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11)
M.R 디한
아브라함의 믿음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는 심각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쓴 것이다. 바울은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써 보존된다.” 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 은혜의 복음을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이 가만히 들어왔다. 그 거짓 선생들은 주장하기를,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우리 자신의 행위로 보존해야 한다.” 고 했다. 그 결과로 갈라디아 성도들은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렸고, 다시금 율법의 멍에 아래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다음과 같이 엄중하게 책망하고 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 누가 너희를 꾀더냐 …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갈 3:1,3,5)
아브라함의 본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지도 못하고, 그
구원을 계속 유지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아브라함의
구원은 어떻게 보존되었는가? 율법에 의해서인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율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약 사백 년 전에 살았었다(갈 3:17).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받고 보존되었는가? 이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 이것은 로마서 4:3에도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두 군데(갈 3:6과 롬 4:3)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언급된 것을
주목하기 바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다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그분의 인격과 말씀과 하신 일을) 믿었다”
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 과
‘하나님을 믿는
것’ 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와 악한 영들도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 은 믿기 때문이다. 단지 어리석은 자만이 “하나님이 없다”
고 한다(시 14:1).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도, 만일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그는 아직도 잃어버린바 된 영혼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다’ 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유일한 책은 성경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정말 믿은 것은
무엇이었는가?”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창세기 15장에 나와 있다. 바울은 이 창세기 15장으로부터 갈라디아서 3:6을 인용하고 있다.
창세기 15장은 구약성경에 있어서 ‘믿음의 장’이다. 이것은 마치 히브리서 11장이 신약성경에 있어서 ‘믿음의 장’인 것과 같다. 아브라함에
관한 기록에는 복음의 완전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8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아브라함에게 증거된 복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전파하신 복음은 약속의 아들 이삭에
대한 것으로 그의 출생, 그의 죽음, 그의 부활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삭은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이삭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모형이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간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모형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모형이다. 이러한 복음의 기록을 알아보기 위해서 잠시 창세기로 돌아가보자. 창세기 15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희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아브람은
방금 전에 14장에서 북방의 네 왕들을 크게 무찌르고, 롯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다른 다섯 왕들을 구출하여 돌아왔었다. 그런데, 이제 아브람은
자기가 무찌른 그 왕들이 후일에 자기에게 복수하러 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브람은 전리품들을 전혀 받지도 않았는데, 이 일로
인해 마음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바로 이때에 주님이 아브람에게 오셔서 그를 격려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니라”
고 하셨다. 이 말씀은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보호자니라.” 는 뜻과 같았다. 그리고 나서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고 하셨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너는 소돔 왕의 그 많은 전리품들을 받기를 거절했으나 염려하지 말라. 내가 친히 너의 상급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에 대하여 아브람은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즉 아브람은 하나님께 자신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노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자기에게 하셨던 약속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여러 해 전에 하셨던 약속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성취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통해서 한 아들을
낳게 해주시겠다고 이전에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긴 세월이 흘러 흘러, 이제는 아브람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던 그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지 어언 삼십 년이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하나님께 이것을 기억하시도록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창 15:2,3)
아브람은 씨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하여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즉시로
아브람을 재확신시키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4-6)
아브람은 무엇을 믿었는가?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무엇을
믿도록 요구하셨는가? 하나님은 아브람이 약속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요구하셨다.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오래 전에
약속된 아들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들을, 기적적으로 태어나고 초자연적으로 주시는 아들을 믿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성적으로는 불합리한 것을,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을 믿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아브람에게
다시 말씀하셨을 때, 아브람은 백세였고, 그의 아내 사래는 구십 세였다. 이처럼 아브람과 사래는 모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훨씬 지나
있었다. 즉 출산에 관한 한, 아브람의 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래도 오래 전에 임신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버려서, 어머니가
되는 일에 있어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녀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 분명하다. 또한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라와 아브라함은 죽어 있었다
창세기 18:11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 많아 늙었다.
이는 그들이 나이가 많아서 노쇠하고, 심히 허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라는 이미 오래 전에 가임연령이 지나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다” 고 기록되어 있다(창
18:11). 히브리서 11:11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사라에게 사실이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브라함도 역시 출산
연령이 이미 지나서 자연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성적 무능력자였다. 앞에 인용된 구절들에는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후손을 낳게 된 데 대한 기록이 로마서 4장에 다시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에 관하여 로마서 4:18-22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증거하신 말씀이다. 아브라함의 몸은 죽어 있었다. 그리고 사라의
태도 죽어 있었다. 만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한 아들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이 약속이 기적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을 구원한 것이다. 이삭의 출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같이 큰 기적이었다. 이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었다. 아브라함은 이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기셨던 것이다.
우리도 또한 마찬가지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사실이었던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사실이다. 즉 구원과 칭의는 지금도 기적적으로 잉태되시고 초자연적으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얻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요한은 요한일서 5:9,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이
진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될 수 있을 만큼 분명하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바된 영혼을 위한 이외의 다른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이론이나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고, 바로 믿음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아무런
환상이나, 감격이나, 육감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이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장을 다음과 같은 중요한 말로 끝마치고
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도 위함이니 만일 우리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하나님)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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