것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함께 우리의 찬란하고 빛나는 새 생명의 미래가 바로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는 거죠.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구약시대예요? 신약시대예요? 근데 왜 구약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마치 예배를 구약시대처럼 드리는 분들이 있어요. 하나님을 구약의 하나님 정도로만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다고요? 새 시대, 새 언약의 시대, 예수님께서 이미 찬란한 시대를 열어놓으시고 마당 확 열어놓고 바닥 다 깔아놓으시고 자! 이제 너희들 마음대로 한번 믿음 안에서 놀아봐. 내가 올 때까지 한번 마음껏 해봐. 너희들은 내가 한 것보다도 그 이상으로 더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거야라고 하는 시대를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깨 쫙 펴세요. 엄청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죽을 날만 기다리지 마세요. 그거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오늘 하루를 기적처럼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언약 백성들인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뭘까요?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믿음만 요구하세요. 그러면 이게 어떤 믿음이냐? 이것도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언약의 말씀 그 자체에 대한 믿음.

언약의 말씀이 무엇인지 이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구나 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요구된다 그 말이에요. 누가 말씀하셨다고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연한 유토피아가 아니에요. 어느 기업이 광고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분명한 언약의 계획이 있어요.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 경륜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교회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타락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아멘. 그렇게 믿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에요.

 

셋째,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이루어진다고요? 나에게 이루어져야 진짜 믿음이죠. 저 사람한테 일어난 거 맨날 저 사람 간증만 듣고 어떻게 저 사람이 저런 복을 받았나 부러워하지만 말고 그런 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거 내 말씀이구나! 이거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이거 내 가정과 내 자식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게 뭐예요? 아멘이다. 그 말이에요. 아멘이 무슨 뜻이에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그냥 주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면 아멘을 어떻게 하셔야 돼요? 크게 하셔야죠.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아멘하는 거를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옆 사람한테 전염된다니까요. 말씀 듣고 아멘! 크게 하세요. 하나님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우리 아멘은 할 수 있잖아요. 다른 건 못해도 아멘! 그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나에게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이루어 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러면 내가 아멘! 그러면 그대로 되는 거예요. 믿음이 아멘으로 시작됩니다. 물론 어쩔 때는 뭐 다른 거 의지할 게 없어서 그냥 하나님 말씀하시니까 이루시겠지. 그래서 아멘이 처음엔 작아요. 이렇게 또 10년 지나면 또 약간 커져요. 그렇죠? 손들고 찬양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전도사님이 앞에 나와서 우리 다 함께 하나님 앞에 손들고 찬양합시다. 이거 10cm 올리는 데 10년 걸려요. 다 그래요. 처음엔 다 그래요. 그런데 그런 아멘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축복의 여정으로 점점 이렇게 시작하고 열어가시면서 하나님의 경륜을 경험하고 통과하게 되면 그것이 충절의 믿음 마치 아만(אֲמַן, 믿다, 신뢰하다, 확실하다)의 그 믿음이 에메트(אֶמֶת, 확고함, 안전성, 영원성)라고 하는 그 믿음의 결정체로 점점 더 완성되어 갑니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과 그 정절 하나님은 그냥 아멘 그 자체예요. 에메트에요. 정절 그 자체예요. 결정체예요. 그런데 왜 언약을 주시느냐! 이 겨우 아멘하는 겨우겨우 믿게 되는 그 아브라함을 이 에메트로 결정체로 그래서 언약의 동등한 상대자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속 경륜을 이루어 가신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아브라함에게 씨와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죠. 이거는 다른 뜻이 아니라 너를 통해 하나님 나라 만들겠다는 거예요. 12장 말씀 다시 한번 볼까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2)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아브라함을 통해 만들어 가시려고 작정하셨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말씀 듣고 당장 믿음의 사람이 된 게 아니죠. 믿음의 초보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기근이 왔을 때 비옥한 땅 이집트로 내려가잖아요.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이잖아요. 왜 그래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아직도 이집트 왕이 무서운 거예요. 자기 죽일까 봐! 자기 먹을 거 공급하는 거는 이집트 왕이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브라함이었단 말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참아주시잖아요. 그럴 수 있어. 그리고 오늘 15장에 와보면 집안의 종을 양자 삼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굉장히 합리적이지 않아요? 아니 노인이 무슨 애를 낳아요? 하나님의 약속은 잊고 그러면 하나님 차라리 우리 집에서 기른 이 똑똑한 사람 상속자로 삼읍시다.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말씀으로 그대로 믿어지지 않는 상태예요. 우리의 문제가 뭐냐? 말씀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 나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말씀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한 인간의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고 왜곡하려고 하는 그 아담적, 하와적 성향을 발휘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 그대로 믿으십니까? 말씀대로 믿으셔야 돼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기 때문에 믿습니다. 나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당장 손에 안 잡혀도 반드시 하나님은 나에게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아멘하고 계속 밀고 나가야 이게 에메트의 결정체로 형성이 되는데 거기까지를 가지는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흔들리는 아브라함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 말씀과 함께 언약을 주시는 거죠. 대표적인 언약의 말씀이 4절입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창세기 15:4)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알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읽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건 완전히 새로운 언약입니다. 불가능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어주셔야만 가능한 언약이지 이거는 아브라함이 절대로 약속받았다고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 약속을 주셨을 때에는 하나님이 어떤 입장이시냐면 내가 책임질게. 그 말이에요. 넌 못해. 원래 너보고 하라는 게 아니야. 너는 말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앞으로 하지 말고 내가 너를 통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 내가 다 책임질게. 딱 정리 끝내셨어요. 그런 약속이에요. 이 약속이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 .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을 조금씩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언약의 당사자로 만들어가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백성으로 언약의 당사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아브라함으로 끝난 게 아니에요. 이삭과 야곱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요셉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주님의 제자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이 경륜의 역사는 오늘 나의 삶 속에 계속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던 언약, 그리고 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언약을 이제는 어떻게 하셨냐?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서 보여주셨어요. 할렐루야! 완전한 새 언약입니다. 이거 놀라운 선언입니다. 언약받기 위해서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갔다가 돌판에 썼는데 내려와 보니까 죄짓고 돌판 깨지고 난리 나고 지키다가 죽고 지키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 사라져버리고 그런 시대가 아니라 이제 아예 하나님의 언약을 어디에다가요? 구약에 예언되어 있어요. 우리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1~33)

 

아멘!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의 오랜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어요. 마치도 남자가 여자의 손을 딱 붙잡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어둠의 골목길에서 끄집어내 가지고 이제 너는 내 거야. 내 아내가 되거라. 나는 너의 남편이 될 거야. 이렇게 했는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그것마저도 뿌리쳤다. 그러니 안 되겠다. 아예 내 법을 이 언약의 법, 토라를 가슴속에 사람의 몸에 가장 내적 구조 속에 내가 이제 기록해 놓겠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중에 신구약 다 통틀어서 통달한 다음에 예수 믿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세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어보니까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고 이게 정말 다 온통 이루어진 줄로 믿어져서 예수 믿는 분이 있으면서 한번 손들어보세요. 저 중학교 3학년 예수 믿을 때 성경 하나도 몰랐어요. 그냥 어느 날 교회 가서 나이 지긋이 드신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이 내 말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말씀이 나를 살리시는 말씀이라고 믿어지더라고요. 이게 왜 그런 거예요? 이 놀라운 신비한 역사가 이런 성령의 역사가 놀라운 언약의 역사가 이 새 시대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10, 20, 30년을 다녀도 이 말씀이 내 말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러분! 새 언약의 시대예요. 여러분! 그뿐인 줄 아십니까? 이제 언약의 땅 가나안 땅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고, 언약의 당사자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 아니라 믿음의 자손인 우리들이고, 만국 백성의 그 마음의 자리에 새 언약의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셔서 지난 시간에 짐승이 둘로 쪼개지는 것처럼 십자가에 쪼개지는 제물을 우리의 심령 속에 체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믿어지잖아요. 그 십자가 사건이 나의 사건으로 믿어지잖아요. 마치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처럼 나의 더러운 죄가 완전히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져 버리고 일시에 보혈로 완전히 뒤덮여지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그 영적 체험이 우리 가운데 우리 심령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누가 하시는 일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예요.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 연약한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도우시도록 조치를 하셨어요. 하나님은 계획이 계속 있어요. 이 계획 다음에 또 있고 또 있고 완벽한 계획까지 해놨어요. 성령을 또 부어주셨어요.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민족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4~28)


토라를 마음속에 기록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아예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마음까지 주셨습니다. 이런 완벽한 언약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그래도 안 믿어지고 그래도 그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면 그건 뭡니까? 자기가 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한 거죠. 그렇지만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부르심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의 회복 그 부흥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으로 완벽하게 완성이 되었어요. 하나님은 점점 더 자신의 책임을 가중시켜서 결국 그 책임을 다 지시는 분으로, 우리 인간은 책임을 점점 더 벗어나는 방식으로, 그래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자유로운 기쁜 존재로 부름받는 방식으로 이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은혜 위에 은혜로다.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 속에서 비상하여 날아오르는 새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