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6.(주일예배). 할례, 하나님의 크신 계획, 창세기 17:1~14
노량진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세기 17:1~14)
창세기 15장에서 짐승의 쪼개짐 사이를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첫 언약이 등장한다고 했어요. 이 언약은 하나님 편에서 신랑 되신 그분이 내가 다 책임지겠다라고 하시는 언약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17장에 나오는 이 아브람의 몸을 자르는(쪼개는) 이 할례 언약은 인간 편에서 하는 겁니다. 신부의 입장이 되어서 그 언약을 내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랑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하는 그런 충성의 표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할례라고 하는 것은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반면에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하는 나의 죽음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 신앙 고백하는 것인데 그 신앙고백을 몸에 새기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아브람의 자손은 단순히 혈연 공동체나 민족 공동체가 아닙니다. 할례 신앙으로 형성된 신앙의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할례의 정신은 잊어버리고 그냥 할례 의식만을 강조하면서 자랑하는 민족이 돼버렸어요. 우리는 이렇게 본래 할례받은 사람들이야. 너희들 이방인하고는 달라. 너 할례도 안 받았지? 이렇게 무시하면서 자기를 자랑하는 그것 자체만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전락됐다는 거죠. 여러분! 할례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뭐라고 그랬죠? 왜 몸을 잘라냅니까? 나는 이제 내 자아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나는 어떤 세상적인 욕망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그 의식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단절시킨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이제부터는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따라가겠다. 그게 할례의 궁극적인 정신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몸의 흔적만을 자랑하는 이상한 종교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급기야 이와 같은 할례에 대한 태도가 신약 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죠. 할례의 정신이 사라진 할례는 하나님의 크신 일,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다른 복음을 낳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일(Magnalia Dei)이 뭡니까?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죠. 처음에는 아브라함의 혈통 그 자손을 중심으로 한, 그 유대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을 만들어 가셨던 그 구약의 시대 그것을 끝내시고 이제 신약의 시대를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구원받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인데 그 계획과는 반대되는 다른 복음이 만들어지고 말았다는 거죠.
제 2 경륜 | 제 3 경륜 |
구약시대 | 신약시대 |
할례를 통한 아브라함의 자손 |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백성 |
하나님의 경륜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간단합니다. 구약시대를 제 2 경륜시대라고 하고 신약의 시대를 제 3 경륜시대입니다. 구약의 시대는 지금 아브라함과 맺었던 할례를 통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에요. 그러나 신약시대는 뭡니까? 예수 믿는 그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제 1 경륜 시대는 뭐였어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그 행위에 따라서 심판할지 구원할지를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라고 하는 이 예수의 복음과는 전혀 다른 복음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례의 시대가 이미 끝나버렸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그 할례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또 우리가 열망하는 그 모든 마음들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다 이루셨어요. 하나님이 만족하셨어요 “됐다. 이 정도면 난 아들 예수를 통해 다 만족한다. 너희들은 다른 거 할 거 없다. 내 아들 예수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할례 시대가 이미 끝장났습니다. 지금 무슨 시대예요? 믿음의 시대입니다. 은혜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효력이 완전히 상실된 이 신약의 시대 제 3 의 경륜의 시대 마땅히 폐기되어야만 할 율법 의식을 누군가가 다시 들고 나온 겁니다. 여러분! 이것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보기에도 다소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 이방인들, 즉 할례를 받지 않은 부정하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당시의 제자들 사도들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말씀 보시겠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사도행전 10:45)
베드로도 놀랐어요. 제자들이 놀랐어요. 아니! 어떻게 할례받지도 못한 민족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받는다는 말이지! 우리처럼 거룩한 백성으로 태어나서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어려서부터 지켰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성령도 받고 하나님의 말씀도 받고 말씀이 이해되어지고 회개에 이르는 구원의 그러한 도에 이르게 될 텐데 어떻게 그런 것 하나도 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성령,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인가! 라고 제자들조차도 사도들조차도 놀랐다. 이상히 여겼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다 성령 받고 세례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이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제외한 초대교회 몇몇 지도자들은 이 하나님의 큰일을 깨닫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할례를 대표되는 유대인의 정결 의식과 이방인의 구원 사이에서 상당한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할례 의식과 하나님의 큰일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이방인들과 식사하던 베드로가 유대인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비난받을까 봐 그 자리를 피하다가 나중에 사도 바울로부터 책망을 듣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14절)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갈라디아서 2:11~14)
여기 14절의 말씀이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에요. 이 부분을 잘 번역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이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이해가 되세요? 베드로를 혼낸 거예요. 베드로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넌 유대인이지? 태어날 때부터 너는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인을 따르잖아. 그 말이 무슨 말이에요? 할례 받지 않아도 구원받는 그 이방인의 구원관을 따르고 있으면서 네가 유대인처럼 지금 살지 않고 있잖아. 왜 지금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만드는 계기를 지도자인 네가 제공하느냐 그런 뜻이에요. 여기 답게라는 말은 너무 긍정적인 말이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죠? 너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할례 받고 모세 율법 지키는 그런 유대인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네가 예수 믿고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이방인들처럼 구원받았는데 왜 너는 지금 이방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느냐 이렇게 지금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하나님의 환상에 이끌려 찾아간 이방인들과 식사를 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말씀이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사도행전 11:2)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 집에 안 들어가요. 식당을 운영해도 절대로 관광객들하고 식사 안 합니다. 철저하게 구별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베드로 네가 이방인 집에 들어가서 그 부정한 백성들하고 같이 밥을 먹어? 너도 더러워졌어! 이런 말이잖아요. 상당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시대입니다. 아직도 완전히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여러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복음의 역사가 들어와도 이 한국인의 전통을 버리지 못해요. 장례를 치러보면요. 얼마나 비복음적이고 비성경적 요소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게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한국 사회를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벗어나지를 못해요. 물질관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교회 전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상당한 문화가 일제의 이런 강당 문화에서 형성이 됐어요. 어디 가면 장갑 끼고 가운 입고 앞에서 이렇게 하고 하는 게 사실은 카톨릭, 일본 문화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벗어던지지를 못해요. 얼마나 철저하게 전통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이 그랬다는 거예요.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 받고 새로운 시대 교회 시대가 열렸어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 유대인의 공동체 안에도 이방인들이 막 몰려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바로 복음과 전통이 충돌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정말 이방인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야? 아니 이방인으로 태어나가지고 할례도 안 받아도 된다고? 아니 모세의 율법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밥 먹을 때마다 배우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돼서까지 모세의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아니하고 다 지켜왔는데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이게 말이나 되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좀 억울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신앙생활 오래 했단 말이에요. 교회에서 태어나고 교회에서 앞마당에서 자라났단 말이에요. 여기서 다 나왔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한 40 넘어서 예수를 믿었는데 얼마나 뜨거운지 몰라요. 그냥 뜨거워요. 갑자기 직분도 받고 교회에서 얼마나 묵직묵직하게 일하는지 모릅니다. 배가 아파요? 안 아파요? 여러분! 너무 예가 유치합니까? 우리 교인들 안에 그런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이게 교회를 이렇게 붙잡아둬요.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막아요. 기득권이에요. 일종의 텃세예요. 지금 유대인들이 그랬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 아니! 할례도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키고 그러고 성령을 받는 거지! 어떻게 앞에 있는 걸 다 무시하고 성령만 받아! 다 지키고 난 다음에 믿음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이러한 불안감을 업고 거짓 선생들이 등장하여 거짓 복음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짓 복음을 요약하면 이런 거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또 할례를 받게 하는 것. 여러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쉬워요. 이 사람도 버리지 말고 저 사람도 버리지 말고 얼마나 좋아요! 믿음이 있겠다. 그 믿음을 가지고 할례받으면 되잖아요. 그죠? 그러나, 여러분! 아니어야 해요. 저 사람도 상처받지 않게 하고 이 사람도 구원에 큰 문제 없으니까 그냥 뭐 이렇게 섞어서 합시다. 교회가 망하는 지름길이 뭐냐면 복음을 섞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편한 대로 사람들이 이해하는 대로 사람들이 설득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방식으로 교회가 가게 될 때에 교회도 변질되고 복음이 변질되고 교회가 망하게 되는 거죠. 말씀 보실까요?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사도행전 15:1)
모세 율법이 아브라함 언약 한참 후에 생겨났어요.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행전 15:5)
바리새인 중에 믿는 사람이에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에요. 교회 지도자가 된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리새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라는 거죠.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할례를 받게 해라.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이 강력하게 다른 복음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고 있는데요. 말씀 보시겠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7~8)
내가 너희들에게 전한 복음,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예수 복음, 십자가의 복음, 마치도 십자가에서 할례를 받으시듯 자기 몸을 쪼개어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다 갚아버리신 그 복음 외에 그 어떠한 것도 인간적으로 보태는 그 복음은 반드시 저주를 받을지어다 강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흥분하고 있을까요? 바울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할례가 초대교회 논쟁의 중심이 됐어요. 어느샌가 할례가 하나님 백성의 완전한 표식으로 자리 잡아버렸어요. 할례 없는 구원 상상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할례만 받으면 안심을 해버린 거예요. 마치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 안심하고 그냥 교회 떠나지 않고 계속 신앙생활 하는 내 모습을 보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처럼 어떤 구원의 감격도 없고,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도 없고 그냥 예배 형식, 기도의 형식, 종교인의 모습, 그것만 남겨져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사도바울은 오늘 과감하게 할례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반박을 하고 있어요.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25~29)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아보시는 하나님만이 인정해 주시는 그 마음의 할례, 영의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그랬어요. 이 말씀 이해되세요? 쉽게 설명하면 할례를 받았다 하는 거를 우리가 혼인 신고했다고 봅시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건 뭐냐 하면 이제 부부 생활을 하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두 사람이 혼인 신고했어요. 할례받은 거예요. 그런데 둘이 사랑하지 않네. 그럼 그 할례가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정이 있어서 혼인 신고를 못 했어요. 결혼식을 못 올렸어요. 동거만 해요.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해요. 누가 진짜 부부예요? 이거는 하나의 예입니다. 너, 할례받았어? 그럼 율법 다 지켜야 돼. 네가 하나라도 범해? 그러면 할례받은 게 무슨 소용이 있어? 저 사람은 할례도 안 받았는데 율법을 다 지키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네. 자신의 자아에서 벗어났네. 그러면 누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겠어? 라고 바울이 질문하고 있는 겁니다. 할례받지 말라는 말이 아니에요. 결혼 신고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잖아요. 혼인 신고하고 결혼식 해야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뭐라는 거예요? 그 할례의 정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그 정신을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할례는 몸에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한다. 할례의 정신, 그 할례의 믿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로마서 말씀이 있는 거죠.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로마서 3:30)
할례받는 백성으로 태어났어요. 그러면 그 사람도 역시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고 할례받지 않은 백성으로 태어났어요. 이제는 굳이 할례받을 필요 없어요. 무엇으로? 믿음으로!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할렐루야!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로마서 4:9)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이렇게 질문하면 여러분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둘 다죠. 유대인 배제 된다 아니에요. 할례자에게도 복이 임하고 무할례자에게도 복이 임해요.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창세기 15장 얘기죠? 할례받기 전에 믿으니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그랬어요.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로마서 4:10)
할례를 안 받았을 때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주셨다. 그 말이죠?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의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로마서 4:11~12)
아멘! 얼마나 기가 막힌 계획입니까?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을 오늘 이방인과 같은 이스라엘 민족과 비교할 때 아무 혈통과 관련이 없는 나와 같은 이방인을 믿는 존재로 삼기 위한 조상으로 삼으셨고, 그뿐만 아니라 아직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언젠간 돌아올 그 유대인들까지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로새서 2:11)
여러분! 할례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그건 안 받았으나 이건 받았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시면 돼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장하는 신약 교회의 그 어떤 할례파가 주장하는 그런 할례는 받지 아니하였으나 나는 내 자아가 이미 죽었고, 내 육적인 것이 완전히 죽었고, 예수로 인하여 다시 살아난 할례받은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전 생애를 할례파와 치열한 논쟁으로 끝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그렇죠? 그게 하나님의 큰일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이단이었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사실은 그것 때문에 수도 없이 박해받았어요. 만약에 할례파하고 논쟁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바울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말씀 보실까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라디아서 6:15)
새로 지음 받았어요. 거듭났어요. 할례를 받아놓고 거듭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 예수를 영접하지 못해요.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셨는데 그 성령을 받지를 못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못 되고 여전히 옛 습관과 관습과 종교에 머물러서 살아가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죽은 자예요. 그러나 어느 날 뜻밖에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방인과 같은 우리의 삶에 성령이 부어졌어요. 예수가 믿어져요. 그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나는 영원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러면 누가 할례받은 사람이에요? 우리가 할례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립보서 3:3)
우리가 곧 뭐라고요? 할례퍄라. 이단들이 물어봐요. 구원의 확신 있습니까? 한 게 뭐 있어요? 교회만 다녔지! 당신은 성경도 모르잖아? 무슨 공로를 쌓았어? 다 이단들이 하는 말이에요. 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나는 예수의 영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날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이 나는 믿어지고, 그분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시고, 내가 이 땅에서 죽어도 새 몸과 새 몸을 입혀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당신이 한 게 뭐 있어? 이렇게 물으면 난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뭘 했어요? 난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난 자랑할 게 없어요. 나는 예수님만 자랑해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이러시면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할례파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거예요.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새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할례는 인간의 생식 노선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신앙의 결단이자 충성입니다. 이제 생물학적 생산력이 완전히 죽은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뚫고 생명을 잉태하시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신 거죠. 그리고 앞으로 출생할 이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 혈통으로는 도저히 인간의 구원에 기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씨는 이렇게 사람의 생식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낳고 죽고 또 낳고 죽고 반복하는 인간의 족보에서 오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만이 영의 족보로 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완성이 어디냐? 사람의 생물학적 관계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성된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인류 역사상에 단 2명입니다. 이삭과 예수님 밖에 없어요.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18~21)
아멘! 아브라함의 할례, 즉 나는 죽었습니다. 무능합니다 라고 하는 그 고백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족보가 처녀의 몸을 빌어 성령으로 잉태되는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되게 된 것이죠. 할례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만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고 있는 사건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깊고 크신 계획을 우리는 이 안에서 깨달을 수가 있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태어나셨습니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게 믿어지십니까?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그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있는 여러분 모두는 거듭난 사람임을 믿으시고 이제 믿음이 없어서 자신의 거듭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이 땅에서 방황하며 헤매는 그 영혼들에게 예수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시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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