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는가?
아,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챨스 프라이스] 中
|
율법은 우리의 죄들을 드러내면서 사실 그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율법에 관해 가장 포괄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매우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날 그분의 청중들 가운데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이 "좋은/복된소식"을 전하는 걸 들으러 왔다. 예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는 외침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격려로 가득한 좋은 소식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이들의 역사에서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전혀 지킬 수 없는 도덕법을 주셨다. 이들의 역사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실패일 것이다. 구약의 역사서들은 이러한 실패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시가서는 이들의 실패를 슬퍼하며 눈물짓는다. 예언서들은 이들의 실패에 대해 설교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어 "좋은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큰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였으며, 이 복된 소식의 내용을 직접 듣기 위해 언덕으로 몰려 들었다. 이들은 언덕으로 향하면서 예수께서 전해 주실 복된 소식의 내용에 대해 서로 자신들의 생각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십계명은 효과가 없었으니 육계명으로 줄이겠다는 말씀을 하실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은 대하기가 너무 어려운 분이었기에 그분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예전처럼 그렇게 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하실 거라고 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 것을 알고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7]. 바꾸어 말하면, 이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당혹해 하거나 이들에게 그런 율법을 주신 것을 사과하시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기라도 하듯이, 예수께서는 한 술 더 뜨신다.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마 5:21~22]. 이들은 살인을 금지하는 율법이 선하다는 데에는 당연히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형제에게 화를 내면, 설령 칼로 그를 찌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인죄를 범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7~28].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율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누구든지 그 여자의 이름이나 주소도 모르고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러 본 적도 없다 하더라도 간음죄를 범했다고 말씀하고 계지시 않은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38~39]. 그런 다음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3~44].
청중들 가운데는 서로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건 좋은 소식이 아니잖아! 이건 끔찍한 소식이라고! 우리가 이것들을 행할 수 없었을 때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어. 그런데 이제는 이것들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그분은 당신과 내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이들에게 하고 계셨다. 그분은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는 마땅히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는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바꾸어 말하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아는 것과 같이 여러분 자신도 온전하십시요."
여기에도 도출할 수 있는 논리적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전하신 메시지, 그분이 하신 요구는 인간적으로 볼 때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는가? 예수께서 하신 요구들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가능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실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헌신과 훈련을 새롭게 하고 다시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리를 위한 새로운 기술과 공식을 찾아 헤매겠지만 다시 실망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산상설교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가능하다. 이 결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발견의 서막이다. |
'삶... > 책을 읽다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절기들 (0) | 2008.04.01 |
---|---|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십자가 중에서 (0) | 2008.01.22 |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0) | 2007.10.15 |
죄에 대하여 죽음 (0) | 2005.06.30 |
예수님 위해 살려고 하지 말라. [찰스 프라이스] 를 읽고.. (0) | 2005.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