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승리생활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제19장. 따라야 할 원칙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수23:11]
23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와서 정착한지 20년이 지난 때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치열했던 전장의 캠페인, 중책의 사령관직, 흘러간 세월들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고령에 이르게 하였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고 빼앗은 땅에서 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지상생활이 거의 종말에 이르게 됨을 지각한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안일과 타협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지도자들을 먼저 부르고 그 다음 일반인들도 불러 송별 메시지를 주었다. 위대한 장군이 자기 휘하의 백성들에게 마지막 훈계를 주는 모습을 그려 보라. 갈렙도 거기 있었을 것이고, 대제사장이었던 비느하스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요단강을 건넜던 날부터 금일에 이르기까지 고락을 같이하며 이 지도자와 함께 굳게 살아온 수많은 장병들도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또 삶과 정복을 위해 전진에 불타는 젊은 세대들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흠모하며 그 곳에 서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군소 지도자들 앞에서 그들이 축복의 땅에서 공고한 터전을 쌓으려면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고 훈계하였다. 그 다음 일반인들에게도 그들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청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관해서 일러주었다. 여호수아는 지나간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이 참으로 신실하게 백성들을 대해 주신 것을 상기시켰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동의 말씀이 아닌가!
"보라...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수23:14]
나도 여호수아처럼 원숙한 경험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단 몇 분이라도 해주도록 하늘에서나마 사람이 내려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투쟁과 전투중인 중년의 신자들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는 말씀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으로서 날마다 쟁투를 성실하고 굳세게 벌여온 역전의 노장으로부터 듣는 말씀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하다. 그런 사람의 발 아래에서 배울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소원이지 실제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본문을 통해 구원의 땅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생활원칙을 배울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주로 그리스도인의 지도자들인 목사, 선교사, 그외 교회 임원들을 염두해 두고 말하려고 한다. 우리들은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서 축복의 땅에서 사는 대원칙들을 위대한 용장인 여호수아를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여호수아는 배도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여호수아는 아직도 7개국의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에 정주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한 듯하다. 본장에는 이 나라들에 대해서 일곱 번 이상 언급되어 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과거에 역사하신 일과, 어떻게 하나님이 이들을 몰아내도록 이끌어 주신 것과, 또 그들이 있는 한 혼혈결혼과 우상숭배를 통해 이스라엘이 큰 위협을 받을 것에 대해 훈계하였다.
앞에서 나는 여호수아서는 신약의 에베소서와 걸맞는다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해변에서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송별사를 되새겨 보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내가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20:28~31].
우리들은 아무리 높은 수준에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가져도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고 스스로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노령에 이르러서도 그 동안에 받은 모든 진리의 빛이 무색할 정도로 뒷걸음질을 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높은 정상과 깊은 심연에서 실패하고 있다. 지상생활의 어느 단계에서도 우리들은 성결함을 입게 한 언약의 피를 은혜의 성령에도 불구하고 거룩치 못한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 비록 인생의 종착지에 이르러서도 지금까지 모아온 모든 영적 경험의 보화를 던져 버릴 수 있다.
형제여,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가졌던 과거의 꿈과 약속들을 되뇌어 보라. 인생의 봄에 가졌던 그 밝은 꿈과 순결했던 믿음의 열망에 비추어 오늘의 실패를 재어 보라. 10년전, 20년전, 30년전 당신이 아직도 청년이었을 때, 혹은 홍안의 청소년이었을 때 가졌던 약속과 희망과 꿈과 소원들...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거룩과 순결을 회상하며 오늘의 당신을 생각해 보라.
우리들은 오늘의 자신 속에서 배도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자신의 냉담한 가슴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가? 기도없는 우리 생활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하나님과 바르게 동행하고 있다고 보는가? 우리들 중에는 지금 그릇된 길로 내딛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은 혹시 나이를 먹어가면 투쟁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청년의 때에만 유혹이 강해서 젊었을 때에 힘껏 싸우면 늙어서는 별로 힘들지 않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해가 감에 따라 투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누구든지 정신이 든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목적을 좇아 끝까지 달리는 일이 쉽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도의 위험은 그리스도인의 걷는 매 발자국마다 깔려 있다. 끝까지 잘 달리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적은가!
나는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다급한 심정으로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의 교회에는 배도의 징조가 없는가? 기도없는 지도자의 냉담한 생활이 교회의 교제를 위협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령으로 이끌리는 힘있는 지도력이 없으면 영혼들에 대한 열정은 금방 식어질 것이다. 당신의 교회에는 부족하거나 허약한 지도자가 없는가? 당신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성실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럼 배도의 필연적인 결과를 살펴보자.
첫 번째 결과는 패배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수23:13]. 여호수아는 하나님 자신이 승리를 거두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수23:3].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 신실한 자에게만 주어진다. 교회를 새로운 영적수준의 경지로 이끌어 올린 이 오순절의 에너지는 불순종하는 백성에게서는 모두 빠지게 된다. 배도는 패배를 재촉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힌다. 그 결과 주님은 다시는 적들을 더 몰아내시지 않는다.
두 번째 배도의 결과는 같은 절에 있듯이 고통을 가져온다.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끝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적을 용납하거나 같은 땅에서 동거하면 반드시 큰 고통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는 꼭 다루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한 편으로 제쳐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들이 적당히 취급하고 편리한 대로 보아넘긴 유혹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가시와 올무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타협하는 교인은 행복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적이 한 발이라도 들어오도록 용납하면 멀지 않아 가시와 덫에 걸리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배도의 세 번째 결과는 수치이다.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 [수23:16]. 물론 이런 비극적인 배도의 길을 걷지 않고 축복의 땅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여호수아는 배도의 영향과 결과를 경고하면서 3가지 배도에 대한 방어책을 제시해 주었다.
첫 번째 순종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23:6]. 당신은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삼을 때에 그에게 이와 꼭 같은 말씀을 준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 믿음에 관한 대원칙들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달되고 있다. 각 세대마다 교회는 신앙생활의 대지침들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가르침에 직면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순종의 원칙이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 성경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가 문제이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을 다 믿는다고 하지만, 24시간을 그 말씀의 계시에 따라 살고 있는가가 문제이다. 당신은 조용한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성령의 말씀에 찔려서 급히 잘못된 일을 바로잡은 적이 있는가? 왜 우리들은 더 많이 기도하지 않는가? 왜 사람들은 성경을 더 많이 보지 않는가? 왜 오늘날 우리 교인들은 하나님과의 시간은 적게 가지는가? 당신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 하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그렇게 하면 가끔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형제여, 당신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죄, 악습, 기도와 사랑의 결핍에 대해서 지적해 줄 것이다. 성령은 당신이 완전히 구세주께 굴복할 때까지 계속 당신의 죄를 확인시킬 것이다. 이에 순종하지 않으면 조용한 시간도 기도도 다 떠나게 되고 만다.
두 번째로 배도를 막는 길은 분리에 있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수23:7~8]. 즉, 가나안 족속들과 그들의 모든 죄를 떠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철저히 이탈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가지고 희롱하는 일을 그치고 죄와 사탄을 향해 투쟁을 벌여야 한다. 우리들은 집채만한 세속에 빠져 있으면서 나중에 손톱만한 헌신을 드리면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위선이다. 분리는 배도의 길을 막는다. 분리는 세속과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분리는 새로운 연합을 의미한다. 즉, 세속을 떠나 하나님과 친근하게 되는 것이다. 세속을 떠난 신자는 억지로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원하여 세속과 분리된 그리스도인들로서 주님만이 그들의 희망이요 힘이며 재산이다.
당신이 방심하고 있는 일이 비록 당신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져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을 지도자로 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실망과 상처를 주는 해를 끼친다. 당신은 신문이나, 텔레비젼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이런 일은 아무 해가 없다고 말할런지 모른다. 또 한두 번 기도회에 안 나가도 당신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볼런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을 지도자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당신은 큰 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제일 중요한 배도의 세 번째 방어책은 헌신에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수23:11]. 형제여, 순종하지 못하고 분리되지 못하는 원인은 따져보면 항상 헌신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 고 말씀하셨다. 세속을 끊지 못하고, 조심없이 살며, 기도없이 지나는 일의 근본원인은 구세주에 대한 참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이런 말씀을 한 것은 얼마나 적절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여호수아의 초기생애는 전투와 피로 가득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위대한 용사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년기의 폭풍은 황혼과 함께 잠자고 항상 싸우기만 하던 여호수아는 이제 이같이 말하게 되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어느 날 예수님은 한 해변가에서 베드로를 보고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다. 모든 것이 이 대답에 달려 있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라. 그러면 주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할 것이다. 주를 사랑하라. 그러면 담대한 증인이 될 것이다. 주를 사랑하라. 그러면 그의 말씀과 율법을 사랑할 것이다. 주를 사랑하라. 그러면 변하는 인간의 사랑 대신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을 찾게 될 것이다. 주를 사랑하라. 그러면 당신은 주님을 갖게 되고 주님은 당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옆구리에 가시와 바늘이 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아는 더 깊고 충만한 체험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주를 사랑하라. 그러면 주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내가 마지막 설교를 하게 된다면 이 구절이 그 본문이 될 것이다. 지나간 세대의 성자들이 영원의 관점에서 하늘과 지옥에 비추어 우리들에게 주는 말씀이 있다면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는 것일 것이다. 경망한 삶과 기도없는 마음과 냉담한 가슴을 막는 길은 사랑뿐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새롭고 충만한 체험으로 끌어올리며, 오늘의 교회에 부흥을 일으키게 하는 최대의 요인은 우리들이 가진 진리의 변호가 아니고, 성령으로 채워진 사랑의 가슴이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만이 불화를 정복하고 사랑만이 갈라진 가족을 묶어준다. 순수하고 뜨겁게 이기심이 없는 사랑을 원한다면 당신은 구세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랑을 주려면 사랑을 먼저 받아야 한다. 사랑을 전달하려면 우선 사랑을 머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해외로 퍼치려면 먼저 우리 가슴에 그 사랑을 담아야 한다.
우리 가슴에 이 사랑의 체험을 가져오게 하는 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뿌리시는 성령이다. 이 사랑을 아는자는 이미 하늘의 한 모퉁이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다. 더 이상 목마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응했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하나님의 성령께 굴복하라. 당신이 오순절의 분깃을 완전히 받을 때까지 쉬지 말라. 사랑의 시험은 감정이나 기분이나 말에 있지 않음을 기억하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14:21]. 사랑의 증거는 순종에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찾아서 읽어 보라. 배도의 최대 방어책은 사랑이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