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주일예배).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5:1~21.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5:1~21)
성경은 인간의 타락으로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성경을 교양으로도 읽을 수가 있고 얼마든지 자신의 성공 기반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성경 기록의 목적은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초점을 맞춰서 성경을 읽어야만 하는 것이죠. 특별히 창세기 12장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경륜이 전후로 뚜렷이 바뀝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대응적인(reactive) 방식으로 일하신다고 그랬어요. 12장부터는 주도적인(proactive) 방식으로 일을 바꾸십니다. 경륜을 바꿔 가시는 거죠. 이 대응적인 방식으로 일한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하면 인간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보고 벌을 내리세요. 또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면 그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또 대체자를 하나님이 세우시고요. 또 심지어는 인류 전체의 죄가 가득하게 돼서 더 이상 가능성이 없을 때 홍수 심판으로 대응을 하십니다. 급기야 여러 민족이 단합해서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항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흩으시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일한단 말이죠. 사람이 어떻게 하나 보고 대응하면서 일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나 12장부터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일하지 않으시고 아예 주도적으로 일을 하시는 거죠. 아무 이름이 없었던 인간 아브람을 우상숭배하는 그런 아브람을 먼저 찾아가셔서 그를 택하여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 씨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일을 시작하신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부터 일을 새롭게 하고 계시는구나! 나도 그 일하시는 방식을 알고 따라가야겠구나!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는 거죠. 이 부분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제 1 경륜 | 제 2 경륜 | 제 3 경륜 |
창세기 1장 ~ 11장 | 창세기 12장 ~ 말라기 | 마태복음 ~ 요한계시록 |
대응적 | 적극적 | 폭발적 · 우주적 |
12장을 중심으로 해서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하신다고요? 대응적으로 일하신단 말이에요. 창세기 12장부터 말라기까지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세요? 적극적으로 일하세요. 물론 군데군데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것에 따라 벌도 주시고 개인에게 벌도 주시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먼 앞을 내다보며 인간을 위하여 주도적으로 일을 해나가십니다. 그리고 신약에 들어오면 예수님 오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이제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요? 폭발적으로 우주적으로 변한단 말이에요. 이와 같은 역사가 초대교회 안에 있었고 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 역사 초창기에 일어났었고, 우리 한국교회 역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폭발적이고 우주적인 역사가 복음 안에서 일어났었죠.
이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방법이 언약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께서는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안 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거야! 하나님은 그렇 분이야! 이건 여러분의 추측일 뿐이에요. 그냥 우리의 상상이고 우리의 신념일 뿐이지 하나님은 절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신다고요? 약속을 먼저 주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방식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약속을 알아야겠죠? 그게 믿음이죠. 하나님의 약속, 성경에 기록된 약속, 성령 안에서 예수 안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은 적어도 알아야겠죠. 그리고 그 방식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를 포함한 언약 백성들은 두 가지를 정리하셔야 돼요. 첫째,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둘째,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된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진짜 믿으세요? 반드시 믿으셔야 돼요. 잠시 정체기가 있다 할지라도 잠시 머물러 가는 시간이 있다 할지라도 왠지 모든 게 다 무너져버려서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져도 이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예수를 통해 성령 안에서 약속하신 거기 때문에 반드시 나와 내 가정에도 이루어진다! 내 강남교회 공동체 안에도 반드시 이 약속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니까 이 비전은 이루어진다! 믿으셔야 돼요. 그게 믿음이에요.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언약)을 알고 믿는 것이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유일한 할 일이다. 이해되세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라고요? 믿는 거라 그 말이에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한복음 5:28)
우리한테도 궁금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시니” (요한복음 6:29)
뭐가 하나님의 일이라고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 원리는 지금도 동일해요. 크리스천들에게 문제점은 뭐냐 하면 일을 안 하니까 문제가 아니에요. 무모하게 일만 하려고 하니까 문제예요. 자신의 어떠한 행위로 하나님께 정성을 바침으로 마치 그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게 문제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 그리고 그분이 이 땅을 떠나시고 다시 오시는 시간까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에서요. 부르셨죠? 15장에 들어오면 이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게 똑같아요. 누군가를 부르면 일방적으로 부르고 선택하시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약속을 주세요. 언약을 주세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아브라함의 언약 혹은 족장 언약이라고 말을 합니다. 일명 이것은 인간 아브라함 개인의 어떤 풍요와 안정을 위해서 복 내려주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아브라함 가정을 혹은 가족들을 위해서만 복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셔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면 돼요? 하나님이 날 좋아하시니까! 나만 사랑하시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좀 세련된 대답은 아니에요. 정확한 진리의 대답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왜 나를 구원하셔야 됩니까? 하나님이 왜 나를 복 주셔야만 합니까? 왜 내 자녀가 잘되게 하셔야만 합니까? 라고 물어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게 기도하셔야 돼요.
그래서 오늘 15장에 나타나는 복의 내용이 중요해요. 내용이 중요하단 말이에요. 나도 아브라함처럼 복 받고 싶다. 아브라함처럼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쳤지만 난 아브라함처럼 재벌이 되고 싶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건 뭐냐 하면 도대체가 그 언약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거죠. 그래서 언약의 내용은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 구성 요소와 연결이 돼 있다는 거예요. 나라의 3대 구성 요소가 뭡니까? 주권, 국민, 영토죠. 마찬가지로 15장에 보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영토가 등장하고 있다는 이 관점에서 15장을 봐야겠죠. 언약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당시에 보면 정착할 땅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그는 떠돌이입니다. 자신의 대를 이을 상속자도 없었어요. 물론 종도 있고 또 나중에 종의 자식을 낳기도 하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상속자가 없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을 자가 없다는 뜻이에요. 이방인이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은 약속의 말씀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땅도 없고 자식도 없었어요.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씨와 땅이 없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아브라함이 씨와 땅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실제로 한 것도 없었다. 이걸 증언하고 있어요. 뭐만 했어요? 실수만 했어요. 기껏 한다는 게 기근 피해서 애굽에 가서 부인을 누이라고 속여서 하마터면 아내를 빼앗기고 하나님 나라에 대가 끊길 뻔했어요. 하나님을 공격한 것은 아브라함이라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공격하게 돼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것을 성경이 증언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에게 없는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아브라함이 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거예요.
신앙의 세계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신앙생활은 내 경험을 보태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이해하고 내가 설득당해서 내가 살아보니까 이런 부분이 있구나! 신앙의 세계도 이런 부분이 있구나! 그래서 보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실제로 깨달을 때까지 자신의 온몸과 삶에 완전한 죽음만이 지배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어요. 기다리시잖아요. 애 완전히 못 낳을 때까지, 그래놓고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는 것을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결핍을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런 통로와 도구로 사용하셨어요. 지금 결핍의 상황에 있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죠. 상실의 상황에 있습니까? 안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죠.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힘으로 일했던 것보다도 더 엄청난 일을 하나님이 하실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랍니다. 왜요? 부모들이 다 신경 써주니까! 그게 아이들 잘되는 겁니까? 여러분! 물론 다른 부모들보다 잘해줘야죠. 배고프지 않고 남들보다 좀 따뜻하게 멋있게 예쁘게 입고 그죠? 그게 우리가 부모들이 원하는 거죠.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그 아이로 하여금 어떤 결핍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냥 물질적 결핍으로 세상적 성공 야욕에 대한 결핍으로만 느껴진다면 어떻게 그 아이의 삶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통로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부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야죠. 나는 안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의 힘으로도 안 되는구나! 이거는 세상의 영역으로 도저히 안 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무력함과 무기력함 속에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사용하신다는 거죠. 이 언약의 성취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의 씨인 아브라함이 이제 “불신의 씨”에서 “믿음의 씨”로 변화되는 겁니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게 뭐냐! 결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핍” 나는 가지고 있는 게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은혜가 올 한 해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씨와 땅을 언약으로 약속해 주시는 걸 볼 수가 있어요. 특별히 땅에 대한 약속을 두 번 하시는데 7절에 한 번 나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창세기 15:7)
그다음에 두 번째로 보면 18절부터 21절까지 읽지 않았지만 다소 길게 구체적으로 땅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요.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세기 15:18)
땅에 대한 약속이잖아요. 주목할 것은 이 땅에 대한 약속이 어떠한 조건에서 주어지느냐 하는 거예요. 이 땅의 약속 앞에 반드시 씨에 대한 백성의 자손에 대한 약속이 먼저 주어집니다. 이 순서가 되게 중요해요. 땅을 먼저 주시는 게 아니에요. 씨에 대한, 백성에 대한 약속을 먼저 주시고 그다음에 땅의 약속이 주어진다. 7절에 보면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 앞에 4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창세기 15:4) 이게 먼저예요. 땅이 먼저가 아니에요. 그리고 두 번째 땅의 약속이 있기 전에 보면 아주 긴 내용의 자손에 대한 즉 씨에 대한 약속이 주어집니다. 오늘 대독한 말씀이죠. 이 본문을 보시면 이게 15장 언약 사건 안에 갑자기 등장할 이유가 없어요. 너무 쌩뚱맞은 예언이에요. 수백 년 이후에나 일어날 일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씨가 어떻게 만들어져가는가를 소개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리해 보았습니다.
4~5절 | 6절 | 7절 | 12~16절 | 17절 | 18~21절 |
씨 | 믿음 | 땅 | 씨 | 언약 | 땅 |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총론 | 각론 |
4절 5절은 씨에 대한 거죠? 그다음에 7절에 가서야 땅이 주어집니다. 항상 씨가 앞에 와요. 12절, 16절 자손에 대한 거예요. 마지막 18절 21절 끝날 때까지 땅에 대한 게 나옵니다. 앞에 것은 총론입니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뒤에 가면 각론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소개를 하시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씨와 땅 사이에 뭐가 있어요? 믿음이 있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의로 여기셨다. 씨와 땅을 연결해 주는 게 믿음입니다. 그 백성들에게 땅이 주어지는 사건이 뭐에 의한 거냐 하면 믿음에 의한 겁니다. 철저하게 믿음입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예요. 자손(씨)이 땅을 얻게 되는 방식 그 중간에 뭐가 등장해요? 언약이 등장합니다.
정리해 보면 땅은 항상 씨의 어떠함에 따라 조건적으로 주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땅이 중요한 거예요? 씨가 중요한 거예요? 씨가 중요한 거예요. 어느 땅으로 들어가느냐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거죠. 일반적인 원리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계가 너무 많아요. 그러나 사람은 자꾸 환경을 바꾸려고 해요. 내가 이런 환경만 바뀌면 뭔가 바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데 성경적 원리하고는 정반대입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그 씨의 유무에 따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때에 땅이 약속으로 주어져요.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언약 백성 되었을 때 드디어 땅이 약속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씨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땅이 약속되고 씨가 언약의 당사자가 되니까 땅이 주어지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땅은 그렇게 주어진다고 그랬어요. 그럼 하나님 나라의 씨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믿고 기다리는 방식입니다. 신앙의 세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만 기다리는, 나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약속하셨으니까 하나님이 이루실 겁니다 라고 기다릴 때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으로 소개한 부분이 오늘 대독했던 바로 13절에서 16절까지의 다소 이상한 예언의 말씀이다 라고 하는 것이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게르, stranger)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세기 15:13~16)
여러분! 13절에 보면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이다. 이거 참 희한한 말이에요. 지금 아브라함에게 아들조차 없는 상황인데 아브라함의 자손들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그것도 이방의 종으로 팔려 가서 나그네 되고 고통당하는 다소 부정적인 내용으로 뒤덮여 있어요. 그런데 이게 어떤 말씀이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그 말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형성된다라고 아브라함에게 소개하고 있는 거죠.
정리해 봅시다. 첫째,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될 것이다. 게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게르(גֵּיר) 나그네가 될 것이다.
둘째, 이방인들이 400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셋째,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괴롭힌 그 이방인들을 나중에 하나님께서 벌하신다.
마지막 넷째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나올 때 큰 재물을 가지고 다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게 패턴이에요. 지금도 영적 패턴이에요. 똑같아요. 아브라함에게 인간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아브라함 자손의 미래가 오늘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가 있었어요. 이 미래는 수백 년이 지난 모세를 통하여 그대로 현실이 됩니다. 나중에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이런 고백을 하게 돼요. 오늘 지금의 아브라함의 약속과 연결해서 한번 읽어보세요.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게르, stranger)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2:22)
이 고백을 모세가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아이를 낳아서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짓는 거는 그냥 우연히 지은 게 아니라 수백 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언약이 이제 나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신앙적 고백을 지금 모세가 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늘 본문에 등장했던 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십니다.
첫 번째 어떻게 실행돼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진 아브라함 자손들이 이집트로 내려가잖아요. 나그네처럼 내려가지 않습니까? 말씀에 나와요.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창세기 46:26)
두 번째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출애굽기 2:24)
아브라함의 언약이 또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세 번째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왕을 열 재앙을 통하여 징벌하시죠. 마지막에는 왕의 장손을 비롯해서 옥중에 있는 자의 장손, 심지어는 그 나라 짐승의 첫 새끼까지 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응징하시죠. 말씀대로 하시는 거예요.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출애굽기 12:29)
마지막 네 번째 이집트를 나올 때, 출애굽 할 때 큰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애굽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는 재물 없는 재물 다 주게 만드셨어요. 그리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갑니다. 요단강 건너가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여러분! 요단강 건너갈 때에 성경에 보면 그때 강이 범람할 때예요. 헐몬산에 눈이 녹아서 가장 최고 수치를 기록할 때예요.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수아 3:16)
그러니까 일반 다른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가 안 올 때 땅이 말랐을 때 건너갔다는 거는 성경에 없는 내용이에요.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여호수아 3:17)
오히려 성경은 요단강이 넘쳐날 때 마른 땅처럼 지나갔다! 누가 하신 일이에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죠.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갈라서 과거에 약속하셨던 그 말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시는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오늘 왜 이런 본문의 말씀, 다소 이해하기 어렵고 분위기를 망치는 이런 쌩뚱맞은 말씀을 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렇게 형성된다. 하나님 나라의 씨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그 길을 따라가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씨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이끄셔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가는 방식.
둘째, 인간 아브라함의 능력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씨가 태어나는 방식.
셋째, 작고 연약하여 강대국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서 구원해 주시는 방식.
넷째, 하나님의 은혜로 풍요하게 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광야 길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방식.
이게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죠. 왜? 우리가 영적 이스라엘이니까! 우리가 새 언약을 받은 영적 이스라엘이니까! 이것을 우리의 언어로 나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어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이끌어 하나님을 믿게 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뚫고 생명을 주시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씨를 시작하신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넷째,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신다.
아멘이십니까?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대로 여러분에게 하실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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