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16장. 제자의 보상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수14:4)
14장은 감동깊은 기록을 담고 있다. 85세의 나이에 앞으로 나서서 자기가 받지 못한 기업의 몫을 담대히 청하는 갈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45년 전에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분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갈렙은 위대한 성경의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위대함은 얼마나 깊고 단순한지 모른다. 위대한 인물들은 복잡하지 않다. 그들은 참으로 단순하다. 그래서 우리는 위인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눈이 열린 사람들은 그런 인물들을 용이하게 판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원칙은 영원하여서 축복의 조건들이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갈렙처럼 주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면 같은 결과의 삶을 얻게 될 것이다. 갈렙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다.
젊었을 때에 가졌던 믿음은 늙어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에 대한 비젼은 세월이 감에 따라 더욱 맑아져야 한다. 그래야만 인생의 여행이 거의 다해갈 때에도 그냥 과거만 회상하지 않고 적과의 대전을 치를 새로운 각오와 준비를 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바라는 일이다. 위대한 갈렙은 이러한 생애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럼 갈렙을 통해 그의 위대함의 비결을 배우도록 하자.
이 하나님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었다. 민수가 13, 14장에 적힌 이스라엘 역사의 운명의 날로 돌아가 보자. 이 날은 갈렙에게는 45년 전에 있었던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은 얼마 안가서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다. 이곳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의 변경이었다. 그러나 광야의 여행에서 그토록 줄기차게 따라다녔던 불신 때문에 가나안 땅을 살피기 위해 정탐들을 보내어야 했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아 12명의 정탐을 보냈음을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6주간의 정찰 후에 정탐들은 두 가지의 보고를 하였다. 즉 다수의 보고와 소수의 보고였다. 다수는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른다고 인정하면서도 거인들이 있다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13:28],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민13:31]. 한편 갈렙과 여호수아가 한 소수의 보고는 거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민14:8].
이 두 사람들도 다수의 정탐들이 본 아낙인들을 보았다. 그러나 다수는 거인들을 자기들의 힘에 비추어 보았고, 소수였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거인을 하나님과 비교해 보았다. 다수는 겁에 질렸고, 소수는 승리에 넘쳤다. 다수에게는 거인들이 커보였고 하나님이 작아 보였다. 갈렙은 하나님을 위대하게 보았고 거인들을 작게 보았다. 그는 "만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불신에서가 아니고 겸비한 정신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광야의 여행을 돌이켜 보았다. 그는 어린양의 피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풀려나게 된 날을 회고하였다. 그는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확고한 인도를 받아온 일을 기억하고, 주님이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면 능히 가나안의 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 고 아우성쳤다. 그들은 애굽의 속박을 잊고 있었다. 광야에서 더 이상의 어려움과 위기를 벗어나려고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축복의 땅은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상속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시기 위해 갈렙과 여호수아 이외의 전 세대를 이 약속의 땅에 대한 축복에서 제외하셨다.
하나님은 갈렙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민14:24]. 갈렙은 45년간의 피곤한 방랑생활 속에서 끝없는 투쟁과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을 안고 역경을 견디며 주님의 이 약속을 깊이 간직했었다. 불평과 불만의 군중 속에서 갈렙은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로 확고한 목표를 두며 살았다. 그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롬4:20~21].
갈렙은 모세를 대항하는 무리 속에 끼인 적이 없었다. 회의와 불신의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도 그는 그들의 모의와 불만에 참여한 일이 없었다. 그는 애굽의 마늘과 부추를 사모하는 무리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과도 초연해 있었다. 그는 순종의 대가에 희망을 걸고 일생을 참으며 살다가 드디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장소에 이르게 되었다.
85세의 나이에 완숙한 성품과 신앙의 권위로 당당히 나아간 그 순간은 얼마나 바람직한가! 갈렙은 거친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고 늦추려는 주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워 승리하였다. 갈렙의 주장은 얼마나 감동에 찬 말들이었는지 모른다. "40년이 이제 지났소. 갖가지 번민을 견디며 나를 끌어내리려는 무리들의 저항을 막으며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려왔오. 그러니 이제 내게 주님이 그날 말씀하신 이 산지를 주시오!"
우리들은 얼마나 오래 살런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갈렙처럼 흔들리지 않는 줄기찬 확신에 뿌리박은 믿음을 가져서 주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신앙의 인물이 되고 싶다. 주님은 과연 우리들을 기뻐하시는가? 갈보리의 십자가를 돌아보라.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부어주셨음을 어찌 의심하랴! 우리들이 아직도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심을 우리는 안다. 인생이 끝날 때 우리에게 보상이 있음도 우리는 안다. 믿음과 인내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은 얼마나 잘 흔들리는가! 인생의 투쟁에서 우리는 얼마나 잘 흔들리는가! 우리들은 항상 제단 위에 있지도 않으며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지도 않는다. 반면 우리들이 애굽의 유혹에 휩쓸릴 때 하나님은 얼마나 많이 우리들을 용서하시는가! 우리들은 과거에 세상에 남겨두고 온 갖가지의 것들에게 마음이 쏠리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따라 투쟁의 길을 걷지 못하고 불평과 무기력에 빠졌던가?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셨다. 우리들은 자격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경험 면에서 보면 우리들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겠는가!
친애하는 교우여,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일을 묵상해보라. 당신은 그 어두운 구렁텅이에서 구원을 받았었다. 그래서 당신은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되었다.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기초 위에 서 있다. 지난 날의 구원과 주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어찌 오늘의 싸움에서 물러날 수 있겠는가?
갈렙의 힘은 빠진 적이 없었다. 11절을 보라.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85세의 갈렙이 가졌던 믿음은 그의 힘을 항시 강건하게 지속시켜 주었다. 이 힘은 하나님 자신의 능력이었다. 아무도 스스로는 인생의 모든 시련을 다 이겨내지 못한다. 갈렙은 일생을 노력하고 싸우고 자신을 소진시켰지만, 그래도 의연히 "겉 사람은 쇠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연세가 많은 어른들이 거의 육신을 움직일 수 없는 형편에서 그래도 강한 믿음을 지니고 계신 분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간구한다. 당신도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가? 강건하고, 용기있고, 확신과 믿음에 충실하여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갈렙은 불굴의 믿음을 가졌기에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
갈렙의 보상은 완전한 승리였다. 15:14을 보면 기업을 받은 자들 중에서 적을 밀어낸 자는 갈렙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미미한 전진에 그쳤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은 섭섭하게도 반복하여 "그들이 적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고 말하고 있다. 철병거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강하여 밀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갈렙은 모든 적을 쫓아내었다. 비록 3명의 거인이 그를 대항했지만 그는 완승을 거두었다. 주님을 온전히 따른 사람만이 온전한 승리를 거두는 법이다.
우리들의 형편은 그럼 어떠한가? 우리들은 늘 적을 몰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늘 지고만 있는가? 적은 우리 속에 성을 쌓고 단단히 뭉쳐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은 이 적의 아성을 격파하지 못하는 때가 너무도 많다. 적은 나의 약점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생활에서 보면 내가 패배하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영적 능력이나 영적 안보에 어딘가 구멍이 뚫려있거나 방심한 데가 있기 때문에 적이 그곳으로 침입한다.
절대적인 승리는 철저한 순종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환히 들여다 보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헌신에 틈이 있고 순종에 결함이 있으며 주를 따르는데 여일치 못함을 다 아신다. 우리들이 적을 섬멸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갈렙은 주님을 온전히 따랐으므로 적을 모조리 몰아낼 수 있었다.
이제 갈렙의 다른 면을 훑어보자. 갈렙은 받은 축복을 낭비하지 않았다. 15장을 보면 갈렙은 자기 딸과 사위를 위해서 축복을 남겨 두었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분깃을 다시 떼어서 새 살림을 차리는 딸과 사위에게 주었다. 그는 윗 샘과 아랫 샘을 다 그들에게 주었다. 갈렙의 마음은 참으로 "물 댄 동산 같고 향기로 가득차" 있었다. 자기가 받은 축복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 넘쳤다. 그는 남을 위해 영적 샘물을 여는 능력이 있었다.
당신은 "주님, 나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라고 외치고 싶지 않은가? 늙어도 광채를 띄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경험을 살려 새로이 삶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인가 귀한 축복을 떼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은혜와 축복과 승리의 길을 가르쳐 주고 실제로 그 길을 따라 살아온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우리들이 흠모해야 할 노년의 영광이겠는가!
형제여,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갈렙은 시들지 않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40세 때 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어떤 한 곳에 그의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그의 마음을 끈 것은 그 땅의 열매도 젖도 꿀도 아니었다. 이 믿음의 거인에게는 그런 축복은 이차적인 것이었다. 그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헤브론이었다. 우람한 산 위에 자리잡은 이 땅은 적의 최강요새가 있는 곳이었다. 아브라함이 장막을 쳤던 곳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대면하여 말씀하신 곳도, 또 언약의 땅에 대해 말씀하신 곳도 다 이곳에서였다. "헤브론" 이라는 말에는 교제, 사랑, 교통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갈렙은 바로 이 땅을 마음에 두었었다. 이 땅은 우리도 찾고 갖기를 원해야 할 장소이다.
우리 신앙의 세계에서도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접근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요새가 있다. 사탄은 사력을 다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은 분깃을 붙잡고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평야나 계곡이나 혹은 젖과 꿀은 내놓을지 모르나 헤브론은 끝까지 버티고 안주려고 한다. 사탄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랑과 교통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고 헤브론을 향해 돌진하는 영혼을 주시한다. 그리고는 최후의 항전을 개시한다.
갈렙의 인내, 믿음, 완승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헤브론에서 최대의 보상인 제자의 보상을 헤아려 보았다. 주의 제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교통이며, 끝없는 주의 사랑이 주는 축복이다. 이를 위해 헤브론이 자기의 것이 될 때까지 갈렙은 환난을 무릅쓰고 전진하였다. 하나님은 헤브론에서 과연 인간다운 인간을 대면하셨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여" [수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