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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알란 레드파

최선의 생활

by 복음과삶 2005. 7. 2.

 

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17장. 최선의 생활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수17:18]

 

여호수아서의 끝부분은 아는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땅을 소유하는 원칙들을 다루고 있다. 즉, 각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과 중심지에 있는 땅인 실로에 성막을 세우는 일과 죄의 심판을 위한 도피성의 이름들이 나온다. 우리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땅의 분배 문제로부터 매우 유익한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회막은 중앙에 세워졌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중심에 계셨고, 하나님의 둘레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와서 예배를 드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경배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들은 한 교회나 어떤 교파를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한다. 우리들은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일마다 모인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회막을 중심으로 위치를 잡았는데 이 위치도 그들이 광야의 여행에서 받은 기업처럼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각 지파마다 지정된 장소와 분깃이 있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은사에 따라 은혜를 받는다. 은혜란 남이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 남이 받은 은사에 맞추어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은사의 분량대로 정해서 주신다.

 

그렇지만 본인은 여기서 이 문제를 더 이상 다루지 않고 요셉의 자손들을 통한 소유원칙에 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14절에서 이들의 불평원인을 살펴보자.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이 지파는 자기들이 큰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맞는 땅을 못 받았다고 불평하였다. 그들은 과거의 축복들이 마치 더 큰 보상을 받는 정당한 이유라도 되듯이 내세워 말하였다. 결국 자기들이 받은 땅은 너무 작다는 불평이었다. 그래서 더 넓은 활동지와 대지 및 더 큰 농경지를 원하였다. 더욱이 16절에 보면 자기들이 받은 작은 땅마저 가나안 사람들이 철병거로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하였다. 적은 있기 마련이다.

 

요셉의 자손들은 물론 요단을 건넜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사실 여호수아 자신의 지파였다. 여호수아는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 출신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대단히 교만해 있었다. 요셉과 여호수아가 관련되었다고 해서 이들은 큰 지파의 행세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이들에게 하늘의 광선으로 그들의 실제 모습을 비추었다. 즉, 모든 지파에서 이 지파를 가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평가하였다. 그랬더니 그들은 "우리에게는 거할 곳이 넉넉지 못하다" 고 불평하였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가진 경내에는 적이 깊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노출하는 말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가치는 교회의 등록이나 교회단체에 비추어 평가될 수 없다. 성령께서 직접 우리 각자를 아주 정확하게 평가하신다. 당신은 사람들이 존경하거나 알아주는 교회나 단체의 이름을 대며 자신이 거기에 속해 있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은 하등의 가치가 없다. 하나님의 성령이 영혼을 꿰뚫어 볼 때면 우리들의 인간적인 줄이나 배경이 다 흩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알 몸 그대로 보시고 평가하신다. 당신이 속한 교회나 단체나 교파의 위대함은 당신의 개인적인 진가와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신실함과 거룩한 삶을 좇아가는 부단한 노력은 하늘의 저울에 올려져야 할 자산이다.

 

요셉의 자손들이 가진 사고방식과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의 생애에서 반복되고 있다. 요셉의 후손들은 그들의 몫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은사의 범위가 좁다고 생각하고 더 큰 봉사의 영역을 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하나님에게서 받은 영역에 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실이었다.

 

당신의 불평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당신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서 활동의 무대가 좁다고 여기는가? 이를테면 자기 기업의 분깃에 만족을 못 느끼고 있는가? 당신은 주님을 한번 크게 섬기고 싶다고 꿈꾸고 있는가? 당신은 선교사로, 혹은 목사나 성경교사로 더 크게 봉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광선처럼 당신의 영혼을 비추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적을 드러내 주실런지 모른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미 주신 분깃마저 소유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면 당신은 더 큰 봉사나 활동의 꿈을 갖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가나안 족속들은 그 땅에 있기 마련이다. 적은 완강히 버티고 있다. 문제는 당신이 그 적을 몰아내지 못하는 데 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이렇게 되뇌이고 있는가? "내가 만일 외국에서 신학만 하고 온다면, 내게 만일 박사 학위가 있다면, 내가 이 지리한 일에서 벗어 날 수 있다면, 내가 만일 현재의 환경만 아니라면, 내가 만일 영어만 좀 한다면, 훨씬 크고 멋지게 일할 수 있으련만 이런 곳에 박혀서 내 가치가 줄어드는구나."

 

당신의 문제는 당신이 받은 은사의 범위가 좁은 것에 있지 않고, 현재 당신이 처해 있는 곳에서 이미 받은 은사의 분깃에 따라 넉넉히 살지 못하는 데 있다. 사탄은 아직도 당신과 같은 땅에서 살고 있다. 당신은 사탄을 그대로 두고 앞으로 나가서 더 큰 일을 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단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당신은 혼자의 야망과 열심으로 앞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의 광선으로 당신의 생애를 붙잡고 깊이 비추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닫는 당신을 꼭 붙잡고 당신이 원래 있어야 할 그곳에 두고 당신이 거기서 받은 기업을 차지하고 최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아신다.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마음의 분량을 끝까지 채워주신 그 분깃의 땅에서 당신은 적이 사라질 때까지 굳세게 살아야 한다.

 

물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혼자 마음대로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악물고 하나님의 단련을 물리칠 수 있다. 훨씬 크고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도 있다. 기회를 보아 선교단체에 신청서를 내거나 외국유학의 기을 선뜻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현재의 영역에서 넉넉히 살 줄을 모르면 밖으로 나가도 그 결과는 비극일 뿐이다. 또 비단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당신을 몰랐던 관련단체나 학교나 교회의 여러 타인들에게도 비극의 여파를 끼치게 된다. 비록 그들이 모른다고 해도 하나님과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의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적은 그대로 남아 있고 승리의 깃발은 당신의 생애에서 휘날려 본 적이 없다.

 

요셉의 자손들이 내뿜는 불평 속에서 우리들은 받은 은혜의 범위에서 최선의 생활을 해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방법은 여호수아가 한 대답에서 찾아볼 수 있다. 15절을 보자.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여기에는 다소 냉소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위대하다고 생각하거든 현재의 분깃에서 차지할 땅이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 비록 산지이긴 하지만...그러나 너희들이 그처럼 잘났다고 생각되거든 삼림을 쳐서 개간하라" 는 말이었다.

 

요셉의 자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좋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를 쳐내어도 역시 땅이 비좁습니다. 산지로는 부족합니다. 적이 계곡에 자리잡고 있어요. 더구나 그들은 철병거를 가졌답니다."

 

여호수아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좋다. 그러면 너희들은 큰 지파가 아니냐 그렇지? 그렇게 강성하다면 그 힘을 사용하라! 산지가 너희들의 것이 될 것이니 나무를 잘라내고, 계곡도 너희들의 것이 될 것이니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라. 그들이 철병거를 가진 강한 백성이라도 너희들의 큰 힘으로 몰아낼 수 있을줄 안다."

 

여기에는 놀라운 계시가 있다. 우리는 학벌이나 재벌, 기타 온갖 배경을 내세우거나 교회나 교파의 이름을 앞세워 마치 자신이 훌륭한 것처럼 말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응수하신다. "네가 크다고 생각하거든 그럼 적을 내몰라. 내가 네게 준 분깃을 가지고 너는 무엇을 하는가?" 투쟁과 정복을 향한 개인적이고 부단한 한결같은 도전은 곧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무를 잘라내고 "개척하라" 고 하신다. 죄의 뿌리는 믿음으로 쳐야 한다. 죽은 나무는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엄청난 산지는 우리들의 믿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개간될 수 있다. 우리 속에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모든 능력이 들어 있다.

우리 중에는 더 높고 넓은 사역의 새 영역을 사모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신다. "너의 삶에서 너의 비젼을 흐리게 하고 발전을 막으며 승리를 가로채는 저 나무들을 어떻게 하려는가? 어서 잘라 버리라!" 당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죄와 부패의 뿌리 밑으로 지나가게 하였는가? 당신은 삶의 근저에 뻗힌 그 악의 뿌리에 주님이 도끼를 들도록 부탁한 일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악한 뿌리들이 우리들의 축복과 승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큰 민족이면 말씀의 도끼를 너희 생애의 죄를 향해 높이 들라." 우리들이 이 교훈을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더 넓고 큰 봉사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정해주신 장소에서 성실히 최선껏 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닦지 않고 항상 큰 일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교인이 된 후로 가정이 더욱 화목하고 행복한가? 그렇지 못하거든 도끼를 들어 죄의 뿌리를 치라. 당신을 방해하는 적을 내몰아야 한다. 우리들에게 할당된 작은 분깃을 누릴 줄 모르면 하나님은 더 큰 것을 우리들에게 주시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에 비추어 볼 때 적은 축복의 땅에 살 권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의 생명을 요구하던 적의 주장은 갈보리에서 관철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삶에는 적이 한 발자국도 내딛을 권리가 없지 않은가? 사탄은 전능자의 면전에서 아무 능력이 없지 않은가? 십자가의 피와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적을 섬멸하기로 서약하시지 않았는가? 내재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온갖 시련을 감내할 수 있는 은혜와 일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받을 수 있지 않은가?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자. 우리들은 실로 큰 백성이다. 요셉의 자손들이 사용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생활이 주님의 능력과 권능과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요셉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배경과 평판과 중요성에 비추어 스스로 크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위대한 백성들이다. 당신이 주님의 능력으로 현재의 자리를 소유하고 당신이 있는 곳에서 적을 이기면 하나님이 당신의 기회를 넓혀줄 것이다. 더 큰 봉사의 기회에는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를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겨준 제한된 기회는 어쩌면 우리들이 제한된 은혜만을 원하고 있는 까닭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자기의 능력범위를 넓혀주기를 간구해야 하며 이를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야 한다. "오 하나님, 제가 구세주를 더욱 닮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자신의 능력을 넓혀주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면 곧 불어난 기회에 은혜도 늘어남을 알 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제 우리 봉사의 원리를 깨우쳤는가? 당신의 능력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들이 받은 몫을 누리고 사는 동안에 봉사의 범위와 능력을 확대해 나가신다.

 

최근에 나는 로버트 머리 맥체인(Robert Murry Mccheyne)의 회고록을 읽었는데, 이 하나님의 사람은 30세에 세상을 떠나 주님의 영광으로 들어갔지만 봉사와 사역에 대한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예수님, 내 마음과 정신이 형제와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늘 같이 커가게 해 주십시오. 내 마음과 이해력의 용량이 세월이 감에 따라 증가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주장한다. 친구여, 이것은 복받을 진리이다. 나는 우리들이 모두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의 용량의 크기에 따라 충만히 채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월과 함께 더 큰 충만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깊은 바다 속은 아무리 걸어도 다함이 없다.

 

그렇다. 당신의 은혜의 용량은 증가할 수 있다. 은혜가 늘어나면 마음도 커진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큰 봉사의 기회를 주실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기들의 분깃에 불만을 품고 너무 작은 일에 맡겨졌다고 투덜댄다. 그들은 좀더 큰 일을 하고 싶어한다. 친구여, 하나님은 당신이 더 큰 능력과 은혜를 받는 법을 터득하기 전에는 결코 당신의 분깃을 늘려주시지 않을 것이다. 은혜가 불어나면 마음도 넓어지고 사랑이 많아지며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다 크고 보다 훌륭하며 훨씬 효과적인 봉사의 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누가 "어떻게 해야 믿음이 넓어져서 예수님을 더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받는 용량은 당신의 순종과 믿음의 성격에 따라 측정된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더욱 사모한다면 썩은 나무를 끊으라. 당신의 승리를 뺏어가는 자를 제거하라 그러면 은혜가 당신의 삶 속에 부어질 것이다."

 

순종이 늘면 단련이 늘고 믿음이 커진다. 주님께 더욱 온전히 충성하면 예수님을 더욱 더 받을 수 있는 큰 마음이 생긴다. 이 용량의 생활에는 제한이 없다. 당신은 계속 자라더라도 결코 너무 팽창해서 터지는 일이 없다. 당신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속 동행하면서 오늘 주님을 끝까지 순종하면 내일은 더 큰 마음으로 주님을 순종하라는 더 높은 소명을 받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오늘의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을 순종하라! 적을 내몰라! 나무 뿌리에 도끼를 대라! 그러면 예수님에 대한 심령의 용량이 불어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자라지 않으면 시든다. 결코 정체해 있는 일이 없다. 순종하고 도끼를 죄의 뿌리에 박으면 삶의 용량이 늘고 교리나 독단의 차거운 쇠담 뒤에서 갇혀 있으면 시들어 버린다.

 

진리에는 이상한 역설이 있다.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당신 자신의 삶을 살펴보라. 하나님의 은혜가 증가하면 나는 축소된다. 본인은 별로 나타나지 않고 주님이 크게 부각된다. 한편 순종과 단련의 길을 거절하고 자기 죄의 뿌리에 도끼를 대지 않으며, 주님께 대한 충성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점점 작아진다. 삶의 용량은 줄어들고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갈수록 적게 나타난다. 그래서 늘어나는 것이 있다면 오직 자만심뿐이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자라는 것을 주시해 보라! 당신 자신의 성장도 지켜보라! 우리들의 삶에서 이 메시지의 참 뜻을 살리지 못하면 우리들은 영적으로 축소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우리들이 영적으로 확장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영적인 팽창이 있을 때 은혜를 더 받고 더 큰 봉사와 증거의 분깃을 삼위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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