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해/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알란 레드파

만족한 생활

by 복음과삶 2005. 7. 2.

 

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15장. 만족한 생활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수13:33)

 

여호수아서 13장은 주님이 여호수아에게 아직도 취할 땅이 많음을 상기시키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이 사실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그대로 적용됨을 보아왔다. 이스라엘이 땅을 소유하는 방법은 분배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지파가 얼마만큼의 땅을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시고 각 지파들은 연합전선에서 터득한 원칙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을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확정된 우리 몫의 기업을 받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담아두신 우리들의 소유를 취하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자신의 몫에 대하여 언짢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자 한다. 나는 근래 고독한 사람들을 많이 대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젊었을 때의 희망이 부숴졌기 때문에 고독하고, 혹은 건강을 잃었거나 가정이 파탄되어 환멸과 절망 속에서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다시는 전과 같은 교인생활을 못할 것으로 아예 단념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교인끼리도 이런 사람들을 의심한다. 그런가 하면 전혀 가정이 없이 과거의 단란한 가정에 대한 꿈을 지워 버린 채 나날을 한숨으로 보내는 이들도 있다. 또는 남편이나 아내를 잃고 자녀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의 하나로서 지난 여러 해 동안 하나님께 불만을 품어왔다면 지금의 본문에서 무엇을 얻게 될 것이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수13:33).

 

이 말씀을 신명기 10:8,9 과 연결지어 보면 그 의미를 잘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레위 지파는 이처럼 큰 영예를 받고 예배의 생활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었다. 그들은 주님을 소유하였다. 그의 모든 자원과 능력과 축복이 그들에게 올 것이었다. 그 다음 이 온갖 복들이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에 이차적인 것들이 중간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온전히 주님께 집중되어 주님을 봉사하는 일에 어떠한 방해도 없이 철저한 경배의 생활이 되어야 했다.

 

레위인들은 이 밖에도 사역의 생활을 위해 뽑힌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는" 일을 하여야 했다. 그들의 사역은 성소에서 이루어졌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증거의 생활을 위해 소명을 받았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 하게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이중의 역할을 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또 다른 편으로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로 올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민수기 35:2 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레위인들을 위해 48성읍을 별도로 구별해 놓아야 한다고 명하셨다. 레위인들은 성소의 일을 마치면 이 성읍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올 때 주님의 봉사를 맡은 기쁨과 주님의 임재를 의식한 영광에 싸여 있었으므로 가는 곳마다 주님의 실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거룩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성소에서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가고 성읍에서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로 모셔 왔다. 레위인들에게 맡겨진 예배와 봉사와 증거의 생활은 이렇게 큰 영광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이러한 사역을 위해 당신이 소명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땅의 기업을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당신은 모든 것을 받은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삶에 절망이 있을 수 있을까? 오히려 끊없는 가능성이 펼쳐지는 새 삶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고 당신이 그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고독과 무용지물이라는 느낌이 환희의 기쁨으로 뒤바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성소로 가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성읍으로 가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최대의 봉사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둘째로, 이같은 영광스런 사역을 위해 레위인들이 거쳐온 준비의 과정은 구약에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로 레위인들이 어떻게 이런 귀한 직무를 맡게 되었는지를 잘 살펴보기 바란다. 창세기 34:25~31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한 형제로서 한 성민들을 몰살시킨 살인극의 주동인물이었다. 그래서 부친인 야곱이 자기 이름이 세상에 더렵혀졌다고 그들을 꾸중했었다. 야곱은 죽음의 침상에서까지 이 두 아들의 잔인성과 끔직스런 행위와 무서운 분노를 잊지 못하여 이들에게 축복은커녕 저주를 했었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49:5,7).

 

시므온과 레위의 초창기를 보면 하나님이 미래의 목적을 그들에게 나타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초기 생애는 수치스러웠다. 그들은 스스로를 더럽히고 자기 족속과 가문을 망신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충이 먹은 지나간 세월을 회복시키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또한 더러운 가슴을 취하시고 이를 말끔히 씻기시지 않는가? 우리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손에서 상한 토기를 다시 만져 새 그릇으로 만드시지 않는가?

 

그렇다. 실로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우리들의 과거가 아무리 수치스럽고 죄가 많아도 하나님이 우리들로 하여금 특별한 위치에서 그를 섬기게 하는 일을 막아서는 안된다.

 

물론 전환점이 있었다. 즉, 레위가 받은 저주가 축복으로 변한 순간이 있었다. 시므온에게 내린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의 지파는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레위의 경우는 달랐다. 주 하나님이 레위의 기업이 되었다. 출애굽기 32:26을 보면 그 상황이 설명되어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내려왔을 때 모든 백성들이 다 우상숭배에 빠졌던 사실을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모세는 영문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고 외쳤다. 이때 레위 지파들이 응수하고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이 순간부터 그들은 축복을 받는 지파로 구별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사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 이때를 기점으로 한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으로 확정되었다.

 

두 형제들의 운명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가! 하나는 회개치 못하였지만 다른 하나는 회개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생애는 하나님이 정하신 경륜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선택한 곳은 축복의 땅에서가 아니고 광야에서였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도 불투명하였고 그의 목적도 모를 일이었다. 미래는 어둡고 여행은 지루하였다. 죄와 우상숭배가 사방에서 넘쳤다. 이런 중에서 레위인들은 하나님 편이 되어 그를 사모하였다. 가장 중요한 위기의 시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택하였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시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기초가 놓여지기 전에 당신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아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릴 때부터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늘 지켜보셨다. 한 순간도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이 없이 당신이 산 때가 없다. 비록 당신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살았을 때에도 하나님의 눈은 당신 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신의 노정은 피곤하고 고독하며 어둡고 힘든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과거를 거쳐 왔건 하나님은 당신이 걷는 길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죄와 우상이 범람하는 광야에서 우리를 부르신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세속의 밧줄과 인연을 물리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슴에 기쁨을 안겨드리는 날이 된다.

 

이때 하나님은 이런 질문을 하시게 된다. "네가 이제 내 것이 되었으니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던졌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순간부터 그의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은 땅의 기업이나 가정이나 세상적인 사랑을 주시지 않고 어려움과 무거운 짐으로 가득찬 듯한 길만을 주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마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실패와 죄 때문에 아무런 자격이 없다고 벌하신다고 믿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당신의 기업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넘치는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지를 싫증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예배와 봉사와 증거의 생활을 제시하신다. 만일 당신이 광야의 어둠에서 나와 하나님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주님으로 확고히 택하였다면, 하나님이 내거신 이 제안은 당신의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에 실패한 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는 일생을 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모순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상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많다.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 몰린 사람,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빈 손이 된 사람, 한 때 단란한 가정이라고 여기던 집안이 파산되어 폐허와 같은 곳에서 살게 된 사람, 그 외 말로 다 형언 할 수 없는 수많은 불행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주님은 도우시려고 손을 내밀어 주신다. 하나님은 망가진 내 그릇을 다시 쓸모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신다. 파괴되고 깨어진 나의 삶을 하나님은 고치시고 회생시켜 주신다. 그리고 영광스럽고 성화된 사람으로 주님이 쓰시는 인물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때 그렇게 말씀하신다. "지금부터 주 하나님이 너의 기업이 되느니라."

 

나는 지금까지 레위 지파가 받은 영예와 그 준비 과정을 지적하였다. 또 하나 우리들이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영예가 그들의 가슴 속에 불어넣어 준 소망이다.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환언하면, 그렇게 되도록 이미 작정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우연도 아니고 제2의 상급도 아닌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로 완전히 이루어진 섭리였다.

 

진리의 모든 조명을 비춰놓고 보면 신약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쓴 서신은 여호수아서의 주석임을 다시 인정하게 된다. 에베소서 1:11~12에서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기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당신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가? 하나님의 섭리로 기업이 즉 우리들의 분깃이 그의 목적과 뜻에 따라 계획된 대로 주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속받았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우리들의 분깃이다.

 

그런데 우리 편에 있는 이 기업은 하나님의 편과 짝이 맞아야 쌍방이 완벽한 거래를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기업이 완전히 나의 것으로 성립되려면 이에 대한 우리 편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그 응답은 에베소서 1:18에 나와 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어떤 것을 알 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기업은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들 안에서 가진 기업과 맞먹는다. 주 안에 있는 우리의 소유는 주님이 우리를 소유하는 것과 짝이 되어야 한다.

 

아마 당신은 내가 본장에서 말해온 그런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신앙도 있고 물질도 있으며, 자녀들도 다 믿고 생활이 넉넉한 편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계하고 조심할 일은 내가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유산에 응답하지 못하거나 주의 은혜와 사랑에 마땅치 못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고독하고 생활에 눌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 너의 기업이다" 고 하시면서, 동시에 "너는 나의 기업이다" 고 말씀하신다. 이는 당신의 마음이 논쟁이나 의문의 여지가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야 함을 뜻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것으로 축복을 내려주셔서 행복한 가정과 물질을 누리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역시 기업이 되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백성들에게서 완전하고 철저한 기업을 보실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이 지상의 선물들 때문에 참된 주님의 기업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많은 교인들이 세상의 물질로 축복을 받고도 결국 가난하게 되고 물질의 허망함을 깨닫는 어두움과 비극을 허락하시는지 모른다. 또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의 기업을 받고도 응답없이 분깃을 도적질하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시고 모든 축복을 거두시는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네 기업이 되느니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받고

죽도록 알고싶은 은혜로 인도받으니

위에서 내려오는 성령님의 가르침일세

오, 충만하고 완전한 평화!

황홀한 주님 품에서

피어나는 사랑 멈추지 않네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은 나의 것

영원히 뗄 수 없는 주님과 나

 

오, 만복의 안식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가슴을 채우시네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어둠이 온 누리를 덮을지라도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은 나의 것

영원히 뗄 수 없는 주님과 나

'강해 > 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알란 레드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선의 생활  (0) 2005.07.02
제자의 보상  (0) 2005.07.02
우리들의 분깃  (0) 2005.07.02
승리의 열매  (0) 2005.07.02
최후의 일각까지  (0) 200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