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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갈라디아서강해-MR디한

갈라디아서 강해(9)

by 복음과삶 2005. 7. 2.

 

갈라디아서 강해(9)

 

M.R 디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는가?” 이것은 이미 바울 당시에도 격렬하게 논의되었던 문제였다. 이에 관하여 성경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된 해답 - 신자는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는 것 - 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선함이나 행위로써 구원에 이르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사단이 사람에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원수 사단은 우리가 종교적이며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도록 애쓰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을 개선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힘써 율법을 지키게 만들고, 계속해서 힘쓰고 애쓰게 만들며, 진지하고 신실하며 경건해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 모든 계명들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게 만든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이것은 다른 복음이며,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가련하고 불쌍한 죄인으로서 은혜로우신 그리스도께 겸손히 나아가는 것을 막으려는 원수 마귀의 간교한 궤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바울은 말하기를, 율법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요, 죄의 두려움을 깨닫게 해 주며,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 다음에, “신자는 율법 아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바울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선언한다. 신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롬 6:14). 믿는 사람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롬 7:2). 또한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롬 7:6).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롬 10:4).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롬 8:2). 그리고 갈라디아서 2:19에서 바울은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죽었는가?

“그러나 바울, 내 말을 들어보시오.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죽었고, 또 어디서 죽었으며, 어떻게 처형되었단 말이오?” 이에 대한 해답은 갈라디아서 2:19,20에 나와 있다. 이 두 구절은 함께 읽혀져야 한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그리고 나서, 바울은 즉시 자기가 어떻게, 어디서, 언제 죽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있다(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갈 2:20).
나는 예루살렘 영문 밖 갈보리 산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제 당신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한 바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자기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보신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은 한 인간, 그의 손과 발이 못박힌 한 인간의 몸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내려다보셨을 때, 하나님은 육체적인 몸 이상의 것을 보셨다. 즉 하나님은 영적이고 신비한 몸, 곧 그리스도의 몸도 보셨던 것이다. 이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 모든 지체들이 한 몸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한 몸으로, 그리스도를 그 머리로, 우리를 그 지체로 보신다. 고린도전서 12:13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그리고 에베소서 5:30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살과 뼈가 됨)이니라”.

그리고 또한 골로새서 1:18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이처럼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려다 보셨을 때, 하나님은 머리만 보신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를 가진 몸 전체를 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몸 된 교회를 보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몸에 일어난 일을 그 몸의 모든 지체들(신자들)에게 일어난 것으로 여기신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그 몸, 즉 교회를 보셨으며, 자기 앞에 있는 그 몸의 모든 지체들을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에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언제나 현재적 사건이다(God lives in the eternal present). 시간도 피조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시며, 그 앞에서는 만물이 이미 존재한 채로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전지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스도의 몸은 영원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그 몸 안에서 모든 지체, 모든 신자, 모든 구원받은 사람을 알고(보고) 계셨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우리의 구원도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이미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the Lamb slain fro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KJV 참조)’이셨다(계 13:8).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미 창세 전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었다.

에베소서 1:3 이하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를 미리 보셨고, 또 미리 아셨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내려다 보셨을 때, 그리스도의 몸을 보셨으며 그 몸의 모든 지체들을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보셨으며, 나를 보셨고, 또 당신이 믿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보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그 몸의 모든 지체들에게 일어난 일로 간주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라는 바울의 말의 의미이다. 은혜로 말미암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께 일어났던 일은 바울에게도 일어난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 몸 안에 있는 모든 지체들이 받아야 할 율법의 형벌을 대신하여 받음으로써 완전히 죄의 삯이 지불된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만일 바울이 개인적으로, 또는 자기의 육체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했을지라도, 그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몸에 의한 율법을 향하여, 율법으로 말미암은 죽음보다 더 실제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서 7: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제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러나 아직 상고할 것이 더 남아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에, 두 사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에게 가서, 주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서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몸)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시체를]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몸)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 두고”(마 27:58-60)

여러분은 위의 세 구절에서 시체(몸)란 단어가 꼭 세 번 사용된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이제 ‘우리는 그의 몸의(그리고 그 살과 뼈의) 지체이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그들이 구세주를 장사지냈을 때, 그들은 그 ‘머리’와 함께 ‘몸’도 장사지냈던 것이다. 오직 우리가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신비적인 관계를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로마서 6:3,4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음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직 더 남아 있다. 즉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바울은 다음 구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있다”(우리 성경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주 예수님이 살아나셨을 때, 그 몸 전체가 살아났던 것이다. 그 몸의 모든 지체들이 무덤에서 살아 나왔다. 즉 믿는 우리가 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이다. 로마서 6:8 이하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에 다시금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 6:8-11)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되었으며,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동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주장하시는 것은 우리가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골로새서 3:1 이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리웠고 또 앉히웠음

그러나 아직도 더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에 앉힌 바 되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주 예수님의 몸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늘에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지 40일 후에 승천하셨는데, 그 때에 그 ‘머리’와 ‘몸’도 함께 승천한 것이다. 현재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이미 하늘나라에 앉히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2:4-6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고 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며, 영광스러운 진리인가! 믿는 우리의 신분과 지위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자기들이 율법의 계명 아래 있으며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서 염려하고 분투 노력하며 힘쓰고 애써야 한다고 잘못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인 일인가!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 은혜의 진리를 알기만 한다면 자기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에 가 있으며 하늘에 앉히운 바 된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하늘에 있다

스펄전은 한때 “당신의 머리가 수면 위에 있는 한, 당신은 물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여 지금은 하늘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요, 그의 살과 뼈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죄를 지을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것은 아주 무책임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만드는 대단히 위험한 교리이다. 만일 우리가 은혜로써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다면, 우리는 우리 원하는대로 허랑방탕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전파하며, 율법과 그 저주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을 전파하는 우리들은 이러한 비난을 끊임없이 받는다. 즉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가르침은 방탕한 삶을 살도록 조장하며 우리가 죄짓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비난을 맨 처음 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우리와 똑같이 은혜를 전파함으로써 이와 동일한 거짓된 비난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바울 시대에 율법주의자들과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들은 바울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가르침으로써 죄악되고 부도덕한 삶을 살게 만든다고 그를 비난했다. 이와같이 주장하는 자들은 은혜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로 무법한 자가 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율법인 ‘생명의 법’ 아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우리는 사망의 법(율법)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생명과 사랑의 법 아래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구원받은 증거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율법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 안에서 이루신다. 다음과 같은 로마서 8:3 이하의 말씀으로써 이 장을 마치려 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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