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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알란 레드파

승리의 열매

by 복음과삶 2005. 7. 2.

 

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13장. 승리의 열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수11:23)

 

11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편 연합작전이 완료된다. 그들의 승리는 결정적이었다. 비록 가나안에는 적들이 아직 살고 있었지만, 실상은 쫓김을 당하고 흩어진 패주병들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온 땅을 주셨다.

 

취해야 할 땅은 많이 남아 있었으나 이 땅들은 각 지파들이 연합작전을 통해 내용적으로 이미 받은 땅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각 지파들이 이 땅을 상속받으려면 연합전선에서 배운 교훈들을 개별적으로 적용해야 하였다. 이 경우 자기들이 할당받은 땅을 취하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고 자신들이 받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배운 귀중한 진리는 믿음으로 실생활에서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고 배운 교훈이라도 무가치하게 된다. 우리들이 받은 축복이나 영광스런 진리는 각자의 삶을 통해서 비춰지고 적용되지 않으면 그대로 사장(死藏)되고 만다. 하나님과 함께 이 순례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주님을 대면할 때까지 승리와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행진하는 사람은 조용한 장소를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받은 진리에 감사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써 자기 교회를 위해서 하신 모든 일들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할 것이다.

 

십자가의 승리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승리를 누리는 만큼만 실제로 승리를 체험한다. 하나님이 오늘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 자신과 올바른 관계를 세우기에 갈급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먼 것들은 철저히 배격하는 인물들을 보내주시기를 빈다.

 

그럼 승리의 열매는 무엇일까? 수11:23을 보라.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드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여호수아는 온 땅을 취하였다. 승리는 이루어졌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지파에게 기업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다. 이들이 이 땅들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실제로 나가서 각자가 믿음으로 땅을 소유하는데 달려 있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장 큰 갈등은 하나님과 올바르게 되지 않고 또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릇된 일들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시 하늘과 전쟁을 하는 상태에 있게 된다. 그러나 순종을 하면 곧 그 영혼은 쉼을 얻는다. 즉 전쟁이 그치게 된다.

 

우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에에서 승리의 열매를 찾아보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연합작전은 끝이 나고 승리는 거두어졌다. 이것은 우리들이 여호수아서에 대한 유추적 해석을 통해 얻게 되는 영적진리의 결론이다. 나는 지금 우리들이 지어낸 이야기를 훑어 내려가지 않고 성경 전체에 흐르는 영적 가르침을 살펴간다고 확신한다. 가나안의 정복, 기업의 분배, 그리고 승리는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부활, 승천, 그리고 하늘보좌에 이르신 것에 대한 구약의 유추적 실례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주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여호수아서를 통해 우리들은 가나안의 땅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속받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배웠다.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에 대한 관계는 그리스도가 우리들에 대한 관계와 같다. 이 땅에 전쟁이 종식되었다. 예수님이 위엄의 우편 보좌에 좌정하셨다. 승리가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온 땅을 취하셨다. 지옥의 권세는 사라졌다. 십자가의 승리가 하늘과 땅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않은 곳은 없다. 창조된 모든 우주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갈보리의 승리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물질주의적 공산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허락이 없이는 한치도 움직일 수 없다. 오, 나의 동료 교우들이여, 당신들이 승리의 편에 있음을 알라. 승리를 거두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승리를 믿음으로 청구하는 자들에게 아낌없이 주시기 위해 승천하셨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께서 권위의 보좌에서 쉬고 계신다. 할렐루야!

 

그럼 주 예수님의 "안식" 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이 안식은 피곤해서 쉬는 휴식이 아니다. 당신과 내가 앉아 있을 때에는 대개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자신을 아끼신 적이 없었다. 그의 생애는 쉬임없는 노역, 잠 못자는 밤, 쓰라린 슬픔, 겟세마네의 고뇌, 인간들의 죄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주님을 지치게 하지는 못하였다. 주님의 안식은 활동이 정지된 휴식도 아니다. 마가복음의 끝절을 보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세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주님의 휴식은 만족의 안식이다. 주께서 자기 보좌를 떠나시고 영광을 벗어 버린 채 자기를 바쳐 죄를 끝장내지 않으셨던가? 또 "다 마쳤다" 고 외치시지 않았던가? 이제 주님께서는 피곤하시거나 활동이 멈춘 상태에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십자가의 열매들이 수확될 것을 생각하시고 만족해 하시며 절대적인 확신과 평온한 기대 속에서 쉬고 계신다. 완성된 구속의 사역에 보탤 것이 없다. 우리 주님이 오늘 하늘에서 좌정해 계신다. 십자가의 희생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충분하고 완전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0:12절에는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고 적혀 있다. 하나님의 정의의 요구는 주님의 희생으로 채워지고 의의 심판은 십자가에서 달성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정죄가 없다.

 

구주의 안식은 조용하고 평온한 확신과 만족의 안식이다. 그는 사역을 마치시고 쉬고 계신다.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 필요한 구속사역은 다 마치셨으므로 구주께서 앉아 계신다.

 

우리들은 주 예수님, 곧 우리들의 성품을 입고 계시는 주님이 좌정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보좌에 앉아 계신다. 당신과 내가 주님과 함께 안식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자기의 동료 인간들을 위해 그렇게 하신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6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한 것은 이런 생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친애하는 교우여, 우리들의 구원의 핵심인 참된 기쁨과 스릴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나의 것으로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과 내가 날마다의 생활에서 이 안식의 경험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열매는 안식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승리를 나누어 가지는 안식은 바로 주님이 가지시는 안식과 똑같은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떤 안식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열을 내며 늘 분망하게 다닌다고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주님의 능력 안에서 쉬는 것을 먼저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의 열심, 염려, 흥분, 분주함이 모두 예수님의 안식 속으로 스며들 때에 하나님이 우리들을 비로서 자녀답게 만드실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한 친구에게 런던의 성 바울 사원을 구경시켜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 친구는 거의 400계단이나 되는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유명한 국제 축구선수로서 훌륭한 교인이었다. 나보다 훨씬 빨리 올라간 친구를 겨우 따라 올라가 이 대사원의 탑에 이르게 되었다. 때는 화창한 9월 이었다. 햇빛이 찬란하게 푸른 창공에서 높이 달린 사원의 황금 십자가를 비취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 위로 세워진 십자가가 비쳐오는 태양을 반사하며 현란하게 서 있는 모습을 우러러보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랬더니 보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런던은 안개와 매연과 먼지 속에서 사려져 버렸다.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한 면모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계신 목적은 날마다 우리들이 안개와 먼지의 갈등을 벗어나서 하늘의 사랑이 있는 저 푸른 창공과 예수님의 안식으로 우리들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안식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과 함께 폭풍 위에서 주님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남의 슬픔과 고통에 민감한 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늘 가릴 줄 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신뢰하며 투쟁 중에서 하나님의 가리워진 계획이 펼쳐지기를 기다릴 줄 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바라면서 잠잠해 할 줄 안다. 날마다의 수고와 번잡을 초월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은 보좌와 긴밀한 연락을 지니며 예수님의 안식을 갖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한편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연약함을 막강한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안식하는 그리스도인인가? 게으른 그리스도인이 아닌 쉬고 있는 그리스도인인가? 주님의 일에는 늘 바쁘고 성실하지만 마음 깊이 폭풍이 없는 정적이 있고 아무리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해도 좌절하지 않으며 힘든 일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는 교인으로 당신은 살고 있는가?

 

이 안식이 당신과 나의 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이 안식을 늘 사모한다. 당신도 분명 그럴 것이다. 먼저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에서 안식해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를 향해서 용서를 받으려면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용서의 확신이 있으면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승리를 누리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주님이 자기를 구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해 주셨음을 알게 된다. 용서의 확신에서 쉬고 있는 사람은 "다 마쳤다" 는 주님의 외침을 듣고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롬8:33) 라는 말씀을 들은 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이 죽었으므로 자기 죄의 심판이 끝났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자신의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구주의 모든 의와 아름다움으로 덧입고 하나님 앞에 의연히 서 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일 안에서 쉬고 있으므로 먼지와 안개를 초월하여 산다.

 

당신은 항상 당신의 과거사로 인해 염려하거나 과거의 죄에 대해서 남과 말하기를 좋아하는가? 친구여, 하나님이 보혈 아래 놓아 둔 것은 모두 잊어 버리고 갈보리의 사역 안에서 안식하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주는 안식은 비단 용서의 안식만은 아니다. 승리의 안식도 있다. 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탄을 내 힘과 방법으로 대항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우리들은 싸우고 또 싸우지만 연속 실패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사탄을 정복하셨음을 알게 되면 비로소 승리의 안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마귀가 예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을 손대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승리의 안식을 누리는 교인은 자신이 과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환경이나 어려움, 시련이라도 먼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으로 지나가지 않고 나에게 직접 오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큰 목적이 있다. 비록 그 순간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당황하지 않고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커다란 축복의 목적을 지니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어떤 고난과 슬픔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고 아무리 큰 시험과 역경이라도 나를 초조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이 어떤 분임을 알고 그 안에서 기쁨으로 안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리의 안식이다.

 

주 안에서 안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점이 있다. 만사에 서둘거나 당황치 않고 침착하며 조용하다. 또 하나님의 능력이 미약한 자신의 힘을 대신하여 주므로 영적인 능률과 박력이 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뜻을 송두리째 맡겼으므로 이런 사람들은 용서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뜻이 이기적인 자기욕망의 도구가 되지 않고 성령의 쓰임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만 당신은 하나님의 모든 목적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고 또 일할 수 있다. 우리들의 뜻이 하나님께 의탁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능력을 받게 된다. 그러면 나의 실망이 하나님의 희망으로 변하고 더 이상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을 억지로 부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멈추게 된다.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게 되며 구름이 끼지 않은 산 교제를 하나님과 같게 된다.

 

나는 최근에 비로서 깨달은 성경말씀이 있다. 시편 37:4의 말씀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약간의 소원인가요 주님?"

"내 아들아 그렇지 않다. 모든 소원이다."

"그렇지만 한 두 가지 예외가 있겠지요."

"아니다. 예외란 없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당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켜라. 그러면 그가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어째서일까? 왜냐하면 하나님께 자기의 뜻을 내맡기는 원칙에 따라 사는 사람은 만사에 다만 하나님의 뜻인 것만을 소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하나가 되었다고 알 뿐 아니라 주와 함께 안식하는 것에도 하나가 되었다고 알면 모든 것이 우리들의 것임을 또한 깨닫게 된다.

 

나는 하나님이 충만한 구원의 길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시지 않은 것을 퍽 감사한다. 구원의 길이 까다롭고 힘들다면 우리 중에는 이르지 못할 자들도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안식을 누리고 싶어하는가? 확신있는 용서와 끊어지지 않는 교제와 맡겨진 뜻과 주 안에 있는 생명의 안식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당신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좌절된 욕망과 불만의 동경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당신은 이 안식을 누리려면 다시 이 말씀을 읽고 깨달아야 한다. "여호수아가......그 온 땅을 취하여......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11:23).

 

우리들의 여호수아이신 주 예수님이 온 땅을 취하셨다. 갈보리의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자녀들 손에 들어와 있다. 주님은 양팔을 벌리고 당신에게 기업으로 이 모든 땅을 주셨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는 말씀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들이 충만한 구원의 땅과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으로 들어가려면 우리 몫의 십자가의 승리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 안식을 찾기 위해 내 속을 늘 들여다 본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성령에 관해서 비성경적인 경험을 찾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참 세례" 나 방언을 못받았다고 구원을 못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내적인 경험만 들여다보면 광신이 되기 쉽다. 또한 내 속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되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아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푸른 창공에 있는 하나님의 십자가를 올려다 보고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 나는 부질없는 싸움에서 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시고 나를 위해 생명과 축복의 유산을 모두 주시려고 한다는 것과 이 사실을 실제로 느끼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내 마음 속에 두셨음을 알면 나는 쓸데없는 갈등과 노력을 멈추고 안식하게 된다. 그래서 잡음과 소요를 넘어서 죄와 더러움이 닿지 않는 성결한 승리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로 안식하게 된다. 성령을 내게 보내셔서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케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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